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말씀의 능력이 교회를 강하게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9~13) 본문
말씀의 능력이 교회를 강하게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9~13)
세상에서 살다보면 모든 장소와 모든 상황, 모든 사람들이 다 선생님 같습니다. 어디에 있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어떤 상황이 닥치든지 배우는 자세를 가지고 임하면 헛되이 지나는 것은 없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참된 교육을 하는 곳은 어디일까요?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에서 참된 교육이 이루어집니다. 왜냐하면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이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는 곳이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받는 이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교회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사역자들과 성도들이 힘써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11절 마지막에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 이것이 사도 바울이 힘썼던 것이며 성도들이 힘써 받은 것입니다. 권면하는 것, 위로하는 것, 경계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육받는 것입니다.
첫째.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할 때, 어떻게 하라고 합니까?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해야 합니다.
저번 설교에서 “나는 엄마다”라고 했죠? 오늘은 “나는 아빠다”라고 해야겠네요.
한국적인 정서에서는 잘 이해가 됩니다. 엄마는 푸근하고 따듯하고 품어주는 이미지. 아빠는 훈계하고 교육하고 바른 길로 지도해 주는 이미지가 강하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은 “나는 아버지다”라고 생각하고 자기 자녀를 대하듯이 해야 합니다. 반대로 가르침을 받는 자는 가르치는 자를 향해 “내 아버지다”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고린도전서 4:15)
가르치는 스승은 엄청나게 많은데 그중에서 아비는 많지 않다고 합니다. 왜일까요? 아비가 어떤 사람인지 알면 답이 나옵니다. 복음으로서 낳는 사람이 아비입니다. 영적으로 해산의 수고를 하고 배 아파서 믿음의 생명을 낳아 본 사람이 아비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아비가 많지 않은 것은 당연하죠. 성경공부하면서 성경을 가르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성경공부도 중요하고 성경을 잘 가르치는 은사와 능력도 교회에서 꼭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다 중요한 것이 있다고 합니다. 복음으로써 한 성도를 잉태하고 해산하고 양육하고 성장케 하는 아비의 역할이 더 귀하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설교를 하고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책임지는 교역자들과 주일학교 교사, 구역을 이끄는 구역장,권찰, 새가족 양육을 맡은 양육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가르치는 것에 더해서 아비의 자세를 더욱 가져야 하겠습니다.
둘째,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는 목적이 무엇일까요?
하나님께 합당한 사람이 되는 것이 목적입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라.”
12절은 말씀을 듣는 이들의 자세에 대해서 중요한 말씀을 줍니다. 여기서 ‘합당히’는 하나님의 뜻에 부합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사람,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사람을 키워내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설교를 듣는 성도들, 성경공부를 통해 배우는 성도들의 바른 자세가 무엇일까요? 말씀을 듣는 바른 목적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 합당한 사람이 되려는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그래서 설교를 잘 들어야 합니다. 설교를 바르게 들어야 합니다.
최근 유명한 방송설교자들의 설교를 원하는대로 들을 수 있습니다. 말씀의 홍수시대가 맞습니다. TV 기독교 채널이나 라디오 주파수만 틀면 유명한 목사님들의 설교가 쏟아져 나옵니다. 이런 시대를 사는 여러분은 정말 복받은 성도들입니다. 그런데 이럴 때일수록 여러분의 듣는 귀를 바르게 하십시오. 여러분의 귀를 즐겁게 하고 여러분의 기분을 전환시켜주는 설교, 십자가 없는 설교, 예수 없는 설교, 고난 없이 풍성한 복을 받으라고 하는 설교를 경계하십시오. 사람들을 들었다 놨다 웃기고 울리는 설교 주의하십시오. 물론 웃기고 울리는 설교가 잘못되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탁월한 언변이죠. 말하는 기술입니다. 어떤 때는 이런 설교자들을 보면 참 부럽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사람들의 마음을 열고 그 속에 복음을 심을 수만 있다면 금상첨화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웃고 울리기만 하고 남는 것은 예화밖에 없고 복음, 예수는 남지 않는 설교인지 잘 들으셔야 합니다. 설교를 듣는 목적이 무엇인지 분명히 아십시오. 우리나라 성도들은 감성적이라 설교를 듣다가 울고 눈물나면 은혜롭다고 해요. 제가 지금까지 들은 설교 중에 제일 많이 울었던 때가 언제냐하면 논산훈련소에서 훈련받을 때였습니다. 교회에 어떤 목사님이 오셔서 훈련병들을 웃기기 시작하는데 지금까지도 그만큼 웃긴 목사님을 만나 볼 수가 없어요. 울리는 것도 정말 잘 해요. 군인들 울리기 정말 쉬워요. 특히 훈련병들은 더 쉽습니다. 이거 하나면 되요. “엄마가 보고플 때 엄마 사진 꺼내놓고 엄마 얼굴 보고나면 눈물이 납니다. 