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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사도행전11-들려야 삽니다(행7:51~54) 본문

신약/사도행전

사도행전11-들려야 삽니다(행7:51~54)

행복으로초대 2020. 3. 4. 17:23

사도행전11-들려야 삽니다(행7:51~54)

 

어릴 때 저희 집은 동물농장이었습니다. 돼지,소,개,고양이,닭 각종 가축들을 많이 키웠습니다.

하루는 소를 끌고 밖에 나가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소 고삐를 걸고 당겨보려고 하니 소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제가 잡아당길수록 소는 발을 고정시키고 목을 곧게 했습니다. 소가 목을 곧게 하고 다리에 힘을 주고 있으니 어린 제가 끌고 갈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가끔씩 목이 곧은 백성이라는 말이 나오면 이 소가 생각이 납니다.

목이 곧은 소처럼 다리를 땅에 고정시키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기 거절하는 저의 모습을 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출애굽기와 신명기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계속해서 목이 곧은 백성이라고 합니다.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 즉’ (33:5)

‘....너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 (9:6)

 

잠언 29장 1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는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라."

성경에서는 목이 곧다는 것을 불신앙, 불순종, 교만할 때 주로 사용합니다.

 

스데반 집사님의 설교 마지막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목이 곧다'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51절을 보십시오. '목이 곧고'라고 시작합니다.

목이 곧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할례는 남자의 성기의 표피를 벗기는 것입니다.

할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할례는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 할례를 어디에 행했습니까? 육체에 행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는 어디에 행하라고 합니까?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으라고 합니다.

할례는 육체에 받는 것이었지만, 진정한 할례는 마음과 귀에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귀'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듣는 것입니다. 말을 들어서 어디에 보관을 해야 할까요?

귀로 말이 들리면 들려진 그 말이 저장되는 곳이 있습니다. 머리일까요? 뇌일까요?

육체적,의학적으로 따지면 그럴 수 있겠지만, 오늘 말씀에도 육체에 행하는 할례가 아닌 마음에 행하라고 했으니, 귀에 들려진 말, 즉 말씀을 잘 보관하는 장소가 마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말씀이 들어오는 통로인 귀.

말씀을 저장하는 저장소인 마음.

이 두가지에 할례를 받으라고 합니다. 마음과 귀는 말씀에 반응하기 위해 반드시 새로워져야 하는 곳입니다.

 

여러분의 귀는 말씀에 잘 열려있습니까? 잘 들립니까?

여러분의 마음은 말씀을 잘 저장하고 있습니까?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들려야 삽니다.

 

마치 산소호흡기처럼 말씀이 들려져야 우리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말씀이 들리느냐? 들리지 않느냐? 말씀이 마음에 잘 저장되느냐? 아니냐?는 죽고사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문제를 풀어가는데 열쇠가 되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성령을 따르는 것입니다.

 

51절을 보십시오.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하니 자연스럽게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까?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여기서 중요한 말이 있습니다. '자연스럽게'입니다. 

신앙생활은 우리의 죄성, 즉, 목이 곧는 상태로 그대로 있으면 결국 성령을 거스르게 됩니다.

목이 곧은 죄성, 불신앙,불순종,교만의 상태로 그대로 있으면 안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귀를 열어 말씀을 듣는데 힘써야 합니다. 마음을 부드럽게 해서 말씀을 잘 저장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영적상태를 바꿀수 있습니다. '

이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성령을 따르는 자가 됩니다.   

 

여기서 두가지 부류로 나눠집니다.

성령을 따르는 사람과 성령을 거스르는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 성령을 따르는 사람이 됩시다.

 

성령을 거스르는 사람이 되게 하는 원인이 있습니다.

다시 51절을 보십시오. 항상 성령을 거스른다고 하는데, 그 사람들은 누구와 같이 합니까?

'너희 조상과 같이'

 

여기서 '너희 조상'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목이 곧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떤 한 조상 때부터 목이 곧아지기 시작했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않아 불신앙 불순종 교만해 졌는데

그런 모습이 그의 후손에게 그리고 그 후손에게 물려져 왔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의 '너희 조상들'이 어떻게 했을까요?

52절을 보십시오. 너희 조상들이~~~무엇을 했을까요?

1)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않았느냐?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선지자들을 보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선지자들을 통해서 계속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은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않은 백성들이니, 말씀을 듣기는 커녕 오히려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들을 박해했습니다. 선지자들은 계속해서 '의인이 오시리라'는 메세지를 전했습니다. 그리고 의인이 오셨습니다. 그 의인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유대인들은 그 메세지를 전했던 선지자들을 잡아 죽였습니다. 그리고 그 선지자들이 전했던 '그 의인'인 예수님도 잡아 죽였습니다. 끝내 여기서 '너희 조상들'은 어떤 결과를 맺게 됩니까? 그들이 선지자들을 통해 전했던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음으로 인해 현재를 살아가는 그들의 후손들이 예수님을 죽이는 자들이 되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유대인들이 왜 예수님을 죽였는가? 바로 53절이 그 이유를 밝혀줍니다.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예수님을 죽인 유대인들이 얼마나 완악하면 사람이 아니라 천사가 와서 전해도 지키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말씀을 듣지 못함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이런 무서운 연쇄반응을 끊을 수 있는 방법은 말씀의 검으로 묶여진 사슬을 끊어버리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좋은 말로 쓰일 수도, 나쁜 말로 쓰일수도 있습니다.

