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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요한일서 5:13~21 영생을 사는 사람. 본문

신약/요한일서 완료

요한일서 5:13~21 영생을 사는 사람.

행복으로초대 2023. 9. 20. 17:43

요한일서 5:13~21 영생을 사는 사람.

 

요한일서를 쓴 목적에 대해서 밝히고 있습니다. 

13절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요한일서의 목적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우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고 믿게 하려 함입니다. 

영생이 있다. 

 

요한복음 17장 3절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라

 

영생이 무엇일까요? 

영생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영생에 대한 잘못된 생각은 영생을 '시간'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영생은 영원이라는 시간, 즉 무조건 오래 오래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영원한 시간동안 살아도 영생이 아닙니다. 

우리가 보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보면 환타스틱 영화가 많은데,

거기에 보면 죽지않고 영원히 사는 것이 얼마나 비참하고 고통인지 

보여주는 영화나 드라마가 많습니다.

 

영생의 진정한 의미는 시간이 아니라 '관계'입니다.

사람은 죽으면 육체는 흙으로 돌아갑니다. 

영혼은 생명과 죽음으로 나뉘어집니다.

이 땅에서 생명이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은 사람은 영원한 생명으로

이 땅에서 생명이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믿지 않은 사람은 영원한 죽음으로

나뉘어 집니다. 둘다 시간으로는 영원합니다. 

하지만 영생은 하나님과 영원토록 함께 사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을 믿으면 이 땅에서 이미 영생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천국에서 영원토록 찐하게 행복하게 

기쁨과 즐거움 속에 사는 것. 그것이 영생입니다.

 

여러분들도 함께 있으면 행복한 사람이 있죠? 

마음이 즐겁고 기쁘고, 편안하고, 더 함께 있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반대로 함께 있으면 바늘방석에, 마음이 불편하고 괴로운 사람들.

계속 싸우게 되고 서로 예민하게 감정이 부딪치며

함께 있기 싫은 사람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것이 영원하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죽음을 간접체험 한 것입니다. 

 

그래서 영생이란 시간이 아니라 관계입니다. 

생명이신 하나님, 사랑이시며 기쁨과 즐거움, 행복이신 하나님과 

관계 속에서 풍성한 은혜를 영원히 누리며 사는 것, 그것이 영생입니다. 

 

그래서 영생은 누가 얻고 누가 누리는 것입니까?

다시 13절.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너희"

20절.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영생이라고 하십니다. 

결국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 

예수님을 믿는 사람만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제, 영생을 얻은 사람들에게 주시는 특권?

주시는 은혜가 무엇인지 말씀해 주십니다. 

 

첫째.담대함과 확신으로 기도하고 응답받는 것입니다. 

영생이 단순히 시간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영생은 하나님과 깊이 있는 관계 속에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있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두려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보는 사람은 반드시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없었습니다. 

가장 신성한 날인 대속죄일에 참회하며 기도할 때,

예루살렘 성전에서 대제사장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말로 표현하기에 너무나 거룩한 이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기도할 때나 말씀을 읽을 때, 

하나님의 이름을 '아도나이(주님)'라는 말로 불렀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간다는 것은 두렵고 떨리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 가운데 찾아오셨고,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친근히 부르게 하셨고, 

더 나아가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믿음의 사람들을 '친구'라고 불러주셨습니다.

 

그래서 영생이신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에게 주셔서 우리가 가진 것이 있습니다. 

14절. 우리가 무엇을 가졌습니까?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우리는 우리의 아버지, 아빠 아버지요 친구같은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담대함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담대함으로 기도하면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겠다고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15절에도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마음껏 부르십시오. 

아바 아버지~주여~~~마음껏 부를 수 있고.

찬양할 수 있고, 기도할 수 있음이 얼마나 큰 은혜인 지 모릅니다. 

 

둘째,하나님의 크신 용서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16절-17절에 보시면 죄를 두 가지로 구분했습니다. 

1)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2)사망에 이르는 죄.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그런데 그 사망에 이르지 않는다는 

말이 뭔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봐야 합니다.

죄를 지었는데 사망에 이르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죄를 회개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있습니다.

여호와를 훼방하고 말씀을 멸시하는 죄(민 15:30,31).

신약에서는 성령을 훼방하는 죄라고 합니다. 

 

히브리서 6:4~6

한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지 않는 죄.

