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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거짓을 알면 건강한 교회가 보입니다.②(유다서 1장 12~13절) 본문

신약/유다서 완료

거짓을 알면 건강한 교회가 보입니다.②(유다서 1장 12~13절)

행복으로초대 2018. 1. 24. 16:58

 

지난 시간에는 '거짓을 알면 건강한 교회가 보입니다." 첫번째 시간으로 거짓 교사들의 특징 3가지 특징을 살펴보았습니다. 애찬의 암초,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 물없는 구름의 특징이었습니다. 오늘은 '거짓을 알면 건강한 교회가 보입니다.' 두번째 시간으로 나머지 3가지 특징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왜 이런 거짓 교사, 또는 이단들의 특징을 알아야 할까요? 먼저 이단과 거짓 교사들에 대한 경계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단이라고는 안하는데, 이단은 아니지만 이단처럼 변질되어가는 교회에 대해 우리 자신에게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고 건강한 교회를 향해 고쳐나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 교회는 건강합니까? 이 땅의 한국 교회는 건강합니까? 저렇게 유명한 목사님들, 유명한 교회들은 건강한 목사님입니까? 건강한 교회입니까? 아니면 저는 건강한 성도입니까? 진단해 볼 수 있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무엇이 틀렸는지 알게 되면 바르고 건강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르고 건강한 쪽으로 방향을 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몸이 다 건강한 것처럼 보이죠? 그런데 좀 불편하고 아픈 곳이 있어서 가면 병원에서 이것 저것 다 검사해 보고 어디에 문제가 생겼는지? 발견해 냅니다. 그리고 수술을 하든지 적절한 치료방법을 선택해 고칩니다. 그래야 건강해 집니다.

 

교회의 모습, 성도들의 모습, 목회자들의 모습 속에서 잘못된 것들이 무엇이 있는가? 그래서 사람들이 보기에 이단이라고는 안 하는데, 이런 것들은 고쳐야 하지 않는가? 이런 것들을 찾아보는 것입니다. 하나씩 살펴 보겠습니다.

 

<1>설교

1.열매 없는 가을 나무(예수님 안에 뿌리내린 교회)

수요예배 때 유다서 말씀을 통해 참된 교회의 모습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교회인듯 하지만 교회의 참된 모습을 잃어가는 교회와 성도, 목사의 모습 생각하며, 

특히 말씀 앞에서 저의 모습을 돌아보며 거짓된 목사가 되지 않아야지, 

참된 목자가 되야지 하면서 말씀을 전하는데 복잡한 감정이 교차됩니다. 

세상 조류에 휩쓸려 무엇이 교회의 참모습인지 분별하지 못함을 보며

안타까움을 크게 느끼며, 하나님 앞에 선 저를 보며 그동안 잘못된 것들을 

깨닫고 정말 저를 향해 말씀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유다서를 통해 알게된 거짓된 교회, 거짓된 목사는 

애찬의 암초, 자기몸만 기르는 목자, 물없는 구름 같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무엇인지 궁금하시면 거제호산나교회 유튜브 수요예배 편을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꼭 좋아요와 구독 해주세요.^^

 

참된 교회와 거짓된 교회를 표현하는 두가지를 함께 보겠습니다. 

먼저 거짓된 교회에 대한 표현입니다. 

유다서 1장 12절 마지막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없는 가을 나무'입니다. 

한번 외워볼까요? 죽고 또 죽어 / 뿌리까지 뽑힌 / 열매없는 가을 나무

이것이 거짓된 교회의 모습이며, 이 유다서 말씀과 비교해서 

유명한 요한복음 15장 참 포도나무 비유를 통해 참된 교회의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된 교회의 모습이 무엇일까요?

예수님 안에 뿌린 내린 교회에서 나타나는 첫번째 참된 교회의 모습

바른 믿음의 고백이 풍성합니다.

예수님만이 생명임을 고백하고 누리는 교회입니다.

거짓에 물들고 변질된 교회의 모습 첫번째는 '죽고 또 죽어'입니다. 

 

옛날 개그 유행어 중에 '두번 죽이는 거예요~'

이건 완전히 죽었다는 말이며, 사단과 마귀는 죽이는 일에 힘씁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 시키려는 것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하게 하려는 것이라


 

이 말씀에 도적질 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자가 사단과 마귀입니다. 

