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다시보는 요한복음13:31-14:6 예수님은 길입니다. 본문
요한복음13:31~14:6 예수님은 누구신가? 6-예수님은 길입니다.
1.예수님은 유일한 길입니다
2.예수님은 영광의 길입니다.
3.예수님은 천국의 길입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입니다. 따라합시다.
"예수님은 길입니다." 예수님은 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근심에 빠졌습니다.
왜 제자들이 근심할까요?
예수님께서 자꾸만 어디론가 가신다고 하니까 근심했습니다.
게다가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에는
"너희들은 아직 지금은 못가!"라고 하십니다.
36절을 보십시오.
"~~~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 올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아니, 평생을 함께 할 줄 알았던, 너무나 든든한 예수님.
제자들이 자신의 인생을 바친 예수님입니다.
37절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버리겠다고 합니다.
그만큼 예수님께 모든 것을 걸고 믿고 따라온 예수님인데,
예수님께서 자꾸만 어디론가 가시겠다고 하는데,
이걸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사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도 하신 말씀입니다.
33절을 보십시오.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내가 가는 곳에 올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
그래서 제자들의 마음에 근심이 가득합니다.
14장 1절에 이런 제자들의 마음을 아시고,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얼마나 근심했으면....
예수님께서 근심하는 제자들을 보시면서 이번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들이 있을 거처를 예비하러 갔다올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거처를 예비하러 간다고 하시면서,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이 어디인지 알려주십니다.
14장 2절에서 찾으실 수 있겠어요? "내 아버지 집에"라고 하시죠.
즉 예수님께서 가서 제자들을 위해 예비할 거처는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집 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계신 곳.
그 곳에 예수님께서도 계시고 제자들도 거기로 영접해서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행복하게 살자~~~ 이 말씀입니다.
구원받은 인생은 결국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는 것입니다.
어떤 장소가 있으면 그 장소로 가는 길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길이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내 아버지 집'으로는
길이 하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다른 길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계신 곳으로 못가!
길은 오직 하나 밖에 없어~~~~~
그런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참 희한한 말씀을 합니다.
14장 4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그 길을 안다"
그러자 의심의 아이콘 우리 도마가 "예수님 우리는 모릅니다."고 합니다. (5절)
예수님: 왜 몰라!~~~~니들 눈앞에 있잔아! 내가 길이야!~~ 라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6절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에게 끊임없이 내가 길이야 내가 길이야~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이 길인줄 알면서 그 길로 가지 않고 딴길로 갑니다.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 예수님이며, 우리는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는 제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어떤 길인지 우리가 더욱 확실히 알아야 겠습니다.
예수님은 길입니다. 어떤 길이실까요?
첫째, 예수님은 유일한 길입니다.
진리와 생명은 길의 성격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진리와 생명에서 강조하는 것은
유일하다! 하나밖에 없다! 는 것입니다.
원어를 그대로 해석하면
나는 그 길이요 그 진리요 그 생명이다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길이며, 하나밖에 없는 진리이며,
하나 밖에 없는 생명이 바로 예수님이심을
우리에게 알리는 말입니다.
진리가 둘이면 진리가 되지 못합니다.
진리는 절대 둘이 될 수가 없습니다.
생명도 하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유일한 길인 이유는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독생자 유일한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주려 하심이니라(요3:16)
요한복음 3장 16절은
우리 모두가 사랑하는 귀한 성경구절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 속에는 귀한 진리가 담겨있습니다.
그 진리를 깨닫는 자만이 생명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사랑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주신 방법이 있습니다.
그래서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 방법이 무엇일까요? 독생자입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영생의 길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영생, 구원의 길은 사람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으로만 갈 수 있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방법은
오직 하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는 방법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살립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멸망에서 건져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영생을 줍니다.
그런데 우리를 살리고 멸망에서 건재내고 영생을 주는데,
예수님을 통해서만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다른 길이 없습니다.
