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사무엘상

오직 예수 뿐입니다.(삼상 6장 1절~18절)

행복으로초대 2018. 7. 6. 00:16

 

"오직 예수 뿐입니다"라는 제목을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지난 수요기도회 때, IWT GX 인터내셔널 팀의 초청 공연이 있었습니다. 지난 수요기도회 때, 공연을 보시면서 어땠습니까? 좋았습니까? 초청공연을 보면서 복음을 위해 자신을 던진 청년들을 보았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앞에서 춤추고 하니까 그들의 깊은 내면은 보이지 않았지만 사실 여러가지 아픔과 상처들이 많은 청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극복하고 춤이라는 재능으로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수요기도회 때. 간증과 춤도 참 좋았지만 사실 전날 화요일에 구역장 권찰 모임 때 간증과 춤이 저는 더 좋았습니다. 훌라춤인가요? 하와이 춤있죠? 그 춤을 추시는데 손끝과 몸동작, 표정이 정말 천상에서 추는 춤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이 말하는 영어 단어 중에 인상깊었던 두 단어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Crazy' 였습니다. 그 사람들 미친 사람들이에요. 완전 미친 사람들이에요. 정신병자들이 아니라, 예수에 미친 사람들이었습니다. 자기들을 소개할 때, 수에 미친 사람들이라고 했는데, 그 말에 동의가 됩니다. 또 하나는 'say yes'였습니다. 주님의 뜻이라면 yes만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에 Crazy한 사람들이고 예수님의 뜻이라면 Yes만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사실 오늘 본문은 지난 수요일에 하려던 설교였습니다. 그런데 설교내용에 너무나 걸맞는 사람들을 먼저 보게 하신 것 같습니다. "오직 예수 뿐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 결국 예수에 Crazy하고 예수에 Say Yes만 하는 것과 같은 것이죠. 오늘 말씀을 통해 여러분도 오직 예수 뿐이라는 고백을 하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벧세메스로 가는 암소로 유명한 본문입니다. 계속해서 살펴본 것처럼 하나님의 손이 블레셋의 우상인 다곤을 박살내시고, 블레셋 땅에 일으켜 죽음과 공포의 땅으로 만드십니다. 결국 블레셋은 하나님에게 항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언약궤를 어떻게 하면 다시 이스라엘로 돌려보낼까 회의를 합니다. 결론은 이렇습니다. 하나님께 속건제 제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새수레에 언약궤를 싣고 수레에는 금독종 형상 5개와 금쥐 형상 5개를 실었습니다. 그리고 한번도 멍에를 메어 보지 않은 젖나는 암소 둘로 수레를 끌어 벧세메스로 가는 길을 가게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는 블레셋 사람들의 속마음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보고 있다가 만일 궤가 그 본 지역길로 올라가서 벧세메스로 가면 이 큰 재앙은 그가 우리에게 내린 것이요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를 친 것이 그의 손이 아니요 우연히 당한 것인 줄 알리라 하니라."

 

그 정도로 두드려 맞았으면 하나님의 손이 그들을 친 것인 줄 알아야 할 텐데, 그들의 속 마음은 여전히 아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냥 우연히 된 것이라고 믿고 싶은 것입니다. 지금 블레셋 사람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언약궤를 빼앗아 온 그날부터 일어난 모든 일, 즉 다곤의 신상이 박살난 것, 블레셋 온 지역에 독종이 창궐한 것 이런 일들이 그냥 우연히 일어난 일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다곤 신상이 박살났지만 하나님이 박살낸 것이 아니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독종이 일어나 끔찍한 죽음이 몰려왔지만 하나님이 내리신 재앙이 아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우연'이기를 바라는 바램을 넘어 더 나아가 우연이라는 결론을 내리기 위해 장치를 만들어 둡니다. 나름 하나님을 부정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을 준비해 둡니다.

 

7절과 10절을 보십시오. 젖나는 암소의 송아지들을 어떻게 합니까? 집으로 돌려 보내 우리에 가두었습니다. 여러분, 암소가 그냥 암소가 아닙니다. 젖나는 암소입니다. 모성애가 최고치에 달해 있는 상태입니다. 새끼 놓은지 얼마안된 암송입니다. 모성애라는 본능에 따라 행동할 수 밖에 없는 암소입니다. 암소 둘이 수레를 끌고 가면서 어떻게 합니까? 12절을 보시면 울면서 수레를 끌고 갑니다. 송아지는 안 울었을까요? 송아지도 엄마찾아 음~~메 울었을 겁니다. 

