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사랑은 우리를 진짜가 되게 합니다 : 21장 15~17절 본문
사랑은 우리를 진짜가 되게 합니다.
요 21:15-17
핸드백
진짜같은 가짜들이 많습니다. 흔히 명품과 짝퉁을 구별하기 어려울 만큼 제품을 잘 만드는 것 같습니다. 여성 핸드백을 둘러싼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비 올 때 비를 피하려고 머리에 쓰고 달리면 짝퉁이고, 옷으로 감싸고 가면 명품입니다. 커피 숍에서 무릎 위에 다소곳이 올려놓으면 명품이고, 옆에다 획 던져놓으면 짝퉁입니다. 핸드백에 묻은 오물을 손수건으로 정성껏 닦으면 명품이고, 손으로 쓱쓱 닦으면 짝퉁입니다. 심지어 애인이 사 준 것은 명품, 남편이 사 준 것은 짝퉁이란 말까지 돌고 있다고 합니다.
가짜 학위 - 너는 진짜냐?
얼마전에는 가짜 학위 문제로 어수선 했던 적이 있습니다. 유명 연예인, 예술가, 교수 등의 학위가 가짜라는 것이 드러나면서 <얼마나 처세를 잘했으면 감쪽같이 몰랐을까? 이러고도 어떻게 버젓이 활동을 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가짜에 관한 질문을 자꾸 던지다보면 갑자기 내게 이런 질문이 생각납니다. <너는 진짜냐?>하는 것입니다. 질문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이런 질문 앞에 당당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 무슨 섭섭한 말씀을 하십니까? 전 진짜입니다!> 이렇게 말하지 못합니다. 왜냐구요? 우리 안에 우리 믿음을 거짓 믿음으로, 우리 존재를 참 그리스도인으로 보이지 못하게 만드는 많은 요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진짜입니까? 아니면 가짜입니까? 믿음이 있는 듯하지만 위기가 닥쳐오면 사라지는 가짜 믿음, 교회를 잘 섬기는 것 같지만 조금만 기분 나쁘면 박차고 나가는 가짜 충성, 겸손한 듯 하지만 남 보다 조금이라도 못하게 보이면 참지 못하는 가짜 겸손......뭐 이런 걸 말하자면 한도 끝도 없겠지요. 물론 저는 다른 이들을 비판할 자격이 없습니다. 저 자신이 문제이니까요. 물론 전 가짜 목사는 아닙니다. 고려신학대학원을 58회로 졸업했고 강도사 3년의 훈련기간을 거쳐 서부산노회에서 목사고시를 통과하고 남부산노회에서 목사안수를 2007년에 받았습니다. 그리고 올해로 6년차 되는 진짜 목사입니다.
그러나 주님 앞에 서면 저는 늘 가짜입니다. 주님 앞에서 늘 부족합니다. 늘 더러움을 느낍니다. 늘 위선자인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늘 마음이 찔립니다. 설교할 때 사단은 저에게 이렇게 속삭입니다. <너나 잘 해. 남들은 다 잘하고 있어. 문제는 너야! 너는 말씀대로 살고 있니?> 설교를 준비하면서 엄청난 부담감이 몰려옵니다. 그렇다고 저를 이상한 눈으로 보지 마십시오. 이것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내적 갈등일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엄청난 내적 갈등을 벌였으니까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진짜이길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당신께서 진짜이시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10장 10절을 보면 <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참이십니다. 또 요한일서 5장 20절에는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란 구절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참된 분입니다. 하나님은 가짜가 아닙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도 진짜 성도가 될 것을 요구하십니다. 진짜 믿음을 가지십시오. 진짜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사십시오. 지금까지 가짜였다면, 이제부터 진짜가 되길 원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진짜가 될 수 있을까요? 이와 관련하여 주님의 말씀 한 구절을 떠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은 가짜와 진짜 사이를 이렇게 말씀한 적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을 보면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라고 하셨습니다.
때로 통성기도를 드릴 때 주님을 두 번, 세 번 부르고 기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여러 차례 불러야만 들으시는 주님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간절함을 담아서, 그리고 마음을 뜨겁게 하기 위하여 주님을 여러 차례 부르기도 합니다. 그 때 <주여, 주여> 부르는 것을 보면 다 진짜 그리스도인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주여 주여 하는 자 중에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가짜도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다음 구절을 보세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여기 진짜가 되는 한 방법이 나옵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말로만 하지말고, 행동으로 보여!>라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18절도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고 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생각만 품지 마십시오. 말로만 하지 마십시오. 구체적으로 행동하십시오. 하나님의 뜻대로 사십시오. 그게 진짜가 되는 비결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고 했으니, 최선의 예배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예배를 빼먹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라고 했으니, 성실한 헌금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라고 했으니, 시간과 물질을 내어 이웃을 도우시길 바랍니다.
주님께서 남을 비판하지 말라고 했으니, 이제부터는 남의 말하지 말고, 오히려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충성하라고 하셨으니, 충성하십시오.
땅 끝까지 주님의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으니,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열심히 전도하십시오.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고 하셨으니, 열심히 기도하십시오.