그리고 사단과 마귀가 하는 죽이는 일에 쓰임받는 사람이 거짓교사들이며,

거짓교사를 통해 교회를 죽이는 일에 사단이 전력을 다합니다. 

반대로 "내가"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양같은 우리가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하게 하려 하십니다. 

 

그럼 사단과 마귀가 전력을 다해 죽이려는 것이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생명, 복음의 능력, 하나님 나라를 향한 강렬한 열망을 

죽이려고 합니다. 

교회와 목회자, 성도들을 끊임없이 시험하거나 유혹해서 

교회가 생명력을 잃고, 복음의 능력을 상실하고 

더 이상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힘을 못쓰는 교회와 목사, 성도들로 만듭니다. 

 

이것은 우리의 육체를 죽이는 육의 전쟁이 아닙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6:17)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영적 전쟁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영적 전쟁에서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분명히 고백해야 합니다.

먼저 우리가 어디에 속했는지 그리고 우리 안에 누가 계신지 분명히 고백하십시오.

우리가 속한 곳은 예수님 안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 속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예수님 안으로 부름받은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요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성도입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는 나를 사랑하시고 그 크신 사랑으로 

나를 위해 생명을 주시며 그 생명을 더욱 풍성하게 해 주시는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십니다. 

이렇게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시고 예수님 안에 우리가 있을 때.

우리는 반드시 이렇게 고백하게 됩니다.

 

요한복음 15장 5절에 " ~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하나님을 떠나서는, 내 안에 생명되시는 예수님이 아니고서는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고백하게 됩니다.

과연 우리는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음을 얼마나 고백합니까?

 

믿음이 좋아지면 우리는 어떤 고백을 하게 될까요? 

우리 교회에서 자주 부르는 찬양 중에 "할 수 있다 하신 이는"

믿음만이 믿음만이 능력이라 하시네~~~ 믿음이 좋아지면 능력이 생기고

그 능력으로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했으니

슈퍼맨의 힘과 능력을 가지고 온갖 능력의 은사를 가지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나!  나 이런 사람이야 라며 말하는 교회가 죽은 교회입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고 예수님이 내 안에 거하게 하는 능력

더 엎드릴 수 밖에 없고, 더 기도할 수 밖에 더 부르짖을 수 밖에 없음. 

결국 믿음이 더 많아진다면 우리는 예수님 안에 흔들리지 않고 

거할 수 있는 능력. 그 능력으로 예수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나의 모든 것, 나의 능력, 나의 생명이십니다.

예수님~~저를 떠나지 마세요. 예수님 저를 버리지 마세요.

 

예수님 안에 뿌리내린 교회는 이 고백이 가득합니다. 

 

예수님 안에 뿌린 내린 교회에서 나타나는

두번째 참된 교회는 사랑이 넘치는 교회입니다. 

유다서에서 말한 두번째 거짓 교회의 모습은 뿌리까지 뽑힌 교회입니다. 

뿌리까지 뽑힌 것이 거짓교회이라면,

뿌리를 깊이 내린 것이 참 교회의 모습입니다. 

뿌리를 깊이 내린 모습을 보여주는 말씀이 있습니다. 

시편 1편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오만의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며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로다

 

하나님의 복된 성도, 복된 목사, 복된 교회는 뿌리가 뽑힌 상태가 아니라

시냇가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고 잎사귀가 풍성합니다. 

 

여기서 시냇가에 뿌리를 깊이 내렸다는 말이

요한복음에서 보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모습과 같습니다. 

 

그리고 뿌리를 깊이 내린 것,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것을 

한마디로 표현한 말이 있습니다. 바로 요한복음 15장 9,10절에 있습니다. 

어떤 말일까요? "사랑 안에" 입니다, 

예수님과 우리가 무엇으로 붙어있습니까? 사랑으로, 그 사랑안에 붙어있습니다. 

우리 서로는 무엇을 붙어있습니까? 사랑, 그 사랑안에 붙어있습니다. 

9절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절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안에 거하라.

