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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역대상19:1~5 사람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본문

구약/역대상

역대상19:1~5 사람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행복으로초대 2023. 10. 17. 01:00

잊지마십시오. 신앙은 관계입니다.  

그래서 어떤 선택이 바른 선택인지 분별이 되지 않을 때,

관계를 소중히 생각하며,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길을 선택하십시오. 

 

말씀을 통해 같이 생각해 봅시다.   

 

암몬의 왕인 나하스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하눈'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다윗은 나하스의 장례에 조문사절단을 보내 예를 표하게 했습니다.

2절에 보면, 암몬의 왕 나하스가 다윗에게 전에 호의를 베풀었다고 합니다. 

그 호의가 무엇인지는 알지 못합니다. 추측하기에는 사울왕에게 쫓기던 

다윗을 도와주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다윗은 감사함으로 좋은 의도와 좋은 마음으로 문상을 위한 

조문사절단을 보냈던 것입니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정치외교적인 접근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호의와 감사의 마음으로 한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그걸 받아들이는 '하눈'에게는

좋은 의도와 좋은 마음으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지요.

​왜냐하면 하눈에게는 다윗의 의도를 곡해하게 만드는

'거짓 속삭임'을 주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속삭임은 무엇이었습니까?

3절

암몬 자손의 방백들이 하눈에게 말하되

왕은 다윗이 조문사절을 보낸 것이 왕의 부친을 존경함인 줄로

여기시나이까 그의 신하들이 왕에게 나아온 것이 이 땅을 엿보고

정탐하여 전복시키고자 함이 아니니이까 하는지라

 

한 마디로 ​"저들은 우리 나라를 염탐하러 온 겁니다"

마치 하와의 옆에서 거짓 속삭임을 주는 뱀과 같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깨뜨리는 뱀의 말은 

오늘도 우리들의 귀를 더럽히고 교회를 무너뜨리고

우리 서로의 관계를 깨뜨리는 악한 영의 도구가 됩니다.

사람이 거짓 속삭임에 사로잡히면 그렇습니다.

내 마음에 이런 악한 마귀 사단이가 와서

이런 저런 이야기로 자그마한 '씨앗'을 심어놓으면

그걸 아주 빠르게 자라게 만드는게

인간의 죄된 습관이요, 속성입니다.

 

암몬의 왕 하눈에게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당시 최강대국에 오른 다윗왕국과 화친의 관계를 맺고

평화롭게 번성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입니다.

하지만 하눈에게는 안타깝게도 분별력이 없습니다. 

 

 이때의 결정적인 선택이 엄청난 결과의 차이를 만듭니다. 

또한 이때, 하눈과 다윗의 결정적인 차이를 볼 수 있습니다. 

 

<하눈의 선택, 그리고 나라의 멸망>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국제 정세와 외교적인 국가 간의 관계에서 

하눈의 신하들의 말이 옳을 수도 있고, 

왕은 그 조언을 듣고 판단을 잘 해야 합니다. 

 

하눈이 신하들의 조언을 받아들였는데,

그때가, 하눈에게도, 암몬이라는 나라에도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다윗이 보낸 조문사절단을 받지 않더라도

외교적인 결례를 하지 않고 다윗과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깨뜨리지 않는 한에서 지혜롭게 돌려보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눈이 어떻게 했습니까?

조문사절단의 수염을 잘랐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수염은 자유인의 표시요

명예와 권위의 상징이었습니다. 그 수염을 잘랐습니다. 

옷을 엉덩이가 드러나도록 잘랐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속옷을 입지 않고 긴 옷을 입어 

하체를 가렸기 때문에 그 의복의 볼기 중간까지 잘랐다는 것은

엄청난 수치와 모욕을 주고 돌려보낸 것입니다.  

이것은 다윗에 대한 선전포고입니다.  

 

신앙은 관계입니다. 

그리고 그 관계 가운데 사람을 소중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하눈이 신하들의 조언을 들을수도 듣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결국 선택이겠죠? 하지만 최소한 사람에 대한 소중함을 알고

인격에 대한 예의와 존중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신앙위에서 서로를 소중히 여기고 나와 의견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다 할지라도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인격적으로 존중함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신앙이 없으면 예의라도 있고 예의가 없으면 의리라도 있어야 하고,

의리가 없으면 상식이라도 있어야 합니다. 

 

<다윗의 선택, 그리고 나라의 부흥>

그럼 다윗은 어떻게 했을까요? 

5절을 보세요. 

그 사람들이 심히 부끄러워하므로

다윗이 그들을 맞으러 보내 왕이 이르기를

너희는 수염이 자라기까지 여리고에 머물다가 돌아오라 하니라

 

다윗은 수치와 모욕을 당한 조문사절단의 수치가 회복되기까지

여리고에 머물다 돌아오게 합니다. 

여리고는 이스라엘과 암몬의 경계에 있는 도시였습니다. 

여리고에 머물게 한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눈에 띄어 

수치를 당하는 것을 방지하고 그들의 당한 모욕과 마음의 상처가 

회복될 수 있는 시간을 주기 위한 배려입니다. 

 

조문사절단은 왕의 이름으로, 왕의 권위로

왕을 대신해서 가는 사람들입니다.

한마디로 사절단에게 수치를 주고

모욕을 준 것은 다윗왕에게 수치를 주고 모욕을 준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암몬왕 하눈에 대한 응징을 생각하기 보다

상처받은 신하들의 마음과 몸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일보다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다윗이었습니다. 

아마 이런 다윗의 모습이라면 여리고에 머무는 조문사절단의 

회복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그들을 위로하는 회복프로그램을 

진행하게 했을 겁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수고하다가 

어려움을 겪게 된 사람들에게 위로와 회복의 시간을 주고 

다시 일어나 나라를 위해 충성할 일꾼들을 잘 섬기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중요한 사역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의 선교관 사역은 참으로 귀합니다.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위해 목숨바쳐 수고하시다가 

여러가지 몸과 마음의 병을 얻든지 연약해지고 쉼이 필요한 

선교사님들을 위해 잘 섬기는 것은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다윗의 모습과 같은 것입니다. 

다윗의 작은 배려와 조치로 수치를 당하고 상처를 입은 

조문사절단은 크게 회복되어 다윗을 위해 충성을 다했을것입니다. 

 

 신앙은 관계입니다.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교회가 되어야 하고

상처와 아픔을 위로하고 회복시키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다만 위로하고 다만 회복하고, 한명 한명 수고하는 주의 종들을 

잘 섬기면 그렇게 회복된 주의 종들이 평생을 달릴 힘을 얻고

풍성한 열매를 맺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한명 한명 여러분 옆에 있는 사람을 소중히 생각하고 잘 섬기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