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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②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거룩함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3~8절) 본문

신약/데살로니가전서 완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②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거룩함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3~8절)

행복으로초대 2018. 2. 1. 15:53

여러분에게 두 명의 아들이 있다고 합시다. A라고 하는 아들이 있고 B라고 하는 아들이 있습니다.  둘다 열심히 밤을 샙니다. 뭔가 열심히 해요. 엄마가 뭘하나 궁금해서 살짝 문을 열어보니까 A는 자리에 앉아서 계속 공부를 하고 자기 발전을 위해 뭔가 계속 배운다고 열심히 밤을 샙니다. 문을 닫으면서 엄마가 흐뭇해요. '기특하다고' 좋아해요. 또 저쪽 방에 보니 다른 아들이 또 뭔가 열심히 하고 있어요. 그래서 문을 살짝 열어보니까 컴퓨터 자판을 막 두드리면서 게임을 하고 있는 겁니다. 요즘은 또 휴대폰으로 눈이 벌겋게 되도록 게임만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 A한테서 기분 좋아서 "아이고 좋아라. 아이고 기특해라. 아이고 내 새끼"하다가 아들B의 방문을 여는 순간 실망해서 "아이고 문디 자식" 하면서 등짝 스매싱을 한대 날립니다.

 

열심히 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에게 '바르다'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방향을 바르게 해서 열심히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3절의 말씀을 주십니다. 3절에 무엇이라고 되어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예,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3절부터 12절까지가 하나로 연결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다고 하면서 3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첫번째, '거룩하게 살아라'. 두번째, '형제사랑하기를 힘쓰라'. 세번째, '열심히 일하라' 입니다. 

 

이 중에서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이 잘 했던 것이 있고 못했던 것이 있습니다. 잘 했던 것은 '형제 사랑'이었습니다. 그래서 9절을 보면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다고 칭찬합니다. 지금도 잘 하고 있으니 더욱 잘 하라 합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잘 했던 것은 1장부터 살펴보면 환란에서 믿음 지키기, 우상숭배하지 않기, 전도도 잘 했습니다. 잘 한 것이 많은 교회가 데살로니가교회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 속에서 데살로니가교회에 문제도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떤 문제였을까요? 성적인 범죄와 태만-열심히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성적인 범죄는 3~8절까지, 태만은 11~12절입니다. 그래서 이 두가지 잘못된 것을 고치고 바르게 하라고 권면하는 말씀입니다.

 

오늘과 다음에 걸쳐 데살로니가교회가 고쳐야 할 것 두가지를 하나씩 다루어 보고자 합니다.

오늘은 데살로니가교회의 성적인 문란함을 다루고 있는 3절에서 8절까지의 말씀을 함께 생각해 보고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3절을 다시 보십시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거룩함입니다. 여기서 '거룩'이라는 말에는 '제사'의 개념이 들어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이 '거룩'한 제물입니다. 흠없는 소와 양과 염소를 제물로 바칩니다. 한마디로 우리가 하나님께 바쳐지는 거룩한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구약에서는 짐승을 바쳤지만 이제는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자기 자신을 드리고 그 때 자신의 거룩함을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입니다.

 

성경에 보면 나실인이라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바쳐진 자들이었습니다. 거룩함으로 구별된 자들이었습니다. 나실인의 규례를 지킴으로 그들이 하나님께 바쳐진 것을 그들도 기억하고 세상 사람들도 알도록 했습니다. 머리를 깍지 않는 것, 포도주를 마시지 않는 것, 시체를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나실인의 규례였습니다. 남들과 달리 머리를 깍지 않고 길게 기른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나실인이야! 거룩한 자야! 나는 구별된 자야! 나는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이야!라고 마음을 강하게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도 길게 기른 머리카락을 보면서 저 사람은 하나님께 구별되어 바쳐진 거룩한 나실인이구나!라고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흥청 망청 휘청하면서 술마시고 쾌락 속에 살아갈 때에 포도주를 마시지 않음으로 "나는 나실인이야!" 스스로 마음을 다지고 그 모습을 본 사람들도 "저 사람은 나실인이야!"라고 알게 했습니다.

