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세상에 발을 딛고 예수로 살다(골1:2) 본문
골로새서의 첫인사말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발신자인 사도 바울과 디모데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제자이자 영적 아들인 디모데를
형제라고 부르면서 디모데를 높이고 자신과 같은 권위를 부여하고 세워주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같이하는 사람이 잘 되는 행복'을 누리자고 했습니다.
오늘은 2절 말씀을 통해 골로새서를 받아보는 수신자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수신자가 누구입니까?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입니다.
골로새라는 한 도시에 살고 있는 성도들입니다.
골로새의 인구가 얼마나 되는지 알수 없으나
골로새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하심을 받아 성도가 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어떤 성도들인가요?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입니다.
여기서 잠깐 생각해볼까요?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은 같은 사람들입니다.
이를 통해 성도들의 정체성을 알 수 있습니다.
성도들은 골로새라는 도시 안에 사는 살아가는 사람들이며
동시에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하게 살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거제호산나교회 성도들은 거제라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동시에 거제라는 땅 위에서 신실한 성도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주소가 두개가 됩니다.
'골로새'라는 주소가 있고,
'그리스도 안'이라는 주소가 있습니다.
주민등록증이 다 있죠?
우리가 이 땅에서 거주하는 지역이 어디인지 알려줍니다.
대한민국 경남 거제시가 우리가 사는 땅입니다.
반면 우리에게는 천국시민권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장 속에서 신실하게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야 합니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도 역할을 잘 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삶에도 신실하게 잘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떠나 살려고 하지 마십시오.
세상에서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하십시오.
하나님을 떠나 살려고 하지 마십시오.
믿음으로 신실한 삶을 살아가십시오.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변화된 모습을 본 후,
제자들은 여기가 좋사오니 여기 초막을 짓고 살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예! 좋지요. 예수님과 함께 변화산의 영광 가운데 사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의 뜻은 그 곳이 아닙니다.
거기가 제자들이 있어야 할 곳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산위가 아니라 세상에 내려가서 그곳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라고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현장에서 책임있게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떠나서는 살 수 없으며 동시에 하나님을 떠나서도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누가 그러더군요. '조직에 몸을 담았다구요'
여러분은 조직에 몸을 담은 분들이에요.
우리는 그냥 세상 속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이었는데
그냥 그렇게 살던 사람들이었는데,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으로 나와 함께 살자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분명히 몸은 있지만 우리의 마음과 영혼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에 받을 딛고 예수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그리 녹녹치 않습니다.
저도 알고 여러분도 아시죠?
그리고 누구보다 하나님께서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실까요?
2절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당시 주로 사용하던 인사말에도 이방인과 유대인의 차이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방인들은 '은혜'라는 말로 인사를 했고,
유대인들은 '평강'이라는 말로 인사를 했다고 합니다.
이방인들은 서로에게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 인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은혜에 대한 관점이 우리가 생각하는 은혜와 다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은혜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방인들이 말하는 은혜는
누군가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친절을 베풀어 주는 행운 같은 것을 말합니다.
특히 나에게 친절을 베풀어주는 사람이 아주 힘이 있고
큰 부자이며 사회적인 명성과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정말 큰 은혜인 것이죠.
그래서 이방인들은 이런 큰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 인사를 했습니다.
생각지 않았던 좋은 인맥을 맺고, 생각지 못한 친절과 도움을 받는 것이 은혜라고 했습니다.
반면, 유대인들의 인사에는 우리가 잘 아는 단어가 있죠? '샬롬'입니다.
유대인들은 서로에게 샬롬을 빌었습니다.
하지만 이 샬롬도 우리가 생각하는 샬롬과 다릅니다.
유대인들의 샬롬은 하나님의 율법을 잘 지켜 행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게, 깨끗하게, 부정하지 않게 삶으로
누리는 마음의 평강을 말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100% 완벽하게 율법을 지킬 수 없기 때문에
늘 평안을 잃고 살았습니다.
그렇게 지킬 수도 없는 율법의 무거운 짐을 지고 끙끙거리며
안식을 누리지 못하던 유대인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유대인들은 샬롬으로 인사했으나 진정한 샬롬을 누리지 못하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골로새교회 성도들에게 진정한 은혜와 평강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왜 진정한 은혜와 평강을 누리지 못할까요?
진정한 은혜와 평강이 어디에서부터 얻을 수 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2절을 보십시오. 은혜와 평강이 어디서부터 옵니까?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힘있고 부유하고 능력있는 사람을 만나는 행운이 은혜가 아닙니다.
진정한 은혜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나를 도와주시고 밀어주실 때
진정한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또한 예수님 안에 진정한 평안이 있습니다.
모든 무거운 세상의 짐을 다 내려놓고
성령님께 내 삶을 맡기고 인도하심을 구할 때 진정한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만남은 축복이라는 말이 작년 연말부터 계속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만남을 깊이 할 때, 특이한 일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구하며 성령님께 철저히 내 삶을 맡기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니 하나님께서 계속 하나님의 사람들을 만나게 하십니다.
그리고 만남에 대한 큰 기대를 가지게 하십니다.
또한 일어나는 상황에 대해 영적인 관점을 가지고 더욱 깊이 접근하게 됩니다.
생활 속 하나 하나 하나님의 뜻이 아니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아니면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음을 더욱 확신하게 됩니다.
그러니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요 그 은혜 가운데 평강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세상에 발을 딛고 예수로 사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세상에서도 맡은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하며 충실히 임하시기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움 없이 살아갑시다.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받읍시다.
하지만 우리는 세상에 받을 딛고 예수로 사는 사람들임을 잊지 맙시다.
예수로 살기 위해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절실합니다.
꼭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을 얻음으로
예수로 살기에 성공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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