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유다서 1:14~19 성령이 있는 사람 본문
에녹은 여러분이 잘 아는 하나님과 300년 동안 동행하다 죽지 않고 하나님께로 올라간 사람입니다. 그 에녹이 예언을 했다고 합니다. 예언의 내용이 14절~16절까지입니다. 그 예언의 첫 시작이 어떻게 시작됩니까? 14절 마지막을 보십시오.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 말씀은 예수님의 재림을 말합니다. 창세기의 에녹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예수님의 재림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성경에서 예수님의 재림을 최초로 예언한 사람이 에녹일 겁니다. 에녹은 예수님의 재림 시에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예언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유다서의 흐름을 봤을 때, 거짓 교사들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 심판이 나와야 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15절부터 보시기 바랍니다.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뭇사람'이란 많은 사람들 또는 모든 사람들이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섭니다. 그 중에 하나님께 정죄함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무엇에 대해 정죄함을 받을까요? '경건하지 않은 죄'에 대해 정죄함을 받습니다. 그리고 15절에는 경건하지 않은 죄의 특징을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주를 거슬러'입니다. 주를 거슬러는 것이 바로 경건하지 않은 죄입니다. 주를 거스러는 방법이 무엇인가하면 '완악한 말'입니다. 거짓교사들이 완악한 말로 주님을 거슬러 행했던 모든 경건하지 않은 죄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실 것을 에녹이 예언했습니다.
그리고 경건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 보충설명을 16절에서 합니다.
"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로하는 자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하며 이익을 위하여 아첨하느니라."
여러분에게 한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여러분! 원망하면 지옥갑니까? 불만을 토하면 지옥갑니까? 정욕대로 행하면 지옥갈까요? 자랑하고 이익을 위해 아첨하면 지옥갑니까? 하나님의 심판이 그렇게 될까요? 여러분이 신학을 알아야 되는 이유입니다. 신학을 알지 못하고 이 본문을 보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영원한 지옥에 떨어질 사람들이 원망하는 자, 불만을 토로하는 자, 정욕대로 행하는 자, 입으로 자랑하고 이익을 위해 아첨하는 자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다 구원받지 못하고 영원한 지옥에 떨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학의 큰 테두리 안에서 이 본문을 보면 쉽게 단정짓기 어려워 집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무엇에 달려있습니까? 천국이나 지옥이냐는 무엇에 달려 있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믿음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가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됩니다. 그런데 여기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사람들이 원망,불만,정욕대로 살고 자랑,아첨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면 한번 생각해 봐야죠. 정말 이런 모습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느냐? 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일에 대해 다 알고 계시니 그렇게 행한 모든 일에 대해 심판을 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구원이냐? 천국과 지옥이냐? 영원한 생명이냐 영원한 지옥이냐?라고 할 때는 예수님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로 나눠집니다.
이제 18절로 가 보십시오.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하지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하였나니." 또 다시 경건하지 않게 행하는 사람들, 정욕대로 행하는 사람들에 대해 말씀합니다. 그들은 또한 조롱하는 자들입니다. 조롱한다는 말은 15절에 완악한 말로 주를 거슬러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경건하게 사는 자들을 향해 조롱의 말로 힘겹게 하고 넘어지게 하며 괴롭히는 것이 주를 거슬러는 것이죠. 경건하게 사는 것이 무익하다고 하고 육체의 정욕대로 마음껏 즐기며 살아라! 뭐하라 그렇게 사냐?
영혼만 구원받으면 된다고 하며 치명적인 성적범죄에 방종했던 사람들입니다. 순결한 믿음으로 경건하게 살려고 하는 자들을 조롱합니다.
그래서 19절을 보시면 그들은 분열을 조장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육체에 속한 자들입니다. 15절부터의 내용이 계속 반복됩니다. 그리고 19절 마지막에 와서 결정적인 한 방을 날립니다. 그들의 진짜 정체가 뭐냐? 그들은 '성령이 없는 자니라'
지금까지 말한 경건치 않은 죄.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 경건하지 않은 말. 그로 인해 나타나는 원망, 불만,정욕의 죄,자랑과 아첨.완악하고 조롱하는 말.
도대체 왜 이런 경건하지 않은 죄를 짓고 사느냐? 원인을 밝히고 있습니다. 성령이 없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요? 예수님이 여러분의 주인이요 구주가 되셨습니까?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습니까? 예! 그 말을 여러분이 한 겁니까? 누가 시켰습니까? "내가 예수 믿습니다."라고 할 때 그것은 말하는 사람이 한게 아니라 성령님이 그 말을 하도록 한 겁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이것은 성령 하나님께서 제게 믿음의 선물을 주셔서 그 믿음으로 입을 열어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말은 아무나 할 수 있습니다. 길을 지나가는 사람 중 예수 믿지 않는 아무나 붙잡고 제가 만원을 드릴테니까 '예수 믿는다'고 한 마디만 하세요. 그러면 "아 그래요 나 예수 믿습니다."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믿음의 고백은 아니죠? 진실된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향한 믿음의 고백을 하는 것은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서 일으키신 놀라운 일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선물입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3) 우리 안에 성령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는 이만큼 중요합니다.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는 줄 압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안에 누가 계십니까? 정말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고백한 것이면 여러분 안에 성령님이 계신 증거입니다.
이제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마음 속에 성령님이 있는 사람은 이제 어떤 삶을 살까요?
