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리자(데살로니가전서 5:1~11) 본문

신약/데살로니가전서 완료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리자(데살로니가전서 5:1~11)

행복으로초대 2018. 3. 22. 23:05

 

데살로니가전서 51~11절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리자

 
어떤 목사님의 설교 중에 들은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짜를 알 수는 없지만 아마 태풍이 몰아쳐 천둥, 번개치고 비바람이 쏟아붓는 금요심야기도회 때 오실 겁니다.”

정말 그래요? 라고 물으신다면, “아니요! 아무도 모릅니다.”라고 하겠지만 그 의미만큼은 깊이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리자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성도들이 예수님의 재림을 어떻게 기다려야 할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성경에 주님은 밤에 오신다는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지 말고 깨어 있으라고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 밤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서 예수님이 부활절 밤에 재림한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어떤 유대인 성도들은 유월절 밤에 재림한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물론 성경에서 말하는 주님께서 오신다는 밤은 실제적인 밤은 아닙니다. 밤은 비유요 상징적인 의미입니다. 밤은 영적으로 깊이 잠들어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영적으로 깊이 잠들어 있는 모든 시간이 밤의 시간입니다. 반대로 영적으로 깨어있는 모든 시간은 낮의 시간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 때에 사람들의 모습을 두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밤의 시간을 사는 사람들과 낮의 시간을 사는 사람들로 나누어집니다.

밤의 시간을 사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깊이 잠들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반면 낮의 시간을 사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어디에 속한 사람들입니까?

당연히 낮의 시간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정신을 차리고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어두운 사람들의 모습이 3절에 나옵니다.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밤의 시간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영적인 위기의식이 없어요. 영적으로 안전불감증입니다.

평안하다. 안전하다고만 합니다. 하지만 주의 날이 갑자기 임할 것이라고 합니다. 마치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갑자기 이르는 것처럼 말입니다. 임신한 여자가 해산하기 위해 항상 준비하지 않고 있으면 갑자기 양수가 터지고 주변에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큰 일이 날 수도 있습니다. 항상 해산의 때를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영적으로 깊이 잠들어 영적인 밤의 시간을 사는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1219절에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영적으로 깊이 잠들어 있어 밤에 속한 사람의 모습은 늘 즐기자 즐기자!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았다. 평안히 쉬자! 먹고 마시고 즐기자. 먹고 마시고 즐기는 일에 빠져 있다 보니 주님 오실 날을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7절을 보면 자는 자들이라고 하고 취하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세상의 술에 취해 빠져 헤매는 자들입니다. 세상의 화려한 꿈을 꾸십니까? 세상적인 소유를 많이 가지고 그 소유로 세상 맘껏 즐기고픈 소원을 가지고 있습니까? 영적으로 깊이 잠들어 있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심각한 어두움에 속한 사람입니다.

 

마음이 둔해집니다. 감각이 없습니다.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습니다.

아무리 소리쳐 외쳐 봐도 밍송맹송해요. 왜 저리 소리를 쳐 대나? 오히려 불만을 터뜨립니다.

감각이 없어요.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을 표현하는 말들 중에 이런 말이 있어요.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슬피 울어도 가슴을 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마음이 둔해져서 도무지 듣지 않습니다.

 

베드로후서 33~4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무슨 재림이야? 조상들이 재림이라고 떠들어 댔지만 재림이 있었나? 다 그냥 있잖아! 이런 모습이 혹시 오늘날 교회의 모습이 아닙니까? 세속화된 교회의 모습, 세속화된 성도들의 모습, 혹시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요?

 

이런 사람들에게 주의 날이 어떻게 임합니까? 2절과 4절에 도둑같이 이른다고 합니다. 하지만 2절과 4절의 차이가 있습니다. 영적으로 밤의 시간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도둑같이 이른다고 하고 영적으로 낮의 시간을 사는 깨어있는 자들에게는 도둑같이 이르지 못한다고 합니다.

 

바로 이 차이입니다. 낮의 시간을 사는 깨어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주의 날이 도둑같이 이를 수가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늘 준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밤의 시간에 빠져 자고 취한 자들이 아니다! 우리는 밤의 아들이 아니라 낮의 아들입다. 우리는 밤에 속하지 않았다! 라고 단호하게 외칩니다.  

