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부르심5일 출애굽기3:1-12 모세야 모세야2 본문
부흥기도주간 5일차 부르심
오늘 새벽에 이어 이 금요심야기도회에
모세야 모세야 두번째 시간입니다.
모세를 부르시는 음성을 듣고
오늘 우리가 들어야 할 하나님의 음성은 무엇인지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새벽, 말씀의 메세지는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을 때,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때,
인생이 빛납니다.
살인자 신세가 되어
애굽의 궁전에서 도망쳐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광야생활,
양치기 삶으로 잊혀진 존재가 된 모세.
아무도 생각하지 않고,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잊혀진 사람 모세의 마음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가 이 곳에서 이렇게 살 사람이 아닌데...
내가 이 광야에서 양이나 칠 사람이 아닌데...
사람은 자기가 살고 있는 환경에 의해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결정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런 삶을 살지 말고, 하나님의 부르심과 그 응답에
내 인생의 가장 큰 의미와 가치를 두라는 말씀을 전해 드렸습니다.
그래서, 서로를 한 번 보십시오. 그리고 우리 서로 칭찬합시다.
장로님~권사님~집사님~ 정말 귀합니다.
우리 대청부 청년들 어떻습니까? 정말 귀합니다.
이제 모세야~모세야~
하나님의 부르심을 통해 깨달아야 할 두번째.
부르심의 순간에 머물지 말고
부르심에 대한 헌신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찾아오신 장면을 보겠습니다.
출애굽기 3장 2절.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모세가 양을 치다 희귀한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떨기나무’ 가운데서
나오는 불꽃 안에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우리 말 성경에는 ‘떨기나무’라고 되어 있는데,
NIV 성경에는 ‘bush’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우리말로 하면 ‘덤불’쯤 되는 말입니다.
나무가 아니라 덤불 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신 장면은
그렇게 장엄한 모습이 아닙니다.
옛날 영화, 십계라는 영화를 보신 분은
영화의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을 겁니다.
그러다 보니 떨기나무 이 장면이
상당히 멋진 장면이 머리 속에 있습니다.
그 위엄 앞에 머리를 숙이고
하나님을 만나는 장면이 훨씬 더 멋있지 않을까요?
우리 교회 마당에 있는 은행나무 처럼
커다란 나무가 활활 타오르는데
타는데 타들어가지 않는 나무,
굉장한 장면을 생각하신다면 오해입니다.
나무가 아니라 사실은 덤불입니다.
미디안광야에 있는 가시덤불은
아무리 커도 1m를 넘지 않는 크기입니다.
모세의 초라함과 더불어
하나님의 나타나심과 부르심 역시 초라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을 더듬어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던 장면들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3대 회심사건이 있습니다.
1)어거스틴은 그저 정원을 거닐다가
‘성경을 읽어라’라는 음성을 듣고 서재에 들어가
펼쳐진 성경을 읽다가 말씀 앞에 거꾸러지는 체험을 합니다.
2)위대한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젊은 수도사시절 비텐베르크에 있는 어거스틴 수도원의
작은 그의 연구실이 있었던 탑에서 회심했습니다.
3)감리교의 창시자 웨슬레는
길을 걷다가 작은 모임에서 들려오는
‘루터의 로마서 서문’을 읽는 소리를 듣다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초라한 곳에 초라하게 찾아오신 하나님!
1904년 웨일즈에 있었던 부흥운동은 당시 수개월 만에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놀라운 영적 부흥운동이었습니다.
이 부흥 운동의 주역은 이반 로버츠라는 청년이었고
어느 수요일 저녁 17명이 모인 작은 수요일 집회에서
설교하다고 성령을 체험한 사람들이 기도에 헌신하며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오늘 모세에게 나타난 하나님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잊혀진 광야에서
살고 있는 모세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모습 또한
세상이 기대하는 거창하고 위대한 모습으로 찾아오지 않습니다.
안그래도 위대한 지도자 모세가 부르심을 받을 때는 정말 초라한데,
하나님의 임재 또한 눈에 보기에 초라하다고 하니,
실망이 되실 수 있겠죠?
그런데 이것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모세를 찾아오셔서
모세를 부르시는 것은 거창하거나
위대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성탄절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곳은
어둡고 냄새나고 비천하였지만
예수님의 탄생하심으로 들판에 있는 목자들에게는
주의 영광이 빛이 비치고
천사들의 찬송이 울려퍼졌음을 기억하십시오.
모세는 초라했고, 모세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임재 또한 초라하지만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는 순간,
고통받음으로 부르짖던
애굽의 이스라엘 민족에게 구원의 빛이 비치고
출애굽의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생각하면
초라해도 됩니다. 거창할 필요가 없습니다.