예화) 제가 신대원 2학년이 되었을 때,
나이가 27살 정도 됐을 때입니다.
경주에서 사역을 할 때였는데,
운전면허증을 딴지 6개월 정도.
운전을 한지는 3개월 정도됐을 때입니다.
지금은 네비게이션이 있어서 길을 몰라도 되지만
그 당시만 해도 네비게이션이 없을 때입니다.
교회에서 은퇴권사님들 몇 분? 6분 정도?
양산에 있는 감림산 기도원에서 유명한 목사님 집회가 있는데,
운전해서 같이 가자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출발했는데,
운전은 여전히 미숙하지. 양산이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모르지.
가는 길은 당연히 모르지. 권사님 한 분이 내 몇번 가봤다!
하시길래 길 안내하시겠다고 해놓고 막상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시더라구요. 표지판 보면서 어떻게 하든지 가긴 가는데,
길을 몇 번을 잘못 들어서서 뺑뺑 계속 돌았습니다.
그런데 역시 권사님들이라 짜증도 날만한데. 그러지도 않으시고
길 잘못 들어섰다고 하면, 다시 찾아가면 되지.
전도사님~~괜찮아요.하시고,
같이 찬송하자고 하면서
차안에서 찬송하시는데....참 기가 막혔습니다.
은퇴권사님들의 영성있는 찬송이 차 안 가득 울려퍼지는데,
찬송 가사 하나하나 계속 꽂히는 단어가 하나 있었습니다.
1)나의 갈 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길?
2)갈 길을 밝히 보이시니 주 앞에 빨리 나갑시다 ~~~길?
3)~~딴 길로 가지 맙시다. ~~~길?
일부러 그러셨는지... 온통 제 귀에는 길 밖에 안들리는 거에요.
결국 기도원에 도착은 했는데, 집회는 다 끝나버리고 말았습니다.
길을 모르고 자꾸 어디론가 열심히 달리기는 하는데, 딴길로 가면
결국 시간 낭비, 인생 허비하고 맙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하나님 아버지께서 계신 곳, 하나님 나라, 천국에 가는
유일한 길이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고 분명히 선포하시고,
그 유일한 길, 예수님만을 믿고 따르고 섬기는 길로 가자고 결단을 요구하십니다.
특별히 5월 가정의 달입니다. 자꾸만 가정으로 말씀이 집중됩니다.
여호수아가 생각이 나고 찬송이 생각이 납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노라!"
"사철에 봄바람 불어있고 ~~~~ 예수만 섬기는 우리 집"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 눈이 오직 예수님만 바라고 내 귀가 예수님의 말씀만 듣고
내 손과 발이 예수님만 따라가는 오직 예수만 섬기고 딴 길로 가지 맙시다~~~
둘째, 예수님은 영광의 길입니다.
(영광의 갈림길에서 / 신앙은 반응이다 / 하나님 앞에 혼자 서기)
유일한 길이 되시는 예수님만 따르는 제자라면 반드시 깨달아야 할
중요한 개념이 있습니다. 예수님만 따르기로 작정하셨습니까?
딴 길로 가지 않겠다고 하고, 정말 예수님만 따르기로 한 제자라면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표지판은 '영광의 갈림길'입니다.
갈림길에서 영광에 대한 개념이 정리되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의 앞에는 어떤 사건이 있었을까요?
31절에 "그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이르시되"라고 합니다.
그가 누구일까요? 가룟 유다이며,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고 떠났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팔기 위해 배신하고 떠난 것을 안다면, 보통 사람들이라면,
“니가 어떻게 그럴 수 있냐?” 섭섭해 하고 심지어 분노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예상치 못한 말씀을 합니다.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다”
‘지금’ 언제요? 가룟 유다가 배신하고 떠난 지금!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았다고 하십니다.
게다가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다”고 하십니다.
가룟 유다의 배신으로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배신 당했는데, 영광?
