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빌1:3~11 은혜에 참여한 자 본문
교회는 목사만큼 행복하다.
목사가 행복해야 성도가 행복하고,
목사가 행복해야 교회가 성숙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목사가 교회를 생각하면 감사하고
교회를 위해 기도하면 기쁨이 넘치는 교회가 행복한 교회입니다.
교회를 생각하면 어깨를 짖누르는 부담감과
고민, 걱정, 염려가 가득한 교회는 어떨까요?
바울은 빌립보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했다고 합니다.
그뿐 아니라 빌립보 교회를 위해 많이 간구했는데
그가 간구할 때마다 항상 기쁨으로 간구했다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성도들을 생각할 때 하나님께 감사하고
목회자가 성도들을 위해 기도할 때 항상 기쁨으로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반대로 성도들도 목회자를 생각하고 기도할 때 감사와 기쁨이 넘친다면
참으로 복된 만남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목회자와 성도가 서로를 생각할 때 감사가 나오기에 앞서
‘저 사람은 어떻게 다루어야 하지?“
”이 일은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걱정부터 앞설 때가 있습니다.
기도할 때 역시 그렇습니다.
기도할 때, 기쁨이 넘치고 행복한 마음으로
기도를 마음껏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기에 너무나 힘든 상황이 올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목사만큼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빌립보교회는 행복한 교회였습니다.
목회자인 바울도 행복하고 성도들도 행복한 교회였습니다.
빌립보교회의 어떤 면이 그렇게 감사와 기쁨의 제목이 되었을까요?
바로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는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5절입니다.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그리고 6절에서는 복음을 위한 일을 “착한 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바울이 왜 그렇게 빌립보교회로 인해
감사하고 기뻐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참여”라고 하는 말 가운데 있습니다.
“복음을 위한 일”
“하나님께서 시작하시는 착한 일”을 바울은 감당하고 있습니다.
많은 동역자들이 바울을 도우고 있었지만
그래도 바울은 더 많은 동역자들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은 바울의 전도여행과
복음을 위해 수고하는 모든 일에 참여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 바랍니다.
성도들 중에는 소비자 성도와 생산자 성도가 있습니다.
소비자 성도는 오늘 말씀대로 하면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지 않는 성도입니다.
하지만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평가는 하는 성도들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근본적으로 아홉가지 잘 하는 것보다는
한가지 잘못하는 것을 잘 보는 존재들이라
소비자 성도의 입에서는 좋은 말이 잘 안 나옵니다.
교회의 여러 가지 사역 속에 얼마나 많은 수고와 땀과 눈물과
기도와 관심과 애정이 들어있는지 생각하지 않고
결과에 대해서 자기 주관대로 평가하고
그다지 좋은 말은 하지 않습니다.
참여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죠.
반면에 생산자 성도는 교회 사역의 생산적인 부분을 담당합니다.
교회에서 필요한, 복음을 위한 일들에 참여하는 성도들입니다.
생산자 성도들은 사역 속에 녹아들어
그 자리에서 수고하고 땀을 흘리고 눈물과 기도로 사역을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하여 일을 하십니다.
교회에는 많은 사역과 그 사역을 감당해 줄 많은 성도들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이 생각하시기에도 어떤 교회가 나을지 분명히 아실 것입니다.
소비자 성도보다 생산자 성도가 많은 교회가 낫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볼까요?
식당의 그 뜨거운 열기 가운데서 봉사를 해 보지 않고는
밥이 맛이 있네 없네 될 수 있으면 말씀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한여름 그 찜통같은 곳에서 땀 뻘뻘 흘리며
수고해서 식사를 준비했는데, 밥이 어떻네, 반찬이 어떻네!!!~
이건 아니죠! 교회의 작은 행사를 하나해도
소비자 성도들은 행사를 잘 했네 못했네 말을 합니다.
그런데 그 행사를 진행하기 위해 시간과 물질을 들여 준비했던
생산자 성도가 있음을 생각해 줘야겠죠.
교회에서 만들어 내는 인쇄물이 교회 여기저기 흘려져 있고
사람들이 밟고 다니는 그런 모습을 보면 마음이 좀 거시기 합니다.
잘 만들었든 못만들었든 그것을 만들기까지는 참 힘든 과정들이 있었는데
말이죠. 물론 소비자 성도들의 냉철한 평가를 들어서
좀 더 나은 사역을 해야 합니다.
생산자 성도들이 많아야 교회는 부흥합니다.
나라의 성장이 책상 위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닌 것처럼
교회의 부흥은 현장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봉사의 현장, 기도의 현장, 전도의 현장, 교사의 현장,
각종 사역의 현장에서 부흥의 시작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교회의 부흥은 현장에서 일어납니다.
그럼 빌립보교회는 어떤 방법으로 참여하는 교회였을까요?
첫째, 바울과 함께 은혜에 참여하는 교회였습니다.
계2장에서 주님은 버가모 교회 성도들이 안디바의 순교의 자리에서도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했다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복음을 위하여 바울이 핍박을 받으며 옥에 갇혔을 때,
빌립보교인들은 바울을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그 은혜의 일에 함께 참여한 것입니다.
그들이 바울과 함께 은헤의 일에 참여했다는 말은
바울이 어려움을 당할 때 바울을 배신하지 않고
오히려 위로해 주고 기도해 주며 바울이 필요로 하는 것을
챙겨 주므로 바울의 마음에 기쁨을 준 일을 말합니다.
