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벧전5:1 - 성도의 전공과목1-함께하기/낮아지기 본문
성도의 전공과목(베드로전서 5장 1절)
공부를 게속 하다보면 각자 전공을 정하게 됩니다.
정치,경제,사회,과학,문화,문학,종교,법,
예술,건축,토목,의료,엔터테이너.경영,기술 등
각종 분야로 나누어져서 학교에서 배우는 전공과목을 통해
전문적인 능력을 배우고 익히게 됩니다.
그렇다면 성도는 어떨까요?
성도라는 직분을 가벼이 여기지 마십시오.
계급처럼 생각해서 교회에서 가장 낮는 직분으로 생각해서
집사님인데, 성도님이라고 하면 기분나빠하잖아요.
하지만 성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너무나 귀하고 복된 이름이며, 직분입니다.
‘성도’라는 이름을 가진 우리도 배워야 합니다.
성도도 전문직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 것도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성도라는 은혜의 이름을 받았습니다.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새 사람의 삶을 살게 되었다면
성도로서 배우고 몸에 익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안됩니다.
평생 성장하기 위해, 성숙하기 위해 또 힘쓰고 힘써야 합니다.
우리에게 성도라는 이름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얼마나 큰 댓가를 치루셨는지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얼마나 큰 사랑을 보여주셨습니까?
예수님께서 얼마나 큰 희생을 치루셨습니까?
십자가에 피를 흘려 죽기까지 하며 우리에게 주신 이름이 성도입니다.
구원받은 그 이후에 가만히 계시지 않습니까?
세상에서 한가지 전문분야를 개발하기 위해서
얼마나 큰 에너지를 쏟아붓고 물질과 시간을 쏟아붓습니까?
마찬가지로 우리는 성도로서 세상 사람들보다 더 힘써서 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바른 성도의 성숙한 삶을 향한 전공과목이 있습니다.
이를 위해 숙련된 조교 한분을 앞으로 모시겠습니다.
5장 1절 입니다. '나는~~"이렇고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숙달된 조교는 바로 사도 베드로입니다.
숙련된 조교 사도 베드로 이 분은 어떤 분이실까요?
오늘 말씀 1절에서 숙련된 조교 베드로의 자기소개를 보십시오.
1.함께 장로된 자
2.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
3.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
이 세 가지를 통해 성도의 전공과목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도 함께 이 전공과목을 배워서
성도다운 성도로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1번 함께 장로된 자를 통해 첫수업 첫번째 과목입니다.
함께 하기 있습니다.
1.함께 하기
성도의 전공과목 첫 번째는 함께하기입니다.
베드로가 자신을 장로들에게 소개할 때,
첫 번째로 “함께 장로된 자”라고 자기를 소개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장로들은 오늘날 교회의 직분제, 시스템 아래에서
말하는 장로님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연세가 많이 드신 분들, 신앙의 연수가 많은 분들,
교회를 오랫동안 이끌어 오면서
모든 성도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그런 분들입니다.
이런 분들에게 베드로가 "나는 함께 장로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표현은 사도 바울에게서도 많이 나타납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지도자들을 보면, '함께'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사도 바울은 ‘함께 종 된 자’(골1:7)
‘함께 군사 된 자’(빌2:25) 등으로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사도 베드로도, 사도 바울도, 교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들이
많이 쓰는 말이 '함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의 특징이 있는데,
함께 하는 것을 좋아하고 잘 합니다.
예시)MIP기도하는 엄마들 세미나에서 느낀 점 :
함께하는 기도맘들을 보며, '행복하다'는 감정.
함께하면 행복합니다. 함께하면 천국이 임합니다.
성도라면 이것 정말 잘 해야 합니다.
성도라면 이것 정말 좋아해야 합니다.
'함께 하기'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을 때의
그 아름다움을 상상해 보셨습니까?
아마 우리의 상상을 훨씬 초월하는 아름다움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아름다운 동산에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지 않은 것이 있었습니다.
성경에 최초로 등장하는 부정적인 말입니다.
좋지 않다! 하나님보시기에 너무 안좋은 것이 등장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옥에 티라고 합니다.
창세기 2장 18절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베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혼자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 말씀 듣고 혹시 노총각, 노oo분들, 돌싱분들
상처받지는 마십시오.
