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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열매를 향한 기대 (누가복음 13장 1~9절) 본문

신약/누가복음

열매를 향한 기대 (누가복음 13장 1~9절)

행복으로초대 2017. 8. 25. 02:51

열매를 향한 기대 
(누가복음 13장 1~9절)
열매를 향한 기대
  여러분! 땀 흘려 수고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열매를 향한 기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업을 하시는 분들은 사업의 열매가 풍성하게 맺히기를 원하고 있고, 장사를 하시는 분들은 장사의 열매가 풍성하게 맺히기를 믿고 장사를 하는 것이고, 가정을 위해 그렇게 간절하게 기도하는 이유도 가정 안에 아름다고 좋은 열매가 맺히기를 원하기 때문이요. 수능이 얼마 안남았지만 고3수능생들 오랫동안 고생하며 준비하며 공부했는데 수능에서 좋은 결과를 얻고자 공부하는 게 아닙니까? 누구나 열매를 향한 기대를 가지고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최선의 다하여 살아갑니다. 새벽에 출근해서 새벽에 퇴근하는 고단한 삶일지라도 집에 돌아와 곤히 잠든 자녀의 이마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혼잣말을 합니다. “네가 이 녀석 때문에 살지!!” 이런 말도 다 열매를 향한 기대를 가지고 하는 말들입니다. 자녀가 삶의 열매이고, 기대입니다. 자녀를 키우기 위해 자기 자신은 건강이 나빠지고 무너지고 손발톱이 부르터도 그래도 내가 이 녀석 때문에 살지. 이렇게 얘기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향해 그런 마음이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 믿는 삶의 열매를 기대하십니다. 
 요한복음 15장 4~5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을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이것이 주님이 우리 안에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는 이유입니다. 단순히 함께 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많은 과실을 맺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여러분 안에 하나님이 계십니까? 여러분 안에 예수님이 계십니까? 여러분 안에 성령님이 계십니까? 이 질문에 아멘으로 대답하시는 분이라면, 여러분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많이 맺는 삶으로 목적을 두셔야 합니다. 내 안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열매가 맺혀 나가야 합니다. 이런 설교는 12월이 되고 송구영신 예배가 가까이 오면 들으실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때가 되면 1년이 다 지나가 버려요. 그래서 다시 마음을 잡고 각오하고 결단하고 처음의 마음을 회복하고 열매맺는 한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본론>
오늘 본문은 비유입니다. 비유는 그림 언어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그림처럼 그려서 잘 알아듣도록 한다는 말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한 사람은 포도원의 주인입니다. 그 주인이 무화과나무를 포도원에다 심고 계속 관리를 하고 돌보면서 열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어야 할 3년이 지나고 난 후에 주인이 와서 무화과나무를 보았는데 열매가 없는 겁니다. 1년을 더 기다려 봤습니다. 하지만 역시 열매가 없었습니다. 다시 1년을 더 기다려봤습니다. 여전히 열매가 없었던 겁니다. 주인이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과원지기에게 이 무화과나무를 찍어내 버려라 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그 때 포도원지기가 뭐라고 합니까? “금년만 올해만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겠습니다. 제가 그렇게 한번 해 보겠습니다. 그래도 열매가 없으면 그 때가서 찍어 내버리소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비유니까 의미가 있겠죠. 주인은 하나님을 말합니다. 포도원지기는 예수님을 밀합니다. 그리고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 백성들, 즉 하나님의 백성, 오늘날로 말하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비유를 보면서 열매맺는 삶을 살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있습니다. 무엇을 주셨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말씀의 내용은 간단하니까 말씀을 같이 살펴보겠습니다. 