 

그리고 12절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랑안에 거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사랑릴레이! 따라해보세요. 사랑릴레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사랑하셨고 사랑바통을 넘겨주셨습니다.(9절)

예수님도 제자들을 사랑하셔서 그 사랑바통을 넘겨주셨고(9절)

제자들도 서로에게 그 사랑바통을 넘겨주고 사랑하였습니다.(10절,12절)

그럼 이 사랑 릴레이를 통해 우리 손에 들려진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그렇게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경험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오래해도 예수님을 느낄 수 없습니까?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를 경험할 수 없습니까?

말씀도 잘 아는데, 기도도 열심히 하는데,

예배도 전도도 봉사도 열심히 하는데 하나님의 임재와 함께 하심을 

느낄 수 없나요?

그렇다면 누군가에게 다가서 보십시오. 누군가를 붙잡고 그 사랑을 

나눠보신적이 있나요? 누군가를 붙들고 예수님의 사랑을 나누고 

예수님의 이야기를 나눌 때 뜨거운 하나님의 사랑과 감동,은혜가 

하나님의 임하심을 보게 될 것이요. 아름다운 천국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예화) 박철수 집사님

제가 중3일 때, 저의 인생의 큰 시련이 닥쳤던 때가 있습니다. 

짧은 기간안에 누님이 결혼을 해서 멀리 이사갔고, 

형은 군대를 갔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간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하나님께 그렇게 살려달라고 기도했는데,

교회를 위해 온 가족이 그렇게 봉사하고 섬겼는데.왜 아버지를 데려 가셨나요?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에 사춘기 청소년의 마음에서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기가 정말 싫었습니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갔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중등부 회장이었거든요 

책임감은 있어가지고... 그러다가 고1이 되면서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교회생활에 대한 거부감은 더 커졌습니다. 예배때 항상 지각하고 주기도문 할때

집에 오고.... 누구와도 말하지 않고 고등부에서 하는 어떤 행사나 프로그램에도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선배들이 다 저를 보면서 했던 말이 야~~너는 중등부

회장이었던 얘가 왜 그러냐? 정신 좀 차려~ 안정빵이라고 저는 중고등부 

시절을 보내면서 한번도 선생님들한테 전화를 받아본적이 없습니다. 

안 챙겨도 교회 출석하는 아이였으니까요.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가 드디어 이제 교회를 가지 않기로 했습니다. 

어머니한테 혼날 거 각오하고 교회 안갈래 마음을 굳게 먹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잘 있어라~하고 주기도문 마치고 예배당을 나오는데

누군가 제 손을 잡았습니다. 고등부 부장 집사님이셨습니다. 

그리고는 저를 데리고 단둘이 있을 수 있는 곳으로 가서 앉혀놓고

얘기 좀 하자고 하셔놓고 아무 말도 않고 그냥 앉아 있었습니다.

집사님도 저도 아무 말 하지 않고 그냥 20분 정도 앉아있었는데,

갑자기 제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아픔이 슬픔이 원망과 분노가 

터져나왔고, 눈물이 터져서 통곡을 했습니다. 부장 집사님은

그런 저를 가만히 꼭 안아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저를 안아준 

부장집사님의 품이 아니라 예수님이 저를 안아준 것임을 알았습니다. 

창태야 내가 너를 사랑해~~예수님께서 저에게 말씀하시는 듯했습니다. 

주의 팔에 그 크신 팔에 안기세!~~~~~~ 그렇게 저를 안아준 선생님을 

통해 저의 신앙인생의 큰 고비를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 안에 뿌린 내린 교회에서 나타나는 세번째 참된 교회는

제자로 성장해 열매를 많이 맺는 교회입니다. 

유다서에 말한 세번째 거짓 교회의 모습은 '열매없는 가을 나무'입니다. 

자~ 순서대로, 죽고 또 죽어 / 뿌리까지 뽑힌 / 열매없는 가을 나무.

 

열매없는 가을 나무 : 가을이면 우리는 당연히 열매를 기대합니다. 

그런데 거짓된 교회는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이 열매는 무엇일까요? 회개의 열매? 순종의 열매? 입술의 열매?

전도의 열매? 성령의 열매일까요?