가룟 유다의 배신으로 예수님께서 엄청난 고난과 비참한 죽음을 당하실텐데,
그것으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보통 영광이라고 하면 어떤 때 쓰입니까?
높임 받을 때, 영광. 칭찬받을 때, 영광,
운동선수가 금메달을 따면, 영화배우가 연기대상을 받으면, 영광이라고 합니다.
사회적인 신분이 높은 사람이나 유명인이나
만나기 힘든 사람을 만날 때,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것이 영광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영광은 세상에서 말하는 영광과 뭔가 맞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영광과 맞지 않습니다.
영광이 무엇일까요?
요한복음 1장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영광은 말씀이 육신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것이 영광입니다.
그래서 말구유에 누운 아기 예수님이 영광스런 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
육신을 입고 시험을 당하신 것이 영광입니다.
그래서 40일 금식 후에 갈비뼈 앙상하게 말랐지만
마귀의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이 영광스런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
육신을 입고 사람들의 채찍에 살이 찢어지고
골고다 언덕, 십자가에 못박혀 조롱당하시고 죽임당하시며
물과 피를 쏟아내신 예수님이 영광입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라고 부르짖는 독생자 예수님을 죽음에 내버려두시며
말씀을 이루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이 영광입니다.
그럼, 그리스도인의 영광, 우리의 영광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이 내 몸을 관통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내 삶에, 나의 육신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영광입니다.
예수님은 말씀 그 자체셨으나 육신이 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사셨습니다.
말씀이 예수님을 관통했기에 못과 창이 예수님의 육신을 관통했습니다.
이것이 영광입니다. 이것이 독생자의 영광이며,
그 영광으로 은혜와 진리가 흘러흘러 충만해 졌습니다.
예수님은 끝까지 이 영광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는 삶.
이제 이런 예수님, 유일한 길이 되시는 예수님을
따르기로 했습니까? 결단하셨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도 반드시 영광의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예수님도 영광의 갈림길에 섰고, 예수님도 그 길에서 세상의 영광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그래서 다시 32절을 보십시오.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가룟 유다의 배신이 아니라 가룟 유다에게 배신을 당한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셨던 것입니다.
계속해서 말씀하지만, 따라하세요. 신앙은 반응이다.
가룟 유다가 배신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그 배신으로 예수님의 마음이 어떠셨을까요?
어떤 누군가에게 배신당하고 상처를 받았을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십니까?
어떤 누군가가 던진 말 한마디에,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일어난 어떤 일 때문에
시험이 들었다고 합니다. 마음 아파하고 괴로워하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잠도 못자고 마음 속으로 계속 담아두면서 자꾸 끄집어내서 묵상합니다.
성경 한 단락 묵상하라고 하면 한 구절도 제대로 못하면서
나에게 상처주고 힘들게 하는 사람을 묵상하면 밤을 새면서 또 묵상하고 묵상합니다.
성령의 하나되게 하심을 위해 예수님께서는 몸이 찢어지고
피와 물을 다 쏟아내시면서 우리를 하나님의 한 가족으로 만들어 주셨는데,
막상 무슨 일이 닥치면 그런 예수님은 마음과 생각 속에서 사라지고
사단이 쏘는 불화살 한 방에 그동안 지켜왔던 믿음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깨집니다.
믿음의 말을 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신앙의 반응, 믿음의 반응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기는 모릅니다. 자기는 옳다고 합니다.
자기는 상처를 입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시 저를 따라하세요.
"신앙은 반응이다"
상처받는 일이 있으면,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힘든 일이 있으면
꼭 이렇게 하십시오.
1)아픔은 하나님 앞에 가지고 와서 치유받고 회복받으십시오.
아픈 사람은 의사에게 가야하고 우리의 의사는 예수님이시니까
예수님 앞에 와서 치유받고 회복받으십시오.
관계의 아픔이든, 상황의 아픔이든 무슨 일이든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울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소리쳐야 합니다.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는 주님~~~찬양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속 시원히 다 쏟아놓으십시오.
