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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야고보서 1:26~2:9 참된 경건은 차별하지 않습니다. 본문

신약/야고보서

야고보서 1:26~2:9 참된 경건은 차별하지 않습니다.

행복으로초대 2021. 7. 21.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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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경건은 차별하지 않습니다.(야고보서 1:26~2:9)

 

주일예배가 시작되기 전한 노숙자가 교회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기웃거립니다
꽤나 교회에 관심이 있어 보입니다예배에 참석하러 온 교인들에게 그는 배가 고픕니다음식이 필요한데 돈이 없습니다도와주세요.”라고 말했지만어느 누구도 그에게 돈이나 음식을 주거나 관심을 갖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단지 불과 3명만이 그에게 굿모닝 인사를 하였을 뿐 모두다 그를 지나쳐 교회 안으로 들어 갔습니다.
 
 예배 시간이 되어 교회에 들어간 그는 맨 앞자리에 앉았지만 예배 위원들에게 저지를 당하고 차가운 시선을 받으며 맨 뒷자리에 겨우 앉게 됩니다

곧이어 사회자가 올라와서 오늘 저희 교회에 새로운 담임목사가 부임했다는 광고를 합니다. “환영합니다스티펙 목사님교회 영접위원과 안내위원들이 목사님을 맞이하려고 약1시간전부터 교회 문 밖에 나가 있었는데 미처 영접하지 못했습니다죄송합니다목사님 오셨는지요목사님 오셨으면 앞으로 나오시겠습니까?” 교인들 모두다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기대에 찬 눈길로 새로 부임한 목사를 찾아 고개를 돌리는 순간모든 교인들은 경악했습니다

 

교인들에게안내위원들에게예배위원들에게 냉대를 받고 맨뒤로 쫓겨가 눈치 자리에 앉아 있었던 그 노숙자가 벌떡 일어나 성킁성큼 강단 앞으로 걸어 나왔습니다바로 노숙자로 변신한 스티펙 목사였습니다.

 

 그는 강단에 서자마자 곧바로 마태복음 25 31절부터40절까지를 읽어 내려갔습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그 구절은 누가 양이고누가 염소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스티펙 목사가 성경을 읽는 동안 교인들 중엔 흐느껴 울면서 회개하는 사람들이 속출했고 부끄러움에 고개를 떨구는 교인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스티펙 목사는 이날 오전주일 예배 직전에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교인들에게 말하면서, “저는 오늘 아침 교인들이 모이는 것을 봤습니다하지만 오늘 우리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아니었습니다세상에는 교회들도 많고 교인들도 많습니다그러나 제자들과 제자들이 모이는 교회는 부족합니다여러분들은 언제 예수의 제자가 될 것입니까?”라고 물으면서, “우리 교인들은 매주 (주일예배한 시간만 하나님을 섬기기 원하는 것 같습니다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아닙니다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당신이 믿는 것 이상입니다그것은 이웃과 함께 그리고 옆에서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라는 말씀으로 첫 부임설교를 했습니다이것이 교인수가 1만명이 넘는 대형교회에 예레미야 스티펙 목사 가 노숙자가 되어 부임한 이야기입니다.  < 인터넷에서 퍼옴: 노숙자 목사 >

 

윌리 라일 목사 = 교회 부임하기 5일 전, 교회옆 나무 옆에서 수염을 길게 기르고 낡은 옷차림의 노숙자로 5일동안 살았습니다. 5일동안 노숙자에게 친절을 베풀어준 성도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10퍼센트 채 되지 않는 사람들이 약간의 도움을 주었을 뿐입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는 너무나 선명합니다.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맙시다!

 

그럼에도 우리가 사람을 차별해서 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람을 외모로 보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외모로 차별하는 구체적인 예)

2)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

부자와 권력자는 모두에게 주목을 받고 환대를 받고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반면 가난한 자는 냉대를 받고 거기 서있든지(저 멀리 있어라, 들어오지 마라)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발등상은 발을 올리는 발판인데,

발등상앞에 앉으라는 말은 자리가 아닌 바닥에 앉으라는 말입니다.

