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갈라디아서 5:24-26 성령과 동행하는 삶 본문
성령과 동행하는 삶 (갈라디아서 5:24~26)
24절: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25절: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26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은 자기 안에
다른 한 의지가 들어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분은 성령님이십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과 성령이 생각하는 것이 전혀 맞지 않으면
나타나는 현상이 신앙적 갈등입니다.
하지만 성령님과 나의 마음이 일치가 되기만 하면
그 때에는 환상적인 콤비플레이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던 것으로 생각했던 어려운 일들이
자신도 놀랄정도로 해결되고 성취되는 것을 볼 수 있게 됩니다.
1. 승패는 결정된 싸움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24절)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이요
우리의 육체뿐만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정욕과 더러운 욕망까지
모두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안에 있는 정욕과 욕심은 전혀 십자가에 못박히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살아있고 여전히 우리 안에서 횡포를 부리고 있습니다.
성경 말씀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지금 거의 천사의 수준에 도달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화낼 줄도 모르고 욕망도 다 버린 그런 성자의 모습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안에는 분노가 그대로 살아있고 더러운 욕망도 그대로 살아있습니다.
그런데도 성경은 우리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일까요? 육체의 정욕이 우리를 절대적으로 지배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에서 육체와 정과 욕심은 우리 안에 있는 육체적 정욕을 말합니다.
우리안에서 꿈틀거리는 수많은 욕구와 옛사람의 본성들을 말합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이런 것들이 절대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되고 나면 육체의 정욕이나
옛사람의 습관을 쫒아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또 다른 성령의 힘으로 육체의 정욕에 대해
거부할 수 있고 싸울 수 있고 싸우면 이길 수 있게 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정욕이 완전히 없어졌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힌 채로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아직 살아있습니다. 무섭게 우리를 노려보고 있습니다.
내려가기만 해봐라 하면서 씩씩 거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끝입니다. 승패는 결정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영적인, 신앙적인 갈등이 있습니까?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함으로 인한 갈등이 있습니까?
그 갈등을 하나님의 뜻대로 선택하고 결정했을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큰 위로와 평안함이 있음을 경험하셨습니까?
비록 손해는 볼지 몰라도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어요.
옛사람의 습관과 성품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이상하게 예수님 안의 새사람이 날마다 승리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2.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25절)
미혼과 기혼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미혼인 사람은 모든 것을 자기 혼자 결정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결혼한 사람은 무엇을 하든지
남편 또는 아내의 의사를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돈을 쓰려고 해도 허락을 받고 돈을 쓰고
무슨 일을 하든지 부부사이의 동의하에 시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부부는 싫든 좋든 부 부며 함께 살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성령과 도저히 떨어질 수 없고
반드시 성령과 함께 살아야만 한다면
우리는 굳이 성령을 거역하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행하는 삶,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앞에는
육체의 사람과 성령의 사람이 맺는 열매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19절,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22절, 오직 성령의 열매는...
성령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성령으로 행하는 사람이며
성령으로 행하기 때문에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사람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안에서 사는 것이라.
자기는 죽고 내 안에 예수님께서 사는 것입니다.
나의 육신적인 성격, 혈기, 말, 행동은 죽고 예수님의 성품이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성품이 나를 통해서 나타나기에 예수 믿는 사람에게
성령의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의 열매가 내게서 풍성히 맺힐 수 있도록 만든
중요한 사건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입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습니다. 죽은 자는 아무리 찔러도 꿈쩍하지 않습니다.
죽은 자는 화를 내지 않습니다. 죽은 자는 정욕이 없습니다.
죽은 자는 욕심도 없습니다. 죽은 자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합니다.
여러분! “지랄하다”는 말의 의미를 아십니까?
지랄하다 = 마구 법석을 떨며 분별없이 하는 행동을 속되게 이르는 말.
A형 - 소세지 : 소심하고, 세밀한데 가끔씩 지랄한다.
B형 - 오이지 : 오만하고 이기적인데 그러면서 지랄한다.
O형 - 단무지 : 단순하고 무식하면서 심심하면 지랄한다.
AB형 - 지지지 : 지랄하고 또 지랄하고 끊임없이 지랄한다.
혈액형에 따라 사람 성격이 다르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국 사람의 성격속에 공통분모는
자신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지랄같은 성격이 있다는 것이죠.
믿을만 한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혈액형 얘기만 하면
맞다고 맞다고 맞장구를 칩니다. 저는 A형입니다.
소세지 인데, 잘 모르겠습니다.
피는 못속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아버지의 그 아들, 그 엄마의 그 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담으로부터 내려오는 죄의 유전을 말할 수도 있는 말입니다.
내 피가 그러니까, 우리 집안 내력이 그렇고,
아버지가 어머니가 그랬는데 나도 모르게 닮아버렸다.
하지만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육체와 정과 욕심 때문에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십자가에서 흐르는 피는 예수님의 피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악을 담당하시고 십자가의 모진 고통을 받으시고
죽으신 예수님의 피밖에 없습니다.
3. 자기 중심적인 삶에서 벗어남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26절)
헤롯왕은 하나님께 돌려져야할 영광을 가로챔으로 충이 먹어 죽었다고 합니다.
남들보다 더 높은 자리에서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 하고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가차없이 행동하는
자기 중심적인 사람의 모습니다.
하지만 세례요한의 모습과 비교해 보십시오.
그의 말 중에 그의 삶의 목적을 분명히 한 것이 바로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봤을 때, 당시의 사람들의 생각으로 봤을 때,
세례요한은 충분히 흥할 수 있지만 그의 삶의 목적이
자기 중심적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적으로 살았기에
모든 것을 주고 모든 것을 버리고 사라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의 헛된 영광을 구하였던 헤롯왕과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였던
세례요한이 지금 어떤 모습으로 있을 지 우리는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26절)
“격동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기보다 더 잘난 사람이 있으면 공격을 하는 것입니다.
“투기한다”는 것은 자기 안에서 마음이 불편한 것을 말합니다.
자기가 최고가 되어야 하는데 최고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이 불편한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 중심적인 사람의 특징입니다.
하지만 성숙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목적이 이기는데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주목을 받는데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인기와 명예, 영광을 얻는 것이 사는 목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기 중심적인 생각은 성령의 생각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참으로 그가 잘되고
풍성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 것이 성령의 마음입니다.
주님은 얼마나 많은 것을 모았는지를 칭찬하시지 않습니다.
얼마나 다른 사람에게 주었는지로 판단하십니다.
앞으로 주님 앞에 섰을 때, 더 많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주지 않은 것이
그렇게 후회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왜 나는 받기만 했던가? 왜 나는 그토록 내 중심으로만 생각을 했던가?
왜 나는 남에게 그렇게 주는 것이 인색했던가?
그것이 처절하게 부끄러운 때가 올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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