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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벧전1:1-2 나그네로 살리라 본문

신약/베드로전서

벧전1:1-2 나그네로 살리라

행복으로초대 2017. 6. 3. 17:44

 

 

 

나그네 신앙으로 살기(베드로전서 1:1~2)

 

오늘부터 베드로전서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베드로전서에 대해서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1.저자 : 베드로입니다. 1절에 보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베드로'입니다.  

2.기록한 때: AD 64년경으로 봅니다. 

3.주제:환란을 이기는 산 소망

4.기록목적 : AD 64년에는 로마에 대화재가 있었습니다. 당시 황제 네로는 대화재를  그리스도인의 소행으로 몰았습니다. 그로 해 교회에 대한 대박해가 일어났습니다.  베드로는 그의 인생의 마지막을 로마에서 보냈습니다. AD68년에 네로에 의해 순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베드로는 로마에서 교회에 대한 대대적인 박해를 목격했습니다. 그 후, 박해의 광풍이 로마전역으로 확대될 것을 예감하고 소아시아 일대에 살던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가 베드로전서입니다.  당연히 편지의 목적은 성도들에게 닥쳐올 시련을 잘 견디도록 여러가지 소망의 말로 격려하는 것입니다.

 

나그네신앙으로 살기 (베드로전서 1:1~2)

 

베드로 사도는 소아시아에 흩어진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그들을 '나그네'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1절에 보듯이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아시아,비두니아 있는 기독교인들은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그들의 직업을 가지고 잘 정착하여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 왜 그들을 '나그네'라고 부르고 있을까요?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순간부터 천국을 향해 길을 떠나는 사람이 됩니다. 천국을 향해 길을 가는 '나그네'가 바로 우리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순간 이 세상은 우리가 정착할 곳이 아닙니다. 이세상은 단지 지나가는 버스정류장처럼 됩니다. 예전에는 이 세상이 집인 줄 알고 살았는데 이젠 집이 아니라 잠시 지나가는 곳이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가야할 본향 천국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살던 안정된 곳, 고향같은 곳을 떠나는 것, 즉 나그네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제가 부산을 떠나 거제로 온지 이제 5개월이 지났네요. 처음 거제로 올 때는 많이 힘들었습니다. 너무나 친숙했던 집, 교회, 사람들, 주변환경을 떠나는 것이 많이 힘들었습니다. 이제 사람들도 알고, 지리도 알고, 주변환경들에 대해 대충 알다보니 이제 마음의 안정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교역자 생활을 하다보면 여러번 이사를 하는데, 할 때마다 느낍니다. 진짜 나그네 인생이구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부르심에 순종하여 그에게 익숙했던 곳, 그가 의지했던 곳, 삶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곳을 떠납니다. 그리고 그의 인생은 나그네 인생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한 땅이 그의 본향, 그가 가야할 고향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향해 가다 보니 그는 자연스럽게 이 세상에서는 나그네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을 하나님을 알게 되면서 눈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순간 우리는 눈이 열립니다. 그리고 천국을 볼 수 있는 영적 안목을 가지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되니 좀 특별해 집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날 때, 사람들은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을겁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확실한 약속을 얻었고 믿음으로 길을 떠났습니다. 확실한 천국의 소망을 더욱 선명히 볼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는 순간 우리는 나그네가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나서도 자기가 나그네인 줄 모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전히 이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세상의 부귀영화, 성공과 지위, 돈과 명성, 권력과 인기에 너무 집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돈,세상지위,권세,인기 이런 것들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생활하다보면 필요한 것들이고, 노력하다 보면 얻게 되는 것들이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들입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이것이 전부인것처럼 사는 것을 말합니다. 나그네는 언제든지 떠날 준비를 하는 사람입니다.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다 주님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서리라." 주님께서 오라 하시면 가야 되고 주님께서 가라하시면 아골골짝 빈들에도 가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나그네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열심히 사십시오. 최선을 다하십시오. 열정을 불태우십시오. 후회없는 인생을 사십시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나는 나그네다."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다. 돌아갈 고향이 있다. 내 본향 천국을 잊고 살지 마십시오. 천국을 사모하십시오. 천국을 더욱 소망하십시오. 우리는 나그네입니다. 아멘입니까?

 

그럼 우리가 나그네라면 이 세상은 우리에게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까? 어차피 떠날건데 뭐 대충살자! 이렇게 생각하시면 말씀을 참 오해하시고 하나님을 정말 제대로 모르는 겁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향해 가는 나그네가 되고나서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무엇에 가치를 두고 살아야 할까요?