환상적인 부르심을 기대하십니까?
역대급 부르심을 기다립니까?
매일, 매주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계속 되고 있는데, 그 부르심을
매번 외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부르심을 받은 것도 중요하지만
부르심에 응답하여 순종하고
삶을 드리는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하여 일하십니다.
이왕이면 하나님이 쓰시는 복된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헌신하는 방법을
하나님께서 친절하게 알려주십니다.
5절입니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신발 벗어!
신을 벗으라는 명령 가운데 들어있는 뜻이 무엇일까요?
고대 이스라엘에는 거룩한 곳에 서 있을 때
존경과 두려움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신발을 벗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존경과 두려움의 표현으로서
신을 벗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재밌는 뜻도 있더라구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신을 벗으라고 하는 말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신을 신고 있다는 말은 갈 곳이 있다는 말입니다.
방향이 있습니다. 목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신을 벗고 있다는 말은 갈 곳이
방향이 없고 목적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생각과 목적과 방향을 버리라고 할 때 이런 말을 사용합니다.
<신발 벗어!>
유대인이 사용하는 언어입니다.
<나 요즈음에 힘들어.>
상대방은 말합니다.
<신발벗고 하나님께 맡겨.>
신발벗는다는 말은
자기 생각과 자기 의지를 버림을 의미합니다.
모세는 80세에 신발을 벗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자기가 민족 혁명을 일으키려고 하였습니다.
자기가 도망쳤습니다. 광야에서 자기 의지대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부터는 니 생각대로 살지 말고
내가 시키는 대로 살아.
네 생각을 포기해. 신발벗어.
만약 내려놓을 것이 많은데 내려놓지 못하면
제대로 길을 걸어가기 힘듭니다.
지금 모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소명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로서
역할을 해야 할 때입니다.
너무나 중요한 순간,
하나님은 모세에게 신발 벗어!
니 생각과 목적과 방향을 버리고
이제는 내가 생각하는 대로 생각하고
내가 가는대로 가고 내가 말하는대로 말해!
갈라디아서 2장 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신발 벗어! 하니까
신발 벗고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예수님도 자기 몸을 버리셨잖아요.
우리 모두 하나님의 뜻에 헌신하려면, 다같이
신발 벗어! 합시다.
신발 벗어!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순간,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십니까?
7절: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8절: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9절: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신발 벗으면 하나님의 아버지께서 보시는 것을 내가 보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듣는 것을 내가 듣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는 것을 내가 알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는 것을 내가 하게 됩니다.
그것이 신발 벗을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저는 계속 기도합니다. 오늘도 신발 벗고
하나님께서 보는 것, 듣는 것, 아는 것,
하시는 일을 하게 하소서.
사람들의 고통, 부르짖음, 근심, 학대당함.
그것을 보는 순간 그들을 위한 헌신으로
나를 드리는 삶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헌신하시면서
십자가에서 못박히셨습니다.
자기 몸을 드리고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다시 한번 상기시켜 드립니다.
주주운동 흘려보내기의 핵심은 함께 한다
사람이 보인다 사명이 보인다.
변화산에서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가
한번 모임을 했잖아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시고 3일만에 부활하시고
하늘에 승천하셔서 계시다가
모세와 엘리야와 번개모임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모세에게 말했습니다.
<모세야! 홍해를 지금도 가를 수 있니?>
<한번 해보겠습니다.>
모세가 기도하고 지팡이를 홍해에 내밀었습니다.
역시 갈라졌습니다.
<지금도 그 때 영력이 그대로 있구나! 놀랍다.>
그리고 엘리야에게 물으셨습니다.
<엘리야야! 지금도 갈멜산 기적처럼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게 할 수 있니?>
<해보겠습니다.>
엘리야가 기도하고 손을 하늘을 향하여 쳐들었습니다.
불이 하늘에서 떨어졌습니다. 예수님이 칭찬하셨습니다.
<놀랍다.> 그 때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에게 물었습니다.
<예수님! 지금도 물위를 걸으실 수 있으세요?>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한번 해보겠다>
그리고 물위로 올라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물속으로 빠져 버렸습니다.
두 명이 물었습니다.
<예수님! 왜 그러십니까?>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발에 못자국으로 구멍이 나서 물이 샜다>
예수님의 발에 박혔던 못자국은 헌신입니다.
예수님의 헌신으로 말미암아
죄악세상의 인간에게 구원의 길을 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헌신하셨으니
주님을 위한 헌신의 자리에 서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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