시체를 가까이 하지 않는 것, 즉 부정한 것을 가까이 하지 않고 멀리함으로 구별된 나실인임을 나타내고 사람들도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도록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거룩함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뜻대로 거룩한 삶으로 자신을 지키며 또한 하나님의 거룩함을 세상에 보여주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런 거룩한 삶을 위해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합니까?

 

3절부터 음란을 버리라고 합니다. 4절에는 당시 문란해진 성적 방종을 엿볼 수 있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 아내 대할 줄을 알라. 당시에는 자신의 아내 뿐만 아니라 여러 여자들과 성적으로 문란한 관계를 맺어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분위기였습니다. 5절에는 이런 분위기를 한마디로 표현합니다. '이방인과 같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절대로 따라해서는 안되는 이방인들의 풍습을 교회에서 많이 따라갔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방인과 같이 무엇을 했습니까? 색욕을 따르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6절을 보면 분수를 넘었다고 합니다. 이 말은 색욕을 따른 결과로 인해 넘어서는 안되는 선을 넘어버렸고, 그로 인해 형제에게 피해를 입히게 되었다는 교회 공동체를 깨뜨리게 되었습니다.

 

이런 성적범죄에 대해서 6절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거룩한 부르심으로 다시 초청합니다. 성적범죄를 저질러 부정한 생활속에서 살지말고 거룩한 삶으로 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말씀을 8절에서 합니다. 사람을 저버리는 사람은 하나님을 저버리는 사람이다. "사람을 저버림"은 형제를 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성적인 범죄로 인해 사람을 저버리는 것이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와 간음한 후에 우리야를 죽였을 때, 나단 선지자를 보내서 다윗을 책망하실 때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니가 어찌하여 간음하였느냐?"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시고 "니가 어찌하여 나를 업신여기고 나를 버렸느냐?라고 하셨습니다. 간음은 결국 하나님과 분리되게 합니다. 하나님 없는 거룩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향해 성적범죄에서 떠나 거룩으로 돌아오라고 합니다.

 

성도들이 거룩을 지키기 참 어려운 시대입니다. TV와 인터넷을 통해 무분별하게 성적인 콘텐츠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인해 성인극장에 갈 필요도 없이 손에서 음란콘테츠들을 자유롭게 접속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무서운 것은 청소년들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접속 가능합니다. '순결서약'이라고 하면 이해를 아이돌 그룹들의 콘셉트는 '섹시'가 기본입니다. 간통과 간음은 분명히 죄인데 미디어에서는 그것을 로맨스라고 합니다. 아름답다고 합니다. 아름답게 만듭니다. 그래서 착각하게 합니다. 나도 저런 애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남편이 있고 아내가 있는 사람들이 이상한 상상을 합니다. 영화도 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장면들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마음과 생각을 타락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동성애자들은 거리로 나와 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동성애 연예인들이 나와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커밍아웃이라고 하면서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밝히고 버젓이 방송에 나오고 동성애로 인기를 얻는 이미지 메이킹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도 곧 닥칠 일이지만 전 세계의 각 교회들마다 동성애를 옹호하는 것을 넘어 동성애 목사들이 강단에서 설교를 한다고 합니다. 동성애를 비판하는 설교를 하면 처벌을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점점 음란한 세상의 목소리를 더 높아지고 거룩을 외치는 소리는 작아지고 있습니다. 성도들 조차도 거룩이라는 제목을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거룩으로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외침을 듣고도 세상의 쾌락에 맛을 들이고 나면 쉽게 끊지 못하고 음란의 노예로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분명히 죄인은 불쌍이 여겨야 하지만 죄에 대해서는 교회와 성도들은 분명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거룩입니다.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거룩한 사람으로 하나님께 바쳐지기를 원하십니다. 요즘와서 세상이 이렇게 음란해졌을까요? 사실 아닙니다. 음란은 인류의 역사 속에 늘 있었습니다. 형태만 다를 뿐입니다. 세상이 변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이 더 악해 진 것이 아닙니다. 이런 음란한 세상 속에서 성도들은 하나님의 거룩을 지키고 보여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음란한 세상 가운데서도 거룩한 성도들이 됩시다. 주변에 누구는? 누구는? 다 그렇게 음란에 물들어 산다 할지라도 우리 거제 호산나교회 성도들은 거룩에 물들어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