예수님을 믿는 사람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도 원망할 수 있고 불만할 수 있습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 삽니다. 안 그런가요?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원망하고 불평한 적 없습니까? 여러분의 이익을 추구하는 삶은 전혀 살지 않았습니까? 원망했잖아요. 불만도 있잖아요.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은 원망했다고 불평한다고 약속받은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이 가만히 계시지 않습니다. 여러분 안에 정말 성령님이 계신다면 여러분은 경건하게 살아갑니다.
내 안에 정말 성령님이 계신다면, 그래서 내가 정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세상을 향해 달려가지 못합니다. 원망하고 불평하는 말을 하다가도 깜짝 놀라서 "내가 왜 이런 말을 하지, 이런 말을 하면 하나님께서 싫어하신다." 하면서 입을 닫아 버립니다. 그게 바로 성령이 있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 절대로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교회를 위해 삽니다. 정욕대로 살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영적인 갈등이 있습니다. 성령의 소욕과 육체의 소욕이 서로 싸웁니다. 때로는 질 때도 있습니다.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약해서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성령대로 살지 못하면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오호라 ~~ 나는 곤고한 자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바울의 고백과 똑같은 고백을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 주님의 용서를 구하고 도움을 구합니다. 그 때 성령님께서 여러분에게 힘주셔서 다시 일어나게 하십니다. 그렇게 회복해서 다시 영적 싸움을 합니다. 그 싸움에서 이기라고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라! 너의 힘으론 이길 수 없으니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세상에 빼앗긴 시선, 목표, 계획들, 결국 썩어질 것, 땅에 것에 목표를 두지 말고 목표를 하늘에 두고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는 삶으로 정하고 살아라. 여러분 안에 성령이 있다 없다는 정말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안에 성령님이 계신가? 무엇으로 증거를 삼는다고 했습니까? 여러분이 진심으로 예수를 주라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확실한 증거는 무엇일까요? 저를 따라해 보십시오. "성령이 있는 사람에게는 브레이크가 있습니다." 성령이 있는 사람에게는 브레이크가 있습니다.
성령이 없는 사람은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와 같습니다. 브레이크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요?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운전중에 브레이크가 터지면 큰 사고가 납니다. 거기다 내리막길에서 브레이크가 터졌다? 정말 큰 일 납니다. 15절부터 나오는 경건치 않는 사람들은 브레이크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누군가 도와주어야 합니다. 누가 도와줘야 합니까?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들의 정체는 성령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죄악은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와 같이 멸망을 향해 달려갑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멈추게 하십니다. 잘못된 죄악의 길을 걸어갈 때, 성령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멈추게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성령이 있는 자에게는 이런 브레이크로 멈추게 하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제가 설교 중 예화를 잘 안쓰는데, 오늘은 예화로 마치겠습니다.
미국에서 살던 두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술과 도박에 찌들어서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함께 도박장에 가던 길이었습니다. 교회 옆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둘 중 한명이 교회 게시판에 붙여진 그날의 설교제목을 보았습니다. 설교의 제목이 '죄의 삯은 사망이니라!"였습니다. 갑자기 설교의 제목이 눈에 들어오고 마음에 박히면서 도저히 도박장으로 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야~오늘은 도저히 못가겠다. 오늘은 저 교회 가서 저 설교를 꼭 들어야 겠어!"
다른 친구가 이렇게 말합니다. "갑자기 왜 그래? 너 미쳤어? 빨리 가자 가자!"
"아니야 아니야 내가 오늘은 저 설교를 꼭 들어야겠어!"
그래서 두 친구의 길이 거기서 갈라졌습니다. 한 명은 교회로, 한 명은 도박장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30년이 지났습니다. 도박장으로 향했던 친구는 감옥에 갇힌 죄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죄수가 된 그 친구가 뉴스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30년 전 교회로 갔던 친구가 뉴스에 나왔습니다. 그 뉴스는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이었습니다. 도박장으로 향해 가다 교회로 갔던 그 친구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미국의 22대, 24대 대통령인 클리블랜드 대통령입니다.
한 명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말씀을 보는 순간 도저히 죄악의 길을 향해 갈 수 없었습니다. 매일 술과 도박에 찌들었던 인생을 누군가가 멈추게 했습니다. 누군가 그의 죄악된 인생에 브레이크를 걸었습니다. 그 분이 누구일까요? 확실히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성령 하나님이 청년의 마음에 강한 감동을 주시고 설교를 듣고 싶어하는 강렬한 소원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설교를 들을 때 얼마나 강한 감동을 주셨을까요? 얼마나 큰 은혜를 주셨을까요? 설교를 듣고 지난 날의 죄악된 길을 정리하게 만드셨을 겁니다. 경건의 길을 걷게 하셨을 겁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걸어가 미국의 대통령이 되는 길을 가게 하셨습니다.
한 사람은 그의 죄악의 길을 끊임없이 달려갔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감옥에 갇혀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성령이 있음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자들은 성령이 없는 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성령이 있는 자입니다. 우리는 구원받았습니다. 예수를 주로 고백하고 시인합니다. 그리고 성령님이 계심으로 우리에게는 브레이크가 있습니다. 그리로 가면 안돼! 이리로 가야해. 얼마나 감사합니까? 여러분 안에 성령 하나님이 여러분 인생의 핸들을 잡고 힘차게 달려갈 길은 달려가고 잘못된 길을 갈 때는 브레이크를 잡아주시는 은혜가 넘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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