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빌3:17~21 나를 본 받으라 본문
나를 본받으라(빌립보서 3장 17절~21절)
사도 바울은 '나를 본받으라'라고 합니다.
여기 뿐 아니라 고린도전서 11:1에도 나를 본받으라고 합니다.
사실 나를 본받으라라고 말하는 것은 한국인의 정서에는 잘 맞지 않습니다.
한국인들은 나를 본받으라는 말을 들으면
교만하다고 생각을 할 수 도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나를 본받으라'고 할 때는
교만한 말이 아니라 다른 의도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옥 중에 있고,
밖에 있는 성도들을 향해 말씀을 전해 주고 있습니다.
옥중에 있는 바울은 오히려 빌립보 성도들을 걱정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사회적인 무질서와
신앙적으로는 이단들이 침투해서 교회를 어지럽히고 있었습니다.
이단들 뿐만 아니라 세상적인 풍조가 교회에 들어와서
교회를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그 때, 성도들을 염려하는 마음에서 나온 말이
'나를 본 받으라'라는 말입니다.
이리저리 우왕좌왕하고 있는 성도들,
믿음생활의 기초가 흔들리고 있는 성도들을 향해 '나를 본받으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는 '본'은 그리스도인의 기본적인 자세,
세상의 풍조에 믿음이 흔들리지 않기 위한 하나의 모범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나를 본받으라'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본받으라'로 연결합니다.
17절을 보시면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디모데, 에바브로디도 같은 사람들입니다.
빌립보 교회에 보낸 디모데, 에바브로디도 같은 사람들을
눈여겨 살펴보고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면 잘 하는지?
살펴보고 그들을 본받으라고 합니다.
그럼 본이 되는 성도들은 어떤 사람일까요?
1. 눈물의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회를 생각할 때, 걱정이 태산인 겁니다.
그렇게 걱정하는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말씀이 18절입니다.
18절 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여러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리라."
빌립보서의 별명이 있는데 '기쁨의 서신'입니다.
우리가 알기에는 기쁨의 서신이라고 하는데,
사실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를 쓸 때는 '눈물의 서신'입니다.
기뻐하라 기뻐하라는 말이 참 많이 나오지만 빌립보서를 볼때,
우리는 먼저 사도 바울의 눈물을 보아야 합니다.
눈물의 사람 사도 바울의 간절한 소망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분열되지 않으며 함께 건강한 교회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이 소망 때문에 눈물로 밤을 지새우는 것입니다.
눈물로 말하는 것입니다.
눈물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물론 연기자들이 흘리는 가짜 눈물도 있죠?
눈물흘리려고 감정잡으면 금방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하고 흐르죠.
그런 연기자들의 눈물 말고, 진짜 눈물 말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아끼기 때문에, 소중하기 때문에 생각할 때마다
눈물을 흘리며 애타게 기도하는 모습, 그 모습을 본받아야 합니다.
전에 사역했던 한 교회 건물안에 유명한 자리가 하나 있어요.
교회 지하에 있는 한 교육부서실, 한 구석이에요.
그 자리는 한 권사님이 평생을 철야하며 기도하던 자리에요.
교회와 목회자와 성도들을 위해 눈물로 밤을 지새우며 기도하던 자리에요.
성도들은 그 자리를 참 소중하게 생각했어요.
그 자리에 앉아 기도하면 저절로 기도가 그렇게 잘 된대요.
그 자리에 앉아서 기도하면 그렇게 기도응답이 잘 된대요.
보통 기도가 쌓인 자리라고 하죠.
우리 거제호산나교회에도 그런 자리가 있으면 좋겠네요.
물론 잘못 받아들이면 미신같은 이야기가 될 수도 있죠.
하지만 그 권사님께서 돌아가신 후,
또 다른 누군가가 그 자리에서 기도를 이어받아
눈물로 기도하며 밤을 지새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눈물의 사람의 눈물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나가십니다.
