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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벧전1:3-4 산 소망을 가진 사람들 본문

신약/베드로전서

벧전1:3-4 산 소망을 가진 사람들

행복으로초대 2017. 10. 19. 10:47

 

 

징키스칸알렉산더, 나폴레옹, 이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 사람들은 전 세계를 정복했던 사람들입니다. 정복군주들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지금 없습니다. 그들이 정복했던 광활한 영토도 이젠 더이상 그들의 소유가 아닙니다. 왜 그럴까요그들이 정복하지 못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죽음을 정복하지 못했습니다.

  

미국의 석유왕 존D록펠러 3,183억 달러, 우리 돈으로 320조로 평가됩니다미국의 철강왕 카네기 2983억 달러, 우리돈으로 300조의 재산으로 평가됩니다.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돈을 가진 부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영향력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가진 돈으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죽음에서 생명은 그들의 돈으로 살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세상을 힘과 권력으로 호령하고 어마어마한 재산을 가졌다 할지라도 인간은 누구나 죽음의 법칙아래서 소망이 끊어진 상태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땅에서 악착같이 가지려했던 힘과 권력과 재물이 죽음을 맞이하면 결국  잡을 수 없는 바람과 같이 사라집니다결국 모든 사람이 가야할 죽음의 그림자 아래서 사람은 누구나 절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이것을 죽은 소망이라고 합니다. 죽은 소망이 있다면 그 반대는 무엇일까요? 너무 어려운 질문인가요? .. 산 소망입니다. 오늘은 "소망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먼저 3절을 보십시오. '산 소망'이라는 말이 보이십니까? 3절 마지막에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라고 되어 있습니다.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산 소망을 얻게 된다는 겁니다. 어떻게 산 소망을 얻게 되는지 살펴봅시다.

첫 시작을 하나님 아버지를 찬송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를 찬송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신 것입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거듭난 사람들은 '산 소망'을 얻게 되었습니다

 

다시 정리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었습니다. 그리고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죽음의 법칙을 깨뜨리셨습니다. 죽음의 법칙을 깨뜨린 분이시기에 우리에게 하실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죽음의 법칙 아래서 절망하는 인간을 거듭나게 하십니다. 구원해주십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그렇게 거듭난 사람들은 소망이 넘치는 사람이 되는데 그 소망을 '산 소망'이라고 합니다.

 

4절에는 '산 소망'의 특징이 무엇인가말씀해 줍니다. '산 소망'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유업을 잇는 소망입니다유업은 유산을 말합니다. 자수성가해서 일으킨 것이 아니라 부친으로부터 상속받는 유산을 말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을 위해서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하늘에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도 아니하는 유산을 따로 떼어놓으셨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좋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썩지도 않고 더럽지도 않고 쇠하지도 않는 유산을 준비해 놓으셨다는데 흥분되지 않습니까?...별로?이신가요?

 

산 소망을 가진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산 소망을 가진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하늘의 유산을 간절히 소망하는 것을 말합니다. 비록 이 땅에 살지만 하늘에 간직한 하나님의 유산을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을 뜨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 간직한 것이 얼마나 대단한지 얼마나 아름다운지,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좋은 것인지 아는 것입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아이에게 회사를 물려주겠다. 또는 땅문서를 보여주면서 이게 니 땅이다.  집이 앞으로 니꺼야! 라고 하면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들이 좋아할까요? ..예전에는 아니요라고 제가 확신했는데 요즘은 잘 모르겠습니다. 요즘 애들이 너무 일찍 돈을 알아서...일찍 돈을 알아버린 아이들이라 생각하지 말고 지극히 평범한 아이들이라 생각하시고 답을 해 보십시오. 좋아할까요예 아닙니다아이들은 건물보다 큰 집보다 회사보다 땅보다 가지고 놀수 있는 장난감, 놀이공원 가는거, 친구들과 함께 재밌게 노는 것 이런 걸 좋아합니다자기한테 준다는 건물소유권이 얼마나 큰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늘의 영광을 모르고 보지 못하는 사람, 즉 산 소망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천국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이렇게 말할겁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구요. 어떤 목사님께서 손주한테 천국이 얼마나 좋은지 한참 열정적으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그 때, 손주가 정말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진짜 진심으로 "그럼 할아버지 천국에 빨리 가세요."라고 하니까 참 생각이 복잡해지더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것을 추구하다보면 산 소망이 희미해집니다. 믿음의 눈을 떠 보십시오. 믿음의 눈으로 밝히 보이면 보일수록 세상의 것들이 달리 보이기 시작합니다. 사도 바울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많은 것들이 배설물처럼 여겨졌다고 고백합니다가장 고상한 것이 무엇인가? 가장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가알게 되었습니다가장 고상하고 가치 있는 것이 예수를 아는 지식입니다. 예수님을 알고 나니 세상의 것들이 배설물로 여겨지고 가치이동이 일어납니다그래서 세상을 사는 목적이 예수를 얻는 삶이 됩니다예수님 안에서 발견되는 삶을 목적으로 합니다