1. 첫째, 하나님께서 우리가 열매 맺도록 하기 위해서 주신 것은 시간입니다.  
 7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7절)“내가 3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무화과나무는 몇 년을 받았습니까? 3년이라는 시간을 받았죠. 그런데 실제 기간은 약 5~6년 정도 되었을 것입니다. 무화과나무는 심은지 3년만에 열매를 맺는다고 합니다. 상식이 있는 주인이라면, 심자마자 무화과나무에게 열매를 요구하지는 않겠죠? 무화과나무를 심고 수고의 땀을 흘리며 무화과나무를 키웠을 것입니다. 거름도 주고 무화과나무가 잘 자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3년이 지나서 열매를 기대했는데 열매가 맺히지 않았습니다. 잘 자란 무화과나무는 1년에 3번까지 열매를 거둘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따지면 3년이 지나도록 열매를 맺지 못했다면 여간 큰 문제가 아닌 것이죠. 3년이니 따지고 보면 9번 열매를 맺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으니 주인이 화를 내는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주인은 무화과나무에게 3년의 시간을 주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 믿음생활의 열매가 풍성히 맺히도록 시간을 주십니다. 
여러분 에녹을 생각해 볼까요? 에녹이 365세를 살았습니다.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께로 올라간 사람이었습니다. 에녹이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은 후, 그가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365년의 시간 중, 300년이라는 엄청난 시간의 특징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삶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셨습니다. 아마 에녹도 세상 사람들이 하듯이 정욕대로 마음대로 하나님과는 무관하게 죄악 세상 벗하여 살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은 후, 그의 평생이라고 할 수 있는 300년의 시간을 하나님과 동행했고 하나님은 그것을 인정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의 열매를 맺는데 에녹은 시간을 잘 사용했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가장 아쉬운 것이 무엇이냐하면 선데이크리스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주일날 하루 예배 한번 드린 것으로 하나님께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선데이크리스챤 말입니다. 하나님은 월요일도 화요일도 수요일도 목요일도 금요일도 토요일도 그리고 주일도 우리와 함께 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를 원하십니다. 그 마음이 읽혀지십니까? 나와 함께 하자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까?    

<일만시간의 법칙>
말콤 글래드웰은 그의 베스트셀러였던 《일만 시간의 법칙》에서 특정 분야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하루에 3시간씩 10년을 노력하면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죠. 예수님에 대해 전문가가 되기 위해 여러분은 얼마의 시간을 사용하십니까? 성경에서는 세월을 아끼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세월이 악하기 때문입니다. 악한 세상에서 여러분에게 주어진 시간을 육신의 정육을 위해 악한 세상과 벗하여 사는 시간으로 사용하지 마시고 여러분의 시간을 하나님과 벗하여 동행하며 믿음의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믿음전문가가 되기 바랍니다.  

2.둘째, 하나님께서 우리가 열매 맺도록 하기 위해서 주신 것은 땅입니다.(땅만 버리겠느냐?)
포도원에는 무엇을 심습니까? 포도원에는 포도를 심습니다. 당연한 거 아닙니까? 과수원에 무엇을 심습니까? 보통 과수원이라고 하면 사과밭을 말합니다. 수박밭에 무엇을 심습니까? 수박을 심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분명히 포도원인데 무화과나무를 심었습니다. 이스라엘 관례상 포도원 한 곳에 무화과나무를 심었다고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관습이고 사람들이 다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무화과나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십시오. 척박한 들판에 심겨질 수 있었던 무화과나무가 선택을 받아 좋은 땅 포도원에 심겨지는 특별한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다른 무화과나무들이 누리지 못하는 좋은 땅에서 풍성한 영양분, 물, 주인의 돌봄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은혜죠. 우리는 죄와 허물로 죽었었지만 하나님과 원수된 자였지만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죄 짓는 것 밖에 없었지만 나는 별 볼일 없었고 나는 공로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향한 특별한 선택하심과 부르심으로 나를 하나님의 땅에 심겨주셨다는 것입니다. 나를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고 하나님의 집에서 살게 하셨습니다. 버려진 들판에 심겨진 것이 아니라 주인의 극진한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좋은 땅에 심겨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믿음의 땅에 심겨주시고 나를 그곳에서 자라게 해주시고 나를 돌봐주시고 지켜주시고 인도해주신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무화과나무는 다른 무화과나무들이 누리지 못하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덤으로 받은 것입니다.
  그럼 여러분, 좋은 땅에 심겨지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아시죠?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30배,60배,100배의 결실을 거둡니다. 그것이 자연의 법칙이죠. 그런데 무화과나무는 30배,60배,100배는 커녕 주인의 말대로 “땅만 버리고 있습니다.” 주인이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이렇게 좋은 땅에 내가 너를 위해 이렇게 수고했는데, 이렇게 좋은 거름을 가져와서 너에게 부어주었는데, 저기 삭막한 저 들판에 심지 않고 이렇게 좋은 땅 포도원에 심었는데 너는 왜 열매가 없냐? 하나님이 화를 내신 것입니다. 아이구 이 답답아. 답답하다 답답해.
  여러분, 땅은 하나님의 자녀의 자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 입니다. 아무 공로없고 자격없는 자,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살리시고 영원한 생명의 자리로 우리를 옮기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에게 구원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로서의 열매를 기대하십니다. 그래서 땅은 우리가 살고 있는 믿음의 자리입니다. 단순한 자리가 아닙니다. 직장일수도 있고 가정일수도 있고 학교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곳에 크리스챤이라는 이름을 주시고 그 믿음의 자리에 여러분을 심으셨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심겨진 자리에서 풍성한 열매를 맺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은혜의 단비를 부어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늘 가득하게 해주십니다. 성령으로 충만케 하십니다. 낮의 해와 밤의 달이 해치 못하도록 지켜주십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자리에 심겨졌습니까? 가정이면 보통 가정이 아니라 믿음의 가정이라는 땅에 여러분을 심겨주셨습니다. 그 땅에서 믿음의 부모의 자리, 부모를 섬기는 자리에 각자 역할대로 심으셨습니다. 교회라는 땅에 목사님으로 장로님으로 권사님, 집사님으로, 선생님으로 각종 봉사의 직분의 자리에 여러분을 심으셨습니다. 직장에서 각종 직위를 따라 세상에서 예수 믿는 사람으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라고 여러분을 심으셨습니다. 여러분이 사는 아파트, 여러분이 장사하는 시장의 한 복판, 그 모든 환경들이 그냥 우연히 내가 사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열매를 맺기 위해 내가 심겨진 땅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은 분명히 차이가 납니다. 여러분의 삶의 자리는 하나님의 분명한 목적과 함께 여러분에게 주어진 자리임을 명심하십시오. 믿음의 부모로서, 교회의 섬김으로. 세상에서 크리스챤으로, 복음의 전파자로, 말씀의 순종자로 하나님께서 심으신 삶의 자리에서 열매를 맺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의 현장이, 지금까지 활동했던 삶의 영역들이 이제는 새로운 의미를 가지기를 바랍니다. 만나는 사람들이 새롭게 보이기를 바랍니다.   