왜 눈물이 날까요?
사도 바울은 왜 눈물로 말할까요? 18절을 계속 봅시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믿음생활이 많이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심하게는 빌립보 성도들 중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교회는 분명히 예수님의 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성령님께서 하나되게 하신 교회입니다.
그런데 그런 교회안에 이상하게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가 있다고 합니다.
그로 인해 분열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사도 바울은 날마다 눈물로 밤을 지새우는 겁니다.
그러면서 눈물로 기도하고 눈물로 편지를 써내려 갔습니다.
문제 없는 교회가 없습니다.
약점 없는 교회가 없습니다.
아픔 없는 교회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충분히 덮을 수 있는 눈물의 사람,
눈물의 기도가 쌓이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의 아픔, 문제를 찾아내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그 문제외 아픔에 눈물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
기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 거제 호산나교회 성도들은
좀더 어려운 일을 잘 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거제 호산나교회는
그리스도와 진정 연합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십자가의 길을 교회와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을 위해 여러분의 눈물이 필요합니다.
눈물의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교회는 '나'가 아닌 '우리'입니다.
여러분은 교회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아픔은 여러분의 아픔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교회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서도 눈물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심판받을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면서 우셨습니다.
예수님은 목자없은 양같은 사람들을 보면서 우셨습니다.
사망의 권세 아래, 가난하고 힘들고 고통받은 자들을 보시고 우셨습니다.
교회는 세상을 향해 울어야 합니다.
성도는 세상을 향해 울어야 합니다.
간절한 눈물로 외쳐야 합니다.
교회가 눈물이 메마르면 세상을 감동시킬 수 없습니다.
세상의 아픔에 눈물로 위로해 주고 세상을 구제하고
힘을 주고 희망 주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눈물의 성도들이 되어 세상을 감동케 합시다.
2. 나눔의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19절에 밝혀 줍니다.
19절입니다.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먼저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사람의 끝은 멸망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멸망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들의 신이 '배'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배'를 하나님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배를 채우는 것을 최상의 목적으로 삼은 사람들입니다.
즐기고 먹고 마시는 것에 최우선 목표를 두는 사람들입니다.
자연히 하나님은 다음입니다.
예수님도 다음입니다.
예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고 영광돌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 예수님은 세컨드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첫 번째인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먹고 사는 문제를 위해서 예수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의 반응이 무엇이었습니까?
물고기 두마리와 떡 다섯개로 남자만 오천명이 먹고
남은 광주리가 12광주리였습니다.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때 사람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삼는 것 좋은 것 아닌가요?
예수님은 우리의 왕이시잖아요.
하지만 그들이 왕으로 삼으려고 한 것은 그들의 '배'였습니다.
1순위 '배'를 채우기 위한 목적으로
예수님을 1순위 같은 2순위 왕으로 세워놓고
자신들의 배를 채우려 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자리를 얼른 떠나십니다.
하나님 지금 제 배가 고파요.
이런 일, 저런 일로 제 배가 고프니까 제 배를 채워주세요.
이것이 오늘날 성도들의 기도입니다.
번영신학, 형통복음의 위험은
예수님이 떠나버린 오병이어 들판의 사람들을 만들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왕이라고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떠나버렸습니다.
예수님이 안 계시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없는 교회,
예수님이 없는 신앙,
예수님이 없는 가정,
예수님이 없는 자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예수님을 내 삶을 도와주는 '조수' 정도,
영화,드라마,연극의 주인공은 '나'요,
예수님은 '조연' 이 되면 안됩니다.
내 삶의 주인공은 예수님이요 내가 조연이 되면 됩니다.
조연이 아니라도 좋아요.
엑스트라라도 좋아요.
내 삶을 예수님께 맡기니
예수님으로 내 삶을 채워나가는 사람을 하나님이 찾으십니다.
로마제국의 멸망을 가속화 시켰던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사람들이 매일 먹는 일로 소일했습니다.