 

예수님께서 심혈을 기울여 힘을 쏟으신 것은 제자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열매는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8절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우리는 성도는 성장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누구나 갓난아기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갓난 아기로 있으면 안됩니다. (일년 10년 ~~~)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뜻을 이룰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 제자가 되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대사명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모든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고 세례를 베풀고 가르치는 제자들이

우리 거제호산나교회에도 왕성히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교회를 꿈꾸며 함께 달려온 우리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2>설교

12절 마지막을 보십시오.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죽고 또 죽었다는 말은 완전히 죽었다는 말이며 소생할 가능성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가을 나무가 열매가 없습니다. 왜 열매가 없을까요? 뿌리가 뽑혀 있기 때문입니다. 한 성도님의 가정에 심방을 갔다가 정원에 죽은 나무가 심겨진 것을 보았습니다. 워낙 조경에 조예가 깊은 분이라 어쩌다 나무를 죽였을까? 그럴 분이 아닌데? 하면서 자세히 보니 심은지 얼마 안된 나무였습니다. 그럼 왜 죽은 나무를 심었을까? 나무를 보니 완전히 말라 삐틀어져 있고 사람으로 치면 몰골이 말이 아닌 나무였습니다. 모양새는 참 특이하게 생긴 나무였습니다. 평범하게 생긴 나무보다 특이하게 생긴 나무가 더 가치가 높다고는 하더라구요. 그런데 다음에 그 집에 갔다가 그 나무에서 새싹이 돋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요? 뿌리가 땅에 든든히 내려있고 뿌리가 살아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뿌리가 뽑히면 그 나무는 더이상 생명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당연히 열매는 없는 것이죠.

 

우리가 잘 아는 말씀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 5)

 

성도들의 생활 가운데 영적인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구원받은 증거이며 예수님 안에 있다는 증거입니다. 반대로 영적인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말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대로 100% 만족 시켜드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늘 강조하지만 올바른 방향성을 가지는 것입니다. 올바른 방향성을 가지고 오늘 하루도 내일 하루도 조금만이라도 열매를 맺기 위해 애를 쓰고 노력하는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제보다 오늘이 낫고 오늘보다 내일이 나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 건강한 성도의 표지입니다. 열매가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 결국 예수님 안에 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는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라고 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모릅니다. 누구든지 다 연기할 수 있습니다. 교회올 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면을 쓰고 옵니다. 자신의 진짜 모습은 드러내지 않고 겉으로는 경건한 척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속은 썩어 문들어져 가고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온갖 더러운 것들이 가득합니다. 겉모습을 보고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열매로 알 수 있습니다. 열매맺는 삶은 구원받은 삶이며 예수 안에 있는 삶입니다.

 

"아 ~ 내가 진짜 살아있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때가 언제일까요? 

말씀의 열매를 맺어 나갈 때, 성령의 9가지 열매가 삶 속에서 나타날 때, 열매맺지 못하는 것 때문에 마음 아파하고 괴로워할 때 이렇게 생각하십시오. "내가 예수 안에 있구나! 내가 진짜 살아있구나!"

비록 지금 열매를 많이 못 맺어도 괜찮아요. 그래도 그것 때문에 가슴아파하고 울고 괴로워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회개하고 열매를 조금이라도 맺으려고 할 때 이렇게 생각하십시오. "내가 진짜 살아있구나!" "내가 예수 안에 있구나!"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믿음 생활의 열매를 맺는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2.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
<1>설교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

높은 파도가 거칠게 몰아치는 바닷가에 여러분이 서있습니다.

그 높고 거친 파도가 와~~~~하고 몰려와서

바위에 부딪치는 순간 완전히 깨져버리고 맙니다.

이것은 높고 거친 파도처럼 뭔가 대단하게 나타나지만

결국 깨져버리고 마는 것을 표현합니다.

한마디로 과장된 것을 말합니다.

뭔가 대단한 것을 가지고 있는 듯 하지만 아무 것도 없습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던 물 없는 구름과 같습니다

 

그런데 물없는 구름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물없는 구름처럼 오히려 아무 것도 없으면 다행이죠.

 

13절 말씀을 다시 보십시오.

'자기 수치의 거품을 뿜는'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파도가 몰려와서 바위에 부딪쳐서 깨질 때, 거품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그 거품 속에 뭐가 있다고 합니까?

자기의 수치가 있다고 합니다.

이 말은 온갖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다는 말입니다.

