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큰 그림을 봅니다. (하박국 1장 3~11절) 본문
지난 시간부터 하박국 말씀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하박국의 이름 뜻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포옹하기, 끌어안다 였습니다. 그리고또 하나의 뜻이 더 있었습니다. 씨름하다입니다. 하박국은 시대의 아픔과 상처, 문제를
끌어안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과 씨름하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박국의 시대는 강포와 패역의 시대였습니다. 죄악이 가득한 시대였습니다. 변론과 분쟁이 가득한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 속에 이런 질문이 있었습니다. 왜 악인이 형통한가? 왜 의인은 고통받는가? 그리고 고통받는 의인이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왜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으시고 침묵하시는가?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하박국은 백성들의 대표로 이 질문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항변합니다, 이런 하박국의 항변 중에 3절을 보십시오. 그의 항변은 이렇습니다
3절-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
3절에서 눈여겨 보셔야 할 것은 '보다'는 단어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자신이 죄악을 보고 있으며 패역을 보고 있다고 합니다. 왜 이런 죄악과 패역이 가득한 것입니까? 하나님은 왜 죄악과 패역의 세상에 대해 침묵하십니까?라고 하나님께 항변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 대답을 해 주십니다. 그런데 하박국이 했던 말을 그대로 되받아서 하고 있습니다.
5절- ~너희는 여러 나라를 보고 또 보고 놀라고 또 놀랄지어다.
이 말은 니가 본 것이 진짜 본 것이 아니다. 역사에 나타난 팩트만 본 것이다. 하박국은 자신이 본 것이 다 본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박국에게 니가 본 것이 다 본 것이 아니다. 진짜가 아니다. 너 봤다고? 너 진짜로 본 거라고 생각해? 내가 너에게 진짜를 보여줄텐데 그럼 진짜 깜짝 놀랄거야. 이런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려고 하는 놀라운 일이 무엇일까요?
6절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려고 하는 놀라운 일은 갈대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갈대아 사람들을 일으켜 이스라엘을 비롯해 주변의 여러 나라를 점령해 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갈대아 사람들은 바벨론제국을 말합니다.
갈대아 사람들은 어떤 사람인가? 6절부터 11절까지 갈대아 사람들에 대한 묘사를 하고 길게 하고 있습니다.
6절:사납고 성급한 백성들입니다. 성급하다는 말은 성격이 성급하다기 보다는 동작이 빠르고 민첩하다는 뜻이
며, 갈대아 사람들은 잔혹한 기질을 가지고 있으며 전투에 능하다는 뜻입니다. 땅이 넓은 곳으로 다니며
자기 소유가 아닌 거처를 점령하는 사람들로 정복욕구가 강한 민족라는 뜻입니다.
7절:두렵고 무서우며 당당함과 위엄있는 사람들입니다.
8절:군마는 표범보다 빠르고 저녁 이리보다 사납다. 그들의 마병은 먼 곳에서 빨리 달려오는 마병. 마치 먹이
를움키려고 하는 독수리의 날음 같다고 합니다.
9절:'다 강포를 행하러 온다. 사람을 사로잡아 모으기를 모래같이 많이 할 것이다.' 유다를 침공해서 잔혹하
게 유다백성들을 포로로 끌고 갈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끌려가는 유다의 포로들이 바람에 날려 휩쓸려가
는 모래같이 보잘 것 없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10절: 전쟁에서 승리하면 적국의 왕들과 방백에게 멸시와 조소를 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남유다 최후의 왕인
시드기야는 왕자들이 죽는 모습을 직접 보았고 그 이후 두 눈이 뽑혀 끌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 했습니
다. 그들 앞에서는 아무리 견고한 성이라도 무용지물이었습니다.
11절: 자기들의 힘을 자기들의 신으로 삼는 자들이다.
갈대아 사람들, 즉 바벨론에 대해 길게 묘사했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에 대해 가장 중요하게 보야할 부분은 7절에 '당당함과 위엄이 자기들에게서 나오며' 라는 말과 11절에 '자기들의 힘을 자기들의 신으로 삼는 자들'이라는 말입니다. 바벨론은 자신들의 힘이 자기들의 것인 줄 알고 교만했습니다. 자신들의 능력과 권세가 자신들의 것인 줄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에 침략당해 정복당하는 다른 나라들도 동일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바벨론의 힘, 바벨론의 군사력을 보면서 바벨론을 무서워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박국 선지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는 그 힘이 어디서 나왔는지 가르쳐 줍니다.
