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21-35 주의 영광을 보는 자
사람은 태어나서 반복되는 일상을 보내면서 삽니다.
매일 깜짝깜짝 놀라운 일, 매일 이벤트,
매일 너무 큰 사건들, 특별한 일들이 계속 있으면
사람이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
차분한 매일의 일상들 속에서 특별한 일은
아주 가끔씩 찾아옵니다.
하지만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어떤 사람은
그의 일상 가운데 일어날 어떤 한 날,
어떤 한가지 특별한 사건을 위해
평생을 기도하고 금식하며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난지 8일 만에,
예수님의 부모가 정결예식을 하러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입니다.
그 때 예루살렘에 시므온 이라는 사람을 만납니다.
이 때 시므온이 아기 예수님을 보고 아기 예수님을 안고
찬송을 합니다. 그런데 이 찬송이 심상치 않습니다.
29절부터 32절 까지 말씀을 보십시오.
29절: 이제는 말씀하신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주신다고 찬양합니다.
이 말은 평생을 살면서 손꼽아 기다린 순간이 있었는데
약속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드디어 아기 예수님을 보면서 약속이 성취되었음을 깨닫고
이제 약속이 이루어졌으니 마음이 평안해 진 것입니다.
30절: 아기예수님을 보는 것만으로도 주의 구원을 보았다고 하며.
만민, 모든 사람들을 위해 예비된 구원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아기 예수님은 이방을 비추는 비치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광이라고 찬양합니다.
시므온은 아기예수님을 통해 주의 영광을 보는 사람이었습니다.
시므온은 어떻게 아기 예수님을 보는 것 만으로도
구원을 보고 빛을 보고 주의 영광을 보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1.일상의 경건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시므온이 어떤 사람이라고 합니까?
25절입니다.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어떻게 예수님을 알아보고
어떻게 주의 영광을 볼 수 있었을까요?
의롭고 경건함으로 일상의 경건함을
지켰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한번의 만남을 위해
그는 의롭고 경건한 삶을 살았습니다.
시므온은 성령의 지시를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성령의 지시를 아무에게나 하실까요?
하나님 없이, 하나님과 아무 관계없이 살아가며
말씀도 없이, 기도도 없이, 예배도 없이, 찬양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에게 성령님께서 지시를 내리실까요?
일상의 경건에 항상 힘쓰던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이 받을 수 없는
성령의 지시를 내리시는 것입니다.
일상의 경건에 힘쓰십시오.
예수님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경건생활에 대해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말은
'습관을 따라'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 조차 이 땅에서
인간의 몸으로 사실 때는 기도하는 일에 힘쓰셨습니다.
반대로 마지막 때가 되면 이런 습관이 흔해진다고 합니다.
히브리서 10:25입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모이기를 폐한다고 합니다.
이 말씀 앞에는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어서 휘장 가운데로 열린 하나님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새로운 길에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힘서 나아가야 되는데, 마지막 날, 즉 말세의 현상은
모이기를 폐하면서 하나님께로 나아가지 않게 됩니다.
일상의 경건은 우리에게 '영적 예민함'을 줍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말씀하셔도
하나님께서 아무리 역사하셔도
심지어 하나님께서 아무리 기적을 베풀어도
그것이 말씀의 응답인지, 능력의 역사하심인지,
기적인지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평상시, 말씀의 이끄심을 받으려고 해야
말씀이 성취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고 기도해야
기도의 응답을 보고 기적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시므온이 찬양을 정말 잘 하는데,
평상시에 찬양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그가 찬양을 즐겨하는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늘 성전에 올라가는 경건생활에 힘썼던 사람입니다.
일상의 경건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예배,말씀,기도,찬양,경건서적읽기,큐티 등
우리교회에서는 주주운동 등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
방법을 시간의 분량을 정해놓고 채워가시면 좋습니다.
2.주의 영광을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2:25)
평생을 기다렸기 때문에
시므온은 주의 영광을 볼수 있었습니다.
얼마나 간절하게 기다렸는지
29절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시므온이 언제 성령의 지시,
즉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지시를 받았는지 모릅니다.
<믿음>의 다른 말은 <기다림>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평범한 아기로,
이제 태어난지 팔일 밖에 안된 갓난 아기로 보지만
평생을 기다렸던 사람의 눈에는
이스라엘의 위로로 보였고, 그리스도로 보이며,
구원의 주로, 주의 영광으로 아기 예수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기다리는 사람은 막연히 기다리지 않습니다.
자신이 기다리는 것에 대해 생각을 깊이 합니다.
생각만 하지 않습니다. 공부를 합니다.
기다리는 대상에 대해 찾아봅니다. 연구를 합니다.
평생을 걸려도 기다리면서 그 때가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 한번의 만남을 위해 얼마나 준비를 많이 했을까요?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순간을 위해 간절한 기다림이 있습니까?
간절한 마음으로 드렸던 기도에 대한 응답에 대해 기다림이 있습니까?
기다림은 기대를 낳고 기대는 기도를 낳고 기도는 응답을 낳습니다.
3.성령이 위에 계신 사람입니다.
주의 영광을 보는 사람, 시므온에 대해 소개할 때
'성령 하나님'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25절 마지막에 "~성령의 그 위에 계시더라"
26절 마지막에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27절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평생을 그리스도를 기다린 시므온은
성령으로 감동되어 찬양합니다.
시므온은 선지자도 아닙니다.
제사장도 아닙니다.
하지만 성령께서 그 위에 계시고
성령의 지시를 받고 성령의 감동을 받으니
아무나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만남의 복을 받습니다.
이스라엘의 위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며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을 만나게 됩니다.
성령이 우리 위에 계시면 받는 은혜가 있습니다.
27절에서 찾아보십시오. ~~~~
시므온이 성전에 들어가는데, 무엇을 따라 성전에 들어갑니까?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갑니다.
성령께서 성전에 들어가라고 감동했습니다.
그 감동을 따라 들어갔는데, 예수님의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안고
정결예식을 하기 위해 들어옵니다.
이 두가지 사건,
시므온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성전에 들어가는 사건.
예수님의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안고
정결예식을 위해 성전에 들어가는 사건.
이 두 사건을 연결하는 단어가 무엇입니까?
'마침' 성령께서 우리 위에 있을 때, 받는 은혜는 '마침'의 은혜입니다.
마침의 은혜가 어디에 극적으로 나오는냐 하면,
룻기에서 룻이 이삭을 주으러 보아스에 속한 밭에 이르렀을 때,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 와서.....
보아스가 성전에 올라가 앉아있는데, 마침, 기업무를 자가 지나갑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사람의 모든 일을 주장하고 계시며
때를 따라 성령의 지시하심,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시는 은혜를 받습니다.
성령 충만하지 못해도 '마침'의 일이 일어납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도망치려고 할 때,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납니다.
이상하게도 일이 순풍에 돛단 것처럼 잘 되는 경우가 있죠?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의 뜻과 무관하게, 신앙과 멀어지면서도
마침, 마침, 마침 계속된다면, 정신을 차리십시오.
성령의 지시를 받으며 성령의 감동으로 성령께서 이끄시는
'마침'의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