 

이사야 5720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악인은 평온함을 얻지 못하고

그 물이 진흙과 더러운 것을 솟구쳐 내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으니라."

 

악인 속에는 진흙과 더러운 것이 가득한 요동하는 바다와 같다고 합니다.

<사진>

태풍이 몰아치고 큰 파도가 치고나면 바닷가 해변에는 이렇게 온갖 쓰레기

들이 가득 쌓입니다. 바다를 떠돌던 쓰레기들을 잔뜩 가지고 물결이 거세게

치고 나면 온 해변을 더럽히게 되는 것을 비유해서

거짓 교사의 실체를 밝힙니다.


유다서에서 말하는 거짓 교사들의 실체는 영지주의 이단입니다.

헬라철학의 이원론의 영향으로 영과 육을 나누어서 생각합니다.

영은 거룩하고 육체는 악하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악한 육체를 입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성육신을 부인합니다.

 

성도가 구원받을 때

영과 육이 분리 될 때 영은 구원받고

육체는 악하기 때문에 멸망하게 되고

육체로 짓는 죄는 영의 구원에 아무런 관계가 없어서

성도들은 육체의 욕망을 채우고 방탕한 생활을 하면

육체의 쾌락을 위해 살아도 구원받은 것에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하며

성적 타락을 조장하고 교회에 온갖 쓰레기같은

더러운 문제들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무한리필 고기집>에 갔을 때, 문구

술은 나쁜 것이니 다 마셔서 없애버리자!!!

 

성적으로 타락한 교회, 물질주의, 쾌락주의.

인간의 수치스러운 문제들로 가득찬 교회.

그러면서도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착각하고 회개없는 교회.

이것이 바로 자기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입니다.

 

이것을 오늘날의 교회에 적용해보면 어떻게 될까요?

교회와 어울리지 않은 온갖 수치스러운 성적인 타락의 문제.

선한 목자가 아닌 삯꾼 목자로 인한 문제.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사명 보다는

돈의 바벨탑을 쌓는 교회, 물질에 매여있는 교회.

세상 사람들에게 조롱당하는 교회 지도자들과 성도들의

수치스러운 성품, 습관, 약점, 숨겨진 죄의 문제들.

이것이 자기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입니다.

그렇다면 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인정해야 합니다.

무엇을 인정해야 할까요?

사람은 누구나 완벽할 수 없습니다.

알고 보면 다 약점투성이입니다.

인격적으로 늘 부족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아시지만, 사람들에게 철저히 가려져있는

혼자만의 죄, 중독, 가려진 가정 안에서의 모습 등이 있습니다.

성적으로 약하고, 돈욕심,명예욕심,권세 욕심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래서 목회자들, 교회의 리더들은 늘 치열한 영적 싸움을 벌입니다.

이것은 모두에게 다 해당됩니다.

여러분~ 오해하지 마십시오.

참된 목자는 이 싸움이 없고, 거짓 목자는 이 싸움을 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 영적 싸움은, 영적인 갈등, 내적인 싸움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둘째, 변해야 합니다.

어떻게 변해야 할까요?

 

그 답을 바다의 거친 물결에서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거친이라는 말은 길들여지지 않은”, “통제되지 않은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치스러운, 부끄러운 것들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말씀과 성령님에 의해서

길들여지고

통제되고

고쳐지고

나아지고

성숙해지는 사람이 있고,

 

길들여지지 않고

통제되지 않고

고쳐지지 않고

성숙해지지 않아서 

그대로 교회에 드러남으로 인해

교회를 어지럽히고 어렵게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3장에는 감독의 직분,

교회의 목사나 교회의 지도자들의 자격을 말씀합니다.

 

2절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4절까지.......이후에도 집사의 자격 등.

하나님의 일꾼들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자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다 완벽하게 충족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요? 이 말씀에 맞춰 각자 자신을

보면, 누구 한 사람 자신있게 내가 딱이네.~~~

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일꾼, 직분자들의 자격을 말씀하면서

정말 중요한 말씀은 1절에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31절에 보시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함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

 

즉 지금 당장은 부족해도, 그래서 거친 물결 같지만

말씀을 따라 잘 길들여지고, 통제되며

고쳐지고 변화되고 성숙해지는 삶을 추구하는

선한 일을 사모하는 직분자가 세워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현재는 늘 부족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일을 알고

늘 자신을 새롭게 하는 목사, 직분자들이 세워져야 합니다.