 

이렇게 한 것은 하나님을 지우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일이 우연히 된 일이야! 이스라엘의 신 여호와 하나님이 한 일이 아니야! 그냥 우연하게 일어난 일이라고 합리화를 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어디 있냐?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한 일이 아니다.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이 어디 있느냐? 그것을 위해 여러가지 증거자료를 만들어 냅니다. 이래서 하나님이 없고, 저래서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없다고 소리치는 세상에, 하나님이 한 일이 아니라며 장치를 만들어낸 세상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땅의 모든 일들이 하나님 없이 되어진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더욱 외쳐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섭리를 더욱 외쳐야 합니다. 세상은 하나님이 아니라고 해도 우리는 하나님이라고 외쳐야 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공중의 나는 새도 하나님이 허락해야지만 날아갈 수 있고 떨어질 수 있고 앉을 수 있습니다. 들풀도 피고 지는 것도 하나님이 허락해야만 피고 집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 아래, 하나님의 시간아래 하나님의 철저한 섭리 아래 움직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이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의 인생에는 우연이란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있습니다. '우연히', '어쩌다보니' 이런 말 쓰지 마십시오. 블레셋 사람들은 그들의 역사에서 하나님을 어떻게 하든지 지우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다 거짓이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애써 부정하고 싶은 마음에서 나오는 행동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이 부정한다고 부인한다고 없어지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세상을 질서있게 운영하시며 세상을 통치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아멘? 예! 아멘입니다. 이 믿음 더욱 굳세어라. 아멘!

 

믿음으로 아멘 하신 분들은 이제 다음의 말씀도 아멘으로 받으십시오. 12절입니다.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선까지 따라 가니라."

 

암소가 어떻게 합니까? 찾아볼까요? 

1)벧세메스로 갑니다. 가야할 목적지를 향해 갑니다.  

2)길로 바로 행합니다. 대로로 행합니다. 샛길로 빠지지 않습니다.

3)울음이 터져 울면서도 길을 갑니다.

4)좌우로 치우치지 않습니다.

5)블레셋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보란듯이 가야할 길을 마칩니다.

 

그럼 여기서 우리가 이 암소들에게 배워야 할까요? 암소처럼 행해야 할까요? 여러분! 여기서 암소만 보지 마십시오. 암소가 바로 가는게 아닙니다. 암소가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데 아닙니다. 암소느 그냥 도구일 뿐입니다. 암소가 바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않도록 붙잡고 움직이시는 분이 누구일까요? 하나님이십니다. 그걸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보십시오. 만약 우리가 암소라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분명합니다. 철저히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 끌려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모성애가 나쁜 것이 아니지만 오늘 말씀에는 본능의 한 부분으로 나타납니다. 본능에 이끌려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끌려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가신 길을 가지 못하게 하고 자꾸만 다른 길로 가도록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여기에 마음 두었다가 저기에 마음 두었다가 이리 저리 갈팡질팡 하는 삶을 살지 마십시오. 지금 이 순간 우리의 고백은 이것 뿐입니다. "오직 예수 뿐입니다." 여러분의 삶의 한 길, 한가지 목표! 오직 예수 만을 따르기로 결단하는 이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그것 조차도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내 마음속에 오직 예수 한 분 만으로 만족하는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세상의 다른 것으로 내 삶이 끌려가지 않게 하시고 오직 주님만을 따르는 한 길로 좌우로 치우치지 말고 걷게 하소서. 성령님! 너무나 연약한 내 마음 붙잡아 주시고  딴 마음 생기지 않고 딴 길로 가지 않게 하소서. 딴 길로 가지 맙시다!" 우리에게 주어진 길은 오직 한 길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오직 한 길만을 걸었던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오직 한 길을 걷기 위해 눈물 뿌렸습니다. 피와 땀을 흘리셨습니다. 견디기 힘든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뜻보다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살을 찢는 채찍질을 견디셨습니다. 오직 한길을 걷기 위해 배신과 조롱을 견디셨습니다.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시고 죽음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14절을 보면 벧세메스에 도착한 암소가 번제의 제물이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십자가의 한 길을 걸아가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구원을 위한 단번의 제사로 자신을 제물로 주신 예수님과 같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이제 이제 우리를 향해 손짓 하십니다. 그 길을 걸어갈 때,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지켜 보고 있습니다. 그 때 보란듯이 믿음으로 살아서 하나님을 더욱 크게 나타내는 우리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지금 자주 보고 즐겨 보는 것이 무엇입니까? 안목의 정욕을 채우는 것이라면 그만 보십시오. 여러분이 요즘 즐겨하는 취미나 끊지 못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육신의 정육을 따라 하는 것이라면 그만 두십시오. 여러분이 요즘 세운 목표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전혀 무관한 이생의 자랑을 위한 것이라면 다시 목표를 세우십시오. 세상의 유혹에 좌우로 치우치지 맙시다. 정욕을 버리십시오. 세상의 쾌락보다 신앙의 희락을 누리며 살아가십시오. 오늘 우리의 고백은 "오직 예수" 뿐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