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③노동의 가치를 발견하라(데살로니가전서 4장 11~12절) 본문
노동의 가치를 발견하라 (데살로니가전서 4장 11~12절)
요즘 TV 예능에서 가장 잘 나가는 사람이 ‘서장훈’ 이라는 국가대표 농구선수였던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말하길 조물주 위에 뭐가 있다고 합니까? 건물주라고 하죠? 건물주로 유명하죠? 한 때 6000천억 부자라고 방송에서 난리였습니다. 그런 서장훈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6개월 동안 아무것도 안하고 놀아봤는데 그게 더 힘들더라구요. 일할 수 있다는 것이 큰 기쁨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생각을 많이 주시는데, 제가 제 자신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창태야! 요즘 사역할 임지가 없어서 무임목사로 있는 목사들이 얼마나 많은데.... 너같이 부족한 사람, 불러준 교회가 있고 사역할 수 있는 교회가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하냐? 그러니 감사하고 열심히 하자!” 그렇게 말합니다.
오늘의 말씀 제목은 ‘노동의 가치를 발견하라’입니다. 한번 따라해 볼까요? ‘노동의 가치를 발견하라’. 말씀 속으로 다함께 들어가 보겠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의 말씀은 데살로니가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야 합니다. 오늘은 당시 데살로니가라는 특수한 시대 상황 속에서 ‘노동’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하나씩 찾아보기를 원합니다.
1.조용히 자기 일을 하라
당시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 사이에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하고 있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날이 멀지 않았으니까 일상생활에 매여 있지 말라! 복음을 전하는 일과 영적인 일, 신앙생활에 전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성도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시한부 종말론을 외치는 이단에서는 직장과 학교를 버리고 오직 예수님의 재림 만을 기다리며 집단 종교생활을 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런 잘못된 종말론으로 인해 교회에 문제가 크게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사도 바울이 어떻게 권면하고 있는지 알아봅시다.
11절에 ‘조용히 자기 일을 하라’고 합니다. 이 말은 이리저리 동요되지 않고 차분하게 자기중심을 지키라는 말입니다. 믿음의 중심 위에, 말씀 위에 평온함을 유지하라는 말입니다. 세상 종말이 임박했다는 말에 안절부절하며 일상적인 일을 내팽개치는 자들을 따르지 말고 열심히 자기에게 맡겨진 현재의 일에 충실하라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24장에 보면 주님의 다시 오심에 대해 그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고 하늘의 천사도 모르고 심지어 직접 재림하셔야 하는 예수님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 아십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다시 오실 때 한 가지 풍경을 묘사해주는데 두 사람이 밭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합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재림의 풍경입니다. 각자 자신의 일터에서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한다는 말입니다. 재림을 기다린다고 세상살이를 접고 기도원에 따로 모여서 열광적으로 기도하고는 곳에 임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사람일수록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더욱 열심히 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일 수록 자기에게 주어진 현재의 일에 더욱 집중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바른 모습입니다. 세상의 일에 정신팔려 하나님과 무관하게 사는 그리스도인들도 문제지만 믿음생활 한다고 가정 내팽개치고, 직장 팽개치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균형잡힌 믿음생활을 하십시오. 그리고 믿음생활을 교회생활에 가두지 마십시오.믿음생활은 가정생활, 직장생활을 다 포함합니다. 믿음을 교회에만 적용하는 좁은 생각 속에 갇혀 있지 마십시오. 믿음생활의 지경을 넓히시고 모든 곳에서 현재 주어진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 주님의 재림을 진정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2.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노동에 대한 하나님의 뜻 두 번째는 “너희 자신의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에 있습니다. 여기에서 헬라 사람들이 노동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당시 헬라세계에서 손으로 일한다는 것은 노예들이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설교시간에도 말씀드렸지만 한 도시의 1/2, 2/3가 노예들이었고 힘든 노동은 노예들이 담당하고 주인들은 쾌락과 유희에 빠져 살았습니다. 뭐 맛있는 것 없나? 뭐 신나고 재밌는 것 없나? 온갖 산해진미와 오락거리에 열광하는 데살로니가라는 도시의 분위기였습니다. 당연히 육체적인 노동은 노예들이나 하는 천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예수님을 믿고 회심한 성도들은 일하는 것을 천히 여기고 육체적 노동을기피하였을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교회 안에서는 위화감을 조성하는 요인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교회에는 주인들도 있었지만 노예들도 있었습니다. 함께 힘써 일하고 땀흘려 교회를세워 나가야 할 중대한 순간에 노예들은 열심히 일하는데 주인들은 땀흘리는 육체노동에서 자꾸 빠지려고 하니 문제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고 하면서 ‘노동에 대한 의식개혁’을 하려고 합니다. 노동은 천한 것이 아니라 노동은 존귀한 것이다. 노동은 저주받은 것이 아니라 노동은 복된 것이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노동에 대한 성도들의 의식개혁이 필요합니다.
