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사도행전10 - 성전을 믿지 말라(행7:44~50) 본문
스데반 집사님의 설교가 계속 됩니다.
오늘은 유대인의 잘못된 성전 숭배사상을 꼬집고 있습니다.
출애굽 후, 하나님은 모세에게 성막을 만들라고 했습니다.
성막은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였습니다.
성막은 하나님과 사람의 만남의 장소였습니다.
나중에 솔로몬 시대에 이르러 성막은 고정된 성전이 됩니다.
성막이든 성전이든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사는 하나님 백성들에게 아주 중요한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성전 자체를 숭배하기 시작합니다.
성전을 우상화 했습니다.
형식적인 성전제사를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모든 죄를 서받을 수 있다는 성전만능주의가 퍼지기 시작합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스데반이 내린 결론은 무엇인가?
48절에 나옵니다.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왜냐하면 49~50절에 나옵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냐?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하나님이 인간이 지은 작은 건축물 안에만 계신 하나님인가요?
물론 하나님은 그 곳에 임재하십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그 작은 건축물 안에 가두어두고 그 곳에 가야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하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는 성전이 너무 중요했습니다. 결국 성전숭배, 성전우상으로 바뀌어 갑니다.
그럼, 이런 유대인들의 성전숭배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나요?
참된 성전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고소를 당했습니다. 죄명은 성전모독죄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지으리라."
참된 성전이 무엇인가? 참된 성전은 예수님 자신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만에 다시 살아날 것을 말씀하시면서 하신 말씀임을 알지 못하고
예수님을 성전모독죄로 고소했습니다. 참된 성전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건물중심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입니다. 우리는 건물중심이 아닌 예수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참된 성전이시기 때문입니다.
건물중심의 신앙이 되면서 신앙생활 자체가 형식적이 됩니다. 성전이라 불리는 건물에 가서 제사를 드리는 행위에 치중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은 성전이라는 건물에서 제사라는 형식으로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님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
그럼 예수님으로 충만함에 대한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답은 44절에 있습니다.
44절
"광야에서 우리 조상들에게 증거의 장막이 있었으니 이것은 모세에게 말씀하신 이가 명하사 그가 본 그 양식대로 만들게 하신 것이라."
여기에서 첫번째 살펴보아야 할 구절은 증거의 장막입니다.
증거의 장막?
증거의 장막은 성막입니다.
그런데 왜 성막을 증거의 장막이라고 했을까요?
증거의 장막이라고 한 이유는 성막의 지성소 안에 언약궤가 있기 때문입니다. 언약궤 안에는 십계명 두 돌판, 아론의 싹난 지팡이, 만나항아리가 있었습니다. 그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언약궤를 또 다른 말로 증거궤라고 했습니다. 언약과 증거는 동일하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근거를 둡니다. 결국 증거의 장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입니다.
또 증거의 장막과 함께 중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말씀하신 이'입니다.
모세에게 말씀하신 이는 누구인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을 '말씀하신 이'라고 했을까요?
증거의 장막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막으로 나아가는 모든 백성들은 성막에서, 증거궤 앞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했습니다.
이것은 성전숭배에 빠져 변질된 유대인들에게 성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빠진 성전이라는 건물, 예수님이 빠진 형식적인 제사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빠진 교회, 예수님이 없는 예배가 아니라 예수님으로 가득한 교회,예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성전이 참 성전이 되는 것, 즉 교회가 참 교회가 되는 것은 교회 곳곳에서 모든 교회의 모임마다, 성도들마다 모든 프로그램과 행사마다 예수님으로 가득할 때입니다. 제사가 참 제사가 되는 것은 오직 예수님으로 충만할 때입니다. 즉 예배가 예배가 되는 것은 예수님으로 모든 예배가 충만할 때입니다.
예수님으로 충만한 모습의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에 대한 반응이 활발한 것입니다.
따라해 보십시오. 신앙은 반응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 그 말씀에 대해 반응을 잘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스데반 집사님의 설교를 통해 지적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된 모습은 성전 안과 밖으로 구분해서 사는 유대인들의 모습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오늘날 말씀을 교회에 와서 듣는 것으로 끝내는 성도들과 같은 모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순종하여 실천하는 성도들의 모습이 진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반응하고 그 말씀 속에서 무엇을, 누구를, 어떻게, 말씀대로 순종하여 섬길 것인가? 이것이 삶의 질문이 되어 사는 사람들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말씀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말씀에 순종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좋은 교회입니다.
사람들이 교회를 볼 때, 와~ 저 교회 좋다!라고 할 때 보통 그 기준이 무엇일까요? 저 교회 좋네라고 할 때는 크고 웅장하고 화려하고 편의시설 잘 되어있는 교회를 좋은 교회라고 합니다. 예배드리기 좋은 음향과 영상 시스템이 갖추어진 좋~~은 교회일 수 도 있습니다. 모임하기 좋은 편리한 시설과 공간을 갖춘 좋은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젠 이런 교회가 좋은 교회가 아니라는 것을 너무 잘 압니다.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좋은 교회와 성도들이 생각하는 좋은 교회는 분명히 달라야 합니다.
주일의 말씀이 기다려지고 말씀 듣기를 기대하는 성도들, 생활 속 깊이 말씀을 순종하려고 애쓰는 성도들의 모습을 사람들이 보고 과연 자신의 가족을, 친구를, 이웃을 변화시킨 말씀이 무엇인가 궁금해서 찾아오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우리 거제호산나교회 진짜 좋은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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