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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유다서 1:20 성령으로 기도하라 본문

신약/유다서 완료

유다서 1:20 성령으로 기도하라

행복으로초대 2022. 11. 17. 06:00

여러분! 성령으로 기도하시죠?
당연한 것을 왜 묻느냐? 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성령으로 기도하라고 할 때, 느낌은 알겠는데 실제로는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령으로 기도하라!

첫번째는 '기도하라!'입니다.

기도는 자신의 연약함, 부족함, 불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살아 갈 수 없는 사람임을 인정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자가 되십시오.

하나님 앞에 바짝 엎드리는 성도들이 됩시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없이 살아가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자기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말은 하나님의 나의 능력이며, 나의 힘이시라고 하시만

기도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인데 기도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이라... 

참 희한하죠?

기도하지 않는다는 말은, 

 "나는 힘이 있습니다. 나는 능력이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 없습니다. 내 인생 탄탄대로입니다.

거칠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잘 됩니다.

만사형통이 제 삶입니다.

그래서 굳이 기도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도 모든 것이 잘 된다고 하며

기도하기를 소홀히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말만 이렇게 안했지 사실은 몸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교만한 사람이 됩니다. 

교만은 곧 패망의 선봉입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은

물밖에도 살수 있다고 하는 물고기와 같습니다.

나무에서 떨어져 나간 가지와 같습니다.

하나님 없이 살수 있다는 사람,

물밖에서도 살수 있다고 하는 물고기,

나무에서 떨어져 나간 가지,

이 3가지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잠깐'이라는 시간입니다.

예! 잠깐 동안은 물고기도 가지도 살아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결국 죽고 맙니다.
물 밖에서는 죽을 수 밖에 없는 물고기같은 우리 입니다.
나무에서 떨어져 나가서는 잠깐 살아있는듯 하나
곧 시들어 말라 비틀어지는 가지와 같은 우리 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하나님께 가지고 나와 기도하십시오."

기도의 좋은 습관이 정말 중요합니다. 

사람은 습관에 따라 살아가는 존재이니까

만들기 힘들어서 그렇지

좋은 기도의 습관이 형성되기만 하면 기도가 쉬워집니다. 

정해진 기도의 시간, 정해진 기도의 장소,

정해진 기도의 제목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기도특공대에 함께 하시고, 

자신만의 기도의 좋은 습관을 만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기도하면서 성령충만을 간절히 갈망하십시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마음 속에 성령님께서 분명히 계시지만 

우리 편에서는 성령충만을 간절히 구하며 갈망하십시오. 

성령충만한 삶은 뒤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는 기도하지 않는 성도님들께 향한 말씀이라면

이제는 기도하는 성도님들께 하는 말입니다. 

오늘 이 곳에 계신 거의 모든 분들에게 해당되겠죠? 

두번째, "성령으로 기도하라" 성령으로 기도하십시오. 

 

성령으로 기도하는 것

첫번째도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로마서8장 26절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해 주신다고 합니다. 

 

기도할 때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을 깨닫게 됩니다. 

기도할 때 우리는 우리의 죄인됨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못하도록 막는 그것을!

뛰어넘지 못하는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대로 

"너희가 한 시 동안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말씀하신대로 기도하며 깨어있지 못하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한없이 연약함을 인정하고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님의 도움으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손에 잡을 힘을 주신 것은

하나님을 꼭~~~ 붙잡으라고 주신 힘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도우시는 성령님의 손을 꼭 붙들어야

우리는 살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에서 기도 좀 한다는 많은 분들이

잘못된 기도의 모습을 보여줄 때가 많습니다.

기도 좀 한다고 하면 "40일 금식기도를 몇 번 했다.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가지고 있다.

뭔가 신비로운 체험을 했다.

기도하면서 환상을 본다.

계시를 받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신비주의에 빠지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성령으로 기도하는 것에 가장 큰 걸림돌은 

'나'입니다.

그리고 '나'를 하나님의 자리에 올리려는 

'교만'입니다.  

 

기도를 하면서 교만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기도하면 병이 낫는다.