6절을 보십시오. "보라 내가!' 누구일까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십니까? 마지막에 '~갈대아 사람을 일으켰나니' 예, 갈대아 사람들, 바벨론을 일으킨 분이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바벨론이 스스로
강성해 진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앗수르가 지고 바벨론이 뜨는 세력 재편이 자기들 힘으로 흥하고 망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6절에 보듯이 갈대아 사람들을 일으킨 분이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역사의 주권을 가진 분이 누구입니까?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왜 앗수를 무너뜨리고 바벨론을 일으키시는가? 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구원의 그림을 그리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은 믿음의 시야를 좀더 넓혀 하나님이 그리시는 큰 그림을 보아야 합니다.
여기서 요셉 이야기를 봅시다.
요셉이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지만 이후에 총리가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가졌던 궁극적이 목적이 아닙니다. 요셉이 최강대국인 애굽의 총리가 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요셉의 스토리를 성공 스토리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어떤 분들은 자녀교육을 위한 자료로 요셉의 예를 많이 드는데, 뭐 잘못 된 것은 아니지만 요셉의 이야기는 노예에서 총리가 되는 인생 성공스토리를 다룬 것이 아닙니다.
총리가 된 요셉이 이런 고백을 합니다.
창세기 45장 5절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창세기 50장 20절
"당신들은 나를 행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요셉은 3가지 고백을 합니다.
첫째, 모든 것이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겉으로 드러난 일에는 형들이 요셉을 팔았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연출하신 것임을 고백합니다.
둘째, 생명 구원을 위한 일이었다. 하나님의 연출 목적은 생명의 구원을 위한 일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셋째, 이것을 위해 내가 먼저 보냄을 받았다. 자신일 팔려진 자가 아니라 보내어진 자라는 사실을 알고 고백합니다. 이것이 진짜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애굽의 역사를 살펴보려는 것도 아닙니다. 요셉의 성공스토리도 아닙니다. 요셉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구원 스토리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 사람을 어떻게 움직이고 나라를 어떻게 움직이며 역사를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수 있습니다.
하박국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박국이 하나님께 유다의 타락을 끝내달라고 항변할 때, 하나님은 하박국이 생각지도 못한 바벨론이라는 군대를 준비하셨습니다. 여우피하려다 호랑이 만난다는 말이 있죠? 유다라고 하는 작은 그림을 보지 말고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큰 구원의 그림을 보라. 그것이 진짜다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바벨론에게 결국 멸망당한 유다는 겉으로는 멸망당하고 포로로 끌려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유다 사람들은 그 곳에서 진정한 회복을 경험합니다. 성전이 없는 곳에서 성전을 사모하며 우리가 성전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던 때가 얼마나 좋았던가? 하나님을 섬길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야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것이 가장 소중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살았던 지난 날의 잘못된 행실을 진정으로 회개했습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시대가 아니라 다시 찾아오는 시대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큰 그림입니다.
'코끼리 뒷다리 만지기 하듯' 하박국과 그 시대의 사람들은 유다의 패역과 죄악의 문제만을 해결하는 것이 다 인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작은 그림이 포함된 아주 아주 큰 그림을 그리고 계신 분입니다. 역사는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습니다. 역사는 하나님의 시간표를 따라 움직이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움직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이런 큰 그림을 보는 믿음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대해 다른 태도를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고 더욱 의지합니다. 하나님의 결과는 언제나 선함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은 항상 좋습니다.
하박국의 질문처럼 악인의 형통함과 의인의 고통에 대해 의아해 하지 마십시오. 이상히 여기지 마십시오. 의인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의인의 기도에 늘 귀 기울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시는 큰 그림대로 주권대로 역사하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하나님께서 침묵하고 계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여전히 일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침묵에는 다 뜻이 있으니 기다리는 믿음을 가집시다.
여러분! 하나님의 침묵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첫째는 구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진짜와 가짜를 구별합니다. 둘째는 훈련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기 시작하면 어떠한 고난이 닥쳐와도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인내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이해되지 않는 일이라도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기다릴 줄 압니다. 당장은 힘듭니다. 그건 어쩔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낙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의인은 믿음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살아갈 용기와 희망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하나님의 큰 그림을 보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갑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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