형 에서와의 풀리지 않는 관계, 분노의 얼굴로 복수를 다짐하면서
자신에게로 달려오고 있을 형을 생각하면, 불안하고 괴롭고 힘들고
자기가 왜 형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였을까 막 후회가 되고....
그 때, 그가 택한 것은 하나님께로 문제를 가지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얍복강 가에서, 하나님 앞에서 혼자 있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하나님께 울부짓고 소리칠 때, 하나님께서 얽혀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야곱과 에서의 관계를 풀어가셨습니다.
우리는 얍복강에서 야곱과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한 것만 보는데,
그것은 일차원적으로 보는 것입니다.
야곱이 얍복강에서 하나님 앞에 혼자 설 때에
하나님께서는 에서의 마음을 풀어주셨고
에서의 마음에 용서의 강이 흐르게 하셨고
장자의 축복을 빼앗아간 철천지 원수가 아닌,
그래서 반드시 죽여야 할 인간이 아닌
사랑하고 품어주고 이해하고 용서해야 할 자신의 하나 뿐인 동생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연약한 동생으로 보게 하셨습니다.
한 가족으로 보게 하셨습니다.
괴로움에, 마음의 근심에 얍복강에서 하나님 앞에 혼자 섰을 때,
하나님과 씨름 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얍복강의 야곱을 불쌍히 여기셔서
야곱이 할 수 없는 모든 문제를 다 풀어버리셨던 것을 보셔야 합니다.
야곱이 얍복강에서 씨름할 때, 에서도 씨름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얍복강이 있습니까?
얍복강을 찾으십시오. 얍복강을 회복하십시오.
얍복강에서 하나님 앞에 혼자 서십시오.
아픔, 괴로움, 근심과 걱정, 상처와 문제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워하고 괴로워하고 싸우고 다투게 하는 것은 사단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며
사단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며, 세상의 영광의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픔,괴로움, 근심과 걱정, 상처와 문제를 두고
사랑하고 용서하고 이해하고 품어주고 안아주고 마음을 열고 손을 잡아주는 것은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며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2)그리고 이제, 사랑의 제자가 되십시오.
갑자기 뜬금없는 말씀이 나옵니다.
34절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절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오늘 말씀에서 14장까지 계속해서 이어지는 주제는 '길'입니다.
그런데 주제에서 벗어난 것 같은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하셨지만,
이제 왜 이 말씀을 하시는지 아실 겁니다.
가룟 유다의 배신은 모두가 영광의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영광의 갈림길에 서신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길은
배신한 제자 가룟 유다 조차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과 용서를 시작으로
예수님을 향해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를 참으십니다.
조롱할 사람들, 채찍질하고 뺨을 때리고 못박을 박고 침을 뱉을 사람들을 사랑하십니다.
도저히 견디기 힘든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의 잔을 사랑으로 받아들이십니다.
그렇게 인류 구원의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영광의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예수님의 일이고, 제자들에게 일어날 일이 있습니다.
3년입니다. 짧다고 하면 짧지만 3년은 긴 시간입니다.
그 시간을 동거동락하며 함께 했던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고
은 30냥에 팔아버리는 사건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 상황을 곧 마주하게 될 제자들, 그들도 역시 영광의 갈림길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에서 자신들 조차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가룟 유다만 예수님을 배신하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와 제자들 모두 다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버리겠다고 했는데,
그 누구도 고난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시는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제자가 없었고,
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쳐 버리는 상황이 벌어질 것입니다.
가룟유다를 향해 비난할 상황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 앞에서, 제자들 중 그 누구도 떳떳하지 못합니다.
부끄러움에 고개도 들지 못합니다. 말 뿐이었던 자신들의 거짓됨을 보게 될 것입니다.
제자라고 했지만 제자가 아니었던 자신들의 연약함을 서로 서로 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순간까지 보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지적할 것 많고, 비난할 것 많고. 똑같이 모두 예수님 버리고 도망쳤지만,
그 중에도 누가 더 나쁜 놈인지 또 비판할 것입니다.
