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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양육의 기쁨(데살로니가전서 2장17절-20절) 본문

신약/데살로니가전서 완료

양육의 기쁨(데살로니가전서 2장17절-20절)

행복으로초대 2017. 12. 7. 04:44

 

교회는 기쁨의 공동체입니다

 

구원의 기쁨.예배의기쁨.회복의기쁨.찬양의 기쁨.하나님의한가족으로서 하나님과 연합.성도간의 교제의 기쁨이 넘치는 곳입니다.

 

 

 

그중 양육의 기쁨이 넘치는 교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함께 말씀을 보기원합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사도행전 17장의 내용과 연결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를 세우고 약3주간의 사역을 했습니다. 몇주간이라구요? 3주간입니다. 그 기간동안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봤듯이 바울은 엄마처럼 아빠처럼 자기 자녀를 기르듯이 전력을 다해 데살로니가교회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 유대인들이 바울의 전도활동을 방해했습니다. 소란을 피웠습니다. 바울의 생명을 위협했습니다. 바울은 어쩔수 없이 유대인들을 피해 데살로니가에서 베레아로 피했습니다. 하지만 베레아에서도 유대인들이 바울을 박해하자 어쩔수 없이 아덴까지 몸을 피할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17절에 바울이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과 부득이하게 떨어져야 했던 상황을 말합니다.

 

 

 

그래서 17절에 보면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그럼 그때 바울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17절에 계속 됩니다.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니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

 

 

 

 

 

이 말을 우리말로 쉽게 풀면 보고싶어 죽겠다. 어쩔수 없이 잠시 이별하여 얼굴은 볼수없지만 마음만은 보고 싶어 죽겠다 보고싶어서 자꾸 생각나고 잠도 못자고 미치겠다. 남겨두고온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걱정도 되고 어떻게 지내는지 염려도 되고 다시 보고 싶고 만나고 싶어 미칠 지경이다. 이말입니다.

 

 

 

바울이 몇주동안 데살로니가교회를 목회했다고 했습니까? 3주입니다. 이런 생각 안드세요? 과연 3주안에 이게 가능할까? 이 말씀가지고 저한테 와서 이렇게 묻지 마세요. 목사님! 바울은 성도들이 보고 싶어서 미치겠다고 했는데 목사님은 어떠세요?♡" 이러지마세요.

 

 

 

솔직히 말해 저는 여러분이 보고싶어서 잠못자고 그러지는 않습니다. 이정도 끈끈한관계가 되려면 한3년이상은 친밀한 관계를 지속할때 가능합니다. 그런데 바울과 데살로니가교회성도들은 어떻게 그 짧은 기간에 이런 관계가 되었을까요? 참 희한하죠?

 

 

 

이것은 그동안 말씀드린 이 말로밖에는 설명이 안됩니다. '엄마' '아비' '자녀를 기름같이'

 

 

 

고린도전서 4장15절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가르치는 스승도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바울은 단순한 스승이 아니라 복음으로써 해산의 수고를 하며 배아파 낳은 자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울의 데살로니가 3주의 비밀입니다.

 

 

 

그냥 교회만 왔다갔다 하는 선데이크리스챤은 절대 이 느낌을 알지 못합니다. 내가 전도한 새가족이나 내가 담당하여 책임지는 학생들이나 내가 양육하는 초신자들이 있는 분들, 혹은 누군가를 가슴에 두고 중보기도해주는 분들은 어느정도 느낄수 있습니다.

 

 

 

전도 뿐만 아니라 양육도 참 잘하셨던 권사님 한분이 생각이 납니다. 전도하기위해 정말 자신의 모든것을 내줍니다. 시간과 물질 뿐만 아니라 진심을 줍니다. 늘 생각하고 뜨거운 관심으로 기도합니다. 그렇게해서 교회에 등록하면 신앙생활을 그 권사님따라서 합니다. 그 권사님이 새벽기도를 하니까 새가족이 새벽기도를 합니다. 새벽기도를 올때나 마치고 집에 갈때나 차량이 집앞으로 운행을 하는데도 차량을 타지않고 전도해온 새가족분들과 함께 걸어갑니다. 그렇게 집까지 걸어가면서 그날 새벽기도말씀을 다시 풀어주고 복음을 심어주고 예수그리스도를 마음에 새겨줍니다. 자기 몸이 아파도 쉬지않습니다. 자기가 쉬면 새가족이 쉬니까.

 

 

 

그 권사님이 제게 이렇게 기도부탁을 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전도한 새가족들이 늘 사랑스럽고 늘 생각나고 늘 보고싶고 늘 만나고싶은 엄마처럼 언니처럼 동생처럼 아들딸처럼 생각하는 이 마음 끝까지 지킬수 있게 기도해주세요."

 

 

 

복음안에서 생각해보면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한가족입니다.

 

제가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나님과 여러분이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나님이 다르지 않습니다. 같은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교회는 가족공동체입니다.

 

 

 

그럼 가족이라 부르는 공동체안에서 일어나는 가장 큰 기쁨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여러분이 생각하는 가장 큰 기쁨이 무엇입니까?

