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사도행전1:1-3 다시보는 사도행전2-말씀과 성령은 변화와 성장을 가져옵니다 본문
사도행전1:1-3 다시보는 사도행전2-변화와 성장을 위해
(다같이)
1.
변화와 성장을 위해 하나님은 말씀을 주십니다.
누가가 두 가지 성경을 썼습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입니다.
누구에게 보냈습니다. 데오빌로에게 보냈습니다.
성경을 받고 읽은 데오빌로에게 변화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데오빌로 각하에서 데오빌로여~로 변했습니다.
각하라는 호칭으로 불려지며, 높은 자리에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높임받는 권력의 중심에서
데오빌로여~라고 불려지는 낮은 자리에, 겸손의 자리에
섬김의 자리로 내려가는 변화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변화를 일으킵니다.
새벽에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나의 삶을 결정짓습니다. 아멘.
오늘 말씀의 큰 내용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지나갈 때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나가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사람이 많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변화시킵니다.
하나님께서 새롭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능력이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붙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지나갈 때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으십시오.
2.
변화와 성장의 목표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변화시키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새롭게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성장시킨다.
이것이 오늘 이 새벽에도 나에게 일어나고 계속 된다.
이것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2.하나님의 말씀이 임함으로 가져오는
변화와 성장의 목표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말씀을 주시고
나에게 변화와 성장이 일어나게 하신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을 주셔서 성장시키고
번화시키는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나를 예수님 닮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데오빌로의 변화와 성장은 이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
이 말씀이 데오빌로에게 일어났는데,
데오빌로에게만 이 말씀이 일어날까요? 이 말씀이 적용될까요?
데오빌로에게 임한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도
이 말씀이 적용되고 이 말씀이 그대로 일어납니다.
여러분~어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말씀 앞에
겸손히 엎드렸습니까?
세상의 호칭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세상의 지위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세상에서 높임받고 인정받으려 하고
세상에서 인기와 명예와 권세를 얻으려고 하던 인생 목표를 가진 사람이
데오빌로 뿐이였을까요? (성도들에게 손으로, 나에게 손으로)
그런 사람에게 말씀을 주셔서 나를 변화시켰다. 우리를 변화시켰다.
우리의 분명한 목표는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신 길을 가는 것입니다.
데오빌로 각하여~~~ 하면 부끄러워 하면서
"제발 저에게 더이상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저의 왕은 예수님 뿐입니다.
그런 말 하면 저에게 욕하는 것입니다."
이랬을 것 같아요.
어제, 최고의 욕이 뭐라고 했습니까? 여전하시네요~~~~
작년의 나의 모습보다 지금의 나의 모습이
예수님을 더 닮아있는가?
아무도 보지 못하는 나의 마음이, 나의 생각이 예수님을 닮았는가?
나의 말이, 나의 행동이, 나의 삶이 예수님을 닮았는가?
비록 부족하더라도, 어제보다 오늘이 조금더 예수님 닮으려고
애쓰고 몸부림 치고 있는가? 여전하십니까?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로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말씀으로 새로워진 사람, 그래서 말씀을 받으면 그 말씀을 붙들고
몸부림 치면서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아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천지 차이인것입다. 말씀으로 몸부림 치지 않으면 여~~~전~합니다.
어제의 김창태 목사가 오늘의 김창태 목사와 다른 사람입니다.
오늘의 김창태 목사가 내일의 김창태 목사와 다른 사람일 것입니다.
(여러분 일이 아니라고 아무도 아멘 안하는데) 아멘~!
여러분~스스로에게 계속해서 다짐하면서 말해야 합니다.
나는 날마다 새롭다. 나는 날마다 예수님처럼 변합니다.
나는 날마다 예수님을 닮기 위해 성장합니다.
말씀은 반드시 변화와 성장을 일으켜서 예수님을 닮게 합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이 데오빌로에게 임했고
데오빌로에게 변화와 성장을 가져왔습니다.
그럼 오늘 우리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지나가는 말씀을 지금 붙잡으십시오.
1절 같이 읽겠습니다.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오늘 말씀에 보면
예수님의 행하시고 가르치심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누가복음, 그 하나님의 말씀에 담긴 내용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일을 시작하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행하시고 가르치신 일이 12제자들에게 시작되었죠?
그 12제자에게 시작되었던 예수님의 행하심, 가르치심이
누가에게서도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누가에게서 시작된 예수님의 행하심과 가르치심이
데오빌로에게도 시작되었습니다.
데오빌로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시작되었습니다.
데오빌로에게 예수님의 행하신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데오빌로에게 예수님의 가르치심이 시작되었습니다.
2000여년 전에 시작되었던 예수님의 행하심과 가르치심이
그 당시에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오늘 이 새벽에, 이 곳에 있는
우리에게 계속해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를 따라하십시오. 신앙은 현재형입니다.