그것이 사람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똑같이 선악과를 따 먹었지만,
아담이 하와보다 더 나쁜 놈입니다.
지적질 하는 놈, 비난하는 놈. 책임전가 하는 놈.
그런 나쁜 놈 되지 말고, 그런 상황이 왔을 때,
깨달아야 합니다. 그 자리가 영광의 갈림길이다는 것을.
즉 예수님께서 고난당하실 때,
예수님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도망쳤는지 킬로수 따지면서
자기 잘못없다하고 니가 더 나쁜 놈이야 이런 짓 하지 말고 그 때.
진짜 제자가 되는 방법은 '서로 사랑하는 거야'
예수님의 말씀은 이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을 깊이 묵상하십시오.
"일하지 말고 사랑하십시오"
일만하다 마음 상하고 상처주고 상처받고 관계 틀어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일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사랑하기 위해 일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역에서, 사역만 잘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것이 더 중요합니다.
누가 더 잘하고 누가 더 못하고가 아니라,
또 일하면서 내 마음에 들고 내 마음에 들지 않고가 아니라.
모든 사역의 목적은 그 일 가운데 사랑하는 것이며, 그것이 제자입니다.
한번은 교회 유치부 부흥을 위해 부장과 교사를 세우는데,
마침 새가족으로 와서 모든 양육과정을 충실하게 하셨던 분들 중에
어린이집, 유치원 원장들이 계셨어요. 그래서 전문가들이라
유치부에 부장으로, 총무 등으로 임원으로 세웠더니,
예상과 기대와는 달리, 얼마나 삐걱거리고 다투고 싸우고
시끄러운지...유치부가 위기였어요.
그 때, 그 두 분 중에 한 분이 저와 처음 만났을 때, 제가 그 분에게 한 말이
바로 '일하지 말고 사랑하세요'였습니다.
저를 만나자 마자, 얼마나 일 이야기를 하시는지,
부득이한 사정으로 교회를 옮기게 되었지만, 교회가 가면, 이렇게 봉사하고
헌신하고 이 부서에 가서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당찬 포부를 말씀하시는데,
제가 찬물을 확 부어버렸어요. 교회오시면 '일하지 말고 사랑하세요."
그 때는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하셨어요.
그런데 유치부에서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벌어졌을 때,
다시 찾아온 그 집사님에게 기억나세요? 일하지 말고 사랑하세요.
그 때, 아하~~ 그 집사님이 알아듣고, 자신과 갈등을 벌이고 있는 그 집사님을
사랑하는데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보다 더 중요한 사랑하기 시작했는데,
그 때부터 갈등은 풀어지고 막혔던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일하지 말고 사랑하십시오.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제자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관계에서도, 사랑할 수 없는 상황이 일어나도 그 때,
서로 사랑하는 것이 제자입니다.
나를 배신한 가룟 유다를 사랑할테니까 너희들도 가룟 유다를 사랑하고
너희들이 다 나를 버릴텐데, 그 때 서로 비난하지 말고 서로 사랑해라.
지금은 너희들 제자가 아니야. 그 때가서 진짜 제자가 될 거야.
이것이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은 천국의 길입니다.
1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제자들이 근심했습니다. 왜 근심했을까요?
예수님께서 떠나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떠나시는데, 떠나시는 곳에는
아무도 따라 올 수 없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거처를 예비하러 갔다 다시 오신다고 합니다.
여기서 다시 오시는 것을 부활 후로 볼 것인가?
승천 후로 볼 것인가?에 따라
아버지 집, 거처에 대한 해석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심읅 부활 후로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과 오순절 성령님의 오심을 통해
세워질 교회 공동체가 됩니다.
교회는 천국을 이 땅에서 경험하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며, 예수님의 몸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래서 이 땅 가운데 세워진 교회는 예수님의 은혜와 능력,
지혜와 구원을 경험하는 곳입니다.
