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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여러분은 다 고향이 있으실 것입니다.(고인의 고향을 물어본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13절). 이들은 앞에서 말한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의 믿음의 선진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살았던 사람들로서, 모두 믿음을 따라 살다가 죽었다고 말합니다. 삶과 신앙은 분리할 수 없습니다. 그가 무엇을 믿느냐에 따라 행함이 따라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노아라는 사람은 하나님을 신뢰했고 약속을 믿었으므로 방주를 지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놀랍게도 그와 같은 믿음의 선진들이 이 땅에 안식하지 않고더 나은 본향을 섬겼다고 말합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전 15:1..
찬송: 610장, 608장우리와 함께 신앙생활을 하시던 고 000(직분)님께서 0일 0시 00분에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영원하신 하나님 나라에 입성하셨습니다. 저는 기억합니다. 000(직분)님께서 살아 생젼에어떻게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셨는지.믿음에 있어서 항상 최선의 신앙생활을 하셨습니다.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해 눈물과 봉사와 헌신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지난 00년간 병석에 계시면서도, 자신보다는 늘 교회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늘 교회를 향한 000님의 소원이 있었습니다.그것은 아직도 믿음에 굳게 서지 못한 자녀들이 믿음 위에 서서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었습니다.사랑하는 자녀 여러분, 이제는 000님의 뜻을 받들어 더욱더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시는 유족들이 되시기 바랍니다.1. 바울 사도..
찬송: 534, 539 성구: 창 49:28-31 28 이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 이와 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29 그가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되 내가 내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선조와 함께 장사하라 30 이 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는 것이라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밭과 함께 사서 그의 매장지를 삼았으므로 31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의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 곳에 장사하였노라 우리 인생은 창조주 하나님이 지으셨고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이 생명과 호흡을 주심으로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인생이란 ..
찬송: 539, 545 고 장영환 집사님 천국환송을 하며 유가족 위로예배를 드리겠습니다. ■사도신경으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대표기도: 장로중.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데살..
1.여자가 쳐다보면 자기한테 호감이 있는 줄 안다. 나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해서 자기를 싫다고 하면 한번 튕기는 거라고 여긴다.(남자들의 착각) 2.남자가 말을 걸면 자기한테 관심 있는 줄 안다. 남자가 자기와 같은 방향으로 걸으면 관심 있어서 따라오는 줄 안다.(여자들의 착각) 3.자기가 서울대 갈 수 있을 줄 안다.(초딩들의 착각) 4.앞사람 등에 숨어서 잘 때 선생님이 안보이면 선생님도 자기를 안 보는 줄 안다.(중고딩의 착각) 5.우리 애는 정말 착한데 친구를 잘못 만나서 삐뚤어진 줄 안다.(세상 엄마들의 착각) 6.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기는 아닌 줄 안다.(우리의 착각)
오늘 우리는, 사랑하는 아버님의 추도예배를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추도(追悼)는 ‘죽은 사람을 생각하여 슬퍼하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반면 ‘예배(禮拜)’는 우리가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그 분을 기쁨과 전심으로 찬양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추도예배’는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고인을 생각하는 슬픈 마음으로 어떻게 기쁘게 주님을 찬양하고 예배할 수 있습니까? 상식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추도예배’는 확실히 석연치 않습니다. 하지만, 바로 슬픔과 기쁨이 공존하는 이 자리에 놀라운 기독교의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본문에서 우리는 슬픔에 빠진 가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사랑하는 오빠 나사로를 잃은 두 여동생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입니다. 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