 

 

8절을 보십시오.

8절의 첫 시작은 그러나~”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니다~~~!!! 세상의 밤 속에서 잠에 빠지고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하나님 없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러니 8절에서는 단호함이 드러납니다. 그런데 그렇게 외치기만 한다고 끝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정신차리자고, 깨어있자고 구호만 외친다고 끝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래서 8절부터 보시면 낮의 속했다고 외치며 정신을 차리자고 정신무장 하는 사람들이 집중해서 갖추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줍니다.

 

그럼 정신을 차리는 방법을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정신무장을 시키는 8절 말씀을 보시면 전쟁에 출전을 준비하는 호심경,즉 흉배와 투구를 쓰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묘사하고 있는 이유는 밤의 세력 즉 사단과 마귀가 우리를 끊임없이 공격하고 유혹하며 넘어뜨리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밤에 속한 자들과 낮에 속한 자들 사이에 치열한 전쟁이 벌어집니다. 그런 치열한 전쟁에서 호심경과 투구로 무장을 하고 싸울 만반의 준비를 하라는 것이 정신을 차리는 방법입니다.

 

여기서 조금 더 들어가 볼까요? 우리는 어디에 속해 있습니까? 낮에 속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빛의 아들들입니다. 이제 낮에 속한 빛의 아들로서 밤의 세력과 싸울 때 우리가 입어야 할 호심경과 투구에 이름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믿음과 소망과 사랑입니다.

 

이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낮에 속한 빛의 아들들이 종말에 임박하여 일어나는 각종 영적 싸움에서 자기의 신앙을 지키고 보호할 수 있는 최고의 방어무기임을 말해줍니다. 믿음,소망,사랑은 이 세 가지는 익숙하시죠?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사랑장인 고린도전서 1313절의 말씀. 서로의 등수를 매기자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할 3대 핵심 사항입니다. 그리스도인임을 나타내는 결정적 표지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성도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세울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 밖에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그리고 험악한 이 세상 속에서 소망의 투구를 쓰고 있는 성도들은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요 장차 말할 수 없는 영광으로 가득한 하나님의 나라를 간절히 사모합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가진 성도들은 이 세상에 동화되어 영적으로 무감각해지지 않고 유혹을 단호히 물리칩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영적 무장을 견고히 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영적 무장을 하고 9절과 10절로 가보겠습니다. 영적 무장에 대한 근거는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믿습니까? 우리가 정말 사랑하는 분은 누구십니까? 우리가 흔들림없이 소망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하나님은 좋으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진노의 잔을 쏟아부으시려고 하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하십니다. 이것인 바로 우리의 믿음입니다. 우리의 소망이요, 우리가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이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견고히 서야 합니다.

 

그리고 11절로 갑니다. 개인적으로 영적무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교회를 이루어 견고한 하나님의 군대로 서라고 합니다.

 

11절에 권면하다는 용기를 북돋우다. ‘덕을 세우다는 건축하다, 세워주다라는 뜻입니다.

이 말을 연결하면 영적 성장과 신앙의 견고함을 돕기 위해 서로 용기를 북돋워 주다입니다.

 

각각의 성도들이 모여 한 몸을 이루는 교회(고전12)안에서는 한 성도가 넘어지면 다른 성도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9~10절의 구원에 대한 확신으로 견고한 군대의 대형을 이루게 됩니다.

 

로마군인들이 전쟁을 할 때, 당시 군대의 진형가운데 상대방의 원거리 공격 즉 비오듯이 쏟아지는 화살에 대해 방패로 서로의 몸을 가려주는 대형을 만듭니다. 교회도 사단의 불화살에 대해 견고한 진을 만들어야 합니다. 구원의 대한 확신으로 성도들마다 개인적으로 견고해지고 그런 성도들이 서로 서로의 영혼을 지켜주고 세워주고 권면하고 격려해주는 튼튼한 대형을 이루어 어떤 공격에도 끄떡없는 견고한 군대를 이루기를 힘써야 합니다. 우리 거제 호산나교회가 그렇게 견고한 하나님의 군대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튼튼한 믿음이 서로의 영적 성장과 유익을 위해 쓰여지는 방패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