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지지 않는 하나님의 마음(레6:12~13)
꺼지지 않는 하나님의 마음(레6:12~13)
레위기1~6장 7절까지는 5대 제사의 큰 원칙에 대해서 알려줍니다.
번제 6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 오제사
그리고 난 후, 다시 6장 8절부터는 5대 제사의 세부지침에 대해서 자세하게 다룹니다.
큰 원칙을 알려주고 세부지침을 알려주는 순서입니다.
번제는 제물을 완전히 다 태워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로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헌신과 충성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번제는 상번제라고 해서, 늘 드리는 번제, 제사장들이 매일 아침에 한번, 저녁에 한번 드리는 제사를 말합니다.
하루에 2번, 이스라엘 온 백성을 위해서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번제에 대한 규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불이 꺼지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제사장들이 번제를 어떻게 준비하고 드려야 할지를 설명하면서 9절, 12절, 13절 안에 세번이나 강조했습니다.
불이 꺼지지 않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일본 맛집의 비결 - 3대 동안 불을 꺼뜨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불은 실제로 포로로 끌려가기 전까지 꺼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불에 대해서 우리는 몇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불은 하나님의 임재를 뜻합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떨기나무 가운데 꺼지지 않는 불 가운데 계신 하나님을 만났을 때의 불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인도했던 불기둥도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습니다. 갈멜산에서도 불로 엘리야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불은 거룩함과 정결함을 뜻합니다.
성막문으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가는 곳이 번제단이다. 번제단은 나의 죄를 대신할 희생제물을 바치는 곳이다.
번제단은 죄를 버리는 곳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속죄제물을 번제로 완전히 태우면서 나는 죄인임을 고백하고
번제의 불 앞에서 죄를 태우고 거룩해지고 정결해 지는 것입니다.
불은 성령을 뜻합니다.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서도 성령님은 불의 혀와 같이 임하셨습니다. 불은 성령의 임재하심의 상징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가는 것이 유익이다. 앵~? 예수님이 떠나는 것이 왜 유익일까요? 그래야 보혜사 성령이 오시기 때문이다. 보혜사 성령이 오시면 권능을 받고 능력을 받고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그래서 성령을 사모하라고 하십니다. 간절히 기도해야할 것은 바로 성령이 오시도록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우리는 제사를 드리면서 불위에 번제물을 태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친히 번제물이 되셔서 단번의 제사로 모든 것을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성령의 불로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고 있습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더욱 모이기를 힘쓰라고 합니다. 이것이 예배의 불을 끄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소멸치 말라고 하시면서 모든 교회와 성도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꾸준히 유지해야 한다고 합니다.
불은 이와 같의 의미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사장들이 상번제를 드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불이 꺼지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번제단에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불을 보면서 늘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번제단의 불이 인간의 헌신과 충성, 하나님의 임재, 거룩함과 정결함, 심판의 무서움을 나타낼 수도 있지만
꺼지지 않는 불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실지 생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꺼지지 않는 불이 의미하는 것은 꺼지지 않는 하나님의 마음을 나타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마음이 꺼질 때가 있습니다. 은혜를 많이 받고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고,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을 체험했는데 뜨거웠던 우리의 마음이 점점 식어가서 내 마음이 완전히 꺼져 버릴 때가 얼마나 많습니다.
마음이 덥다가 차가웠다가, 오락 가락, 왔다 갔다 나도 내 마음을 몰라서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마음은 한번도 꺼진 적이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꺼졌다 켜졌다 하지만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마음은 한번도 꺼진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꺼지지 않는 하나님의 마음이 나의 마음이 되게 해달라고 우리는 이시간도, 아니 평생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기도해야 합니다.
이 순간 저는 탕자를 생각했습니다.
탕자 비유의 등장인물은 아버지, 첫째 아들, 둘째 아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기에 아버지를 떠났던 아들은 둘째 아들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를 떠났던 아들은 둘 다입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를 떠나서 허랑방탕하게 살았습니다.
자기 멋대로,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빈털털이 거지가 되었습니다.
