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갈라디아서2:20 회복4-죽어야 사는 사람들1 본문
갈라디아서2:20 / 누가복음 7:18-23
회복4-죽어야 사는 사람들1
회복4번째입니다.
회복이라는 주제로 금요심야기도회에 말씀이 임하고 있는데,
영적체질이 변해야 기적이 일어난다고 말씀이 선포되었습니다.
체질이 변하기 위해, 눈이 변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내가 보는 나 의 관점에서
하나님께서 보시는 나 의 관점으로 변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나 에 묶인 우리의 상태를 말씀드렸습니다.
우리 교회를 결박하고 있는 한가지 영적결박입니다. 이것을 풀어야 합니다.
기도의 일꾼이요 용사이신 성도 여러분.
교회의 영적체질이 변하도록 함께 기도합시다.
오늘의 회복 제목은 '죽어야 사는 사람들' 첫번째 시간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을 같이 외워볼까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회복을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 있습니다.
내가 죽어야 합니다. 나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의 반대는 내가 사는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내 감정대로, 내 뜻대로, 내 계획대로, 내 주장대로,
내 소원대로, 내 능력대로, 내 경험대로,
심지어 내 기도대로!!
이것이 십자가의 반대입니다.
십자가는 내가 죽는 것입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 진정한 회복입니다.
아직 죽지않고 꿈틀대는 나, 이제 완전히 십자가에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기도하고 변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이끄시는대로
성령께서 이끄시는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십자가에 못박히지 않은 성도 뿐만 아니라 목사는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하나님이 일하시기를 원합니다.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이 되어야 하고
교회가 되어야하고 일이 되어야 하고
내 인생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죽어야 합니다.
기도를 해도 내가 원하는 결과를 정해놓고
하나님께 내가 원하는 결과대로 해 주셔야
그것이 응답이라고 합니다.
내가 꿈꾸고 내가 소원하고
내가 기대한 것이 이루어지는 것.
그것이 신앙생활의 목표가 되면 안됩니다.
그런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야 합니다.
성경 속의 인물을 한번 만나보겠습니다.
그동안 모세와 사울을 살펴봤는데, 오늘은 세례요한을 보겠습니다.
누가복음 7장 18-23절입니다.
세례 요한이 어떤 사람입니까?
주의 길을 예비하라고 보냄받은 사람입니다.
평생 그리스도를 기다렸습니다.
광야에서 낙타털옷에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광야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며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었습니다.
드디어 그리스도가 오셨고
그리스도가 그에게 찾아와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사역을 시작하셨는데,
놀라운 하나님의 일들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이 기대한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소문을 들어보니
보지 못하는 소경 몇 명이 보게 되었다고 하고
앉은뱅이 몇 명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문둥병자가 몇 명을 깨끗하게 고쳤다고 하고
죽은 사람 한 두명이 다시 살아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천국복음을 전파한다고 하는데
특히, 가난하고 헐벗고 고통받으며 사는 사람들과
세례와 창기 들에게 천국복음을 전파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다란 말인가?
가난한 자들에게 천국이 전파되는 되는 것을 위해,
평생을 집도 없이 생고생하면서 광야에서 지내며 살았는데,
오신 그리스도의 사역이 겨우 이것인가?
자신이 그렇게 기다리며 예비했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바닷가 어부들과 세리와 어울려 다니고 그들을 제자들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리스도가 맞는가?
그리스도가 오시면 세상이 변할 줄 알았습니다.
그리스도가 오시면 나라가 변할 줄 알았습니다.
그리스도가 오시면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그리스도가 오시면 나라와 민족이 모두 하나님께로 돌아오고
그리스도가 오시면 로마제국로부터 해방되고
놀라운 일이 일어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분명했는데,
분명히 그리스도가 분명했는데,
이것이 다인가?
이것이 자신이 그토록 기다리던 하나님 나라인가?
겨우 가난한 자들에게 천국이 전해지는 것이....
몇명의 병자들이 낫는 것이,
죽었던 사람 몇명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인가?
게다가 세례 요한은 지금 감옥에 갇힌 상황입니다.
그렇게 주의 길을 예비하고 회개하라고 소리치고
세례를 베풀고 그렇게 고생하며 사역했는데,
"지금 나는 감옥에 갇혔다."
그래서 예수님께 묻습니다.
19절
"이르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라 하매"
진정한 그리스도,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만났지만
사실, 세례 요한이 간절히 기다리고 예비했던 메시야는
그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다렸던
메시야 대망 사상과 같았습니다.
정치적 메시야, 로마의 압제로부터 해방시켜주고
나라와 민족을 크게 부흥시켜 주의 나라를
강대국으로 세울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이 생각은 예수님의 제자들도 같았습니다.
가룟 유다가 왜 예수님을 배반했을까요?
자신이 생각했던 메시야와 달랐기 때문입니다.
물론 개인의 돈에 대한 욕심도 한몫했지만
자기의 생각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세례요한도 제자들과 그 당시 억압받던
유대인들의 메시야 대망사상과
같은 메시야를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기대한 하나님 나라,
메시야를 기대했는데 그게 아니니까
지금 살아온 모든 것이 회의가 들었습니다.
복음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늘 이해하지 못하고 오해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땅에 보내신 구원자
메시야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메시야가 아닙니다.
그래서 진정한 메시야 그리스도이신 우리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이렇게 답변을 합니다.
22절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복음은 위대합니다.
하지만 복음적 삶은 위대함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작고 약하고 고난당하고 아프고 억압받고 힘든 삶을 사는 사람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는 심령이 가난한
영적파산을 당한 사람에게 적용됩니다.
우리 영주시민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교회'라고 했는데,
하나님의 나라의 핵심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보지 못하는자가 보고,
듣지 못하는 자가 듣고,
앉은 뱅이가 일어나고,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이 들려지는 것입니다.
보지 못하는 사람이 자신의 무력함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며 하나님의 도우심만을
간절히 구할 때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것입니다.
그 때, 예수의 이름, 그 능력으로 보게 됩니다.
듣지 못하는 사람이 자신의 무력함
일어나지 못하고 걷지 못하던 사람이 자신의 연약함
나병환자가 하나님 밖에는 도움이 없음을 알고
가난한 사람이 하나님 은혜 밖에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엎드릴 때,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것입니다.
그 때, 예수의 이름으로 살아나는 것, 회복되는 것.
그래서 죽어야 사는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는 위대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를 사는 것은 작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사는 것은 보지 못하는 자,
듣지 못하는자, 일어서지 못하는 자, 깨끗하지 못한자,
가난한 자와 같은 인생의 각종 어려움의 문제로
작아진 사람에게 냉수 한그릇 마시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0장 42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위대한 나라, 위대한 민족을 꿈꾸던 세례요한과 제자들에게
꿈과 생각의 전환과 수정을 합니다.
지극히 작은 어떤 사람에게 냉수 한 그릇 주며
목마른 목을 축여주고 배고픈 사람의 배를 부르게 해주는 것이
하나님 나라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저 높은 곳을 바라보며 사는 우리의 시선과 관점이
저 낮을 곳을 바라보고 낮은 곳에 있는 작은 자와 함께 하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가야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신앙은 죽어야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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