노동은 존귀한 것이며 노동은 복된 것입니다. 누구든지 일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했습니다. 아담이 범죄한 후,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얼굴에 땀을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이것은 범죄한 아담이 하나님께 받은 벌이었습니다. 부족함없이 풍성한 에덴동산에서 살았던 아담과 하와가 범죄의 결과로 말미암아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는 저주받은 땅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하나님의 징벌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은혜의 길을 내십니다. 아담으로 인해 땅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땅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아담에게 냅니다. 하지만 땅이 그렇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지라도 수고하면, 땀을 흘리면 열매를먹을 수 있다!
여러분 이것이 은혜가 아닌가요? 이것이 복이 아닌가요? 그래서 시편 128편에 보면 한 가지 복을 말씀하는데 어떤 복인지 아십니까? 수고하는 대로 먹는 복입니다.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수고하는 자를 복되고 형통하게 해 주시겠다고 합니다. 아무리 애쓰고 아무리 수고해도 아무리 피땀 흘려 일해도 아무런 열매가 없는 것이 저주죠. 하지만 여러분의 손이 수고하는 대로 먹을 수 있는 것, 이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노동에 대해서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이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이마에 송글송글 맺혀있는 땀을 좋아하시고 그 땀이 복되다 형통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까지 정리하면
첫째, 잘못된 종말론에 동요하지 말고 현재 주어진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둘째,노동이 천하고 기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노동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성한 것이요 존중받아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그럼 이렇게 성도들이 더욱 열심히 일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말씀해주는 구절이 12절입니다. 다시 말씀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12절을 보십시오. "외인에 대하여 단정히 행하도록.“
‘외인’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모든 비그리스도인들, 불신자들을 말합니다..‘단정히’는 ‘품격 있게’입니다. ‘신사의 품격’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는데, 바꾸어 말하면 ‘성도의 품격’입니다. 성도들이 그 누구보다도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최선을 다해 일할 때, 그것이 불신자들에게 비춰지는 성도의 품격이 된다는 말입니다.
‘성도의 품격’이라는 말을 생각하면서 다음 말을 보십시오.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일을 하지 않게 되면 물질적으로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이 말씀을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요즘 거제 경기가 어려워서 실직하신 분들이 많은 데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일을 못하게 되신 분들을 향한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일을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이 채워주시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주는 말씀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기대와 달리 평생 궁핍을 면하지 못할 것이라고 성경에서 꾸준하게 말씀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육체적인 노동을 천시합니다. 위험하고 힘들고 더러운 일들을 기피합니다. 더욱 큰 일은 사람들이 일은 하지 않고 한탕주의로 일확천금을 노리는 요행을 바란다는 것입니다. 일하지 않는 인생을 즐기며 살자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의 풍조와는 달리 노동에 최선을 다하는 성도가 진정 품격있는 성도입니다. 일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이라는 잘못된 신앙을 불신자들이 볼 때, 특히 예수님을 믿지 않는 가족들이나 친척들이 볼 때 어떻게 생각할까요? 성도의 품격이 제대로 세워지겠습니까?