 

2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2절을 자세히 보시면 삼위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어떤 일을 하셨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성부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미리 아신다고 했습니다. 세상에서는 여러분을 모를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유명해지면 대우가 달라집니다. 누가 그러더군요. 똑같은 비행기에서도 돈을 많이 낸 사람은 일등석에 앉게 해서 땅콩을 주고 돈을 적게 낸 사람은 이코노미석에 앉게 해서 땅콩을 주지 않는다고요. 그러나 이 세상에서 유명하거나 무명하거나 그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천국으로 가는 나그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아시는가?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아실까요? 예!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확실히 알고 계십니다. 여기서 안다는 말은 확실한 선택을 말씀합니다. 천국 백성으로서 확실하게 선택하셨다는 말입니다.

둘째, 성령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우리를 미리 아시고 선택하셨고 이제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거룩하게 하심은 죄와 사망으로부터 완전한 구별을 말합니다.

셋째, 성자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피를 뿌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 선택하신 사람들, 그에 따라 성령님께서 거룩하게 구별하신 자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뿌려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뿌림을 얻은 자만이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삼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런 일들을 하셨습니다. 여기서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왜 삼위 하나님께서 이런 일들을 하셨을까요? 저와 여러분을 위해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이것을 알면 우리 나그네 인생의 가치를 알게 됩니다. 또한 우리가 사는 목적을 압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야 할 이유를 압니다.

 

2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얻기 위하여" 성자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피를 뿌려주셨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용서받았습니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제 이 세상에서는 나그네가 되었습니다. 이 때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나그네'로서 살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얻기 위해 사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요?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피뿌림을 얻은 구원받은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구원을 이루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12절에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했듯이 구원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구원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구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원을 이루라는 말은 무슨 말일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삶,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의 삶을 살라는 말입니다. 그럼 구원을 이루는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됩니다.  2절에 있습니다. '순종함'의 삶 입니다. 2절을 잘 끊어서 봐야 합니다.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다음에 "순종함과"가 나오는데 자칫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로 연결해서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원어상으로 보면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과 순종함과 연결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뒤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과 연결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얻기 위한 삶! 구원받은 삶과 연결되어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순종함의 삶을 살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유와 목적, 세상의 삶에서 추구해야 할 가치는 '순종'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나그네인생입니다. 천국 본향을 바라보면서 살아갑니다. 그렇다고 이 세상이 우리에게 아무 의미가 없느냐? 아닙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순종함'으로 하늘 가치를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천국을 바라보며 천국의 가치를 이 세상속에서 실천하며 사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우리입니다. 성도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천국백성입니다. 이것이 나그네의 사명입니다.
성도의 나그네 삶을 가장 잘 표현한 소설이 있습니다. 존 번연이 쓴 <천로역정>입니다. '크리스쳔'이라는 사람이 작은 성경책을 일고 나서 자기가 살고 있는 도시가 망할 것이나는 사실을 알고 고민하다가 결국 집을 떠나 천성을 향해서 갑니다. 아내와 아이들이 소리지르며 돌아오라고 하지만 귀를 막고 '생명, 생명, 영원한 생명'이라고 외치면 천성을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가는 길에 '절망에 늪'에 빠지기도 하고 사슬에 묶인 두 사자 사이를 지나기도 하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기도 합니다. '허영의 도시'라는 곳에 들어갔다가 신앙이 좋은 사람 '믿음'의 순교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온갖 박해와 핍박, 유혹과 미혹을 지나 천성에 가는 크리스쳔의 모습이 바로 오늘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크리스쳔의 천로역정의 길을 보면서 그가 세상에 던지는 메시지를 알게 됩니다. 세상이 전부가 아니다. 세상은 단지 지나가는 곳이며 결국 우리가 가야할 본향은 여기가 아니라 저 천성이라는 것을 알게 합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이든, 예수님께 속한 사람이든 누구든지 이 메시지를 보고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나그네다. 단지 이 세상에 사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크리스쳔처럼 세상에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메신저라는 것을 잊지 맙시다. 

 

사람들은

이 세상을 살면서 이 세상이 전부인것처럼 삽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이 끝이 아닌 더 나은 본향이 있고 그 본향, 천국을 향해 가는 나그네입니다. 그래서 나그네 신앙을 가진 사람은 이 세상에이 전부인 것처럼 살지 않습니다. 나그네 인생을 삽시다. 비록 좁은 길이라도 힘든 길이라도 고통의 길이라도 그 길을 가야 하지 않겠습니다. 버스 정류장을 아무리 좋게 지어놓았다고 해도 거기에 눌러앉을 수는 없습니다. 집으로 가야죠. 사랑하는 아내와 남편, 자녀들이 있는 따뜻한 집으로 가야죠. 편안히 안식할 수 있는 집으로 가야죠. 우리는 천성을 향해 가는 성도들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