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스가랴11장 잡혀 죽을 양 떼를 먹이라 본문
스가랴11장 잡혀 죽을 양 떼를 먹이라
<스가랴 9장 ~ 11장 예수님에 대한 예언>
9장
왕이신 예수님께서 어떻게 오시는가?
겸손하여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시는 겸손의 왕 예수님.
10장
예수님은 어떤 사역을 하시는가?
모퉁이돌, 말뚝, 우리의 구원을 지탱하는 힘. 싸우는 활, 권세 잡은 자
사망권세와 싸워 이기시고 원수를 밟으시는 예수님.
11장
이런 예수님이 어떤 취급을 당하시는가?
우리가 예수님을 어떻게 대우했고, 예수님을 무시했는가?
예수님은 겸손의 왕으로 오시고 강력한 능력과 힘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시지만
우리가 얼마나 나쁜 놈들인가? 구원받을 가치가 없는 죄인이었음을 말해 줍니다.
1절~3절:
사막 기후에서 나무는 아주 귀한 것입니다.
목자들이 곡하죠? 나무가 사라지는 가뭄이 오면 양들을 칠 수 없게 됩니다.
어린 사자가 왜 부르짖을까요? 잡아먹을 양들이 없으니 부르짖게 됩니다.
중요한 말이 '불탔다'
'넘어졌다'
'엎드러졌다'
'쓰러졌다' 는 말입니다.
무엇이 불타고 쓰러졌나요?
레바논의 백향목나무, 잣나무, 바산의 상수리나무들
그리고 목자들의 영화로운 것. 어린 사자 등입니다.
이것들은 엄청난 가치를 가진 인간의 자랑거리를 말합니다.
인간들이 신뢰하고 의지했던 힘과 능력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불타고, 넘어지고, 엎드려지고 쓰러졌다?
인간의 모든 자랑거리, 믿고 의지하는 것이 사라진다.
인간에게는 소망이 없다! 인간은 자신을 구원을 어떤 힘도 능력도 없고
그러니 당연히 인간이 무엇을 자랑할 것이 있느냐?라는 말입니다.
성경의 큰 흐름을 연결하기 위해서 알아두면 좋은 것이 있습니다.
바로 제국입니다.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키는 앗수르
남유다를 멸망시키는 바벨론
바벨론 이후 메대바사 페르시아,
알렉산더 대왕의 헬라제국,
그리고 로마제국. 이 모든 제국은 세상을 정복한 나라들입니다.
이 나라들은 조금 전 인간들이 자랑했던 백향목, 잣나무, 상수리나무같이
인간들이 자랑할 만한 것들입니다.
온 세상을 한 나라가 정복하면 평화가 옵니다. 아이러니죠.
더이상 나라와 나라가 싸우지 않게 되죠. 전쟁이 없어집니다.
그러니 당연히 평화가 옵니다. 그런데 이 평화는 칼과 창으로 억압함으로
오는 거짓되고 위장된 평화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질문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제국의 힘과 평화가 과연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 평화를 줄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 그 모든 것들은 다 불타 사라져 버릴 것이다.
넘어지고 엎드려 지고 쓰러지고 사라질 것이다.
그런데 인간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세상 나라의 권력과 힘을 추구하고
그것을 얻으려고 그렇게도 다투고 싸우는 것이죠.
그래서 이런 세상에서 속고 있는 인간들에게 진정한 평화, 평강, 안식을 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십니다. 세상의 위장된 평화에 속지말고
참된 평화는 오직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 회복에서만 올 수 있습니다.
세상의 것들을 자랑하며 세상을 의지하며
하나님과는 관계가 끊어진 소망없는 인간들을 표현하는 말이 있습니다.
4절입니다.
"너는 잡혀 죽을 양 떼를 먹이라"
잡혀 죽을 양 떼입니다.
곧 도살장에 끌려가 죽을 양들입니다.
자신의 죄와 허물로 인해 죽은 인간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잡혀 죽을 양 떼같은 인간들을 어떻게 하라고 합니까?
먹이라! 예수님은 선한 목자이십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도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잡혀 죽을 양 떼같은 인간들을 먹이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우리의 죄와 허물을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죽는 것입니다.
그것이 잡혀 죽을 양 떼들을 먹이는 것입니다.
5절
양들을 사고 파는 장면이 나옵니다.