 

산 소망을 가진 사람들은 영적 안목이 열립니다. 영적 안목이 열린 사람들이 부르는 찬송이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보험회사에 근무하는 베벌리 셰아(Beverly Shea)라는 한 월급쟁이가 있었습니다. 1930년대 당시 미국은 극심한 불황으로 회사마다 혹독한 구조조정과 임금삭감에 시달렸습니다. 어느 주일날 아침, 그는 찬송가를 연습하기 위해 피아노 앞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회사문제로 인해 좀처럼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셰아는 건반 위에서 조그마한 종이쪽지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그것은 어머니 레아 밀러(Rhea Miller)가 괴로워하는 아들을 위해 적어놓은 시였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삶의 우선 순위를 분명하게 정하길 원했습니다. 셰아는 이 시를 읽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시에 곡을 붙여 찬송을 만들었습니다. 이 곡이 바로 그 유명한 찬송가 102'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입니다.

 

이 찬송을 할 때 여러분 마음이 어떴습니까? 솔직히 저는 부끄럽습니다. 과연 그런가? 목사지만 부끄럽습니다명예욕도 스물스물 올라오는 것 같고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고 높아지고 싶고 칭찬받고 싶고성공한 목회자가 되고 싶은데 하나님앞에서 성공한 목회자이기전에 세상적 기준에서 큰 교회 큰 교회 자꾸 이런 마음이 자꾸 생기는 걸 용서하십시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기도제목 1, 2, 3번은 무엇입니까? 정말 여러분이 가장 우선적으로 기도하고 간절히 원하는 것이 어떤 기도제목입니까가치 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까누군가는 배설물처럼 버렸던 것들을 1번 기도제목으로 두고 있지 않습니까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은 성경 속에서만 나오는 말씀입니까산 소망을 가진 사람은 하늘에 간직한 것의 가치를 아는 사람입니다.   

 

산 소망을 가지고 살 때 어려움이 있습니다. 분명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고 우리는 하늘에 간직한 유산을 약속받은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또한 어쩔 수 없이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입니다그러다보니 이 세상에서 살기위해 필요한 것들도 많고 세상 사람들과 항상 비교되며 살아갑니다얼마 전에 어느 집사님의 고민을 들었습니다. 참 착한 신앙을 가지신 분입니다그런데 다른 믿지 않는 형제들과 비교했을 때, 눈에 띄게 가난한 분이었습니다. 형제들이 자주 이런 말을 한답니다. "니는 맨날 교회가서 기도한다고 하는데형편이 왜 그 모양이고?" 그 때마다 말도 못하고 속으로 눈물을 삼킬 뿐이라고 합니다. 그 집사님은 믿고 있습니다. 분명 하늘이 영광을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 믿지 않는 형제들이 그런 말을 할 때마다 가난한 형편이 솔직히 원망도 됩니다. "그러면 안되는데 때론 하나님이 원망될 때도 있습니다." 라고 하더라구요. 이것이 우리 모두에게 어려운 것 아닌가요?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산 소망을 약속하시고 산 소망을 가지라고 할까요?

 

이 산 소망을 가지면 현재의 어려움이나 박해를 당한다하더라도 인내할 수 있는 힘이 됩니다. 초대교회에 닥친 박해 가운데 최초로 순교한 스데반 집사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가 순교하는 순간, 그는 성령충만하여 하늘을 주목했는데 그의 눈에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습니다. 죽음의 두려움보다 하늘의 영광이 더욱 컸기에 그는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영광을 보았기 때문에 예수님과 같은 기도를 할 수 있었습니다.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자들을 향해 용서를 구하기까지 합니다. 이 세상에 찌든 사람이었다면, 산 소망이 아니라 이세상의 죽은 소망을 얻기 원했던 사람이라면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사람을 향해 저주를 퍼부었을겁니다. 또한 이 세상에서의 생명에 연연하는 사람이었다면 그는 죽음의 두려움에 어찌할 바를 몰랐을 겁니다. 하지만 스데반 집사님은 산 소망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하늘에 간직한 것을 볼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늘의 영광을 보고 나니 이 세상의 어떠한 박해와 두려움이라도  이길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산 소망을 가집시다. 우리는 나그네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이루며, 쌓았던 모든 것들이 결국 우리의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것은 우리가 나그네 인생을 마치고 돌아가야할 저 본향 천국에, 하늘에 간직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은 우리에게 유산으로 남겨주시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기에 하늘의 영광을 보며 하늘의 풍성함을 보고 살아갑시다. 이 세상에서 살면서 마음을 떠나지 않는 세상 욕심과 정욕들, 즉 죽은 소망, 헛된 소망보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산 소망을 가진 사람들이 되기를 주님의 간절히 소망합니다. 산 소망을 가질 때, 신앙생활의 어떠한 어려움이 다가올지라도 넘어지지 않고 굳건히 서있을 수 있습니다. 이길 수 있습니다. 하늘에 간직한 것을 보는 눈을 열어주시옵소서. 이것이 저와 여러분의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