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시편19편1절 영광2 자기 영광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라 본문
시편19편1절-6절 영광2 자기 영광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고 했는데
믿음으로 사는 삶은 영광의 싸움입니다.
자기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의 싸움입니다.
자기 영광에 취한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께서는 무슨 일을 하실까요?
온 세상 우주만물로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자기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합니다.
자기 영광을 위해 살면
자기만 보이고
온 세상 온 우주만물이 보여주려고 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도 못하고 그 소리를 듣지도 못합니다.
시편 19편 1절입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에게 나타내고 싶어 하십니다.
2-4절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날이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는데
어떤 일이 있습니까?
말도 하고 지식도 전하는데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의 소리가 분명히 있어서 온 땅에 통합니다.
그리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릅니다.
아무 말도 언어도 소리도 없는
하늘과 해와 별과 날과 밤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나타내십니다.
그런데 과연 소리가 없을까요?
소리가 없는 것이 아니라 너무 커서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는 것이 세상의 전부일까요?
우리는 눈이 너무 제한되어 있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지구가 움직이는 소리, 온 우주 천제가 달려가는 소리,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생물들과 거대한 나무와
세상의 모든 동물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외치고 있습니다.
자연계에서 조차 그런데, 영적세계에서는 어떨까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합니다.
선포는 가부를 묻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의견을 묻는 것이 아닙니다.
선포는 믿음을 요구하고 아멘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한 동기목사님 이야기>
버스를 타고 가다가 창 밖을 보면서 갑자기 눈물을...
형~왜 그래요. "창태야~저기 꽃들 좀 봐라~"
하나님께서도 저 꽃들을 저렇게 예쁘게 봐주시고 사랑해주시는데,
우리는 얼마나 귀한 존재냐? 게다가 우리는 목사가 될 사람들이 아니냐?
그게 너무 감사해서 그냥 눈물이 난다."
형이 요즘 너무 힘들어서 그냥 눈이 수도꼭지네 수도꼭지야~
메마랐던 김창태 전도사 때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늘 밤만 되면 저를 데리고 천안 시내가
다 내려다 보이는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함께 산기도를 같이 했는데,
천안 야경을 보면서 주여~잃어버린 영혼들을 주소서!"
매일 이렇게 기도했거든요. 꽃을 보고 눈물흘리는 영성.
꽃을 보고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는 영성이 부럽지 않습니까?
야경의 불빛을 보면서 잃어버린 영혼들을 위해 부르지는
영성을 보고싶지 않습니까? 그런 영성을 가지고 싶지 않습니까?
하지만 하나님께서 온 우주만물을 동원해서라도
우리에게 보여주고 들려주기 원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도저히 보지 못하고 도저히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 영광에 붙들려 사는 사람들에게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습니다.
자기 영광에 묻혀살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없습니다.
<자기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사람은
자기 소리만 냅니다.
자기 말을 할 뿐입니다.
자기를 보여주는 데 힘을 쏟을 뿐입니다.
자기가 한 일을 말하고 자기가 만든 것을 보여줄 뿐입니다.
온 세상이 자기에게 집중해야만 만족합니다.
결국 자신을 만드신 하나님께 영광이 아니라
자신이 결국 하나님이 되어야지만 만족하는 것.
그것이 <죄>입니다. 죄의 결국은 멸망입니다.
자기 영광은 망하는 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자기 영광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 중에서도
사람을 만드실 때는 흙으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만드셨을 때,
흙 자체 만으로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냥 흙입니다. 맞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무 것도 해주지 않으시면
그냥 흙일 뿐입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하시지 않으시면 그냥 흙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주셔야지만
사람이 살아있게 됩니다. 생령이 됩니다.
하나님의 생기가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닌 그냥 흙입니다.
자기 자신을 인식하는 첫 출발점이 여기입니다.
나는 그냥 흙이었다.
내가 의미를 가지고, 세상을 다스릴 권세를 가진 것은
바로 하나님의 생기가 내게 불어올 때 뿐니다.
우리의 존재의 시작이 하나님의 창조하심으로
하나님의 손에서 시작되었음을 아는 것에서
영광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그래서 한번씩 내가 약할 때를 경험할 수록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 그 크신 영광을 더욱 생각하게 됩니다.
광야의 시간을 환영하십시오.
광야의 시간? 어쩔 수 없이 아무 것도 없는 상황,
힘겹고 눈물나는 형편이 되어서, 오직 하나님 밖에는 없다고
하나님께만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바로 광야입니다.
자기 영광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려면,
우리 인생에 광야의 시간, 광야의 장소가 필요합니다.
자기 영광에 취한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듣게 하신 곳이 광야입니다.
아무 것도 없는 곳, 경제적으로 아무 것도 없는 상황,
건강이나 소유, 내 인생에 굶주림과 철저한 약함을
경험하게 되는 그 때가 우리에게는 선물입니다.
예)우리 교회 한 집사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집사님께서 한 때 사업을 하다가 너무나 힘들었던 상황.
쌓여가는 빚 때문에, 돈에 쫄다리면서 힘겹게 살아갔던 때에,
어쩔 수 없이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와서 간절히 기도할 수 밖에 없었고
그 때부터 새벽기도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기도를 하는 중에, 너는 복의 통로다 라는 말씀을 듣고
얼마나 행복했는지, 상황은 하나도 변한 것 없이 힘들었지만
늘 웃고, 기뻐하고, 얼굴이 환하게 하니까,
사람들이 그러더래요. 저 사람이 미쳤다고.
일이 너무 안되니까 사람이 미쳤다고 사람들이 그랬더래요.
그런데, 그 때부터 일이 되던 안 되던 빚을 다 갚아가고,
지금도 너무나 착실하게 일하고 계시고,
저와 함께 주주운동에 대한 마음, 흘려보내는 마음을
같이 해주셔서 저의 주주운동을 도와주고 계시고
이제 더 잘 흘려보내기 위해서 여러가지로 기도하고 준비하고 계십니다.
자기 영광을 위해 사는 사람은 주주운동 흉내는 낼 수 있지만
진짜 주주운동을 못합니다. 광야의 시간을 지나가면서
주께서 주인되심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고, 감사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 쓰임받을 일을 준비하고 기도하고 계십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모세는 아기로 태어날 때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할 아기로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모세가 궁전에 있을 때,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40년 왕자의 신분이 끝나고
살인자, 도망자의 세월 40년에도
처음 광야로 도망쳤을 때, 모세를 부르신 것이 아니라
40년의 끝에 하나님은 힘빠지고 자기 영광이 다 빠진
보잘 것 없는 흙이 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그제서야, 모세를 불러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일을 위해
쓰임받았습니다.
자기 영광을 위해 살았을 때는
겨우 애굽 궁전에 왕자였다고는 하지만
눈치나 보는 힘도 없는 왕자였고,
결국 살인자, 도망자 신세나 되어서
잊혀지는 존재가 될 뿐이었지만
자기 힘이 다 빠지고 더이상 자기 영광을 생각하지 않을 그 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도록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셨습니다.
영광의 싸움
자기의 영광과 하나님의 영광의 싸움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 위해 자기의 영광을 내려놓고
광야의 길을 걷는 중이라도 오히려 환영하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받을 수 있는 중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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