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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요한일서 4:14-21 하나님을 사랑하라 본문

신약/요한일서 완료

요한일서 4:14-21 하나님을 사랑하라

행복으로초대 2023. 7. 19. 15:11

하나님을 사랑하라(요한일서 4:14~21)

 

1.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체육대회가 열렸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거제호산나교회 VS 거제시청직원

종목마다 출전하는 우리 교회 선수들의

유니품을 만들어서 입었습니다.

유니폼 상의에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라는 글자를 새겼습니다.

 

축구경기를 하는데,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라는 유니폼을 입고 뛰면서

상대팀 선수들을 보호하지 않고 몸싸움을 거칠게 하고

태클해서 넘어뜨리고 부상입히고,

상대팀이 조그만 거칠게 반칙하면 쌍욕을 하고 주먹질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유니폼을 입고 말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웃기고 있네.

거제호산나교회 교인들을 보니까 예수쟁이 거짓말쟁이라고

사람들이 세상에 전파하기 시작합니다.

 

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고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는 진리가 잘못된 것입니까?

 

아닙니다.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그 사람의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거짓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문제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진실하며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없으면 세상은 멸망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찾으십니다.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듯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는

참 사랑의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이 찾으시는 참 사랑의 사람이 됩시다.  

 

2.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하면?

 

1)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고 임재하십니다. 

하나님의 거하심, 하나님의 임하심.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보면 이런 말들이 그냥 익숙해져버려요.

무슨 의미인지? 잘 알지 못하고 경험해보지 못하고는

그냥 그렇게 받아드려져 버려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내 안에 거하시고 임하신다는 말 

그리스도인들이 이것을 너무나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하나님의 임재가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혼돈의 시대인 사사시대에 백성을 구원할 사사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일이 있습니다.

바로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하시니'입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은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가

시작되고 나타남을 의미합니다.

 

초월적인 하나님께서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임하시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거하심과 임재하심이 떠나는 것을

정말 두려워한 사람이 있습니다. 다윗입니다.

 

다윗이 밧세바와 간음한 범죄를 저지르고 난후

하나님께서 선지자 나단을 보내 다윗을 강하게 책망했을 때,

지었던 시가 시편 51편입니다. 그 중에 11절입니다.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우리가 아는 찬양에 정결한 마음 주시옵소서~~~

주의 성령을 거두지 마옵소서~~~

 

범죄한 다윗이 가장 염려하고 걱정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쫓겨나는 것이며,

주의 성령을 거두어 가시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하듯 형제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충신을 사랑하지 않았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럴듯하게 포장된 육체의 정욕으로

사랑인 줄 알고 잘못된 삐뚫어진 사랑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책망을 듣고 난 후에야

그는 자신의 사랑이 죄악인 줄 알고 회개하는데,

그와 함께 하셨던 하나님께서 자신을 떠나실까봐,

성령님께서 떠나실까봐 두려워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임재 안에 사는 삶은 

그 무엇으로도 포기할 수 없는 최고의 가치입니다. 

 

이만큼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에 거하는 것은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그리스도인의 기도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는 언제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고 

하십니까?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할 수 있다고 하십니까?

16절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거기에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서로 사랑하면 그 안에 하나님이 나타나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증거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상황,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상황

하나님이 일하시는 상황을 계속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것이 언제죠?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입니다.  

사랑은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사명에 장애물을 제거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은

우리에게 임하셔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고 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하나님께서 임하신다고 하십니다. 

그럼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하지 못하도록 장애물이 있을텐데

그것은 바로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받을 때,

그는 하나님을 사랑했고,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주인인 보디발에게 충성이라는 이름으로 사랑했고,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사랑으로 받지 않고

정욕으로 분별하였습니다. 

요셉의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는 삶.

하나님께서 자신안에 거하시며 임재하시는 삶을

다른 그 어떤 무엇으로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고난의 연속 속에 있지만 하나님을 여전히 사랑하며

이웃을 여전히 사랑하는 요셉을 하나님의 큰 일을 

맡기는 역할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전파되는 것이며

오늘날 우리 교회가 서로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고

하나님의 큰 사랑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파되도록 하십니다. 

 

2)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하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습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다고 합니다.

 

사랑과 담대함의 관계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해서 구원을 얻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 사랑함으로 구원받은 삶에 

생기와 활기, 확신을 더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담대함입니다.  

 

담대함이 언제 필요하나요?

세상에서 만날 무섭고 두려운 상황에서

담대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용기를 자랑하며

담대함을 표현하는 것이 아닙니다.

 

담대함이 필요한 날은 심판날입니다.

심판날은 언제 일까요?

예수님의 재림 때, 심판주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세상의 모든 사람을 심판할 때입니다.

 

그 심판의 때, 사는 동안 하나님의 사랑을 이루며 살았던 성도들은

주님 앞에서 담대히 서있게 됩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온전히 이루질 때 

담대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서 담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권력자들의 눈치를 살피거나

그들이 듣기 좋은 말들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미움도 받고, 배척을 당하시고, 고난을 받으면서도 담대히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하실 수 있었을까요?

바로 죄인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사람들 사이에 온전히 이루기 위해 사는 사람들은

마음에 어둠이 사라집니다. 마음에 하나님의 빛이 비춥니다.

사람에게 어둠이 없으면, 즉 어둔 죄악의 일에 참여하지 않으면

두려움이 없습니다.