매일 연회를 베풀고 먹고 마시고 즐기는 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실컷 배불리 먹고 약먹고 토하고 속을 다 비우고 나면
다시 먹고 약먹고 토하고 다시 먹고 약먹고 토하고 이렇게 합니다.
그래서 로마의 하수구가 파란색이 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역사학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로마의 멸망은 하수구의 파란색에서 나왔다."
먹고 마시는 일에 집중하는 세상의 풍조, 그런 모습을 보면서 부러워하고
그렇게 살고 싶다고 하는 풍조. 그런 모습을 부러워하는 교회의 성도들.
그것이 사도 바울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눈물을 흘리게 했습니다.
자기의 '배'를 자신들의 신으로 삼은 자들이 어떤 사람들이냐하면,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다'고 합니다.
분명히 부끄러운 일인데 그것을 영광으로 착각하고
자랑스러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여기 한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의 배를 채우는데만 관심이 있어요.
욕심이 가득해서 자기만 알아요.
자기만 잘 되면 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배신도 많이 하고, 자신의 성공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밟고 일어서는 이기적인 사람이에요.
당연히 가난한 사람들,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 봐도 마음에 미동도 하지 않는 사람에요.
사회적으로, 세상적으로 뭔가 가진게 많은 사람이지만
전혀 세상에 나눔이라는 것은 없어요.
이런 사람을 보면서 사람들은 손가락질 해요.
분명히 좋은 것이 아니에요. 부끄러운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을 부러워해요.
성도들도 그런 사람을 부러워해요.
그런 사람처럼 되고 싶어해요.
그런 사람들처럼 한번이라도 살아봤으면 좋겠다고 해요.
어떻게 하면 부자 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자신의 배를 든든히 채울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서
나는 이만큼 든든한 부자가 되었다고 하면서 아무 걱정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은근히 자랑합니다. 나는 집이 두채야, 세채야,
나는 차가 몇대야 나는 이런 비싼 차를 가졌어.
성도들끼리 모였을 때, 가진 것을 자랑하지 마십시오.
성도들의 자랑은 그것이 아닙니다.
집이 없어 고통받는 사람들이 이 땅에 얼마나 많은데,
먹고 살 한끼 걱정 때문에 죽어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자기 배가 부르다고 자랑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입니다.
성도들이 자랑할 것은 얼마나 가졌나보다 얼마나 나누었는가입니다.
가난한 자들, 굶주린 자들, 고통받는 자들, 우는 자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떼어 나눠주고 살리는 삶, 그것이 자랑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받는 축복을 유통하는 삶이 진정 자랑할 것입니다.
왜 쌓기만 하고 나누지는 않을까요?
십자가와 원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와 원수가 되었다는 말은
십자가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서
겉으로는 신앙생활, 교회생활을 하니까 그런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는 사람은 자신의 배를 위해 살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는 사람은 고아와 과부의 친구가 됩니다.
나누고 섬기는 삶을 삽니다.
고아와 과부, 가난한 자들, 고통받는 자들, 약자들, 소자들 속에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멸시당하는 죄인들의 친구요 무시당하는 과부들의 신랑이요
버림받은 고아들의 아버지입니다.
그러므로 나눔의 사람이 되십시오.
자신의 배만 채우기 위해 사는 인생이 되지 말고
남의 배를 채우는 삶을 가장 큰 자랑거리로 여기며 사는 나눔의 사람이 되십시오.
3.하늘의 사람입니다.
본이 되는 성도 세번째는 하늘의 사람입니다.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는 믿음의 눈을 뜬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오늘 말씀에 따르면 사람은 두 종류의 사람으로 분류됩니다.
땅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19절)과 하늘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두 종류의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생각입니다.
생각의 중심을 땅에 두고 있느냐?
하늘에 두고 있느냐?의 차이입니다.
성도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우리의 시민권은 어디에 있다고 했습니까? 하늘에 있습니다.
하늘에 시민권을 두고 있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요?