내가 기도하면 예언이 터진다.

내가 기도하면 귀신이 떠나간다.

내가 기도하면 내가 기도하는대로 된다.

나는 말의 권세를 가진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이 이단들이죠.

이런 사람 안 만나봤습니까?

기도한다고 하면서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성도들이 그런 사람들을 잘 찾아갑니다.

 

정말 성령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겸손'해 집니다.

"허무량 장로님"의 기도 : 신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존경받는 장로님. 

어린 아이같은 말투의 기도 -매일 밤 3시간~4시간 이상씩 기도.

정말 성령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겸손'해 집니다.

  

왜 그럴까요? 두번째에서 알게 됩니다. 

 

성령으로 기도하는 것

두번째는 '하나님의 뜻에 주목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가장 잘 아는 분이 누구실까요? 성령님이십니다.

고린도전서 2장 10절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성령으로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왜냐하면 성령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의 방향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방향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할 때 우리의 시선이 하나님의 뜻에 주목해야 합니다.

기도는 내 뜻을 하나님께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 뜻에 나 자신을 맞추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하나님앞에 자신의 질병을 고쳐달라고 

목숨걸고 세 번이나 기도했는데, 세번 기도하고 나서야 

자신의 질병이 하나님의 뜻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성령으로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데 있어서 

 

한동안 제 둘째딸 고1인 하은이의 진로에 대해서

긴 기도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기도는 간단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주세요"

"네 감정, 네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이 우리 앞에 서게 해주세요."
몇 일동안 계속 이 기도만 했는데, 하나님께서 깊은 깨달음 속에 

다니엘1장8절 말씀을 강하게 계속 생각나게 해 주셨습니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다니엘이 뜻을 정했던 것처럼 

하은이가 뜻을 정했는데, 뜻을 정하고 하려고 하는 일을

반대하지 말고 찬성하고 따라주어라~~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 것처럼

뜻을 정한 하은이에게도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해주실 것이라는 

평안한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기도했습니다.

말씀에 대한 확증으로

이 결정에 동의하는 사람의 말을 듣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은이와 이 일에 대해서 얘기를 하는데

학교 선생님도 하은이의 생각이 좋다고 했다는 말을 듣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 얘기를 하은이에게 하니까,

좀 점치는 것 같은데,,,,하길래 제가 뭐라고 했을까요?

"하나님이 말씀달라는 아빠 기도에

다니엘이 아니라 요나를 보여줬으면 어떻게 할래?"

다니엘의 결정은 적극 찬성해야 하지만,

요나의 결정은 적극 반대해야 하잖아요.

성령으로 기도하는 것은

일상의 크거나 작거나 어떤 결정이든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입니다. 

단, 말씀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래서 성령충만은 말씀충만입니다. 

성령님이 응답하시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령으로, 또는 성령안에서 기도한다는 것은

성령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통해 우리를 다듬어 가시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를 다듬으신다는 것은

우리 마음 속에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기도제목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보통 기도의 초보 단계에서는

자신의 소원을 두고 자신의 말로 기도합니다. 

그래서 기도하라고 하면 10분도 너무 길죠?

그런데 기도의 초보를 벗어나 기도의 깊이가 더해 질 때가 언제냐하면,

자신의 소원을 넘어 하나님의 소원을 자신의 기도에 품을 때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다듬으실 때입니다. 

그 때 방언과 같은 기도의 은사가 나타날 때도 있지만,

여전히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소원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것이 기도의 목적입니다.  

성령으로 기도하는 것 세번째는

'하나님의 뜻이 흘러가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기도하라~!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라고 하면 얼른 무슨 생각이 나십니까?

어떤 영적 황홀경에 휩싸이거나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강력한 힘에 따라 움직이는 현상?

방언기도나 예언기도 같은 신비한 기도를 많이 생각합니다. 

기도와 성령이 합쳐지면 꼭 그래야만 할 것 같지 않습니까?

기도는 신비입니다. 그래서 신비로운 요소가 많고 

영적인 현상이나 기적이 많이 일어납니다.

성령님을 능력, 바람, 불, 비둘기 처럼 생각해서 그렇습니다. 