그럼 어느사이엔가 모르게 교회가 변화됩니다.

 

쓰레기가 잔뜩 쌓여있는 해변같은 교회의 모습에서

하얗고 아름다운 백사장이 펼쳐져 있는 교회의 모습으로

변화됩니다.

사람들은 둘 중에서 분명히 하얗고 아름다운

백사장이 펼쳐진 것같은 교회를 찾을 것입니다.

<2>설교

거짓 교사의 교훈은 성적방종을 조장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성적으로 타락하게 만드는 더러운 교훈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하면서 다른 교훈을 전하는 자.

갈라디아서에서 처럼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인해 교회가 몸살을 앓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 말씀의 홍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홍수는 물이 많다는 말입니다. 말씀이 넘쳐납니다.

언제든지 듣고 싶은 유명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다.

기독교TV, 라디오방송이 그 어느 때보다 발달되었습니다.

채널과 주파수만 맞추면 하루종일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 어느 시대보다 수준높은 성경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유명 목사님들과 성경교사들의 강의를 스마트폰으로

내 손에서 만날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시대입니다. 

저도 하루에 몇번씩 설교,신학과 성경에 관한 강의를 스마트폰으로 듣습니다.

진짜 말씀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래서 말씀의 홍수 시대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걸 아십니까?

홍수 때가 되면 오히려 마시는 물을 조심해야 합니다.

잘못하면 식중독에 걸리기 쉽고 깨끗한 물이 오히려 귀해집니다.

홍수 때에 오히려 마실 물이 없습니다.

말씀은 쏟아지는데 잘못하면

온갖 쓰레기에 오물에 진흙탕 물이 된 말씀을  마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의 홍수 시대 일수록 성도들은 말씀을 듣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분별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비진리가 마치 진리인 것처럼 선포되는 것들을 분별하셔야 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사람들이 잘못된 설교, 거짓 설교자들에게 열광한다는 사실입니다.

말씀 속에 예수가 없고 참된 복음이 없는데도 말입니다.

 

예수에 열광해야 할 성도들이 거짓 목사들의 거짓교훈에 열광합니다.

 

대표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오늘은 번영신학, 형통복음 같은 쓰레기신학에 대해

제가 약간 공격적인 태로를 취하고자 합니다. 조금 강하게...

번영신학자들, 형통의 복음을 말하는 자들의 설교는 예수님은 있지만

에수님은 그저 우리의 성공과 번영을 도와주는 분으로 말합니다.

고난없는 영광만을 말하고 십자가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물질적인 번영을 이루는 수단일 뿐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내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그저 우리의 믿음은 구원받고 복받고 잘 되고 잘 되는 것으로만 향합니다.

 

이 번영신학과 형통복음의 연장선에 믿음신학이 있습니다.

'믿음신학'이 한국 교회를 크게 흔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믿음신학은 여전히 지금도 활개를 치고 있고

성도들이 잘못된 것인 줄 모르고 그들의 거짓 가르침대로 하면서

바른 믿음생활을 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혹시 여러분의 책꽂이에 '긍정의 힘'이라는 책이 있습니까?

미국 최대 교회인 레이크우드 교회의 조엘 오스틴 목사의 책으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보는 베스트셀러 중의 베스트셀러였습니다.

제가 조엘 오스틴 목사를 거짓 교사라고 말하면 기분 나빠 하실 분이 계신가요?

예전에 성경공부 시간에 조엘 오스틴의 이단성에 대해 경계하라고 가르쳤는데,

한 집사님이 자신에게 큰 영향력을 끼친 분이라고

함부로 규정짓지 말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런 분이 있으면 설명을 잘 들어보십시오. 

 

믿음신학에서 신앙은 '하나님을 믿음'이 아니라 '믿음을 믿음'입니다.

믿음이 힘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믿음신학에서 강조하는 것 중에 하나가

믿음의 힘을 어떻게 사용하느냐? 생각과 말로 사용합니다.

그래서 매사에 긍정적인 생각과 긍정적인 말을 하라.