3.셋째, 하나님께서 우리가 열매 맺도록 하기 위해 주신 것은 기회입니다. (8절) 
  열매를 맺지 못하니까 주인이 뭐라고 합니까? 찍어내 버려라!고 합니다. 이 말은 역사적 의미가 있습니다. 회개하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후 70년에 로마에 의해 멸망당하는 것을 암시하는 말입니다. 참 무서운 말입니다. 그런데 이 무서운 말을 듣고 포도원지기이신 우리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십니까? 예수님의 이 말씀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의 힘입니다. 저를 따라 하십시오. 이 말씀이 복음입니다. 오늘 말씀에 복음이 있습니다. 8절 말씀입니다.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말이 은혜입니다. 찍어내 버려라! 할 때 예! 알겠습니다 하고 도끼들고 와서 찍어 버리면 끝이잖아요. 희망이 없잖아요. 소망이 없잖아요. 그런데 우리 예수님께서 “노여움을 잠시 푸시고 한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올해만 더 기회를 주시면 제가 땅을 두루 파고 거름도 더 풍성히 주고 열매를 맺도록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그러니 한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이런 예수님이 없으면 이 자리에 남아있을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다 찍힘을 받아서 버려지는 존재가 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예수님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찍힘받아 버려지지 않도록 하시는 분, 바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에게 최선을 다하시는 예수님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최선을 다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자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십자가에 달려 자신의 생명을 바치신 예수님에게 빚을 졌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주시기까지 우리에게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이렇게 까지 우리 예수님이 하시는데 우리가 열매를 맺는 것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남은 생애 열매 맺을 기회를 얻었으니 최선을 다해 주님 기뻐하실 열매를 맺읍시다. 

그럼 우리가 어떤 열매를 맺어야 할까요? 
오늘 살펴보고 있는 비유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알면 어떤 열매를 맺어야 할지 알게 됩니다. 본문의 처음 1절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1절부터 5절까지의 말씀에는 두 가지 사건이 나옵니다. 1~3절을 보시면. 빌라도가 성전에서 갈릴리 사람들을 살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사건을 보면서 저렇게 죽은 사람들은 죄를 많이 지어서 죽은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사건이 4~5절, 실로암에 망대가 있는데 그 망대가 무너졌습니다. 그 때 무너진 망대에 치어 죽은 사람이 열 여덟 명이었습니다. 역시 사람들은 그렇게 죽은 열 여덟 명이 다른 사람들보다 죄를 많이 지었기 때문에 죽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사건을 말씀하시면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저렇게 죽은 사람들보다 너희들의 죄가 적은 줄 알어? 아니야 너희들도 지금 회개하지 않으면 망할거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3절과 5절에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고 두 번에 걸쳐 같은 말로 강조하십니다. 무엇을 강조하신 겁니까? “회개하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6절에 보시면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오늘 말씀의 비유는 회개하라는 메시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회개하라는 말씀에 추가로 설명한 비유입니다. 그러니 오늘 말씀의 비유에서 맺어야 할 열매는 무엇의 열매일까요? 회개의 열매입니다.

