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사도행전1:1-3 다시 보는 사도행전1-예수로 변화된 사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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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은 예수로 변화되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로 사람이 변합니다.
예수로 가정이 변합니다.
예수로 사회가 변합니다.
예수로 나라와 민족이 변합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인생의 방황이 끝나고
좋은 교회를 만나면 신앙의 방황이 끝납니다.
좋은 교회를 만나면 신앙의 방황이 끝납니다.
만남은 복인데, 최고의 만남은 예수님을 만남이며,
그 만남이 최고의 복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최고의 만남, 최고의 복을 받은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그 사람에게 어떤 놀라운 변화와 은혜가 있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사도행전의 시작은 갑자기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서 시작합니다.
먼저, 1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첫 시작을 '데오빌로여'라고 이름을 부릅니다.
첫 시작을 '데오빌로여'라고 이름을 부릅니다.
그럼 이 사도행전의 수신자가 누구인지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데오빌로'입니다.
이름의 뜻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
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이름이 '아론'이라고 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부모님이 당연히 예수님을 믿는 부모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전혀 아니라고 하더라구요.
선교사님들께 들었는데
어떤 외국인 이름이 'jesus' '예수'라고 하는데,
예수님을 믿지 않는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름만 봐서는
아직 데오빌로에 대해서 잘 모르겠습니다. 차츰 알아가 보죠.
1절을 계속 봅니다. '내가 먼저 쓴 글에는'이라고 되어 있죠?
수신자는 데오빌로입니다.
이제 편지를 쓴 발신자가 누구인지 알아야 겠죠?
사도행전은 누가 썼을까요? 답을 다 가르쳐 주죠? '누가'가 썼습니다.
그래서 1절에 '내가 먼저 쓴 글에는'에서 '내가' 는 누가입니다.
데오빌로에게 누가가 사도행전을 써서 보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을 보내기 이전에 먼저 쓴 또 다른 글이 있다는 말입니다.
누가가 쓴 또 다른 글이 무엇일까요? 누가복음입니다.
그래서 사실 사도행전은 누가복음의 연장선상에 있는 글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누가복음 1장입니다. 1절~2절입니다.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예수님에 대해서, 예수님의 말씀과 기적,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사건을 기록하려는 사람이 누가 외에도 많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부활의 사건을 기록하려는 사람이 누가 외에도 많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3절입니다.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나는 누가입니다)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사도행전의 데오빌로가 여기 나오죠?
그런데 데오빌로의 호칭이 '각하'입니다.
이 호칭으로 데오빌로가 로마의 상당한 수준의 귀족
아니면 고위급 관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데오빌로 각하'라는 말에 초점을 맞춰 보려고 합니다.
사도행전에 데오빌로에 대해서 각하라는 호칭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그냥 '데오빌로여'라고 부릅니다.
누가복음에는 데오빌로 각하여!라고 되어 있습니다.
4절을 보겠습니다.
"이는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을 잘 생각해보세요.
이 구절을 통해 데오빌로는 아직 예수 영접은 하지 않았어도
예수님에 대해서 호감을 가지고 있는 이방인이거나
예수를 막 믿기 시작한 초신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데오빌로는 잠재적으로 예수님을 믿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
그리고 막 예수님을 믿고 믿음생활을 시작한
오이코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데오빌로 같은 복음에 막 눈 뜬 사람이
성장하고 성숙한 믿음을 가지도록
누가가 글을 쓰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이 먼저 쓰여졌고,
사도행전이 나중에 쓰여진 책인 걸 이제 알게 되었죠?
그런데 누가복음 때, 데오빌로는 각하라고 불렀고,
사도행전에는 데오빌로여~라고 각하라는 말이 없습니다.
호칭의 변화가 생겼습니다. 이 변화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누가복음에는 데오빌로가 아직 초신자나
복음에 대해서 호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보니
'각하'라는 존칭을 꼭 붙여주는 것이죠.
그런데 사도행전을 쓸 때 쯤이면
데오빌로가 교회의 멤버쉽 안에 깊이 들어와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몸된 교회의 한 지체가 되었고,
그리스도 안에 한 가족이 되었음을 말합니다.
각하라는 호칭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왕이신 하나님 앞에서 각하라는 호칭을
듣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아무것도 아닌 자신을 발견하고
낮은 곳에서 겸손하게 주님의 명령과
교회의 치리에 순복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영적으로 성숙해지고 성장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변화된 데오빌로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1)교회의 멤버쉽 안으로 깊이 들어오십시오.
누가복음의 데오빌로는 '오이코스'입니다.
하지만 누가의 전도를 받고 믿음이 시작되었습니다.
믿음이 시작되면 반드시 변화가 일어납니다.
데오빌로가 각하라는 호칭에 연연하지 않는
하나님의 한 가족으로 깊이 들어오는 것을 생각하십시오.
여러분들도 교회 공동체 안에 깊이 들어오십시오.
아웃사이더로 교회생활하지 마십시오.
주일예배 출석교인으로 출석부에 도장만 찍는 등록교인 되지마십시오.
세상의 지위와 권세와 명예와 힘을 가지고
교회의 언저리에 걸쳐있는 인생이 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 안에 형제와 자매 함께 몸된 교회를 세우는 역할을 합시다.
2)겸손히 신앙의 내실을 다지십시오.
데오빌로가 어떻게 교회의 멤버쉽 안으로 깊이 들어오게 되었을까요?
데오빌로가 어떻게 교회의 멤버쉽 안으로 깊이 들어오게 되었을까요?
누가가 누가복음을 통해 데오빌로를 복음으로 교육했기 때문입니다.
1절부터 보시면 예수님의 생애와 말씀을 배우며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배우기 위해 준비하십시오. 겸손해야 배울 수 있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다고 했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첫걸음을 뗀다는 마음으로 배우십시오.
신앙의 연수를 내려놓으십시오.
세상의 자존심을 내려놓으십시오.
겉으로만 화려했던 데오빌로의 옷을 내려놓고
겸손히 신앙의 내실을 다질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도행전을 성령행전이라고 합니다.
교회가 성령의 파도를 타고 예루살렘에서 온유대로 퍼져가고
사마리아의 벽을 넘어 땅끝까지 퍼져가는
놀라운 교회부흥의 대역사가 사도행전입니다.
성령님이 일으키시는 큰 부흥의 파도를 타는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되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때 우리가 절대로 놓쳐서는 안될 것이 있습니다.
바로 '나의 변화'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믿음이 시작되면 반드시 변화가 일어납니다.
사도행전을 계속해서 살펴보면서
데오빌로가 변화되었던 것처럼 '나'도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성령님께서 세상 모든 교회와 성도들을 변화시킨다고 해도,
'내'가 변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교회는 변화된 '내'가 모여서 됩니다.
우리 교회 한 사람 한 사람이 사도행전 속에서
성령님이 일으키시는 변화를 경험할 수 있기 원합니다.
사도행전 대 장정의 막을 올립니다.
언제 마감될지 알 수 없으나 한편 한편마다 기도합니다.
성령님~데오빌로가 변화된 것처럼 나도 변화되게 하소서.
사도행전이 다른 누군가의 변화된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변화된 이야기가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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