언어는 믿음의 힘을 담아낸다!

곧 내가 하는 말을 통해 현실에서 창조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믿음의 법칙에 따라 내가 하는 말에

하나님도 꼼짝하지 못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긍정의 힘을 사용하라. 믿음의 힘을 사용하라.

부정적인 모든 생각을 끊어버리고 오직 긍정적인 말을 하라.

이런 말 정말 많이 들어보셨죠? 이렇게 설교하신 분들 정말 많습니다.

혀의 창조적 능력을 사용하라!!! 이러면서요.

그러면 그 믿음의 힘을 통해서 건강해지고,

성공할 것이고, 풍요로워 질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믿음신학입니다.

 

얼마 전에 한국의 한 대통령이 파면되고 구속되었습니다.

그 분이 한번씩 이상한 말을 한 적이 있죠?

원래 유체이탈화법의 창시자이신데,

'우주의 기운'이 도와줄 거라구요.

여러분! 하나님을 믿지 않고 여러분의 믿음을 믿으면

결국 여러분은 누구를 믿는 것입니까?

여러분을 믿는 것이고 여러분이 신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긍정적 사고와 창조적인 혀가 능력입니다.

그리고 그 능력을 사용하면 하나님이든, 알라든, 부처든,

우주의 기운이든 잘 되게 도와줄 것이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배운 복음입니까?

예수님께서 이렇게 가르치셨습니까?

저는 지금 이단들에 대해서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설교를 시작하면서 이단은 아니라고 하는데

이단이나 마찬가지인 거짓교사들에 말씀드린다고 했습니다.

사실 이 번영신학, 형통복음, 믿음신학자들 말고도 다양합니다.

하지만 황금만능주의, 성공지상주의가

교회에도 들어와 오염시키는데 지대한 공헌한 신학이

바로 번영신학,형통복음,믿음신학입니다. 

사실 이단보다 더 무서운 것입니다.

성도들은 땅의 것이 아닌 위의 것을 찾는 사람인데

위에 있는 하늘의 영원한 진리가 아닌 지상의 덧없는 것들을

얻는데 초점을 맞추게 합니다.

그래서 복음을 위해 고난받고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는 삶은 싫어하고 오직 예수 믿고 잘 됩니다.

예수 믿으면 성공합니다. 이것이 마치 진짜 복음인 것처럼 왜곡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을 정확하게 배우십시오. 

복음의 기준을 분명히 잡고 참과 거짓을 잘 분별해 내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3.캄캄한 흑암으로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

 

거짓 교사들의 특징 마지막 6번째.

'유리하는 별들'입니다. 

'유리하는 별들'은 궤도를 이탈한 별들입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이나 혜성을 가리킵니다.

유대인의 관점에서는 그런 유성과 혜성을 위해

캄캄한 흑암이 예비되어 있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유성과 혜성을 어디에 비유를 했느냐하면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늘의 질서를 어겨

지옥에 떨어진 타락한 천사들처럼 비유했습니다.

 

1.

'유리한다'는 말은 '방황한다'. '정처없이 헤멘다'는 뜻입니다.

왜 헤멜까요?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길도 모릅니다. 

방황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인생의 방황이 왜 생기는가? 하나님께 우리의 인생의 출발점이 어디이고

종착지가 어디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분명하게 알지 못하니 인생이 방황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마치 안개속을 걷는 듯 하며 우왕좌왕 하며 사는 것입니다. 

 

거짓교사,이단들을 '유리하는 별들'이라고 하는 것은 

이단과 거짓교사들의 이런 민낯이 그대로 드러냅니다.

그들은 인생의 답을 알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자신들도 유리하는 별들이라 자기들이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성도들을 인도할 수 있겠습니까?

한마디로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꼴입니다.

 

2.우리의 인생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갑니까?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6장 28절

"내가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우리 인생은 아버지에게서 나왔습니다. 출발점이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우리 인생은 아버지께로 갑니다. 종착지가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우리는 아버지에게서 출발해서 이 세상에장 서 살아가고

이 세상에서 살다가 종착지인 아버지께로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길을 제대로 찾아야 합니다. 

그 길을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을 때, 바로 그것이 거짓입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길임을 믿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진리임을 믿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생명임을 믿습니다. 