어머니 내 어머니 사랑하는 내 어머니~~~ 딴딴딴따” 그럼 다 울어요. 그런데 뭐라고 하셨는지는 하나도 기억이 안나요. 제 큰처남이 목사입니다. 선배 목사로서 저한테 할 말이 참 많아요. 한번은 저보고 “요즘 설교 트랜드는 유머가 있는 설교다. 설교중에 3번은 꼭 웃겨야 한다.” 그런데 저는 유머감각이 없어요. 다들 설교 들어보시니까 아시겠지만 저는 웃기는 거 못해요. 저한테 3번 웃기라니요. 여러분! 여러분께서 담임목사님이나 저희 부목사들을 위해 기도할 때, 꼭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설교를 할 때 여러분을 감동시키려고 어디서 감동적인 예화를 말하고 웃기고 울리는 설교가 아니라 말씀의 액기스를 짜내서 그 속에 있는 말씀의 진국을 여러분에게 먹이는 설교자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성도들의 귀가 많이 가벼워졌습니다. 그러니 설교자들도 가벼워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알맹이없는 설교를 주의 하십시오. 설교를 듣는 목적을 분명히 하십시오. 설교를 통해 하나님 앞에 합당한 사람이 되는 것이 설교를 듣는 목적입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그 삶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으로 살아내는 성도들이 되는 것, 그것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어떤 태도를 가질까요?
하나님께 합당한 태도를 가지려고 하는 사람은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습니다. 13절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서 역사하느니라.”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는 태도를 가집니다. 말씀이 말씀으로 선포될 때에 아멘으로 순종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려고 애쓰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사모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적용합니다. 그 말씀대로 살아봅니다. 그 말씀이 그 속에서 역사합니다. 그래서 13절 마지막을 보시면 뭐라고 합니까?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서 역사하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으니까 당연히 일어나는 일이 있습니다. 말씀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니까 변화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습니다. 운동력이 있습니다. 말씀이 살아서 역사하니까 믿는 자들 사이에 막 헤집고 들어가서 놀라운 일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받기를 간절히 사모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말씀이 들어가기만 하면 새로워집니다. 믿는 자들, 각 사람이 그렇게 변화되면 교회는 어떻게 될까요? 각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간절히 사모하고 전하는 자도 하나님의 말씀의 액기스 진국을 짜냅니다. 깊이 묵상하고 철저히 연구해서 담대히 선포하고 그렇게 선포된 말씀을 성도들이 말씀의 맛을 보고 그 말씀에 감동하고 깨어지고 변화되고 새로워지는 광경을 상상해 보십시오. 한 사람 한 사람이 변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전체 믿은 자들이 변화되어서 교회가 어떻게 될까요? 교회가 다른 것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움직이게 해 주시옵소서.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얘기하도록 해 봅시다. “거제 호산나교회 성도들이 요즘 뭔가 새로워지고 뭔가 멋지게 변한 것 같애. 그 이유가 뭐지?” 그리고 그 이유를 발견했는데 “드디어 드디어 거제 호산나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기 시작했더라.” 물론 이 자리에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는 성도들이 많죠! 하지만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아멘! 드디어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기를 시작하더라. 아멘!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기 시작하니까 교회가 변화되고 교회가 생동감이 있고 건강해지고 튼튼해지는 모습들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말씀을 듣고 마음이 뜨거워지고 정말 그런 교회를 상상하며 기뻐하는 성도들은 분명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는 성도들일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꿈이요 우리의 소원이요 우리의 기도이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이 무엇입니까? “말씀의 능력이 교회를 강하게 합니다.” 교회가 힘을 잃어버리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교회가 영향력을 상실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똘똘 뭉쳐야 합니다. 말씀 앞에서 산산조각 나야 합니다. 어릴 때 이 찬양 많이 불렀는데요. “부서져야 하리. 무너져야 하리. 깨져야 하리. 더 많이 깨져야 하리.” 말씀위에 서지 않은 교회는 부서져야 합니다. 무너져야 합니다. 깨져야 합니다. 산산조각 나야 합니다. 그리고 새롭게 지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터전 위에 굳게 세워야 합니다. 모든 성도들이 이것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 중심의 삶에 집중해야 합니다. 교회가 강해져야 합니다. 왜요? 겉모습이 아닌 말씀의 능력이 교회를 강하게 하는 거제호산나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 함께 힘쓰고 기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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