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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같이 하는 사람이 잘되는 행복(골1:1) 본문

신약/골로새서

같이 하는 사람이 잘되는 행복(골1:1)

행복으로초대 2018. 5. 26. 02:57

오늘부터 골로새서를 시작합니다.

서론적인 부분들은 한절 한절씩 풀어가면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당시 일반적인 편지 형식의 인사말 부분입니다.

편지의 발신자, 수신자, 문안인사가 나옵니다.

그 중 발신자(1절)가 누구인가를 살펴보면서

한가지 중요한 하나님 나라 백성의 원리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저를 한번 따라해 보십시오. 

'같이 하는 사람이 잘 되는 행복'  '같이 하는 사람이 잘 되는 행복'

 

1절에서는 골로새서의 발신자가 누구인지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골로새서의 저자가 누구입니까?

사도 바울입니다. 다른 바울의 서신서들과 비슷하게 편지를 시작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뜻으로 사도로 부름받은 사람입니다.

'사도'는 '사명을 받아 보내심을 받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초대교회에는 예수님을 만나고 사명을 받아

보내심을 받은 사람 중에 사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어졌습니다.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예수님을 만난 바울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으로

사도로 세움을 받고 보냄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1절에서 간과하고 넘어갈 수 있는 한 단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한 단어가 하나님 나라 백성의 중요한 원리를 가르쳐 줍니다.

바로 '형제 디모데는'입니다.

 

성경을 조금만 공부하면 골로새서의 저자가 사도 바울인 것은 알게 됩니다.

그런데 1절 말씀을 보면 골로새서를 보내는 사람이 사도 바울 혼자만 아니라

'형제 디모데'의 이름이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디모데가 누구인가요?

디모데는 사도 바울의 제자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의 영적 아들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디모데를 부를 때는 두가지 호칭으로 부릅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라고 부릅니다.

이 때는 사역과 목회적인 측면에서 부를 때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호칭은 '내 아들아'입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가리켜 "자식이 아비에게 하듯 바울과 복음을 위해 수고한 자"라고

빌2:20~22에서 칭찬했습니다.

육으로 낳은 아들은 아니지만 디모데는 바울이 아비의 마음으로 낳은 영적인 아들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디모데는 사도 바울의 제자이자 영적 아들입니다.

 

그런데 1절의 호칭에서는 디모데를 뭐라고 부릅니까?

'형제'라고 부릅니다. 왜 형제라고 부를까요? 

바로 디모데의 영적 권위를 높여주고 디모데의 리더쉽을 세워주기 위해서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그의 제자와 영적 아들에 머물게 하지 않고

그의 위치를 더욱 높여 사도 바울과 동등한 권위의 자리에 앉힙니다.

 

여러분! 가끔씩 어떤 한 교회에서 개최하는 부흥회 포스터를 유심히 살펴보세요.

유명한 부흥강사들 사진과 이름 옆에 그 교회의 목사님도

동등한 위치에 사진과 이름을 붙여놓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그 교회의 목사님과 유명한 부흥강사의 권위를 같이 두는 효과를 줍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효과를 노리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동역자의 권위를 세워주고 그들의 리더쉽을 충분히 발휘하도록 지원하는 리더였습니다.

디모데전서 4장 12절에 보면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에베소교회 장로들이나 지도자들이

디모데가 어리기 때문에 업신여기는 분위기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연소함을 트집잡아 권위를 오히려 깍아 내리고 

리더쉽을 발휘하지 못하고록 막는 교회였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자신의 제자이며, 영적 아들인

디모데의 권위를 최대한 높여 줍니다. 그와 동일한 위치까지 올립니다.

 

세상에서는 치열한 경쟁을 하며 삽니다.

내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남을 밟고 일어서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친구들을 이겨야 합니다.

공부든 싸움이든 운동이든 다른 어떤 활동이든 남들보다 더 뛰어나고

탁월한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 부모님들이 참 힘을 많이 씁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남을 깍아 내려야 합니다.

그것이 세상에서 흔히 보이는 전략입니다.

대통령선거나 국회의원,지방의원 선거를 보십시오.

네거티브 전략은 어김없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런 세상 속에서 같이 하는 동역자의 권위를 세워주고

리더쉽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리더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사도 바울같은 리더 말입니다.

 

여러분! 최근에 성도님들이 제게 이런 말을 많이 합니다.

"목사님! 서대경 목사님 오신 이후, 목사님 얼굴이 너무 좋아보이고 행복해 보입니다."

여러분, 서대경 목사님 좋죠? 서대경 목사님 참 좋아요.

제가 서대경 목사님께 이런 말을 자주 했어요.

'목사님은 한국 목사가 아닙니다.'

'목사님은 한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목사입니다.'

 

제가 한 때, 부흥한다는 교회의 비결에 대해서 배우고 싶어서

교회탐방을 여러번 다닌 적이 있습니다.

부목사로서 큰 대형교회의 목사님을 만나기는 힘들었고,

대신 행정목사나 각 사역별 담당 목사님들을 만나서

교회 성장의 비결이 무엇인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런데 만났던 목사님들이 했던 말들 중에 참 혼란을 주었던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교회에서 피가 쪽쪽 빨리고 있어요."

그러면서 담임목사님들이 부목사에 대해 가진 생각이

'부품'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부목사님라는 부품의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내서 사역하게 하고

진이 빠지고 힘이 빠지면 다른 부목사로 부품 교체를 하는 느낌,

그래서 교회 분위기 전환을 위해

부목사를 교체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 있더라는 것이죠.

이 말을 들으면서 정말 이것이 부흥의 비결인가?

꼭 이렇게 해야 양적인, 질적인, 영적인 성장을 하는 교회가 되는가?

이것이 대형교회가 된 비결인가?라는 생각으로 혼란이 일어났습니다.

물론 큰 교회들이 성장한 비결이 그것만은 아닙니다.

하지만 한가지 비결은 되는거죠.

때문에 마음이 좀 편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이러지 말아야지! 

 

그런데 서대경 목사님은 15년 동안의 남아공 선교사 사역을 하는 동안

이런 한국적인 목사의 틀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자신과 같이 하는 사역자가 잘 되는 것을 기뻐하고

오히려 자신 보다 더 잘되는 것을 행복으로 생각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늘 칭찬하고 늘 세워주고 늘 힘을 주고 격려하는 목사님이죠.

제가 가슴 아파하던 교역자 사이의 관계,

특히 담임목사와 부목사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좋은 샘플을 발견했기 때문에 행복했던 것입니다.

서대경 목사님은 한국 목사가 아니에요.

그래서 여러분들도 좋은 거에요.

자신보다 여러분이 잘 되는 것을 행복으로 보는 분이에요.


이것이 하나님 나라 백성의 중요한 원리입니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교회에서도 관계가 참 중요합니다.

세상 속에서도 여러 관계로 얽혀 있습니다.

교회와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은

자신의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이런 원리로 살아야 합니다.

"니가 잘 되는 것이 나의 행복이야"

"니가 더 잘 될 수 있도록 도울께!"

이것이 하나님 나라 백성의 원리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만나게 되는 동료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 보십시오.

"같이 해줘서 고맙다."

그리고 "니가 잘 될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께."

"니가 잘 되는면 정말 좋겠다." 

오늘 말씀의 제목이 '같이 하는 사람이 잘되는 행복'입니다.  

같이 하는 사람이 잘 되는 행복을 함께 누리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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