그 아버지가 누구냐?하는 것에 따라 달라집니다. 

부지런한 아버지의 모습을 늘 보며 자란 아들은 부지런한 아들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면 게으른 아버지 밑에 게으른 아들이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알콜중독, 성적인 문제, 가정폭력의 문제로 깨어진 가정에서는 역시 동일한 문제로 자녀들에게 나타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이것은 오늘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아버지인 나, 어머니인 나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내 연약한 모습을 보면서 내 아들이 딸이 나와 같이 된다면 어떨까? 죄송합니다. 저는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저의 바램입니다.

솔직한 저의 마음입니다. 저는 너무 약해서, 그리고 너무 헛점이 많고 잘못된 습관속에서 살고 있어서.

그래서 오늘의 이 말씀을 전하고 있지만 마음이 많이 무겁습니다. 앞으로 잘 해야겠다는 마음뿐입니다.

 

신앙의 훌륭한 전통이 대대로 이어지는 신앙의 명문가가 있습니다.

반대로 죄의 악한 전통이 대대로 이어지는 죄악의 가문이 있습니다. 

 

신앙은 의지적으로 힘써 바꾸어야 합니다.

또한 신앙생활을 더 잘 할 수 있기 위해 우리는 성령을 따라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인도해 주셔야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습니다.

이 때, 우리에게 꼭 있어야 할 은혜가 있습니다. 바로 '들리는 은혜'입니다.

말씀이 들려지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닫혀진 귀가 열려서 말씀이 내 귀에 쟁쟁하게 들려지기를 바랍니다.

 

말씀이 들릴 때 우리에게 주어지는 은혜가 있는데 무엇일까요?

바로 회개입니다. 회개할 수 있는 은혜입니다. 

 

회개가 하나님 잘못했어요~하면서 눈물 짜는 것이 회개가 아닙니다.

회개는 하나님 앞에서 나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나의 마음,생각,삶,생활,말,행동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나의 모습이 얼마나 하나님과 말씀에서 멀어져 있는가를 발견하고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 회개입니다. 그런데 이 회개가 언제 일어나는가? 말씀이 들릴 때 입니다.

 

제게 딸 둘이 있습니다. 하영이 하은이 둘입니다. 6살 차이입니다. 큰 딸은 대학생이고 작은 딸은 중학생입니다. 저희 가족이 거제호산나교회로 오기 전 있었던 교회에서 금요심야기도회 합심기도 시간이 마치고 개인기도 시간에, 중고등부 아이들이 제게 막 달려오더니, "목사님~ 목사님~ 하영이가 막 울어요." 그러고보니 하영이가 엉엉 울면서 기도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영이를 만나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면서 감사하면서 좋아서 하영이 기도가 다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눈이 퉁퉁 부어서 나오는 하영이에게 '하영아~~"라고 하는데, "아빠~~ 갈 대학이 없어~~~"하면서 우는 겁니다. 은혜받아서 우는 게 아니라 학교에서 진학상담을 했는데, 이 녀석이 간호학과를 가려고 하니까 내신성적이 안되서 갈 대학이 없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실망했는지, 기도를 하면서 답답해서 울었던 겁니다.

 

그런데요. 그때부터 하영이에게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하영이가 제 말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요. 평상시에 제가 하영이에게 계속 하던 말이 있습니다.

"아빠가 비록 성공한 인생을 산 건 아니지만 니가 앞으로 살아야할 인생을 먼저 살아봤는데, 공부를 하건 무슨 일을 하건 이렇게 하는게 더 좋더라. 공부도 이렇게 하는게 더 잘 되더라."

 

그런데 이런 말을 그 전까지만 해도 그냥 잔소리로 듣는 거에요. 그런데 그 날 이후, 하영이가 하는 말이

"그 때는 아빠가 아무리 말해도 안 들렸는데, 지금은 무슨 말인지 알아 들을 것 같애."

들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하영이가 제가 한 말을 똑같이 동생한테 하고 있습니다.

"똑바로 하라고~공부 이렇게 하라고~ 중2때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그러면 하은이는 "잔소리 좀 하지 말라고~"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계속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

우리의 가는 길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은혜를 받을 때는 잔소리가 아니라 조언으로 들립니다.

은혜를 받을 때는 말씀이 너무 잘 들립니다. 내 모습이 너무 잘 보입니다. 회개하게 됩니다.

회개함으로 새롭게 됩니다. 54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말씀을 듣고 어떻게 됩니까? 마음에 찔림을 받습니다.

그런데 마음에 찔림을 받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고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와야 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반응이 일어납니다. "이를 갈거늘" 진정한 회개를 한 것이 아닙니다.  

들려야 삽니다. 들리는 복된 귀를 받으십시오. 뒤에서 빵빵 빵빵 하는데 들리지 않으면 죽습니다.  

말씀이 닫혀진 내 마음에 들어와 굳어진 마음, 나쁜 밭같은 나의 마음을 새롭게 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들려지는 은혜로 인해, 성령을 따르는 삶으로 우리의 삶이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의지적으로 힘쓰십시오. 들려야 삽니다. 듣기 위해 힘쓰십시오. 듣고 저장하기 위해 힘쓰십시오.

내 영혼에 말씀의 저장소가 가득히 채워져서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의 인도하심에 강력하게 역사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