교회가 정말? 이렇게 놀라시는 분들이 있겠죠?
어떤 분들은 교회에서 받은 상처 때문에
동의하지 못하시는 분이 계실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교회는 예수님께서 우리가 천국을 경험하도록
구원을 경험하도록, 하나님의 선하심을 경험하도록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교회를 향한 부정적인 모든 경험과
생각과 아픈 상처들이 치료받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교회됨을 회복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교회 탓 말고,
지금 나는 천국 백성답게 말하고 있는가?
나는 천국 백성답게 행동하고 있는가?
나는 천국 백성답게 살고 있는가?
나는 천국 백성답게 교제하고 있는가?
나는 천국 백성답게 섬기고 있는가?
우리 교회가 천국을 경험하고 구원의 삶,
그 풍성함을 경험할 수 있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반면 승천 후로 보면 예수님께서 재림하심으로 주어질
완전하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말합니다.
이 세번째 예수님의 길되심을 말씀드릴 때,
우리가 생각하는 천국에 대한
잘못된 오해를 바로 잡기를 원합니다.
천국에 대해서 이렇게 알고 계신 분이 계십니까?
천국에 가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어떤 사람들은 금면류관을 쓰고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개털모자 쓰고 있고,
어떤 사람들은 금과 은과
온갖 보석으로 된 대궐같은 집에 사는데
어떤 사람은 초라한 초가집에서 산다.
다 거짓말입니다. 이런 말 듣지 마세요.
천국에서는요. 금값이 똥값입니다.
금덩어리는 그냥 돌덩어리입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한글로 번역하면서,
중국성경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번역을 하다보니 하늘나라를 한자 그대로 하늘 천, 나라 국.
이렇게 해서 천국이 된 것입니다.
천국을 죽으면 가는 어떤 장소로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은 가는 곳으로 생각합니다. 가는 곳.
예!~ 천국은 반드시 있습니다. 천국은 반드시 존재합니다.
하지만 천국의 진정한 의미는 장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3절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여기서 가장 강조되는 것은 '함께'입니다.
찬송가 내 영혼이 은총입어 3절 찬송
"높은 산이 거친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천국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높은 산이든, 거친 들이든 상관없습니다.
거기에 하나님이 계시면 그 곳이 하늘 나라. 천국입니다.
초막이든 궁궐이든 상관없습니다.
거기에 하나님이 계시면 거기에 하늘 나라, 천국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게서 우리의 무엇이라는 말입니까? 왕입니다.
하나님께서 왕으로 통치는 하는 곳이 천국입니다.
하나님께서 완전한 사랑과 의와 평강과
기쁨으로 다스리는 곳이 천국입니다.
여러분~천국 가고 싶습니까?
천국가고 싶다는 말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고 싶어요 라는 말입니다.
주님만이 나를 다스려 주시기를 원한다는 말입니다.
나는 주님을 원해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싶어요~이거 원하지 않는데
이렇게 살고 있지 않으면서
천국가고 싶다는 말은 거짓말이에요.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교회공동체를 주시든지,
아니면 하나님의 나라를 주시든지,
우리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며
완전한 하나님과 함께 살며
진정한 천국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시며, 영광의 길이시며, 천국의 길입니다.
예수님을 더욱 알아가며
하나님 나라의 풍성함을 크게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신약 > 요한복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한복음 21:1∼14 다시 사람을 낚는 어부로 (0) | 2025.04.04 |
---|---|
요한복음 10:1-10 예수님이 누구신가 3-양의 문 (0) | 2025.01.31 |
요한복음 8:12~20 예수님은 누구신가2-세상의 빛 (0) | 2025.01.18 |
요한복음 6:22-35 예수님은 누구신가1-생명의 떡 (0) | 2025.01.18 |
요한복음14:6 예수님을 만나면 인생의 방황이 끝납니다. (0) | 2024.05.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