거짓목자들이 마음대로 양떼를 팔아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거짓 선지자들, 거짓 지도자들, 거짓 삯꾼들, 거짓 율법학자들이
양 떼들을 잘못된 멸망의 길로 인도했던 것을 말합니다.
자신들의 거짓으로 양 떼들을 멸망시키면서도 죄가 없다고 하고
오히려 양 떼를 팔아 부자가 되었다고 좋다하는 거짓 삯꾼들.
이 양 떼들을 누가 샀을까요? 마귀가 산 것입니다.
그래서 멸망의 자녀로 삼아버린 것입니다.
자기도 지옥가고 백성들도 지옥가게 만들어 버립니다.
더이상 이들에게 양떼를 맡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오셔서 양 떼들을 위해
선한 목자가 되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 오셨는데
사람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대우했나요?
12절.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품삯을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그만두라
그들이 곧 은 삼심 개를 달아서 내 품삯을 삼은지라"
하나님께서 죽을 양 떼를 먹일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무시합니다.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우습게 여깁니다.
예수님은 천국을 가지고 오셨는데 오히려 사람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목자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엄마 아빠의 은혜와 사랑을 자녀들이 알아주지 않으면
내가 너를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니?
피 땀흘려 수고했는데 내가 너한테 한 거 평생 갚아도 못갚아?
그러니까 차라리 나한테 지금부터 월급줘! 지금부터 밥값내!
숙박비내! 그렇게도 온 힘을 쏟아 부어 키우는 자녀가 내 말도 듣지 않고
내 뜻도, 내 마음도 몰라주고 속 썩일 때,
이렇게 말하면 진짜 돈을 내라는 말인가요? 아니죠?
수고를 고생을 알아야 된다는 말이죠?
7절부터 14절까지 말씀을 보면 목자가 양 떼를 치는 막대기 두개를 가지고 있는데
막대기에 이름이 있어요. 하나는 은총. 하나는 연합입니다.
그런데 양떼들 앞에서 은총과 연합의 막대기를 꺽어 부러뜨립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더이상 너희들에게 은총을 베풀지 않겠다!
더이상 너희들과 연합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표현하는 말이겠지요?
그런데 정말 진심일까요? 반대죠! 더 은총을 베풀고 더 연합하고 싶은데
너희들은 왜 그렇게 사니? 제발 정신 좀 차려라~!이 말이잖아요.
12절도 그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의도로 내 품삯을 줘! 이렇게 했어요.
너희들이 나의 사랑을 좀 알아라! 이 말인데.....
12절에 뭐라고 해요? 그들이 은 30개를 달아서 내 품삯을 삼은지라~~
품삯을 주더래요. 은 삼십 개는 출애굽기에 남의 집 소가 내 집의 종을 받아 죽이면
물어주는 값이 은 삼십개에요. 종의 값이에요. 그것도 죽은 종의 값이에요.
엄마가 자녀에게 내가 널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데,
그동안 밥해 먹인거, 깨워서 학교 보내 준거. 돈 내놔! 했는데
아이가 알았어요. 그 까짓거 뭐! 하면서 돈을 엄마한테 줘요~~~~
이 정도면 됐죠? 이제는 내 마음대로 게임하고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대로
살 거니까 내 인생에 더이상 간섭하지 마세요.
은 30개 아무 것도 아닌 돈을 감사합니다 하고 받나요? 아닙니다. 받을 수 없죠.
13절
그렇게 받은 돈을 토기장이에게 던져라! 그 당시에 가장 미천한 자들 중에 하나입니다.
가장 미천한 토기장이에게 줘 버려라!는 말입니다.
스가랴의 이 예언이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이것이 언제 성취됩니까?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고 은 30에 예수님을 팔고
후에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던 가룟 유다가 은 삼십개를 대제사장들에게 돌려주고
스스로 목숨을 끊자 핏값이라고 하며 성전에 두는 것이 옳지 않다고
토기장의 밭을 사서 나그네들의 묘지로 삼는 것으로 성취됩니다.
이렇게 잡혀 죽을 양떼들을 위해 자기 목숨까지도 내어주시는 선한 목자 예수님을
오히려 환영하지 않고 배척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이제 우리의 모습을 생각해야 합니다.
나는 예수님을 환영하는가? 나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감사하며 사는가?
나는 예수님을 내 인생의 가장 중요, 가장 최고로 받아들이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