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재림을 소망하며 위로하라(데살로니가전서 4장 13절~18절) 본문
재림을 소망하며 위로하라(데살로니가전서 4장 13절~18절)
성경은 여러 곳에서 죽음을 ‘잠’으로 표현합니다. 마태복음 27장 52절에도 “무덤이 열리며 자던 성도들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라고 합니다. 나사로의 죽음과 부활사건에서도 예수님은 나사로가 잠들었도다고 하시고 그를 깨우러 간다고 하십니다. 스데반 집사님이 순교할 때도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고 합니다. 스데반 집사님의 죽음도 잔다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죽음을 자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13절에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라고 되어있죠? 여기서 ‘자는 자들’은 죽은 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 죽은 자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14절에 보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16절에 보면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입니다. 더욱 정확히 말하면 “예수님을 믿고 난 후, 예수님의 재림 전에 죽은 자들”을 말합니다.
데살로니가교회는 예수님의 재림을 학수고대하며 기다리는 교회였습니다. 여러분은 재림을 기다리십니까? 재림에 대해 점점 더 무감각해져가는 이 시대에 재림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가진 우리교회와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재림을 애타게 기다리는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에게 한 가지 의문점과 그로 인한 염려와 슬픔이 생겼습니다.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었던 성도들 중에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 예수님의 재림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는데 그만 재림을 보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라는 의문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 스스로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1)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죽은 자들은 혹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2)또는 살아서 재림의 주를 영접하는 것이 죽어서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보다 더 영광스럽다. 또는 죽어서 재림을 맞이하는 자들이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 그래서 15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살아있는 자와 먼저 죽은 자들의 순서에 대해 언급을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재림 때 살아있는 자들이 먼저 하늘에서 주어진 상급이나 기쁨을 먼저 차지하고 죽은 자들은 늦게 받는다. 뭐 이런 잘못된 재림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럼 이렇게 되지 않을까요? 육신의 질병으로 곧 죽음을 맞이하게 될 성도들이나 죽음에 대한 염려를 가진 자들에게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을 보지 못하고 죽은 자들의 가족에게는 얼마나 큰 슬픔일까요?
그래서 바울이 “너희가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잘못 알고 있다. 내가 바르게 가르쳐 줄테니 더 이상 슬퍼하지 말라”고 바르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그럼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은 어떻게 될까요? 그들은 잔다고 표현합니다. 그렇다고 무슨 캡슐 속에 들어가서 수면하는 것처럼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살펴봐도 영혼이 깨어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죽음을 잔다고 표현하는 것은 죽음 이후에 얻을 하나님 앞에서의 안식을 말합니다. 그리고 죽은 자들이 학수고대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마라나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하면 예수님의 재림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듯이 그들도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하나님이 예수님과 함께 데리고 오실 것입니다. 어디에서 알 수 있습니까? 14절입니다. “예수 안에서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그와 함께의 ‘그’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재림 전에 죽은 성도들을 데리고 오실 것이다고 합니다.
그리고 16절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라고 합니다. 여기서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은 일어난다는 표현은 죽은 후에 영혼과 분리되어 땅 속에 묻혀있던 성도들의 육체가 예수님과 함께 오는 영혼과 다시 만난다는 말입니다. 그 때의 몸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 입고 살았던 몸이 아니라 썩지 않을 신령한 몸으로 최종 부활합니다.
예전에 함께 사역했던 집사님 한분이 계셨는데 그 분은 팔 한쪽이 없으세요. 방앗간 집 아들이세요. 방앗간 집 아들들은 손가락이 하나 없든지 팔 한쪽이 없든지 몸에 상처가 있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데 팔 한쪽이 없으셔도 정말 맡은 사역을 잘 하세요. 믿음도 얼마나 좋으신지 몰라요. 그런데 그 분이 소망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팔 한쪽이 없지만 주님 다시 오실 그 날이 오면 내 육체가 신령하고 완전한 몸이 되어 영원히 살리라”는 소망이었어요. 혹시나 여러분! 얼굴이 좀 못생겼다고 슬퍼하지 마십시오. 내가 작다고 비관하지 마십시오. 뚱뚱하다고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내 몸에 장애가 있다고 좌절하지 마십시오.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에 완전한 육체를 입고 다시 부활할 줄 믿습니다. 주님 다시 오시는 그 날은 완벽한 날이에요. 완전한 날이에요. 그러니 당연히 그 날을 소망하며 살아가야죠.