20절에 무엇이라고 되어 있습니까?
구원하는 자! 우리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린다고 합니다.
기다린다는 말은 그냥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학수고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즘 전세계적으로 인기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케이팝 그룹이 있습니다.
방탄소년단 아시죠? 우리 나라도 아니고 미국에서 콘서트를 하는데
몇일 전부터 텐트를 치고 기다린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기다리는 미국인 팬들의 얼굴이 너무 밝은 거에요.
비록 야외에서 몇일을 보냈기 때문에 조금 피곤해 보이기는 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방탄소년단을 볼 수 있다는 것 때문에
기분이 정말 좋아보였습니다.
간절히 콘서트만 기다리는 모습이었습니다.
아닌 것 처럼 앉아있지만 여러분도 다 청소년 시절을 보냈고
좋아하는 가수들이 있었고 좋아하는 연예인이 있었죠?
팬클럽 활동을 한 분도 계실 거에요.
학수고대라는 말을 이 때 씁니다.
정말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본이 되는 성도는
예수님을 생각의 중심에 두고
간절한 마음으로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필수적으로 변화가 일어납니다.
2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결국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우리의 몸은 예수님과 같이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을 입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이런 영광스러운 변화가 꼭 부활 때에 일어날 일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하늘의 사람이 된 사람들은 생각의 변화를 경험하고
몸의 변화를 경험하며, 환경의 변화를 경헙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변화를 위해 여러분의 생각을 세상의 복잡 다단한 일들로 채우지 마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생각과 관심으로 다시 정리를 해 보시기 바랍니다.
리스트를 한번 작성해 보십시오.
하늘의 일과 땅의 일 두가지로 나누고
하늘의 일 중에서 우선순위를 매겨 보십시오.
땅의 일 중에서 하나님께서 좋아하실 일과 싫어하실 일로 나누어 보시고,
하나님께서 좋아하실 일은 열심히 하시고, 싫어하실 일은 과감히 정리해 보시기 바랍니다.
요즘 한창 은혜를 받고 있는 한 성도님을 최근 심방을 했습니다.
조그만한 꽃가게를 운영하시는데 최근에 갔더니
가게내부가 뭔가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있고 또 넓어진 겁니다.
그래서 얘기를 했더니 예전에 물건들로 가득차 있던 방을 정리하고
그 안에 테이블과 의자를 놓고 누구든지 와서 쉴 수 있는 쉼터를 만들어 놓은 겁니다.
그래서 거기서 성경공부도 하고, 교회에서 모임을 할 수 있도록 언제든지 내어주고,
구역모임도 하고, 신앙적인 친교모임이 되도록 정리를 다 해놓으셨어요.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요즘 너무 행복하다고 합니다.
요즘 워낙 경기가 어렵고 이분이 마음이 참 착해서
나쁜 사람들에게 몇번이나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 변화가 없다 할지라도
마음 속에 예수님이 계심을 확실히 알게 되니까
너무 행복하고 감사한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자기 가게를 멋지게 바꾸신 거에요.
늘 땅의 일에 고민하고 땅의 일이 잘 안된다고 걱정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하늘의 사람이 되어
예수님 때문에 행복하고 감사하고 예수님께 무엇인가 하고 싶어서
자신의 가게를 변화시킨 것 이것이 하늘의 사람입니다.
가게의 변화은 결국 예수님을 중심으로 해서 생각이 변화된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사도 바울은 나와 우리를 본받으라고 합니다.
즉 교회와 성도들은 사람들에게 본이 되어
나를 본받으라고 외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눈물의 사람이 됩시다.
나눔의 사람이 됩시다.
하늘의 사람이 됩시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찾으십니다.
우리의 모델은 예수님이십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님을 참 많이 닮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이고 닮은 사람입니다.
세상에 예수님을 보여줍시다.
그리고 예수님처럼 살자고 합시다.
그 말이 곧 나를 본받으라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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