어둠이 많으면 많을수록 밝히 드러날 것이 두려워지고 피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만 서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하며 다투고 분열하는 나의 모습을 비추실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 있는데, 그런 상황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기도하고 찬양하고 말씀듣고 있는 분들은 정말 다이아몬드같은

마음을 가진 분들입니다. 보통 돌같은 마음이라고 하는데,

기도에도, 찬양에도, 말씀에도 깨지지 않는 마음상태인 것이죠.

오늘 깨지기 원합니다. 부서져야 하리 무너져야 하지 깨져야 하리~~

 

3)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하면...

예수님을 닮습니다.

 

하나님의 앞에서 세상 사람들이 무서워 떠는데

담대히 설 수 있는 이유는 성도는 주님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17절에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예수님의 예수님되심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예수님되심은 17절에 나오는데,

사랑을 온전히 이루시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18절에도 온전한 사랑을 말씀하는데,

이것은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십자가 사랑, 모든 것, 생명까지 내어주는 사랑의 예수님

그렇게 온전한 사랑을 보여주시는 예수님과 같이 

17절에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우리가 완벽하게 예수님처럼 사랑할수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믿음생활이란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처음 나의 모습은 예수님과는 전혀 닮지 않았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예수님을 참 많이 닮아가는 것이죠.

어떻게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갈까요?

 

말씀을 준비하는데, 한 집사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어려움에 처한 한 성도를 도와줄 방법을 얘기해주시고

그렇게해도 될런지 저에게 문의를 하셨어요.  

전화를 하는 짧은 순간이지만,

이 집사님 안에 하나님이 계시구나

한 성도 곁에서 수족이 되어주시고 마음을 다해

힘을 다해 사랑하시는구나~

예수님도 이렇게 하셨겠지?

예수님을 참 많이 닮은 모습이 이런거지? 라며 참 고마웠습니다. 

우리교회 참 좋은 교회에요. 예수님 닮은 사람들이 정말 많아요.

 

요즘  핫한 TV프로그램이죠? 오은영 박사의 금쪽같은 내 새끼.

프로그램을 보시면 핵심은 하나에요.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

사랑을 받아도 잘못된 사랑을 받는 사람의 문제들이에요.

그들에게 참 사랑을 가르쳐 주고 

좋은 아빠, 좋은 엄마, 그리고 좋은 아들, 딸의 모범을 

가르쳐 주고 서로 노력하는 겁니다.

세상에서도 이렇게 사랑의 모델을 제시하는데

사랑에 있어서 최고의 모델인 예수님.

그 예수님을 참 많이 닮아가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참 사랑하면, 예수님의 온전한 사랑처럼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사랑의 결정체인 예수님 처럼 될 것이며

그러니 당연히 심판 앞에서도 담대할 수 밖에요.

 

온전한 사랑의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19절입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온전한 사랑의 특징을 나타내는 말이 무엇일까요?

 

'먼저' 입니다.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우리가 서로 서로를 사랑해야 할 이유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원수되었을 때, 우리가 죄인되었을 때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었 때, 

우리의 어떠함을 따지지 않으시고

무조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온전한 사랑입니다. 

이 온전한 예수님의 사랑을 우리가 닮아야 합니다. 

 

혹시 생각나는 찬양이 없습니까?

<1절>

내가 먼저 손 내밀지 못하고 내가 먼저 용서하지 못하고

내가 먼저 웃음 주지 못하고 이렇게 머뭇거리고 있네

그가 먼저 손 내밀길 원했고 그가 먼저 용서하길 원했고

그가 먼저 웃음 주길 원했네 나는 어찌 된 사람인가

오 간교한 나의 입술이요 오 더러운 나의 마음이여

왜 나의 입은 사랑을 말하면서 왜 나의 맘은 화해를 말하면서

왜 내가 먼저 져줄 수 없는가 왜 내가 먼저 손해 볼 수 없는가

오늘 나는 오늘 나는 주님 앞에서 몸 둘 바 모르고

이렇게 흐느끼며 서있네 어찌할 수 없는 이 맘을

주님께 맡긴 채로

 

<다시 말씀: 결론>

오늘 말씀처럼 하나님을 사랑합시다.

하나님을 참 사랑하는 것은 우리가 서로 사랑함이며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곳에 임하십니다. 

사랑의 빛이 비취면 어둠은 떠나가고 담대함을 얻습니다.

하나님을 참 사랑하면 예수님을 많이 닮아 온전한 사랑을 이룹니다.

온전한 사랑은 '먼저'입니다. 우리 온전한 사랑을 이루도록

먼저 사랑하십다. 먼저 손내밀고 먼저 용서하고

먼저 웃어주고 먼저 섬기고  먼저 이해하고 먼저 높여주고

먼저 화해하고 먼저 희생합시다. 

 

찬양하면서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2절>

내가 먼저 섬겨주지 못하고 내가 먼저 이해하지 못하고

내가 먼저 높여 주지 못하고 이렇게 고집부리고 있네

그가 먼저 섬겨주길 원했고 그가 먼저 이해하길 원했고

그가 먼저 높여주길 원했네 나는 어찌 된 사람인가

오 추악한 나의 욕심이여 오 서글픈 나의 자존심이여

왜 나의 입은 사랑을 말하면서 왜 나의 맘은 화해를 말하면서

왜 내가 먼저 져 줄 수 없는가 왜 내가 먼저 손해 볼 수 없는가

오늘 나는 오늘 나는 주님 앞에서 몸 둘 바 모르고

이렇게 흐느끼며 서있네 어찌할 수 없는 이 맘을

주님께 맡긴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