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하나님께서는 진실한 사람을 찾으십니다.(데살로니가전서 2장 1~6절) 본문
하나님께서는 진실한 사람을 찾으십니다.(데살로니가전서 2장 1절 ~ 6절)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음을 맡기셨습니다.
그럼 여기서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무엇이라고 했는지 유명한 성경구절이 떠오르십니까? 고린도전서 4장 2절에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럼 우리에게 복음을 맡기신 하나님께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복음을 맡은 자의 바른 자세는 충성입니다. 오늘 설교 끝. 집에 가셔도 되겠지만 조금 아쉽죠? 그래서 조금 더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복음을 맡은 자의 바른 자세가 충성이라는 것은 압니다. 오늘은 그 충성이라는 말을 조금더 풀어보려고 합니다.
4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었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능력으로 재능으로 우리의 무엇인가 가진 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맡기신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을 맡게 되었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을지라도 하나님은 나를 구원해 주셨고, 뿐만 아니라 우리 안에 복음을 주셔서 그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가 그 복음을 위탁받았는데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자! 이런 그림을 그려보세요.
하나님이 앞에 계시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손에 복음을 들려주시면서 잘 부탁한다.
“착하고 충성되게 복음을 위해 살아다오.”라고 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복음을 맡은 자의 바른 자세가 무엇일지 함께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복음을 맡은 자의 바른 자세가 무엇인지 자세히 살펴보기 전에 복음을 맡기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충성이라는 것은 절대적인 기준이 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누구나 누군가에게, 또는 무엇인가에 충성을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편에 선 사람도 하나님께 충성을 다합니니다만 마귀의 편에 선 자도 마귀에게는 충성을 다합니다. 우리와 적대관계에 있는 사람들도 누군가에게는 충성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니 충성이라는 말은 누구를 섬기는가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충성은 자신이 섬기는 분이 누구인지 잘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섬기는 분이 누구인지 알아야 그 분을 기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입니다.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자세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먼저, 우리에게 복음을 맡기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예!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시는 분이 아닙니다. 사람의 중심을 감찰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사람이 사울왕입니다. 사울 왕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짐승들을 죽이지 않았을 때 사무엘의 책망을 듣고는 짐승 중 좋은 것을 약탈하여 소유한 것은 하나님께 좋은 것으로 재물을 삼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고 한다는 거짓말을 했습니다. 겉으론 사울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보였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사울의 중심을 감찰하시고 사울을 버리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이 감찰하신다는 말은 하나님은 인간의 거짓에 속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마태복음 7장에 보면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귀신도 쫓아내고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책망을 받은 그들의 잘못은 불법을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어떤 불법을 행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문맥을 따라 위로 위로 올라가다 보면 15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들을 향해서 거짓 선지자들이라고 합니다. 그들에게 무엇이 있었다구요? 거짓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모른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사역을 하나 그 모든 것들이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서는 거짓으로 드러났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무엇을 좋아하실까요? 여러분의 어떤 모습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역사하실까요?
제가 대학생 때, 읽고 도전을 받았던 신앙서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교회 안에서 많은 분들이 읽었습니다. 제목이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기도'였습니다. 그 책의 저자가 하루 7시간을 기도한다고 해서 나도 하루 7시간 이상 기도해야지 하면서 밤을 새면서 7시간 기도에 도전했던 적이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부름받는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그렇게 7시간 넘게 밤을 새면서 기도한다고 하나님께서 들으실까요? 밤을 새면서 철야를 하면서 기도한다고 하나님께서 움직이실까요? 기도하시는 분들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위해서 열심히 봉사할 때에 하나님께서 움직이시던가요? 열심히 전도할 때 하나님께서 움직이실까요? 물론 하나님이 움직이실 겁니다. 기도하지 말라! 전도하지 말라! 봉사하지 말라! 아무 소용없다! 이런 말이 아님을 아셔야 합니다. 무엇인가 결과가 나오고 기도대로 되고 열매가 맺힐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나중에 모른다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진실됨을 요구하십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움직이는 무기는 하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진실함입니다. 하나님은 진실한 사람을 기뻐하시고 진실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기도도 진실하지 않으면 듣지 않으십니다. 진실한 믿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데 있으며 순종하는데 있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생활에 있습니다.
솔직히 이 말씀을 계속 묵상하면서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생각은 목회자들에 대한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저에 대한 생각이었습니다. 성도들에게 이 말씀을 어떻게 적용할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저에게, 그리고 이 땅의 주의 종이라고 일컬음 받는 수많은 목회자들에 대한 적용을 계속 시키셨습니다.
