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야고보서1:22~27 거울을 보는 이유 본문
일시 : 2021년 7월 7일 수요예배
제목 : 거울을 보는 이유
설교 : 김창태 목사
말씀 : 약 1:22~27
22절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23절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24절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25절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26절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27절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란 중에 돌보고 또 자 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도입>
집을 나서기 전에 누구나 꼭 한번 이상은 보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거울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씻을 때, 옷을 입을 때, 머리 만질 때, 화장할 때,
집에서 나갈 때, 운전할 때, 식사한 후, 이빨을 보면서 등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거울을 참 많이 봅니다.
여러분은 거울을 왜 보십니까?
거울을 본다는 말에는 이런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 모습을 보고 잘못된 것을 고친다”
그래서 머리나 얼굴, 옷 매무새가 정리가 되지 않은 사람에게
‘거울은 봤어요?“ ”거울 한번 보세요“라고 합니다.
거울을 보고 오셨습니까? 거울을 봤는데,
이상한 내 모습을 보고 고치지 않고 오신 분 계십니까?
누구나 거울을 보면 자신의 모습을 고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울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거울을 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 모습을 보고 고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듣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내 모습을 고치는 것입니다.
거울을 보고 자신의 모습을 고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말씀을 보고 듣고 자신의 모습을 고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보고 들었을 때, 두가지 유형의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24절 보십시오.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즉 말씀을 보고 듣고도 잊어버리는 사람.
두 번째는 25절입니다.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여기서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은 말씀을 말합니다.
말씀을 보고 듣고 실천하는 자입니다.
말씀을 보고 들었을 때,
잊어버리는 사람이 있고, 반면 실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은 야고보서의 중요한 주제입니다.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으면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된다고 합니다.
야고보서 2장 17절에
이와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설교를 참 많이 들을 수 있는 시대입니다.
우리 교회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교회에서 선포되는 설교를
언제든지 원하면 들을 수 있는 시대입니다.
인터넷에만 들어가도 세계적인 설교가의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다.
참 감사한 일이죠?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설교를 들을 수 있는 환경은 더욱 좋아졌습니다.
예전에는 라디오로 TV로 보다가 컴퓨터로 발전하다
이제는 이 작은 핸드폰에서도 언제든지 들고 다니면서
이동하면서도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다.
말씀이 들려지면 자신의 모습이 비치고, 자기의 연약함이 드러나기 시작하고
눈물이 쏟아지기도 하고, 부끄러움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마치 하나님의 영광에 압도당한 이사야 6장의 이사야처럼,
‘화로다 망하게 되었도다“라고 하면서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삶이 말씀 앞에서 노출되고 내 연약함으로 탄식이 나옵니다.
그러면서 말씀 앞에 반응하기 시작합니다.
이대로 살면 알되고 다르게 살아야겠다는 결단,
그리고 말씀대로 살려는 의지가 생깁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실천하면서 삽니다.
그런데 문제는 듣는 것으로만 끝날 때입니다.
왜 듣는 것으로 끝날까요? 잊어버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설교를 들을 때 감동이 오고 깨달음이 오기도 하는데 금방 잊어버립니다.
듣는 것으로만 끝나고 잊어버리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예배당의 자리 배치를 보십시오.
여기 설교단이 있습니다.
성도님들은 저쪽에 있습니다.
설교자는 외치고 성도들은 듣습니다.
이것으로 끝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말씀에 대한 반응으로 교회 밖으로 삶의 현장으로 말씀을 잘 기억해서 가지고 가서
그 자리에서 말씀대로 행할 때, 그 때 말씀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말씀의 시간이 듣는 시간만 있습니다.
그러면 듣는 것만 즐기는 자가 됩니다.
마치 교회에 오는 것이 운동경기가 열리는 운동장에 가는 관객 같아집니다.
콘서트 장, 음악회 하는 것처럼.
이것은 설교뿐만 아니라 찬양, 기도 모든 것이 다 포함됩니다.
성도들이 듣기만 하면 결국 설교자나 찬양인도자,
기도 및 예배와 교회의 직분자들에게 대한 관객이 됩니다.
그래서 목사가 얼마나 설교를 잘 하나?
찬양인도자가 얼마나 찬양을 영감있게, 부드럽게, 인도하는가?
기도하는 장로님들, 집사님들, 권사님들은 얼마나 기도를 잘 준비해서 잘 하는가?
그래서 잘하면 설교 잘한다. 찬양 잘 한다. 기도 잘 한다.
그러면서 같이 뛸 생각은 안하고 관객, 관중으로 보려고만 합니다.
왜 말씀을 잊어버리게 할까요?
우리를 관객으로 관중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하나님 나라와 무관하게 살려고 하기 위해서입니다.
말씀을 잊지 않고 듣고 행하면 어떤 일 있을까요?
25절 마지막을 보십시오. “ ~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예! 말씀을 행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복을 내리신다고 합니다.
1. 말씀을 듣고 행하면 예수님과 한 가족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하실 때,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동생들이 찾아왔습니다.
그 때 누군가가 예수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왔다고 하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8장 21절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
나의 소속, 교회에 몸이 있는 것으로 만족하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 모친과 동생들을 앞에 두고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사실 어머니 마리와 동생들에게는 충격적인 것입니다.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자족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던져줍니다.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방법은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임을 알려줍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만,
그 믿음은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즉 믿음이 행함이라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예) 전우애 그 끈끈함
2.말씀을 듣고 행하면 자유를 얻습니다.
25절을 보십시오.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라고 합니다.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말합니다. 특히 복음 으로 말하면 됩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에 눌려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율법에 사로잡한 사람들은 힘이 듭니다.
무언가를 행하는 것이 어렵고 눈치를 보며 말씀을 들을 때마다 짐이 됩니다.
그래서 자유가 없이 눈치 보며 신앙생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연히 신앙생활에도 즐거움이 사라집니다.
당연히 우리의 삶에 기쁨을 주시고 풍성케 하고 행복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말씀.
그 말씀을 주시는 하나님의 진심을 알지 못합니다.
복음의 능력은 은혜를 체험하게 합니다.
은혜를 체험하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고 싶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했더니 내가 생각지 않았던 놀라운 결과가 일어납니다.
비로소 아! 이거구나~ . 순종하면서 하나님의 뜻하신 바를 온전히 이해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말씀의 즐거움, 생동력이 생기고 신앙의 활력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가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그러면서 사람들 눈을 의식하고 늘 말씀대로 행하지 못함으로 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게 됩니다.
3.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26절을 보십시오. 함께 읽겠습니다.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 것이라.”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는 사람은 ‘거울을 보지 않고 난 아무 문제 없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즉 거울을 보지 않는 사람은 말씀을 보지 않고 듣지 않는 사람입니다. 또 자기 마음을 속이는 사람은 듣고도 행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의 경건은 헛 것이라고 합니다.
결국 아무 것도 남지 않는 삶. 헛된 것이라고 합니다.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는 사람과 반대의 개념이 27절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사는 인생. 즉 말씀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사는 인생은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고 고아와 과부를 그 환란 중에 돌봅니다.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는 인생이라고 합니다.
결국 세상 사람들이 사는 방식, 무너질 인생, 아무 것도 남지 않는 인생, 헛된 인생의 길이 아닙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의 인생은 무너지지 않는 인생입니다.
마태복음 7장 24절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니
25절 비가 내라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반석위에 집을 지은 사람 같아서 지은 집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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