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추도예배:부활의 주님과 함께 기뻐합시다(요한복음 11:23~26) 본문
오늘 우리는, 사랑하는 아버님의 추도예배를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추도(追悼)는 ‘죽은 사람을 생각하여 슬퍼하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반면 ‘예배(禮拜)’는 우리가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그 분을 기쁨과 전심으로 찬양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추도예배’는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고인을 생각하는 슬픈 마음으로 어떻게 기쁘게 주님을 찬양하고 예배할 수 있습니까?
상식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추도예배’는 확실히 석연치 않습니다.
하지만, 바로 슬픔과 기쁨이 공존하는 이 자리에 놀라운 기독교의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본문에서 우리는 슬픔에 빠진 가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사랑하는 오빠 나사로를 잃은 두 여동생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입니다.
이 두 자매를 더욱 슬프게 한 사실은 나사로가 죽기 전
그 사랑하는 오빠의 소식을 예수님께 알렸지만,
예수님은 나사로와 매우 절친한 사이였음에도 나사로가 죽기까지 그들을 찾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사망을 이기시고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모두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결국 나사로는 병으로 죽게 되었고, 죽은 지 나흘이 돼서야 예수님은 나사로를 찾아오셨습니다.
죽은 지 나흘이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이제 육신에서는 썩은 냄새가 진동을 하고 더 이상 살아날 소망이 전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모두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날 수 없다고 생각할 때 예수님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모두가 끝이라고 생각할 때 예수님은 새로운 시작을 보여주기 위해 그들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죽었던 나사로를 부활의 능력으로 다시 살려주십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신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예수님을 믿는 모든 이들마다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는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추도예배’를 드리는 것,
즉 슬픔의 자리에서 기쁨을 선포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에서 죽음은 결코 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시작하는 출발점인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습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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