지금 부부관계, 가정문제를 다루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도의 관계에 대해 다루고 있는 중입니다.
나 혼자서만 신앙생활 잘 하면 되지~~~하면서
전혀 친교의 교제나 소속되는 것을 거부하는
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교회공동체를 이루기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각자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님을 모시는
예수님의 몸의 각 부분으로 서로 연합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게 함께하는 교회공동체를 이루는 것을 보고
하나님은 선하고 아름답다고 하십니다.
인류최초의 부정적 모습이 혼자 있는 것이었다면,
그 문제를 하나님은 어떻게 해결하셨습니까?
'돕는 베필'을 하와를 만들어 아담과 함께 하게 하십니다.
역시 하나님의 선한 방법은 '함께하기'였습니다.
이렇게 함께 하게된 아담과 하와는
인류 최초의 가정이요, 인류 최초의 교회를 이루게 됩니다.
하나님은 좋지않다고 하는 문제를 오늘날 함께하는 가정을 통해
함께하는 교회를 통해서 해결하십니다.
시편 133편1절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지 않아서
하와를 만들어 아담에게 이끄심으로
아담과 하와가 함께하는 가정, 함께하는 교회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범죄함으로 함께하는 아담과 하와가 깨어졌습니다.
서로에게 책임전가하고 서로에게 수치스러움을 느끼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이후의 인류는 죄로 인해 깨어지고 분열된 관계 속에서 힘겹게 삽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가인과 아벨 사건입니다.
시기와 질투, 분노의 죄에 휘둘려 함께하는 동생을 돌로 쳐 죽이는
이 사건이 바로 함께 함이 깨어진 가장 대표적인 모습입니다.
이런 모습을 보시면서 하나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요?
그래서 하나님은 시편 133편 1절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가장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십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 즉 함께하기입니다.
<유령 성도>
혼자가 편할 수는 있습니다.
간섭받지 않습니다. 눈치 보지 않습니다. 갈등이 없습니다.
속편하게 다닐 수 있습니다.
때로 교회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훌훌 털고 교회를 옮기면 됩니다.
마음 편하겠지요.
하지만 성도라면, 진짜 성도라면 내 마음 편한 것보다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실까?를 먼저 생각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함께 하지 못하는 성도들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요?
하나님의 마음이 찢어지지 않을까요?
그리고 함께하기에 힘쓰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혼자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더 솔직히 얘기해서 혼자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수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마음이 함께 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우리의 꿈, 우리의 비전, 우리의 사명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의 이름을 통해 중요한 의미를 우리에게 말씀해주십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가진 이름은 '예수' 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해 내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을 가지셨습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져 버린 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아들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죄에서 건져내 주시고, 구원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면서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살자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구원받은 우리, 은혜받은 우리와 하나님께서는 함께 살고 싶어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참 많이 닮은 우리 거제호산나교회 성도 여러분의 모습을 보면
우리와 함께 살고 싶어하시는 예수님처럼, 하나님처럼
서로 함께 하기를 참 잘합니다, 아멘.
첫 번째 전공과목 함께 하기를 더 잘하기 위해서
반드시 익혀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낮아지기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해서 낮아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해서 하늘의 높은 보좌를 버리셨습니다.
낮고 천한 이 땅, 그것도 말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세상의 기준에 따르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당연히 왕궁에서 금비단옷에 최고급 시설이 갖추어진 곳에
태어나셔야 하지만 예수님은 높은 곳 버리고 가장 낮은 곳에 태어나심으로
우리가 어떻게 낮아지는 삶을 살아야 하는지 몸소 보여주십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고
저주받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온갖 조롱과 멸시를 당하시면서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가십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에서 더 낮아지셔서 무덤에까지 내려가십니다.
임마누엘 우리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자고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와 함께 하기 원하시는 예수님이 가시는 길은
낮아지고 또 낮아지는 길이었습니다.
함께 하기 잘 하고
함께 하기 더 잘하기 위해
낮아지기 더 잘 합시다.
베드로는 초대 교회의 수장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였습니다.
교회의 직분은 높고 낮음이 있는 계급이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보는 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장로보다 훨씬 중직에 있는 자였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권위를 내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권위로 장로들에게 명령할 수 있는 힘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자신을 ‘함께 장로된 자’라고 합니다.
