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요한복음 10:11~18 예수님은 누구신가4-선한 목자 본문
요한복음 10:11~18 예수님은 누구신가4-선한 목자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니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13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16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할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17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누구신가 4 - 선한 목자
할렐루야~그동안 예수님의 자기 선언.
에고 에이미! 나는 나다! 를 통해
예수님은 누구신가를 알아가고 있습니다.
복습합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떡이십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빛입니다.
예수님은 양의 문이십니다.
오늘은 네번째 에고 에이미 "나는 선한 목자다!"입니다.
저를 따라해보실까요?
예수님은 선한 목자입니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입니다)
먼저, 이 말씀을 들을 때,
한국 사람들과 유대인들의 이해도가 다릅니다.
에스겔 34장에 보면, 자기만 먹는 목자와 선한 목자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그래서 성경을 잘 알고 있는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은 예수님께서
나는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실 때,
그 의미를 잘 알고 있습니다.
에스겔 34장 말씀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자기만 먹는 목자>
에스겔 34장 2절
"~자기만 먹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있을진저
목자들이 양 떼를 먹이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에스겔 34장 3절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 떼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
에스겔 34장 5절
"목자가 없으므로 그것들이 흩어지고 흩어져서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되었도다"
<선한 목자>
에스겔 34장 10절
"~내가 내 양을 그들의 입에서 건져내어서 다시는
그 먹이가 되지 아니하게 하리라"
에스겔 34장 11절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나 곧 내가 내 양을 찾고 찾되"
에스겔 34장 14절
"좋은 꼴을 먹이고 그 우리를 이스라엘 높은 산에 두리니
그것들이 그 곳에 있는 좋은 우리에 누워 있으며
이스라엘 산에서 살진 꼴을 먹으리라"
에스겔 34장 15절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을 누워 있게 할지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렇게 목자와 양에 대한 비유는
당시 사람들이 이미 잘 알고 있는
말씀이며, 이 말씀을 배경으로
예수님은 '나는 선한 목자'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선한 목자이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우리를 자기 생명보다 더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11절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5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사람이 있을까요? 정말 있을까요?
선한 목자와 비교되는 사람이 삯꾼입니다.
삯꾼이 욕을 많이 얻어먹죠?
삯꾼은 돈을 받고 마을공동우리를 지키는 사람입니다.
당연히 도둑이나 강도, 맹수가 양을 도둑질하거나 헤치려고 할 때
양 떼를 보호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도둑이나 강도가 떼로 덤벼 들든지,
사자나 곰, 이리떼같은 맹수가 덤벼들면,
어떻게 이깁니까? 이길 수가 없죠?
그 상황에서 양떼를 지키려면 자기 목숨을 잃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삯꾼을 욕할지 몰라도
사실 삯꾼처럼 자기 목숨을 위해 달아날 수 밖에 없습니다.
사자, 곰이 얼마나 얼마나 무섭고 위험한 동물인데
사자나 곰과 격투를 해서 양을 찾겠습니까?
이것은 자기 생명을 내놓지 않으면 못하는 일입니다.
자기 생명을 아끼는 사람은 아무도 그렇게 못합니다.
자기 생명보다 양을 더 사랑할 때에야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바로 그러한 목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자기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양을 위해서 싸우는 목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선한 목자라고 하실 때,
목자가 양을 치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예수님께서 여기서 말씀하고 싶어하시는 것은
목자와 양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죽음과 생명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17절과 18절을 보면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이라고 하고,
예수님의 목숨을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목숨을 버린다고 하십니다.
18절에 버릴 권세는 십자가에서 죽으심이며,
얻을 권세는 3일만에 부활하심을 말합니다.
11절부터 18절까지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는 말씀을 네 번이나 반복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을 가볍게 듣고 넘겨서는 안 됩니다.
목자가 얼마나 양을 잘 치는가의 문제가 아닙니다.
양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는 목자는 없습니다.
삯꾼이 욕을 많이 듣지만 삯꾼은 잘못이 없습니다.
세상의 목자들은 삯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딱, 한분 삯꾼이 아닌 분이 계신데,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며, 예수님만이 우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실 수 있는
목자 중의 목자 선한 목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죄와 사망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기 생명을 바치지 아니하면 안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무서운 저주에서 우리를 건지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그 저주를 대신 받아야 했습니다.