보통 회개합시다. 회개하세요 하면 시험드는 분들이 있어요. 집사님! 회개하세요 하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자기는 뭘 잘 했나? 이럴 수도 있습니다. 솔직히 회개하세요 라고 했을 때, 좋게 듣는 분들은 잘 못 봤습니다. 회개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많이 가지고 계신 듯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회개에 대한 긍정적인 자세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저를 따라해 볼까요? 회개는 능력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무슨 능력으로 삽니까? 하나님의 능력으로 삽니다. 그런데 내 안에 죄가 가득하게 채워지면 죄가 막 눌러서 하나님의 능력을 누리며 살지 못하게 합니다. 죄책감이 나를 짓누르고 하나님은 자꾸만 멀게만 느껴지고 세상은 나를 정죄하기만 하는 듯합니다. 죄의 짐이 너무 무거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평안과 기쁨을 누리지 못하게 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평안으로, 하나님의 기쁨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그래서 회개는 능력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특권입니다. 특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시는 은혜 베푸심의 방법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한일서 1장 9절)” 우리에게 주어진 ‘회개’의 방법은 우리를 죄에서 깨끗하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성경에 보면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죄로 인해 우리의 마음이 돌과 같이 굳어졌을 때,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 굳은 마음을 두루 파고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의 마음을 갈아엎어 버리십니다. 그 때 우리는 말씀과 성령의 감동으로 회개의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주저앉은 실패의 자리에서 일어나 주님 손 잡고 다시 일어서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안에 말씀의 역동함이 일어납니다. 기도의 역동함이 일어납니다. 때로는 사역이 역동함이 나타납니다. 회개는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회개의 열매를 풍성히 맺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회개는 새로운 시작입니다. 오늘 말씀 잘 보시면 과원지기이신 예수님께서 주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딱 1년만 기회를 주십시오. 지금까지 열매 맺지 못했던 시간은 과거의 일이니까 과거는 묻어두고 이제부터는 기억하지 마시고 지금부터 딱 1년만 기회를 주십시오. 지금부터 1년 동안 다시 해 보겠습니다. 다시 힘써 보겠습니다. 다시 땅을 파보겠습니다. 다시 거름을 주겠습니다. 다시 제가 수고하고 땀을 흘려서 최선을 다해 볼테니 기회를 다시 주십시오.“ 이 말은 주인에게 한 말인 동시에 무화과나무에게 한 말이기도 합니다. 이 말 속에는 다시 시작해 보자는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힘이 없니? 다시 시작할 용기가 없니?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위해 최선을 다해 보마! 그러니 주저 앉아 있지 말고 다시 시작해 보자는 격려의 말씀입니다. 지금까지 니가 어떻게 살았든지 상관없어. 창태야~지금까지 너는 열매맺지 못하는 나무였고, 사실 찍혀서 버려질 나무였지만 그건 과거의 이야기야. 지금까지의 너의 모습은 내가 기억하지 않을께. 지금부터 다시 시작해 보자. 다시 새 출발해보자. 이것이 바로 우리 주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회개의 열매가 풍성히 맺히기를 원하십니다. 회개의 열매가 맺히는 나무가 되도록 우리에게 최선을 다하십니다. 회개의 열매를 맺도록 하기 위해 시간도 주시고 자리도 주시고 기회도 주십니다. 여러분의 남은 생애, 아니 올해 남은 시간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연초에 부푼 가슴을 안고 계획도 세워보고 기도도 해보고 열정적으로 시작했던 때를 기억하면서 새롭게 출발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최선을 다하십니다. 주님의 격려에 힘을 얻고 일어나 함께 달려갑시다. 우리 삶에 열매를 향한 기대를 품고 계신 하나님께 여러분의 삶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