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창3:1~7 죄의 통로를 막아라 본문
낙타의 코를 주의하라!" 중동의 우화.
"주인님, 밖이 좀 추워지는데 코가 많이 시립니다.
콧잔등이라도 좀 천막안에 넣게 해 주십시오."
그러자 주인이 좋다 하고 허락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이제는 얼굴을 쏙 하고 넣으면서
귀가 시려서 죄송합니다하고 얼굴이 들어왔습니다.
주인이 괜찮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조금 후에 앞다리를 쑥 하고 넣으면서
"주인님 다리를 굽혀서 있으니까 다리가 저려옵 니다.
앞다리 만이라도 천막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
주인이 어쩔 수 없이 허락했습니다.
여기서 말씀드리자면 천막은
주인과 낙타를 함께 수용할 만한 크기가 안됩니다.
잠시 후에 낙타가 천막 안으로 완전히 들어오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제 몸 때문에 천막이 들쳐져 있으니까
찬바람이 안으로 자꾸 들어옵니다.
차라리 안에 들어가겠습니다."
주인과 낙타가 함께 있기는 좁습니다.
낙타가 들어와 있으니 이제는 주인이 자꾸만 밖으로 밀려나서
결국 낙타는 천막 안에 주인은 천막 밖으로 밀려나고 말았습니다.
마치 죄가 들어오는 것도 이렇게 서서히 우리를 무너뜨려갑니다.
'죄의 통로를 막아라!"는 제목으로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죄는 말씀을 가볍게 여길 때 들어옵니다.
뱀, 즉 사단이 여자를 유혹하며 이렇게 묻습니다.
1절입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에게 한 사단의 이 말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차이가 크게 납니다.
선악과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은 2:16에 있습니다.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말라!"
사단의 말에 '모든 나무'를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선악과만 제외하고
모든 나무의 열매를 마음껏 먹으라고 허락했습니다.
말씀을 말씀대로 말하지 않고
왠지 하나님에게 나쁜 이미지를 씌웁니다.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협박하는 하나님!
폭군 이미지를 심어놓습니다.
그런 사단의 말에 여자가 반응을 합니다,
3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여자는 '하나님의 말씀에'라고 합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말씀을 깊이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합니다.
하지만 여자의 말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에는 만지지도 말라는 말이 없습니다 .
둘째, 선악과를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하셨는데,
'여자는 죽을까' 하노라 라고 합니다.
여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겼습니다,
여자는 듣기만 하고
깊이 있는 묵상이 없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말씀을 듣기는 들었으나
자기 마음대로 해석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말씀을 가벼이 여기고 깊이 있게 묵상을 하지 않을 때,
자기가 원하는 대로 말씀을 해석하게 되어
죄가 들어오는 통로가 되고 맙니다.
둘째, 죄는 선하신 하나님을 의심할 때 들어옵니다.
말씀을 가벼이 여기면, 의심을 하게 됩니다.
무엇을 의심하게 될까요?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게 됩니다.
여자와 사단의 대화 속에서, 중요한 주제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왜 선악과를 먹지 못하게 하셨는가?" 입니다.
이 주제에 대해 사단은 여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먼저, 선악과를 먹어도 결코 죽지 않는다.
그리고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된다.
이 말을 들으면 여자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으니까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했구나
먹으면 죽는다고 하셨구나!"
이렇게 선하신 하나님을 의심하고 오해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는 순간, 죄의 통로가 열리게 됩니다.
왜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먹지 못하게 하셨을까요?
분명하게 밝혀져 있지 않지만, 선악과를 먹은 후, 결과를 보면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뜻이 선함을 알 수 있습니다.
선악과를 먹은 후, 아담과 하와는 어떻게 변합니까?
7절에 서로의 벗은 몸을 보고 부끄러워 합니다. 성적 수치심을 느낍니다 .
8절에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피합니다.
그리고 책임전가 합니다. 결코 좋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목숨까지도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내어주심을 봐도 하나님은 좋으신 분입니다.
떡을 달라고 하는데 돌을 줄 아버지가 아닙니다.
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뱀을 줄 아버지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셋째, 죄는 눈에 보이는 대로 살 때, 들어옵니다.
6절.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하다고 합니다.
선악과는 동산의 중앙에 있었습니다.
선악과는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약속을
생각나게 하는 장치였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가벼이 여기고 선하신 하나님을 의심하면,
말씀과 약속은 생각나지 않고,
그동안 보고 또 보고 또 보았던 선악과에 대해서
정욕이 가득한 마음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먹음직, 보암직,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움.
말씀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대로 살면 실패합니다.
아브라함와 조카 롯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눈에 보기에 좋은 땅을 선택했던 롯은 결국 실패합니다.
반면 보이는대로가 아닌 하나님의 약속대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긴 아브라함은 성공합니다.
사단은 광명한 천사로 나타납니다.
눈을 즐겁게 하는 것들, 육체의 즐거움만 따르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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