우리를 살리시고 하늘에 속한 모든 복을 안겨 주시기 위해서는
자기 생명을 내 놓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렇게 자기 생명 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시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우리의 선한 목자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선한 목자이신 이유
둘째는 예수님은 양들을 잘 아십니다.
14절 을 보십시오.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또 27절을 보십시오.
내 양 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여기서 '안다'는 말은 양이 몇 마리인가 하는 것을 아는
그런 정도의 지식을 말하지 않습니다.
어떤 양이 남의 양이냐 내 양이냐를 안다거나
나이가 몇 살이나 되었는지 혹은 새끼를 배었는지 안 배었는지를 아는
그런 정도의 지식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삯군 목자도 다 알고 있는 것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아신다고 할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14-15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매우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알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예수님은 우리를 아시는 것을
하나님이 예수님을 아시는 것과 같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하나님과 예수님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이고 예수님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생각은 예수님의 생각이요
예수님의 모든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입니다.
그 두 분 사이에는 어떤 간격도 어떤 틈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아시는 것은 예수님도 다 아시고,
예수님이 아시는 것은 하나님도 다 아십니다.
완벽한 상호 지식을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인간적인 논리로는
절대 설명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놀라운 상호지식을
우리에게 적용하실 수 있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그 정도로 압니까? 천만에요.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마치 하나님이 자기를 아는 것처럼
세밀하고 정확하게, 우리의 깊은 데까지 알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나를 알아주시는 분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나를 진정으로 이 해해 줄 수 있는 분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참 놀라운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가끔 우리는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고독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세상은 갈수록 나와 너 사이를 갈라놓고
높은 벽을 쌓고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알아주고 이해해줄 만한
어떤 여지도 남겨 두지 않습니다.
숨쉴 틈이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가운데
나와 너 사이의 관계는 날로 더 삭막해지고
외톨이가 되어 빈 들판에 홀로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얼마나 많이 받습니까?
예수님은 양같은 우리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선한 목자입니다.
나의 속사정을 너무나 속속 들이 잘 알고 계십니다.
나의 처지를 완벽히 이해해 주십니다.
내가 어디에 약한지?
무엇에 불안해 하며 왜 불안해하는지?
어떤 것에 자주 넘어지며, 왜 자주 넘어지는지?
너무 힘들고 너무 괴로워 울고, 왜 울고 있는지?
왜 기가 죽어 있는지
예수님은 다 아십니다.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나를 잘 압니다.
예수님의 불쌍히 여기심은 내 안에 모든 연약한 감정과
나의 모든 슬픔과 고통을 아십니다.
왜냐하면 내 안에 계시고
나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여러분의 처지가 어떠하든 간에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아신다는 말은 도와주시겠다고 하는 약속입니다.
어린 자녀가 와서 무슨 이야기를 하면
아빠들은 이런 말을 곧잘 합니다.
알았어. 그래도 무슨 말을 또 하면 알았다니까라고 말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도와주겠다는 말입니다.
걱정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아신다는 말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도와주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직장을 잃고 불안해하고 계십니까?
도와줄 테니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결혼도 해야 됩니다. 주님~ 알았다니까?
앞으로 내 진로는 이렇게 택했으면 좋겠는데
벌써 시험에 다섯 번 이나 떨어졌어요.
글쎄 알았다니 까. 우리 주님 다 아신다는 것입 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할 일은 절망이 아닙니다.
슬퍼하고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빌립보서 4장 6 절을 보십시오.
아무 것도 염려하 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은 감사함으로 아뢰라.
그렇습니다. 감사함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는 것,
이것만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나를 알아주는 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제 결론을 맺읍시다.
자기 생명보다도 우리를 더 사랑하시는 선한 목자,
나의 깊은 속사정까지 다 알고 도와주시는 선한 목자
우리 예수님을 계십니다.
나를 자기 생명보다 더 사랑하실 뿐 아니라
진실로 나를 알아주시는 분은 이 세상에서
예수 외에 아무도 없다는 말입니다.
우 리 모두 그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그 예수님 의지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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