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그리스도인 1: 복음을 부탁받은 사람들(디모데후서1장11절-2장2절) 본문
그리스도인 1 :복음을 부탁받은 사람들(디모데후서1장11-2장2절)
여러분의 기억을 옛날 학교운동회로 돌려보십시오. 요즘 학교 운동회는 옛날처럼 재미가 없어요. 그 때만 해도 학교운동회는 동네잔치였습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모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손자손녀들 뛰는 걸 보면서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그리고 학교운동회에는 먹을게 많았습니다. 학교운동회 최고의 메뉴는 번데기였습니다. 신문지를 꼬깔모양으로 만들어 그 안에 번데기를 한 컵 딱 넣어주면 그게 얼마나 맛있는지... 거기에 얼음 슬러시 음료수도 참 맛있었구요... 자 여기서 먹는 얘기는 그만하고...
운동회의 마지막 경기로 400미터 계주를 주로 했습니다. 학생들끼리의 반별 대항 400미터도 재밌었지만, 연령대별로 아버지들이 출전하는 계주경기도 재밌었습니다. 40대,50대,60대 각 연령층이 나오면 몸이 다 저처럼 배도 나오고 몸도 둔하죠. 마음은 10대 20대인데 몸은 40대,50대니 마음은 저만큼 쌩쌩 달려도 몸은 저 뒤에 있습니다. 그래도 지기는 싫고, 서로 안지려고 몸이 부딪치고 하다보면 뒤엉켜 넘어지기도 합니다. 어떤 분은 혼자서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지기도 합니다. 그럼 무릎까지고 얼굴 까지고 여기저기 다치기도 하죠. 마지막 결승점 테이프를 먼저 끊은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그날은 영웅이 되는 겁니다.
제가 서론에 길~게 운동회 얘기를 한 이유는 오늘 말씀을 운동회에서 400미터 계주를 하는 선수들을 머리속에 그리면서 설교를 들으시면 딱 좋습니다. 자! 계주 첫번째 선수는 우리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2번 선수는 제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40일 후, 제자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40일간 무엇을 했는지 자세히 알지 못하겠지만 분명 놀고 먹고 여행다니지는 않았을 겁니다.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와의 만남을 통해 내 양을 치라 내 양은 먹이라 하시면서 세상 가운데서 제자들이 해야할 사역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분명 복음전파사역에 대한 강도높은 제자훈련이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40일간의 제자훈련 수료식을 하십니다. 수료식의 대미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는 겁니다. 그리고 승천을 앞두고 그들에게 마지막 말씀을 하십니다.
마태복음 28장 19~20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3년의 공생애 훈련기간,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무너졌던 제자들을 다시 소집해서 40일간의 훈련으로 재무장을 시키시고 하신 훈련의 결론이 바로 이 말씀이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은 한 마디로 '복음'입니다. 제자들은 이 말씀에 매여 그들의 남은 생애를 복음을 위해 살았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복음전파의 사명을 다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복음을 전해서 제자를 삼고 또 다른 제자, 즉 복음의 바통을 받을 3번 주자를 가르치는 사역, 그리고 그 3번 주자가 다시 또 다른 4번 주자에게 복음의 바통을 전달하는 복음의 릴레이를 해왔습니다. 그렇게 복음의 바통이 전해지고 전해져서 오늘 이시간 여러분이 이 자리에서 예배하고 이 말씀을 듣고 있는 겁니다. 물론 이 복음의 릴레이가 쉽게 된 것이 아닙니다.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극심하게 반대하고 핍박하던 세력이 있었습니다. 대표적 인물로 사울입니다. 하지만 복음은 능력이 있어 사울을 변화시켜 오히려 복음을 위한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사울아 사울아 내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늘로부터 빛이 비치고 음성이 들리는 순간 사울의 눈이 멀었습니다. 그런데 다메섹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울이야기가 나오는 사도행전 9장에는 재밌는 표현이 나옵니다. 사울은 분명히 눈이 멀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사도행전 9장에는 사울이 "보았느니라" 예수님께서 사울에게 '보이리라'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눈이 먼 사울이 기도하고 있는데 그가 보았습니다. 아나니아가 와서 안수해서 다시 보게하는 것을 사울이 보았느니라고 합니다. 그리고 사울이 예수님의 이름을 전하기 위해 택함받은 그릇이고 그 일을 위해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보이리라 고 되어있습니다. 바울의 눈은 멀었으나 그는 오히려 보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순간은 단순한 만남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복음의 바통을 바울에게 전달하는 순간입니다.