복음 앞에서 순수함을 잃어버리고 바르게 행하지 못하고 진실되지 못하고 거짓과 타락에 빠져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서 부끄럽고 안타까웠습니다. 순수함 진실함 하나님앞에서 바른 삶을 사는 목사가 되는 목표는 사라져가고 세상에 물들어 세상의 기준이 나의 기준이 되고 세상의 성공처럼 나의 성공을 맞추려고 하는 저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진실됨을 목표로 하십니까? 복음을 맡은 자의 바른 자세는 충성입니다. 충성된 마음은 두 마음을 품지 않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서 한 마음으로만 사는 것입니다. 그 마음은 진실됨입니다. 오직 나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바른 마음으로 바른 자세로 바른 삶으로 살아보겠다는 결심입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서 진실되게 한번 살아 보겠습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복음을 맡은 바른 자세를 가진 사람입니다.
우리 호산나교회의 가장 큰 자랑 거리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건 여러분이 기도할 때 잘 들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들이 기도할 때 우리 교회의 자랑은 하나님! 우리에게 진짜 복음을 주시고 진짜 복음을 가진 교회가 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합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 진짜 복음 앞에서 얼마나 진실하십니까? 그런즉 모든 거짓은 다 버려버리고 오직 하나님 앞에서 진실된 마음으로 한번 살아보시기 바랍니다. 솔직히 저도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많이 회개했습니다. 오늘 새벽이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많이 생각해 봤습니다. 왜 이렇게 멀어졌는지? 처음에 하나님 앞에 부름 받을 때 그 순수했던 마음,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해하며 눈물 줄줄 흘리면서 하나님을 위해 이 생명 바쳐서 한번 살아보겠습니다라고 하면서 나섰는데 나는 왜 이렇게 타락하고 나는 왜 이렇게 식어버렸는가? '성공'이라는 단어가 목회와 연결되어 세상의 기준에 맞춘 얄팍한 목회성공을 꿈꾸는 자가 되었는가? 하면서 회개하면서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지금 저는 제대로 살고 있으니 여러분도 제대로 사십시오"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다 부족하고 실수투성이, 너무나 부끄러운 죄인임을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낱낱이 드러날 수 밖에 없는 거짓은 다 버리고 이제 진실함으로 살아내는 일에 함께 동행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같이 가는 거죠. 격려하고 밀어주고 당겨주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 진짜 복음을 맡은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솔직히 목사로 살면서 사람들 앞에서 경건한 척하고 거룩한 척 하고 의로운 척 하고 깨끗한 척 하는 것은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자신은 너무 괴로운 겁니다. 하나님은 내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고 내 모든 것을 다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 진실함으로 살아갑시다.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두 가지 자세가 있습니다.
하나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맡은 자는 진실합니다. 복음을 맡은 자는 하나님을 기쁘게 합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3절을 보십시오.
“우리의 권면은 간사함이나 부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속임수로 하는 것도 아니라”
5절을 보십시오. 사람을 기쁘게 하는 사람은 아첨하는 말을 하고 탐심의 탈을 쓴다고 합니다.
6절을 보십시오. 사람을 기쁘게 하는 사람은 사람에게서 자기의 영광을 구한다고 합니다.
간사함이든, 부정이든 속임수, 아첨, 탐심, 자기 영광이든 일일이 다 설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단 한가지로 그 특징이 요약되기 때문입니다. 열거한 모든 것은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결국 자기를 기쁘게 하는 것들입니다.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서 얻는 결과로 내가 기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간사하게 행합니다. 결국 나의 이익을 위해, 내가 잘 되기 위해서 다른 사람 앞에서 간사하게 행하는 것입니다. 아첨하고 탐심하는 것은 결국 자기 영광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자기의 기쁨, 자기의 영광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결코 하나님의 기쁨, 하나님의 영광은 절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우리의 기쁨입니다.
갈라디아서 1장 10절에 유명한 말씀이 있습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더라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종이 맞습니까?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종이라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하나님의 기쁨을 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기쁨을 구하기 위해, 그리고 결국 자기의 기쁨을 구하기 위해 간사하게 행동하고 부정하게 행하며 속임수를 쓰고 아첨하며 탐심의 탈을 쓰는 마지막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여러분! 1절을 보십시오. 사도 바울은 복음을 맡은 자가 되어 하나님 앞에 충성되이 행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 인생의 큰 터닝포인를 만나 복음을 위해 고난과 능욕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삶이 비록 고난과 능욕의 삶이었지만 그 삶은 헛되지 않은 삶이었습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며 간사함과 부정과 속임수와 아첨과 탐심의 삶을 살았다면 그것은 결국 헛된 삶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며 하나님 앞에 드러나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었음을 증언하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앞에서 진실합시다. 오직 우리를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기쁨을 구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사람의 기쁨이 아닌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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