왜 우리는 이것을 확실히 믿습니까?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즉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버지께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인생의 유일한 정답임을 말하는 것 

그것이 진실입니다.  

 

3.예수님이 인생의 유일한 정답임을 믿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뜻을 정하지 못합니다. 

다니엘 1장 8절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왜 믿음으로 결단하지 못합니까? 인생의 정답이 예수님임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뜻을 정할 수 있었던 다니엘은 하나님이 정답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로 와서 하나님께로 가는 것이 인생임을 분명히 알기 때문에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그들의 인생의 정답이 되지 못할 때는

예수님을 팔 수도 있고, 예수님을 부인할 수도 있었고, 예수님을 버리고 

살고자 도망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나니 그들은 확실히 알았습니다. 

우리 인생이 아버지에게서 와서 아버지께로 가는 인생임을 알았고,

그렇게 아버지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 예수님 밖에; 없음을 알고

다시는 부인하지도 버리지도 도망가지도 않았습니다. 

 

4.유리하는 별들 처럼 인생의 참 의미를 알지 못하고 

믿음으로 살 뜻을 정하지 못하십니까? 신앙의 방황 속에 살고 있습니까?

아버지께에게서 와서 아버지께로 가는 인생의 참 길이신 예수님으로 

모든 문제의 답을 정하십시오. 

 

5.유리하는 별들같이 어디와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

거짓이단들을 왜 성도들이 따라갈까요?

 

잠깐 현혹되기 때문입니다.

왜 현혹될까요? 여러분 유성을 다른 말로 별똥별이라고 하죠?

유성이 지구 대기권안으로 들어오면 별똥이라고 합니다.

그 별똥이 대기권 안으로 들어와 떨어질 때 활활 타오르면서 순간적인 빛을 발합니다.

그 순간 사람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됩니다. 

젊은이들은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며 소원을 빌기도 하죠.

유리하는 별들이라고 표현된 거짓 교사들과 이단들이 잠깐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인기를 얻을 수도 있고 사람들이 몰려들수도 있습니다.

사단도 처음에 광명한 천사로 여러분에게 나타납니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 한 가지?

그 별은 죽은 별이며 그 별이 가는 곳은 흑암입니다.

거짓교사들은 잠깐입니다. 그 잠깐의 현혹하는 빛 때문에

사람들이 그 길이 흑암의 멸망길인 줄도 모르고 따라 갑니다.

오늘 말씀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단들, 거짓 교사들도 타락한 천사와 같이 유성처럼 떨어져

캄캄한 흑암으로 돌아가고 혜성처럼 캄캄한 흑암으로 빨려들어가듯이

영원한 심판을 받아 멸망할 것이라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러므로 거짓 교사들을 따라가면 어디로 가게 될까요?

영원한 심판, 영원한 멸망으로 가게 됩니다.

 

이단들에 넘어간 사람들의 피해사례가 여기저기 보고되고 있습니다. 

거짓임을 알게된 후, 빠져나오고 싶어도 각종 협박,

그리고 얽혀있는 이해관계 때문에 쉽게 나오지도 못하는 사례들이 많습니다.

 

이단들은 유리하는 별입니다. 방황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이 다 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아무 것도 모르는 자들입니다.

심지어 우리는 알고 있는 그들의 마지막을 그들은 알지 못합니다.

영원한 흑암 가운데 빠질 유리하는 별같은 자들을 분별합시다. 

진리의 복음을 바르게 선포하고 가르치는 교회와 목사님을 위해 기도합시다.

 

지금까지 거짓교사, 이단들의 6가지 특징을 살펴보았습니다. 교회 안에 이런 6가지 특징이 나타날 때 목사와 성도들은 분별력을 가지고 함께 고쳐나가야 합니다. 거짓을 알면 건강한 교회가 보입니다. 거짓을 통해 참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어둠 속에 빛이 더욱 빛을 발합니다. 어둠 속에서 작은 성냥불 하나도 얼마나 귀한 줄 모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를 어둡게 만드는 거짓의 교훈들과 분위기들, 사람들을 경계하시고 건강한 교회를 향한 표지를 더욱 세워 나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함께 건강한 교회를 위해 기도를 모으고 힘을 모읍시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