양심에 화인 맞은 자:

화인? 짐승이나 흉악한 죄인들에게 얼굴이나 몸에 불로 지지는 것이며

화인을 맞으면 화인 맞은 자리는 마비, 둔감, 올바로 기능을 하지못하게 

됩니다. 즉 양심이 굳어져 버리고 은혜에 반응하지 못하는 상태가 됩니다. 

죄의 상태에 버려지는 것입니다. 

 

성령을 훼방한다는 말은  

성령님을 강하게 부정하고

오히려 성령의 사역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죄를 깨닫게 하고 죄를 용서받는 유일한 길이신 

예수님을 알게 하고 믿게하여 믿음의 선물을 주셔서

죄용서받고 구원을 얻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을 훼방하고 거역하면 죄용서받을 길이 막히기 때문에

사망에 이르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 

예수님 좌편과 우편에 강도가 함께 못박혔습니다.

그 때, 한편 강도가 예수님을 저주할 때

또 다른 강도는 저주하는 강도를 꾸짖으면서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고 하고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르 기억하소서!~"라고 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동일한 죄를 지었으나

결정적인 순간에 사망에 이르지 않는 사람이 있고

결국 사망에 이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답은 회개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는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성도들에게 중보기도하라고 합니다. 범죄자들을 위해 기도하면

생명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교회가 어떤 곳이어야 하는지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교회는 죄책감으로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 성도들을 향해

회개함으로 사망에 이르지 않는다는 확신을 심어주어야 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용서하심이 풍성하는 곳, 하나님의 용서하심이 흘러가는 곳,

바로 교회입니다. 서로의 연약함을 보며 비난이 아닌, 허물을 사랑으로 덮고

서로를 위해 사랑으로 기도하며 하나님께 받은 사랑과 용서함으로 

또한 서로를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크신 용서하심을 받은 곳입니다. 

우리 서로 용서합시다. 

 

셋째,영생의 가치를 알고 갈등하지 않습니다. 

18절,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성도들입니다.

성도들은 범죄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것은 16절과 맞지 않습니다.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를 범하는 것을 본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죄를 짓는다는 말입니다. 

네, 예수님을 믿어도 죄를 짓는 모습이 우리 모습이죠?

그런데 18절에서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범죄하지 않는다고 하니,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가 아닌가하는 두려움을 느낍니다. 

무엇일까요? 무슨 말씀일까요?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이면,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짓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즉, 회개하지 않고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거부하며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지 않는 죄는 짓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가 잘 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에게 

소속됩니다. 18절에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성도들.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성도들이 잘 하는 것, 영생을 얻은 성도들이 잘 하는 것은

영생의 가치를 잘 알고 선택을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생을 얻은 성도들을 지키시고 

악한 자가 감히 성도들을 만지지도 못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성도들은 

하나님께 속하는 것을 잘 합니다. 

하나님께 속하는 가치가 얼마나 큰 지 잘 압니다. 

하나님께 속함으로 하나님과 깊은 관계 속에서 사는 

영생, 즉 예수 그리스도를 선택하는 것을 잘 할 수 있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자녀들아~~ 

누가 자녀들이죠?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는 성도들이죠.

선택하라~우상에게서 멀리하라! 영생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우상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영생을 가치를 아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선택합니다. 

영생을 얻은 자의 특권과 은혜는 바로 영생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께 속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유혹에, 세상의 정욕에, 세상의 욕심에 휩쓸리지 않습니다.

영생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영생과 세상이 비교 불가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방황하지 마십시오. 세상에서 주저하지 마십시오. 

세상의 것들에 끌려다니지 마십시오. 

영생을 선택하십시오. 

어떤 목사님께서 내가 죄를 지을 수 없는 이유는 

지금까지 내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버릴 것이 

두렵기 때문이라고 하시는 것을 기억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 은사,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 속에서 

누리는 평안을 빼앗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생을 얻고 그 가치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되면, 

선택이 어렵지 않습니다. 선택을 쉽게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선택을 해야 할 때가 많이 옵니다. 

믿음의 수준에 따라, 믿음의 단계에 따라 선택의 수준도 다릅니다. 

하지만 내가 영생이신 예수님을 제대로 믿고 있다면

선택이 어렵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선택에 성령의 도우심과 말씀의 역사하심이 있어

믿음에서 넘어지지 않고 실패하지 않고 승리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