사도라는 권위로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위치에 있는 동료로서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닙니다.
야망있는 남자였습니다.
어부로 살 때는 자신의 신분과 직업으로 인해
야망이 감추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 받고 예수님과 동거동락하며
예수님의 수제자라는 자리에 있었고
그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세상적인 야망과 권력과 힘에 대한
욕심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누가 더 크냐’라는 쓸데없는 논쟁만 벌였습니다,
그랬던 베드로가 이제 교회의 수장이 되고
사도가 되어 실제적으로 교회에서 성도들이
가장 우러러 보고 존경받는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높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예수 부활 후의 변화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경험하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경험하고 난 이후,
그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죄인 됨을 알고 자신의 실패를 알고
예수님의 회복의 손길을 경험하고 나니
더 낮은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자신의 권위가 아닌 예수님의 겸손함으로
띠를 띠로 장로들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부활 내 부활을 경험한 성도들이 잘 하는 것은
함께 하기이며, 함께 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훈련해야 할 것은 낮아지기입니다.
낮아지는 것은 절대 비굴해 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더럽고 냄새나는 발을 씻겨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었다고 해서
예수님이 제자들의 종은 아닙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종 부리듯이 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더 존경하게 됩니다.
자신이 어느 자리에 있든지 어떤 위치에 있든지
항상 낮아지고 남을 섬기면 존경받습니다.
교회의 직분이나 세상의 직분에 따라 교만해지지 말고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고 늘 섬기는 자세를 잊지 마십시오.
함께 하기 위해서는 낮아지는 것이 필수 과목입니다.
이런 말 듣지 마십시오.
”저 사람, 예전에는 참 겸손한 사람이더만 자리에 앉으니 사람이 변했어.“
이런 말이 여러분에게 향하지 않도록 늘 조심하십시오.
항상 마음을 높은 데 두지 말고 낮은 곳에 두십시오.
항상 두 팔 걷고 발을 씻기는 종의 자세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높은 상석에 앉는 것을 좋아하지 말고
말석에 앉기를 먼저 하기 바랍니다.
어느 자리에 가든지 어느 자리가 가장 낮은 자리인지
살피고 그 자리에 앉으십시오.
높은 자리 두고 서로 다투지 말고 서로 낮은 곳이
편한 자리가 되기 바랍니다.
겸손이 여러분의 체질이 되시기 바랍니다.
인사받기를 좋아하지 마십시오.
바리새인 처럼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에서
인사받기를 좋아하지 마십시오..
어떤 장로님께서 저에게 와서 이런 말씀을 하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요즘 청년들 참 버릇없다. 어른을 보고 인사를 안 해!“
아이들이 어른을 보면 인사 잘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 보시면 어떨까요?
인사를 받는 것보다 오히려 낮아지는 마음으로
먼저 다가가 아이들에게 인사를 해보는 건 어떨까요?
여러분이 먼저 손을 내밀고 친근하게 하십시오.
웃으며 요즘 공부한다고 직장생활 한다고 고생 많지?
힘내라! 격려해 주십시오.
<드럼: 장현준 - 고3 / 반주현 - 취준생>
교회에 어린 아이들이 땀 뻘뻘 흘려가면서 뛰어다니고
노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마음이 흐뭇한지요~
사랑해주고 함께 해주시기 위해 마음을 조금만 낮추면
많은 사람이 위로를 받습니다.
이런 찬양이 있습니다.
♬♩저 높이 솟은 산이 되기보다 저기 오름직한 동산이 되길♬♩♬
높이 높이 솟아서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고 접근하기 힘든 사람이 아니라
우리 서로 누구든지 찾고 누구든지 올라
위로를 얻고 쉼을 얻을 수 있는 성도들이 되어 봅시다.
천국의 비유 중, 겨자씨 비유가 있습니다.
문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가장 작은 겨자씨가 자라면
큰 나무가 됩니다.
그런데 독야청청하며 홀로 높이 솟은 나무가 아니라
많은 새들이 와서 깃들어 함께 하는 나무가 됩니다.
이것이 천국입니다. 천국의 특징은 바로 ‘함께 하기’입니다.
낮아지기 함께하기 수업을 마치면서 천국을 경험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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