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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희망의 하나님(렘52:24~34) 본문

구약/예레미야

희망의 하나님(렘52:24~34)

행복으로초대 2021. 8. 25. 20:42

희망의 하나님(렘52:24~34)

 

희망의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예레미야의 마지막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오늘 말씀은 3단락으로 나눕니다. 

첫째, 24~27절까지 : 바벨론에 저항했던 사람들이 끌려가서 바벨론왕 앞에서 처형당하는 장면입니다. 

둘째, 28절~30절까지: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의 숫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셋째, 31절~34절까지: 여호야긴 왕이 포로의 신분에서 왕으로서의 지위를 회복시키는 장면입니다. 

 

이 3가지 장면을 통해 희망의 하나님을 만나보기 원합니다. 

먼저,  바벨론에 저항했던 사람들이 끌려가서 바벨론 왕 앞에서 처형당하는 장면입니다. 

언뜻 보기에 이것은 비참한 유다백성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분명히 희망이 아닌 절망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한가지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끊임없이 유다 백성들에게 외쳤습니다. 

"바벨론에 항복하라! 그러면 살 것이다."

하지만 처형을 당한 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한 지도자들, 군지휘관들입니다. 

그들은 바벨론에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항전하다가 모두 처형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비록 항복이라는 굴욕적인 방법이지만 하나님은 그 방법이 살수 있는 방법이며, 

오히려 유다를 향한 구원과 회복의 방법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내 생각과 다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따른다면 살 수 있다는 구원의 희망을 반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둘째,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의 숫자를 통해 우리는 희망의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포로들의 숫자를 자세히 보십시오.

28절에는 3023명

29절에는 832명

30절에는 745명

총 4600명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동일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 성경이 열왕기하입니다. 

24장 24절에 보시면 숫자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용사 만명, 용사 철천명, 장인과 대장장이 천명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열왕기하에 나오는 숫자와 예레미야에 나오는 숫자가 왜 다를까요?

 

열왕기하의 숫자와 예레미야의 숫자 중 어느 것이 더 정확할까요?

열왕기하는 만명, 칠천명, 천명 등으로 정확한 숫자가 아닌 대략적인 수.

다른 의미로는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반면 예레미야는 1자리 단위까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포로로 끌려가는 사람들의 숫자를 정확하게 계산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언제, 몇명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는지 세밀하게 살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포로로 끌려가지만 하나님께 버림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확한 숫자로 한명 한명 잊지 않고 기억하고 계심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모든 사정과 형편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계시는

하나님을 힘입고 희망을 노래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그리고 한명 한명 세밀하게 살피시고 기억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한명 중에서 대표자인 한 사람의 회복을 예레미야서의 마지막 결론으로 보여주면서

이 한 사람의 회복처럼 모든 포로들에게도 회복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던져주면서 

예레미야를 마무리 합니다. 

그 한 사람이 누구일까요? 

세번째 단락에서 알게 됩니다. 

 

세번째 장면은 여호야긴 왕이 포로의 신분에서 왕으로서의 지위를 회복시키는 장면입니다. 

여호야긴 왕은 시드기야 왕의 바로 앞의 왕입니다. 

시드기야 왕 때 예루살렘이 멸망을 하죠.

BC586년에 멸망하는데, 여호야긴 왕은 BC597년 쯤에 2차 포로로 바벨론에 끌려갑니다. 

그리고 바벨론에서 온갖 수모와 치욕을 겪었겠지만 포로로 끌려간 후 37년만에

새로운 바벨론 왕의 등극과 함께 그의 지위가 회복되게 됩니다. 

 

물론 유다의 왕으로 예루살렘에 돌아온 것은 아니지만

천하를 다스리는 바벨론왕과 한 상에서 식사를 할 수 있는 지위를 얻고 

바벨론에 끌려온 다른 나라의 왕들보다 더 높은 지위를 얻고

죽을 때까지 필요한 모든 것을 왕의 지위에 따라 풍족히 공급받는 혜택을 받습니다. 

 

예레미야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비록 바벨론의 포로였지만 여호야긴 왕의 회복을 보여주면서

유다 백성들에게도 곧 회복의 날이 올 것이라고 희망의 메세지를 던져줍니다. 

여호야긴의 복권될 쯤부터 바벨론은 점점 쇠퇴해져가고

곧 페르시아의 고레스왕이 등장하면서 하나님이 약속대로 이스라엘과 유다민족은 

포로에서 귀환하게 됩니다.

 

드라마와 영화를 보면 열린 결말이라는 방식이 있습니다. 

명확하게 결말을 맺지 않고 무엇인가 다음을 생각하고 기대하게 만들면서 결말을 맺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열린 결말입니다. 
여호야긴왕 한 사람의 회복을 통해 온 유다와 이스라엘의 회복을 기대하게 합니다. 

그 기대는 우리가 너무나 사랑하는 예수님 한 분을 통해 이루어가시는 온 인류의 회복과 구원입니다. 

희망을 노래합시다.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우리의 결론은 희망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희망의 하나님을 바라보고 희망을 노래하는 오늘 하루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