그리고 은혜에 참여했다는 말은
바울이 복음을 위해 고난 받음을 자신들이 받는 것으로 알고
바울을 더욱 사랑했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당할 일을 바울이 당한다고 생각하면서
바울의 고난에 마음으로 동참하고 위로해 주었던 것입니다.
둘째,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하는 일에
바울과 함께 참여하는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이단에 대한 변론에 있어서,
핍박자의 핍박에 있어서, 반대자의 공격에 있어서
한결같이 바울 편에 서서 믿음에 동요되지 않고
바울과 함께 공동보조를 취하므로
빌립보 지방에 복음을 확정시켜 놓은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내 양은 내 음성을 듣고 나는 그들을 안다”고 하셨습니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해안가에 수천 마리의 팽귄이 제작기 소리를 내어도
어미를 기다리던 새끼들은 그 많은 펭귄 중에서
그 수다한 목소리를 구별하여 어미를 찾아가는 것처럼
목자의 음성은 진리이며 진실성이 있기 때문에
양들은 그 음성을 알아듣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주님의 양이 아닌 자는 결코 주님을 따르지 아니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목자의 음성을 따르지 않고 도적이나
이리의 음성을 잘못 듣고 따라가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그러나 빌립보교회 성도들은 바울이 들려준 복음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바울과 함께 변명함에 함께 확정한 것입니다.
셋째, 부족함을 채움으로 참여하는 교회였습니다.
15 빌립보 사람들아 !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예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16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 두 번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빌4:15-16)
빌립보 교회가 어떻게 바울 사도의 부족함을 채웠습니까?
사도 바울은 위대한 믿음의 용장이었습니다.
그러나 부족한 부분도 많았습니다.
신체적으로 많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몸에 가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몇 번을 기도해도 고쳐주시지 않는 병이 그를 괴롭혔습니다.
간질병이라고도 하고 안질이라고도 하는 그 병은
그가 약한 존재임을 늘 깨우쳐 주었습니다.
그는 경제적으로도 약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를 확고하게 지원하는 선교단체가 없었습니다.
성격적으로도 그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기독교 역사가 전해주는 대로 큰 일꾼이었기에
할 일도 많았고, 많은 사람들이 필요했습니다.
이런 바울 사도의 약함을 잘 아는 빌립보 교회는
그의 부족함을 채우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물질적인 부분이라고 생각되었을 때는 물질로 후원했습니다.
빌립보 교회의 신자들은 사도를 돕는 일에 앞장을 섰습니다.
하나님의 필요에 기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족함을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아담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함을 아시고
아담 곁에 여자를 처음 두셨습니다. 돕는 배필로 세우셨습니다.
아담의 부족함을 채우기 원하셨습니다.
모세가 언변이 약할 때, 아론을 돕는 자로 세우십니다.
바울이 건강이 약할 때, 의사 누가를 세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종들의 부족함을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이에 빌립보 교회 또한 부족함을 채워주는 교회였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필요를 찾아 이 땅에서 아름다운 사역을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죄 아래 있는 세상은 결핍으로 고통당하고 있습니다.
죄 아래 있는 사람 중 결핍으로 고통당하고 있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결핍으로 고통당하고 있지 않은 나라가 없습니다.
미국과 같은 나라도 영적, 정신적 결핍은 큽니다.
결핍으로 고통당하고 있지 않은 교회가 없습니다.
크고 작은 모든 교회가 이런 저런 일들로 늘 헉헉거립니다.
결핍으로 고통당하고 있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국가나 교회의 지도자들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남편이나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모든 교회나 사람들이 고통 가운데 쓰러지지는 않습니다.
부족함을 채워주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빌립보교회는 사도의 부족함을 채우는 바로 그런 교회였습니다.
17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과실이 번성하기를 구함이라
18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빌4:17-18)
이런 빌립보교회를 향한 바울의 마음이 오죽 하겠습니까?
7절을 보세요. 바울은 “너희가 내 마음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복음 사역에 있어서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바울과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같은 바울의 찬사는 빌립보교회에 대한
바울의 전적인 신뢰를 나타낸 말입니다.
8절을 보세요.
2.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증거한 바울의 사랑
8절에서 바울이 증거하는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바울의 진실한 사랑은 놀랍고 마음이 뭉클한 정도로 뜨거운 것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 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목자의 사랑은 여인의 사랑보다
오히려 한단계 더 높은 사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바울에게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이같은 사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자신의 사랑이 결코 거짓이 아니란 사실을
하나님이 내 증인이 되신다는 말로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바울의 사랑은 입으로 하는 사랑이 아니라
바울의 뜨거운 심장으로 하는 사랑인 것입니다.
바울의 심장은 그리스도의 심장을 심어 놓은 사랑의 심장이었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어떤 처지에 있었던지 자기를 저버리지 아니하고
고난에도 함께 참여해 주고 복음을 위한 일이라면
두손 걷어 참여해 주는 빌립보교회 성도들의 사랑을 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사랑이 바울의 심장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바울은 그리스도의 심장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이러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이 사랑을 받는 사람의 심장에 박히고
또 사랑을 주는 사람의 심장에 사랑을 해야 합니다.
결론 : 교회의 목자와 교인들 간에 사랑하는 마음,
사모하는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나타내시는 사랑하심과
사모하는 마음과 같이 간절하다면 그 교회는 참으로 복이 있는 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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