그 때가 되서야 후회를 하고 아버지를 생각했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 있을 때가 좋았어~!"
그가 실제로는 눈에 보지 못했지만 둘째 아들이 집을 떠나고 아버지를 떠난 후,
아버지는 한번도 편한 날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를 떠난 아들을 한번도 잊은 적이 없고, 기억에서 지운 적이 없습니다. 아침마다 저녁마다 저~~~~ 기 멀리 보이는 길자락 끝을 바라보면서 내 아들의 그림자라도 보이나 유심히 살펴보면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일을 하다가 허리를 펴면 또 내 아들이 언제 오려나? 아들 걱정 때문에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해가 질 때쯤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석양의 끝을 보면서 내 아들의 그림자라도 보이려나? 보고 또 보고... 보고 또 보고.... 그렇게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마음은 한번도 꺼진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 아들은 떠나서 자기 마음대로 살면서, 아버지에 대한 마음이 다 꺼져버렸습니다.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아버지 생각 안하다가 꼭 모든 걸 다 잃어버리고 빈손이 되고 나면 아버지 집이 좋은데, 갈까 말까.... 이게 우리 모습 아닌가요?
하지만 하나님 아버지, 그 아버지 똑같지 않습니까? 한번도 아버지의 마음은 꺼진 적이 없습니다.
그럼 첫째 아들은 어떤가요? 몸은 아버지와 함께 있지만 마음은 오히려 더 멉니다. 둘째 아들이 돌아오자 아버지가 소를 잡고 좋은 옷을 입히고 반지를 끼워주면서 아들의 지위를 회복시켜주고 큰 잔치를 베풀어 손님들을 초청합니다.
이 모습을 보고는 아버지께 온갖 불만을 쏟아냅니다. 입이 이만큼 나와서 씩씩 거리면서 "아버지~ 저 나쁜 놈이 아버지 버리고 집떠나 있는 동안 저는 아버지를 위해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아십니까? 그런데 어떻게 저한테 이렇게 할 수 있습니까?" 하면서 아버지한테 대들고, 동생한테 온갖 미운 감정을 다 드러냅니다.
몸은 비록 아버지 곁에 있었지만 아버지의 마음과 첫째 아들의 마음은 너무나 멀리 있었습니다.
아들들을 향한 꺼지지 않는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보면서 "내 아들아~ 내 아들아~" 다시 돌아온 아들을 보면서 눈물반 웃음반 너무나 기뻐 어떻게 할 수가 없는데,.... 첫째 아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모릅니다.
기억하십시오. 아버지는 한번도 마음이 꺼진 적이 없습니다. 한번도 잊어 본적이 없습니다. 한번도 기억에서 지워본 적이 없습니다. 아침마다 저녁마다 낮이나 밤이나 그 마음을 지키시면서, 나를 품어주시면서 아침에도 품고 저녁에도 품고 오늘도 내일도 그 꺼지지 않는 따뜻한 마음으로 품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와 그 마음을 아는 내 마음이 합쳐지면 진정한 함께함이 이루어집니다.
그 때 진짜 함께 하게 됩니다. 왜 그렇게 성막 번제단에서 아침마다 저녁마다 불이 타오를까요?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고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시는구나~마음을 아는 순간, 아버지와 아들이 진정한 함께함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교회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었고 애타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된 사람들이 함께함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전도, 기도, 말씀, 선교, 섬김의 모습들을 보십시오. 우리가 지금 함께 하고 있잖아요. 우리가 왜 좋은 교회가 되어가고 있을까요? 함께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버지의 마음과 내 마음이 하나되고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가면서 성도 모두의 마음이 하나되고 그렇게 함께하니 행복한 것 아닌가요?
꺼지지 않은 아버지의 마음이 우리의 마음이 되기 원합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마음 앞에 함께함으로 모입시다.
교회와 이런 저런 일로 인해 몸이 멀어져 버린 성도 여러분들~ 몸이 가까워지기를 원합니다.
마음이 멀어진 성도님들~ 마음이 가까워져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몸과 마음이 아버지께로부터 멀어진 모두가 함께함의 기쁨을 누리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