변화산에 올라간 제자들이 변화된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고 뭐라고 했는지 아시죠? “주여!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내려가지 맙시다. 여기 초막을 짓고 살아도 좋습니다. 화려한 궁전도 필요없어요. 수십평 큰 집도 필요없어요. 여기 조그만 초막이라도 괜찮으니까 영광스러운 주님과 함께 있는 여기가 좋습니다.” 이 땅에서 예수님의 변화된 모습만 봐도 이렇게 했는데 예수님의 재림을 보면 어떨까요? 얼마나 좋을까요? 그 무엇으로도 비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순간을 세상에서 내게 일어난 그 어떤 순간으로 바꿀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재림을 소망합시다.
주님의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소리가 울리며 예수님께 이 땅에 재림 하실 때 이렇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그 모습을 고린도전서 15장에서도 이렇게 말씀해줍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고전 15:51~52)
이 말씀처럼 죽은 자들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재림 때에 살아있던 성도들도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여 썩지 않을 신령한 몸으로 변화됩니다. 다시는 죽음에 속하지 않는 썩지 않는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고 변화되는 때가 예수님의 재림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재림을 소망합시다. 그 날을 소망합시다. 아멘 안하십니까? 왜? 지금까지 해놓은 일이 너무 아깝습니까? 이런 분들 많잖아요. 재림을 소망합시다라고 하면 “아이고 주님, 조금만 늦게 오시지요. 내가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아직 못한 일도 많아요.” 이 땅에서 쌓은 재물이 아깝고, 이 땅에서 쌓은 인기와 명예가 아깝고 권세가 아까우니까 주님 제가 다 누려보고 난 후에 오시면 안되겠습니까?“라고 말은 안하지만 마음 속에 가질 때가 참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세상에서 쌓아놓은 그 모든 것들은 다 썩어질 것입니다. 주님 다시 오실 그 날에 비교해 보면 아무 것도 아님을 꼭 기억하고 주님의 재림을 더욱 더 기대하고 소망합시다.
여러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음을 믿습니까? (아멘) 3일만에 다시 부활하셨음도 믿습니까? (아멘) 이것을 믿는다면 14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믿은 성도들은 예수님의 다시 오심도 믿으며 성도들의 영광스러운 부활도 믿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15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라고 합니다. 이 말은 참 중요한 말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재림과 성도의 부활과 영화로운 몸을 입는 것이 사도 바울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이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 18절 말씀으로 함께 갑시다.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재림을 보지 못하고 죽은 자들이 예수님의 재림 때에 영광스러운 부활을 할 것임을 말씀했습니다. 이 사실을 바탕으로 서로 위로하라는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죽음은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두려운 일입니다. 누구나 죽음을 피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 속에서 죽음에 대해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죽음은 ‘자는 것이다.“ ”죽음은 하나님 앞에서 쉬는 것이다.“ 또는 살아있는 자나 죽은 자가 모두 함께 학수고대하고 있는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재림’입니다. 죽었다고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 이후에도 여전히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살아있고 소망하며 기다립니다. 그래서 17절을 보십시오.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은 살아있거나 죽었거나 상관없이 항상 주와 함께 살아있는 것입니다.
이 약속의 말씀은 사별의 아픔을 겪고 있는 성도들, 죽음을 앞두고 있는 성도나, 그런 가족을 둔 성도들에게 위로와 격려의 말씀이 됩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고통 중에 있는 성도들의 염려와 슬픔을 씻겨 주시는 하나님의 위로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하나님의 위로하심으로 서로에게 위로하는 자가 되라고 합니다.
위로하는 사람은 무엇보다 확신이 있는 사람입니다. 확신 없이 어떻게 위로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며 위로할 때, 우리에게 있는 확신이 무엇인지 다시 정리하고 마치려 합니다. 예수 안에서 죽는 자들에게 죽음 후에도 영광스러운 부활의 소망이 있음을 확신하십시오. 썩지 않은 영화롭고 신령한 몸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그리고 살아있는 자들도 마찬가지로 썩지 않은 영화롭고 신령한 몸으로 변화하여 영원히 완성된 구원에 들어갈 것입니다. 이것을 확신하며 서로를 위로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믿고 주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재림을 더욱 소망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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