 

사람의 외모를 보는 것은, 니가 어떤 사람인가?

사람의 외모를 중요시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외적조건에 관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외모와 외적 조건을 중요시하고 관심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가?

니가 어떤 사람인가? = 내가 어떤 사람인가?는 같은 것입니다.

) 부목사 김창태

그래서 사람을 외모로 차별하는 문제는 결국 내가 어떤 사람인가?

내가 외모를 보는 사람인가? 중심을 보는 사람인가?

이 두가지 질문에 나의 중심이 어떠한가?라는 중요한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기에,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것을 위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지금 우리의 중심에 무엇이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중심에 무엇이 있을까요?

 

첫째, 믿음입니다.(1)

1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우리가 무엇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믿음! 이것이 바로 우리가 가진 믿음입니다.

 

로마서 3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우리가 구원받을 때, 남녀노소 세상에서 말하는 높고 낮은 부유함 가난함,

잘남과 못남에 따라 순위를 매겨서 구원받은 것 아닙니다.

어릴 때부터 우리가 그렇게도 불렀던 돈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힘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거듭나면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믿음으로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벼슬로도 지식으로도 못가는 나라~!

높은 지위와 권력을 가진 사람,

많이 배운 학벌이 좋아야지만 갈 수 있는 곳이 하나님 나라가 아닙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그 믿음의 특징이 차별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누구에게도 차별이 없는 공평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중심에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공평하신 하나님, 차별이 없으신 하나님을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내가 차별이 없이 구원받고 은혜받고 사랑받고 살고 있으니,

나도 사람을 대할 때 차별없이 사람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악한 생각입니다.(4)

우리의 중심에 하나님은 믿음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믿음 안에 변해가야할 나!

여전히 나를 흔들고 있는 악한 생각이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악한 생각은 판단입니다.

차별하는 자는 판단하는 자와 같다고 합니다.

야고보서에서 판단하는 것,

아니 전체 성경에서 판단하는 것은 아주 경계해야 할 행동입니다.

왜냐하면 오직 판단하시는 분은 하나님 한 분 뿐이기 때문입니다.

즉 내가 사람을 보고 판단한다는 것은 내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하나님처럼

재판하는 판결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차별한다고 할 때, 기준이 내가 되고

나보다 높은가 낮은가

강한가 약한가

부자인가 가난한가를 판단하고
나보다 낮고 약하고 가난하면 내가 그 사람에게 함부로 대하게 됩니다.

 

우리의 중심에 하나님께서 믿음을 심으셨다면

이제 내 마음에 남아있는 악한 생각을 없애야 합니다.

악한 생각은 사람을 판단하고, 판단함으로 차별을 하게 합니다.

 

 

셋째, 이웃 사랑입입니다.(8)

이웃 사랑은 차별의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큰 열쇠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하나님의 법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셨음이라.

 

우리의 중심에 믿음이 있으면 생명의 성령의 법이 오셔서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최고의 법을 따르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최고의 법은 무엇일까요?

 

8절입니다.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최고의 법은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차별하지 말라는 분명한 주제 속에 이웃 사랑에 대한 강조를 하시는 것?
이웃 사랑에 힘쓰는 것은 차별에 대한 문제를 풀 수 있는 최선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차별은 하나님의 최고의 법인 이웃 사랑을 방해합니다.

차별은 예수님이 하신 일들을 따라가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가 정말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있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본,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들을 위로하시고 병든 자들을 고쳐주시고

주릴 때에 먹여주신 분이십니다.

죄인들이라고 차별받던 세리와 창기를 차별없이 대해주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 중에는 왕족들도 귀족들도, 종교지도자들도, 부자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동일하게 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차별없는 하나님 나라를 차별없는 교회를 통해 보여주기 원하십니다.

교회는 누구에게나 열려있어 환영받고 사랑받고 관심받는 곳이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