즉, 바울은 복음의 릴레이에서 1번 주자 예수님으로부터 복음을 바통을 받고 달려야할 2번 주자가 된 겁니다.
“바울아 바울아 내가 너에게 이 복음을 부탁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부탁받은 바울은 예수님께 특별한 부탁을 합니다. “주님! 그럼 제가 이 복음을 증거하겠으니 저는 제 생명을 주님께 부탁합니다.”
디모데후서 1장 12절 “ 내가 의탁한 것”은 바울의 생명입니다.
사도행전 20장 24절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사도행전20장 24절)
예수님은 바울에에게 복음을 부탁하고 바울은 예수님께 생명을 부탁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께 의탁한 생명을 하나님께서 그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사람은 누구나 죽음의 순간을 맞이합니다, 바울도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겠죠? 하지만 바울이 죽는 그날은 세상 사람들이 죽는 그날과는 다릅니다. 왜냐하면 바울의 육체의 시간이 끝나는 날이 그의 사명이 끝나는 날과 같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은 얼마나 남았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음증거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명을 이루는 삶을 살라고 여러분에게 주신 것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바로 시간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들, 우리의 남은 인생을 어떤 시간들로 채우느냐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부탁하신 복음을 위해 자신의 육체의 때를 채운 바울을 생각합시다. 그는 복음을 부탁받고 자신의 생명을 주님께 부탁했습니다. 이로 인해 그의 육신의 시간이 멈추는 날이 그가 주님께 받은 사명이 끝나는 날이 됩니다. 계주 달리기를 생각하면 자신에게 주어진 구간을 혼신의 힘을 다해 달려왔던 것입니다.
여기서, 잠깐 이 한마디 말을 생각해 봅시다. 썩어없어지는 인생이 되지 말고 닳아없어지는 인생이 되십시오. 그냥 여러분의 육신의 시간이 지나가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받은 복음전파의 사명을 위해 닳아없어지도록 살다가 마치는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이제 자신이 달려야할 구간을 다 달리고 다음 주자에게 복음의 바통을 전달하려고 합니다.
14절에 바울은 디모데에게 부탁했던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고 합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부탁했던 아름다운 것은 ‘복음’입니다. 13절에서 말하듯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 즉 디모데가 바울에게 들은 바른 말은 사도 바울의 가르침이며 그 가르침은 바로 복음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복음을 힘써 지키라고 당부합니다. 여기서 복음을 지키는 것이 무엇일까요? 단순히 보관만 잘 하고 있으면 되는 겁니까?
답은 2장 2절을 함께 봅시다. 디모데후서 2장 2절
또 내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디모데가 바울에게 들은 바, 즉 복음을 다른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복음을 부탁했듯이, 예수님께서 바울에게 복음을 부탁했듯이, 바울이 디모데에게 복음을 부탁했듯이, 그리고 디모데가 다른 충성된 사람들에게 복음을 부탁했듯이 하라는 말입니다. 그럼 디모데로부터 복음을 부탁받은 사람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도록 합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 전해지는 방법입니다. 복음을 지키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리고 이 복음을 지키는 것에 대해서 좀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 11절 말씀입니다. 다시 11절 말씀을 봅시다.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선포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자입니다.
-사도는 예수님으로부터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자입니다.
-교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치는 자입니다.
이 세가지를 합치면 복음을 위하여 예수님으로부터 세상으로 보냄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자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치는 자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지금 우리의 모습을 반성해 보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것이 무엇일까요?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말합니까? 예수님을 가르칩니까? 예수님을 믿으면서 예수님을 말하지 않고 예수님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우리가 진짜로 믿는 것일까요?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구원받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풍성한 삶을 살아갑니다. 예배드리고 찬양하고 감사하고 기도하고 응답받고 주님 안에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하나님 여기가 좋습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그러면서 교회 안에서 서로 사랑을 나누며 즐겁게 교제합니다. 교회안에서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성도들끼리 서로 만나서 함께 잘 지냅니다. 함께 웃고 때로는 함께 웁니다.