이 모든 일들을 열심히 하십시오.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여기 문제가 있습니다. 열심히 했는데도 불구하고,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 한 점잖은 젊은이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부자였고, 관원이었습니다. 그는 물었습니다. <선생님, 제가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무슨 말씀일까요? 율법에 기록된 대로 다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 때 그가 말합니다.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여러분, 바로 여기 문제가 있습니다. 이 젊은 관원은 율법에 기록된 대로 다 행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대로 살려고 애를 썼습니다.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기쁨이 없습니다. 감격이 없습니다. 그의 영혼은 메말라있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율법의 한계를 발견하게 됩니다. 율법은 <하라>고 명령합니다. 율법적 신앙이란 <하라고 하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마치 <공부 해!>라고 하면 공부하고, <자!>하면 자고, <먹어!> 하면 먹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착한 아이입니까? 물론 남이 볼 때 모범생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행복한 아이는 아닙니다. 그 아이는 기계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계가 아닙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씀은 우리에게 기계가 되라고 하시는 게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의 인격을 존중하십니다. 기계가 되어 복종하는 것은 주님을 기쁘게 할 수도 없고, 우리도 불행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게 옳습니까? 말씀대로 행동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 하나가 더 필요합니까? 그것을 보여주는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본문은 우리에게 한 가지 조건, 최후의 조건을 말씀합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베드로에게 질문하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이나 사랑을 질문하셨습니다. 왜 다른 것을 묻지 않으셨을까요? 주님은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이 사랑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그는 지금 철저한 회개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회개를 요구하지 않고, 사랑을 요구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아무리 그가 말로 백 번, 천 번 회개해도, 주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가짜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분명히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말씀대로 살아야 하되, 그것을 사랑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으로 하십시오. 우리 마음을 거룩한 사랑이 지배하게 되길 기원합니다.
사랑은 우리를 진짜가 되게 합니다.
지혜로운 왕 솔로몬의 명 재판을 기억하시지요? 그는 가짜 엄마와 진짜 엄마를 가려내는 재판을 했습니다. 어느 날 두 여인이 한 갓난 아기를 데리고 왔습니다. 두 여인 모두 아기를 자기 아기라고 주장했습니다. 도저히 알 수 없었습니다. 그 때 솔로몬은 칼을 가지고 와서 아기를 둘로 나누라는 끔찍한 명령을 내렸습니다. 서로 자기 아이라고 하니, 둘로 나눠 절반씩 주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한 여인이 말했습니다. <현명한 판단입니다. 둘로 나눠 절반씩 주십시오> 그러나 다른 한 여인은 비명을 지르면서 눈물로 부르짖었습니다. <아기를 죽이지 말고, 저 여인에게 주십시오!> 솔로몬은 아기를 그 여인에게 주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진짜 엄마였습니다. 진짜였기에 아기가 죽는 것을 보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직접 키우지 못해도, 미운 여인에게 주더라도 살아있길 원했습니다. 그게 모정이었습니다.
사랑은 가짜와 진짜를 나누는 가장 결정적 방식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은 사랑으로 할 때 진짜가 됩니다.
*예배 - 처음엔 하나님께서 예배하라고 했으니, 의무적으로 예배하는 율법적 예배자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은혜를 받을수록 하나님을 사랑하 기 때문에 예배하는 진짜 예배자가 됩니다.
*찬양 - 처음엔 찬양하라고 하셨으므로 억지로라도 찬양했지만, 은혜를 받은 후에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찬양하게 됩니다. 그게 진짜 찬 양입니다.
*회개 - 회개도 그렇습니다. 죄는 누구나 다 짓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진짜입니까? 죄가 없는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어쩔 수 없이 죄의 연약함 가운데 있는 우리들이라면 <주님이 날 그렇게 사랑하셨는데, 나도 주님을 사랑하는데, 내가 죄를 지어 그런 주님을 가슴 아프게 하다 니, 정말 죄송합니다!> 자신 때문에 주님이 가슴아파 하셨을 것을 생각하면서 몸부림치며 회개할 때, 그게 진짜 회개입니다.
*기도 - 처음엔 기도하라고 했기 때문에 억지로 기도했지만, 나중에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기도 자체를 축복으로 알아 하나님께 속삭이 게 됩니다. 응답은 그 다음 문제입니다. 기도하는 자체를 즐기게 될 때 그게 진짜 기도입니다.
*봉사 - 처음엔 봉사하라고 해서 억지로 했지만, 나중엔 사랑 때문에 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날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구원해 주신 은혜에 감사하여 사랑하는 마음으로 헌신할 때 그게 진짜입니다.
*전도 - 처음에 전도하라고 해서 억지로 VIP작정하고 초청일 하루만 와달라고 애걸복걸하고 하면서 매달려 겨우 1명 데리고 옵니다. 그리곤 체면치레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은혜받고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만나는 모든 사람들 마다 VIP로 보이고 그들의 영혼을 바라보면서 전도하지않고는 견딜 수 없는 없어 있는 것 없는 거 다 갇다 주고 있는 실력 없는 실력 다 발휘해서 음식도 가져다 주고 사랑을 쏟아붓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 없이 하면 다 가짜입니다.
사랑은 우리에게 행복을 줍니다. 사랑으로 하면 힘든 줄 모릅니다. 사랑으로 하면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는 모든 것이 즐겁고 기쁩니다. 여러분의 신앙생활, 교회생활, 가정생활이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오늘 이 시간, 사랑! 이 한 가지를 가슴에 품게 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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