데오빌로에게 일어난 일을 먼저 경험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누가입니다. 누가에게 일어난 일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면
예수님께서 행하시고 가르치신 일이
지금 나에게 현재 나에게 시작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문자가 아니라 살아있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과거형 신앙을 가진 사람: 옛날에, 그 때는, 나때는
~~ 신앙생활, 교회생활이 과거에 머물러 있다)
그럼 지금 나에게 말씀이 현재형인가?
지금 나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시작되었는가?
하나님의 말씀이 현재형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말씀에 순종하면 됩니다.
어제 말씀에 어제 순종했으면, 말씀이 나에게 행한 일이 있을 것이고,
그 말씀이 나를 살아있는 현재형 신앙, 따끈따끈한 현재형 신앙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합니다. 지금 현재, 지금의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 지나가고 있습니다.
지나가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중고등부 겨울 수련회 주제가 믿음을 충전하라!입니다.
누가복음 19장에 예수님과 삭개오의 만남입니다.
그런데 말씀에는 예수님께서 여리고를 지나가시더라.
지나가시게 됨이더라.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삭개오가 붙잡은 것입니다.
나무에 올라가서라도 예수님의 얼굴을 보고, 예수님과 시선이 마주쳐야해요.
지나가시는 예수님~그 예수님을 붙잡아야 해요.
데오빌로는 그에게 시작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은 사람입니다.
편지를 받고 나면 대충 보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편지를 받고 읽고, 읽고, 또 묵상하고 묵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데오빌로는 하나님의 편지, 성경을 받고 읽고, 또 읽고, 묵상하고 또 묵상하면서
완전히 말씀에 붙들린 사람이 되었습니다.
말씀을 붙잡으면 말씀이 나를 붙잡습니다.
2) 성령으로 버티고 완주하십시오.
2절입니다.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1절에는 예수님의 행하심과 가르치심이 시작되었습니다.
2절에는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일을 성령으로 명하셨다고 합니다.
2절에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은
예수님의 행하시고 가르치신 일이 시작된 순간부터
십자가 죽음에서 부활을 지나 승천까지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의 완성입니다.
여기서 "성령으로"에 집중해 보십시오.
성령님의 역할이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시작이 끝까지 가게 합니다.
성령으로 시작해서 성령으로 마치는가? 육체로 미치는가? 점검해봅시다.
새 영으로 새 마음으로 성령님과 함께 시작하셨죠?
성령으로 여전히 순항중입니까?
아니면 흔히 말하는 시험을 당하고 좌초하고 있습니까?
3)생명을 보고 생명을 말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시고 가르치신 일이
현재 진행형으로 지금 우리에게 계속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신앙이 현재진행형이 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있습니다.
살아있는 신앙이 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죽음입니다.
죽음이라고 해서 목숨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죽음의 정체는 예수님과 단절되는 것입니다.
죽는다고 해서 (목을 손가락으로 그으면서) 이게 아니에요.
이것은 표면적인 것입니다.
진짜 죽음은 하나님과 끊어진 것, 예수님과 단절된 것이 죽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예수님과 단절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이 한 말은 "고향이나 갈란다" "물고기나 잡으러 갈란다"
3절을 다시 생각해 보시고 이미지를 떠올려 보십시오.
3절
그가 고난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계심을 나타내사
사십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제자들 앞에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입니다. 부활은 죽음이 아니라 생명입니다.
그럼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있는 제자들의 표정이 보이세요?
슬퍼합니까? 우울합니까? 괴로워합니까? 어둡습니까? 죽음입니까?
아니잖아요? 기쁨과 즐거움, 환한 웃음에 희망찬 생명아닌가요?
생명되시는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예수님 안에 있는
깊은 연합의 관계 속에 있으면, 생명, 살아있는 것입니다.
올해 2025년 성령과 믿음으로 섬기고 살리자~!~~
표어듣고 죄송하지만 이 말이 자꾸 생각이 났습니다.
살리고 살리고 살리고 살리고~~
살리고 살리는 삶이 우리의 삶이 아닙니까?
오늘 기도하십시오. 주님 맞습니다.
예수님으로 살려주시고, 말씀으로 살려주시고
성령으로 살려주십시오. 살아난다는 말은 생기가 돈다는 말이 아니에요.
내 감정적으로 세뇌시켜서 좋다 좋다 괜찮아 괜찮아 이게 아닙니다.
생수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님과 성령으로부터 생명과 힘을 공급받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내가 예수님과 깊은 연합을 해야 합니다.
더 깊은 관계가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깊어지게 하시고
그래서 나도 살아나고 또 살리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인생은 사는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대로 됩니다.
생명을 보고 생명을 보이게 되고, 생명을 말하면 생명을 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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