초대교회는 정말 멋진 곳이었습니다. 강력한 기적이 있었습니다. 능력있는 교회였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교회였습니다. 자신의 것을 기꺼이 가난한 자들을 위해 내어 주고, 사랑으로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곳이었습니다. 날마다 모이기에 힘쓰고 마음이 하나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열정이 있었고 예배가 살아있는 곳이었습니다. 구제의 문제로 잠시 다툼이 있었지만 사도들이 지혜롭게 잘 해결했습니다. 지혜로운 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교회는 온 백성들의 칭송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교회를 하나님께서 흩으십니다. 분명히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와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될 것이라고 하셨는데 예루살렘에서 성도들이 증인으로서 멀리 멀리 나갈 생각을 안합니다. 복음의 전파가 예루살렘에 멈춰 성도들이 복음의 야성을 잃어버렸습니다. 복음의 증인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자신에게 주어진 구간을 달려야 할텐데 모두 예루살렘에 멈춰서 더이상 달리지를 않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교회에 박해가 일어나는 것을 허락하십니다. 스데반 집사가 순교합니다. 그리고 교회에 닥친 박해로 인해 성도들이 온 땅으로 흩어집니다. 흩어지면서 복음을 전합니다. 즉 흩어지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칩니다. 그렇게 복음의 릴레이가 다시 시작되고 지금 우리에게까지 왔습니다.
여러분에게 다시 묻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을 말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칩니까? 복음을 부탁받아 복음의 바통을 받았는데 달리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지 않고 있으면 결국 복음의 릴레이는 멈추고 맙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물을 겁니다. "너는 누구에게 복음의 바통을 넘겼느냐?"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내시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가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참 신기한 것은 그가 성경을 가지고 읽고 있었다는 겁니다. 이 말은 누군가가 그에게 성경책을 전했다는 말입니다. 즉 전도를 한 겁니다. 그런데 그가 성경을 읽어도 깨닫지를 못합니다. 그때 복음의 릴레이를 위해 보냄 받은 계주 선수가 빌립입니다. 빌립이 내시에게 묻습니다. 성경을 깨닫느냐? 그때 내시가 이렇게 말합니다.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깨달을 수 있느냐?" 내시에게 필요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자,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치는 자가 필요합니다.
이제 마지막, 생각의 정리를 해봅시다. 오늘을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해야할 일이 무엇일까요? 구원받은 은혜에 감격하고 감사하고 사는 삶에서 끝나는 것입니까? 혼자만의 구원받은 삶에서 멈추는 것입니까? 분명히 복음의 바통을 받으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만 구원받고 천국가면 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며, 예수님 그리스도를 가르치는 것까지 계속 나가야 성공한 것입니다. 계주 경기처럼 복음의 바통을 들고 내게 주어진 구간을 혼신의 힘을 다해 달려가서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이 우리 삶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말해야 할 대상자,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칠 대상자를 찾으십시오. 가정에서라면 부부끼리, 자녀들에게 이 훈련을 합시다. 신앙의 전수를 위해 힘써 봅시다. 4대, 5대 신앙의 계주를 이어가는 믿음의 명문가를 만듭시다. 여러분이 받은 직분을 통해 더욱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가르치는 훈련을 합시다. 은혜의 간증을 통해 서로에게 믿음의 자극제가 되기를 바랍니다.
친구사이 전도축제를 통해 전도받은 VIP들에게 예수를 말하고자 예수를 가르치고 자 새가족양육리더세미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순종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들고 배워야 할 사람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했습니다. 그럼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가르칠 누군가가 있어야 합니다. 담임목사님께서 설교를 통해 복음의 메세지를 전할 것입니다. 그리고 훈련받은 새가족 양육 리더들을 통해 이 사역을 할 것입니다. 그래서 구역에서 전도회에서 이 사역에 순종하여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를 따라하십시오. "나는 복음을 부탁받은 그리스도인"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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