 

성령사역을 한다, 성령집회를 한다는 곳에서

보는 광경은 거의 비슷합니다. 

방언하고 예언하고 여기저기서 귀신을 쫓아내고

입신해서 누워있고, 여기저기 뒹굴고,

어떤 분들은 춤추고 있고, 어떤 분들은 뛰어다니고,

지난 제직연합회 부흥회 같더니만 기도하시는 분들 

흉내를 정말 잘 내시던데.....

 

저도 어떤 성령집회에 참석했던 적이 있는데

남들 다 쓰러지는데 제가 안쓰러지고 있으니까

저보고 "저기 앉아서 성령받기를 위해 더 기도하세요."

그러더라구요. 그렇게 말한 분이 여자 집사님이셨거든요.

그래도 목산데...내가 교만해서 그런가? 해서 

쓰러질까 말까 고민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말씀드리지만 성령의 은사 부인하는 것 아닙니다.

능력 부인하는 것 아닙니다.

성경은 방언받기를 사모하고 더 큰 은사 받기를 위해 기도하라고 합니다. 

기도하다 보면 나타나는 현상들입니다.

심지어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청년시절에 두란노 경배와 찬양학교라는 곳에 가서 기도하는 중에 

강한 힘 가운데 쓰러지기도 했습니다. 

누가 제 몸에 손을 댄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냥 강한 힘이 저를 쓰러지게 했습니다.

왜 쓰러졌을까요? 꿈보다 해몽이겠지만,

제가 그 때 하나님께 소명을 받고 있었는데 

제가 계속 소명을 거부하고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저의 다리를 치신 것이라고

한참 지난 후 그렇게 해석해 봤습니다. 해석이 괜찮나요? 

 

성령으로 기도하는데 이런 현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반드시 '왜'라는 질문에 답을 얻어야 합니다. 

왜? 방언하고 예언해야 하지?

왜? 넘어져야 하고 왜 입신하다고 누워있어야 하고

왜 기도하면서 춤추고 왜 뛰어다녀야 하지?

 

성령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주목하며

기도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령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흘려보내는 사람이 됩니다. 

 

갈라디아서 5장 16-17절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마지막에 "너희의 원하는 것"이

성령으로 기도해서 알게된 하나님의 뜻입니다. 

성도라면 누구나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이 기쁨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있습니다. 

육체의 소욕입니다. 그 육체의 소욕은 육체의 욕심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어도 육체의 욕심으로 

꽉 막혀 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령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성령의 소욕으로 사는 사람이며

성령의 소욕으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흘려보내는 사람이 됩니다. 

요한복음 7장 37절,38절
예수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성령으로 기도함으로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지 

기도하면 기대하며 기다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소원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위로, 회복이 필요한 사람이 누구인지,

또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필요한 곳이 어디인지, 

그를 위해, 또는 그곳을 위해

어떻게 그 목마름을 시원케 하는

냉수 한 그릇이 될 수 있을지 기도하게 됩니다.

흘려보내는 기도를 하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성령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고신대학교에서 교회사를 가르치시는

이상규 교수님의 설교 중에서 이런 내용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친구 중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수특전단 그 위험하고 빡센 군대에 자원입대를 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를 그 뒤에 알고 감격을 했다고 합니다.

이 친구가 다니던 교회에 종탑이 있었는데 

돈이 없어서 높이 종탑을 높이 세우지 못하고 땅에다 놓고 종을 쳤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교회의 종탑을 세우기 위해 

낙하산을 탈 때마다 생명수당을 받는 공수특전단에 자원입대했다는 것입니다. 

훗날 낙하산 탈때마다 받은 생명수당을 모아 교회에 송금하며

부족하지만 이 돈으로 종탑을 세워주십시오. 

온 교인들이 이 소식을 듣고 감동이 되어서 종탑 뿐만 아니라 

교회당까지 새로 더 크게 건축을 했다고 합니다. 

 

성령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사람들이나 하나님 나라의

'목마름'에 집중하고 그 목마름에 하나님의 뜻을 흘려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