 

 

 

바로 태어남과 자라남입니다. 사랑하는 남녀가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면 사랑의 결실로 아기를 낳고 아기를 지극 정성으로 양육해서 건강하게 자라나는 것이 가족의 참된 기쁨이죠.

 

 

 

교회가 가족공동체라면 반드시 계속 일어나야할 기쁨이 태어나는 기쁨이며 자라나는 기쁨입니다

 

이것이 양육의 기쁨입니다. 행복한 교회, 건강한 교회는 복음안에서 새생명이 태어나고 있는가? 그렇게 태어난 복음의 새생명이 잘 자라고 있는가? 이 양육의 기쁨을 위해 해산하는 수고를 하는 성도들. 양육자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질문해야합니다.

 

 

 

바울은 그렇게 양육했던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자신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19절.20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우리의 소망이고 기쁨이고 자랑의 면류관이며 우리의 영광이다고합니다.

 

 

 

교회에서는 자랑하지말라고 했습니다. 자랑하려면 오직 주안에서 자랑하라고 했습니다. 교회에서 자신의 부유함을 자랑하지말고 세상지위. 세상권력 자랑하면 안되죠. 그런데 오늘 말씀에 보면 할수있는대로 자랑해야 할게 있네요. 바로 양육받고 멋지게 잘 자란 성도는 자랑해야합니다. 이게 교회의 자랑이요 성도의 자랑입니다.

 

 

 

이것이 우리 거제호산나교회의 자랑이라면 교회에 대한 생각이 좀 달라집니다. 교회는 주일날 멋지게 옷차려입고 외출하듯이 교회에 들렀다가 잠깐 좋은 말씀듣고 가는 곳이 아닙니다. 전혀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 교회가 뭔지.예배가뭔지.찬양은왜하는지.기도는왜하는지.설교는 왜듣는지. 구원이 뭔지 도대체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와서 사도 바울같은 양육자들을 만나 제대로 된 예수쟁이로 성장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입니다.

 

 

지난 주일 저녁에 중고등부 한 선생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약간 울먹이는 목소리였습니다. 그 선생님 반의 특징은 부모님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아이들입니다. 선생님께서 전도해서 온 학생들이었습니다. 그동안 선생님께서 얼마나 수고를 많이 하셨는지, 전혀 신앙적인 기초도 없는 아이들을 한번이라도 더 예배드리고 한번이라도 더 말씀듣게 하기 위해 물질과 시간을 쏟아붓고 지극정성으로 아이들에게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그동안 중고등부에 반별 성경공부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제가 갑자기 중고등부를 맡게 되었는데 한달됐네요. 지난 주일 처음으로 예배 후, 반별로 성경공부를 진행했습니다. 성경공부 주제는 '기도'입니다. 그런데 그 선생님이 감격을 하셨어요. 아이들이 스스로 기도문을 쓰는 것을 보고는 너무 감격하신 겁니다. 예배 시간에 보면 여전히 입을 안 열고 예배시간에 자기들끼리 얘기하면서 설교도 안듣는 것 같고 그랬는데, 스스로 기도문을 작성하는 것을 보면서 얼마나 좋았는지... 저녁에 울먹이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 우리 아이들 이해해 주세요. 이제 겨우 아이들이 저에게 마음문을 열기 시작했어요. 예배 제대로 못드려도 이해해 주세요." 

 

이번 수능 친 학생들 중 부모가 예수믿지않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요즘 중고등부 아이들 예배드릴때 입을 안열어요. 어른들이 그런 모습을 보면서 큰일이라고 합니다. 아니요. 그게 교회입니다. 그렇게 시작하는겁니다. 예수님을 만나게 해서 그 아이들 입에서 찬양이 터지고 기도가 터지게 만들고 구원의 감격과 기쁨으로 눈물콧물 쏟아내고 꿈과 비전이 바뀌게 만드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렇게 시작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 모습을 보면서 먼저 예수 믿고 먼저 은혜를 경험한 분들은 아직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구원의 감격과 구원받은 삶의 행복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이 예수 잘 믿도록 도와주는 양육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양육에 뛰어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죄인들. 세리와 창기의 친구였습니다. 예수님을 비난하던 자들이 하던 욕입니다. 그런데 정말 잘 못알고 있는게 자신을 스스로 거룩하다하면 자칭 거룩한 무리들이 예배드리는곳이 교회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누가 성경을 잘 알고 누가 찬양을 잘 하나 누가 헌금을 많이 하나 경쟁하는곳이 교회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세리와 창기들이 있는 곳에 있습니다. 그들의 친구입니다. 세리와 창기같이 죄인의 대표로 규정된 자들이 예수님을 만나는 곳. 그렇게 예수님을 만나 변화되어 죄악을 청산하고 새사람되는 곳이 교회이며 그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교회의 능력이고 복음의 능력이라면 양육의 기쁨을 함께 누릴 성도들이 많이 일어나야합니다. 누군가 30년40년후에 옛일을 회상하면서 제가 처음 거제호산나교회에 갔을때 어떤 장로님. 어떤 권사님. 어떤 집사님. 어떤 구역장님 어떤 권찰님. 어떤 선생님을 만나서 예수를 알게 되었고 그분 덕분에 믿음의 기초를 든든히 했다고 양육제대로 받았다고 하는 간증이 있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