불신자들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주시합니다. 불신자들에게 성도의 품격은 ‘오직 예수’를 외치고 ‘복음’을 외치고 ‘믿음’을 외치는 입술이 아니라 ‘오직 예수’를 위해 현장에서 흘리는 땀과 거친 손이, 굳은 살이 베기고 기름 때가 손톱 사이에서 지워지지 않는 손입니다. 제가 새벽기도를하면서 ‘어머니의 손’에 대해서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제 어머니의 손이 제 손보다 더 굵고 큽니다. 지금은 일을 쉬시니까 그나마 조금은 괜찮아지셨는데 여전히 여자 손이 제 손보다 굵고 크십니다. 옛날 어머니 처녀 때 사진을 봤는데 정말 예뻤습니다. 아름다운 여인이었습니다. 제가 어머니를 많이 닮았습니다.ㅎㅎ 갑작스럽게 아버지께서 경영하시던 공장이 망하는 바람에 모든 걸 다 잃어 버리고 어머니의 고향으로 도망치듯 갔습니다. 정말 생각도 하기 싫은 가난한 시절을 보내면서 어머니는 살아보려고 안 해 본 일이 없었습니다. 남자들도 하기 힘든 일을 하면서 자식들을 키웠습니다.
그러니 온몸이 멀쩡할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 손은 마디 마다 류마티스를 앓으시면서 손가락이 굵어지고 휘어지고 손이 제 손보다 더 커졌습니다. 한번은 제가 다녔던 대학교식당에서 어머니께서 일하셨던 적이 있는데 식사 배식을 담당한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학생들이 학교복지부에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학교식당에 배식하는 아줌마 중에 손이 이상한 아줌마가 음식을 나눠주고 있어서 밥맛이 떨어졌다는 글이었습니다. 그 손이 이상한 아줌마가 저희 어머니십니다. 그 이상하고 크고 휘어지고 마디마디가 굵어져 남자 손보다 더 커진 손이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닙니다 ‘섬섬옥수’라고 합니까? 예쁘고 부드러운 손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부드럽고 예쁜 손보다 굵고 휘어지고 제 손보다 더 큰 그 손이 저는 더 자랑스럽고 아름답게 보입니다. 그 손이 바로 어머니의 품격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자식들 공부시키고 먹여 살리기 위해 고생 고생했던 그 손이 어머니의 품격입니다.
마찬가지로 나같은 죄인을 살리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두 손과 두 발에 못자국 나며 구멍이 숭숭 뚫려버린 예수님의 손이 예수님의 품격을 나타냅니다. 구멍난 그 손과 발을 볼 때마다 찬양하지 않을 수 없고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손에 못자국이 있으므로 나는 더 이상 사망권세 어둠에 갇혀 죽은 자가 아닙니다. 그 손 못자국 만져라~~ 그 손 못자국 만져라!! 예수님의 손의 못자국을 만집시다. 그 손의 못자국에 나의 손을 대 봅시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손은 어떻게 생겼습니까? 노동의 가치를 알고 험한 손, 일한다고 더러워진 손 부끄러워하지 마시고 최선을 다해 일함으로 성도의 품격을 가진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나 꺼려하고 힘들어하는 봉사 직분이라도 예수님 손의 못자국을 생각하며 힘써 수고하는 성도들이 품격있는 성도입니다. 청소나 주방 등 육체적인 노동을 요하는 봉사에 대해 하나님이 기뻐하심을 기억하고 또한 그 일하는 기쁨이 넘치는 모습이 품격있는 성도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에 기쁨으로 일함으로 성도의 품격을 지켜나가는 성도들이 됩시다. 하나님 앞에서 일하는기쁨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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