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디모데후서 1장 6절~10절) 본문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디모데후서 1장 6절~10절)
우리나라에는 전통 무형 유산의 맥이 끊어지지 않도록 '인간문화재'를 지정합니다.
인간문화재로 지정받으면 여러가지 혜택을 주고 국가에서 지원을 해줍니다. 하지만 혜택 만큼 의무도 있습니다. 가장 큰 의무는 ‘공개’와 ‘전승’이다. 공공의 장소에서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공연을 해야 하고 후학을 길러 전통 무형유산의 맥이 끊어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따라서 인간문화재는 자신이 보유한 예능이나 기능을 끊임없이 갈고 닦아야 하고 전수조교와 이수자 등에 대한 전수교육을 책임져야 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우리나라의 전통 유산에 관심이 사라지고 찾거나 배우려는 노력들이 없습니다. 계승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디모데후서 1장 6절~9절까지의 말씀을 자세히 보면 죽음을 앞둔 바울이 자신을 대신해서 복음의 계승자를 세우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럼 바울이 디모데에게 전수하고자, 계승하고자 하는 진짜배기 핵심은 무엇일까요? 차근차근히 함께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6절을 보십시오. 딤후 1:6 다시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일단 디모데가 하나님의 은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디모데는 위임을 받을 때, 목회사역을 위한 성령의 특별한 은사를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디모데가 안수받을 때 받은 그 은사를 불일듯 하기 원하다고 합니다. 이 말은 디모데가 받았던 그 은사가 다 줄어들었다거나 소멸되어서 다시 주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불타오르도록"이라는 의미입니다. 디모데가 사역을 함에 있어서 은사가 계속 나타나고 있지만 그 은사가 식지 않고 계속 뜨겁게 타오르도록, 유지를 잘 할 뿐만 아니라 더욱 강하게 나타날 수 있도록 이라는 뜻입니다.
바울이 왜 이런 말씀을 했을까요?
7절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디모데를 말할 때, 항상 나오는 말이 '연소함'입니다. 즉 아직 어리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건강이 좋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연소하고 연약한 디모데.
그런 디모데가 당시 거짓교사들과의 힘겨운 싸움, 로마정부의 기독교 박해 등으로 인해 크게 위축되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디모데를 격려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다"고 한 것입니다.
오히려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합니다.
-능력:로마서 1:16에 곧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이 말씀에서 말하는 능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의 능력을 주셨음을 생각하라.
-사랑:고린도전서 13장 사랑장이죠. 사랑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탁월하게 사랑이 무엇인가를 표현해 주는데 그 중에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은 두려움을 물리치는 힘입니다.
-절제:'통제하다'와 '생각'의 합성어입니다. 그래서 두려운 마음이 들어올 때, 생각을 잘 통제해서 이기는 것입니다. 이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을 가져라.
이미 디모데는 안수를 받을 때 하나님께로부터 은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복음의 능력, 모든 것을 견디는 사랑의 힘, 두려움을 잘 통제할 수 있는 힘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두려움이 오면 하나님께로 부터 받았던 그 모든 것이 위축되게 되는데 바울은 이 때 하나님께 받은 것을 다시 깊이 생각해 보고, 확신하고 모든 두려움을 담대히 떨쳐버리고 일어서라고 합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이렇게 강하게 격려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울이 자신의 죽음이 얼마남지 않았음을 알고 자신이 생명조차 아까워하지 않고 전했던 복음, 그 복음의 계승자가 디모데가 되어 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 바울의 바램을 알수 있는 말이 6절에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입니다.
디모데가 안수받은 것에 대해서 디모데전서 4장 14절에도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딤전 4:14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
두 구절사이의 차이가 보이십니까? 디모데전서 4장에서는 "장로의 회에서 안수받았다"고 했고 오늘 말씀에서는 "나의 안수함으로"라고 되어있습니다. 더 정확한 해석은 '나의 안수를 통하여"입니다.
디모데는 장로의 회에서 안수를 받았을까요? 아니면 바울 개인의 안수를 받았을까요? 당시 교회의 관례를 따르면 장로의 회에서 안수를 받았다고 봅니다. 그런데 왜 바울은 자신이 개인적으로 안수한 것처럼 언급하고 있을까요? 죽음을 앞둔 바울이 디모데가 자신의 사도직에 대한 계승자가 되기를 바라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서신서의 첫 시작을 자신의 사도권에 대한 주장으로 시작합니다. 디모데후서 1장에도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은"이렇게 시작합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이후, 평생을 사도로서 살았습니다. 이제 사도의 삶을 마감하는 때가 가까이 오는데 자신을 대신해 사도적 삶을 살 디모데를 생각하고 힘을 북돋아주고 있습니다.
그런 바울이 디모데에게 사도적인 삶을 살기 위한 필수요소를 가르치고 있는데 그것이 무엇일까요?
8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디모데에게 계승하고픈 핵심이 담겨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너는(디모데죠) 내가(바울입니다.)
1)우리 주를 증언함과
2)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바울은 사도직을 두 부분으로 봅니다.
첫째, 말로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를 그려 내는 것. 곧 설교, 복음 선포, 전도 등입니다.
둘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몸으로도 그려내야 한다.
바울이 주장하는 진정한 사도직의 표징은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고난입니다.
사도란 말은 그리스도의 전권대사란 뜻이다. 그래서 사도는 그리스도로부터 파송받아 그리스도의 권세를 가지고 그리스도를 그대로 드러내는 사람이다. 유대적 관념에 따르면 보냄받은 사자는 보낸 주인과 같습니다. 그런데 바울을 보낸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자기를 내어 주시고 고난받고 그 고난 가운데서 부활하신 분이다. 그러니 바울은 그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함에 있어서 그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말로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몸으로 그대로 그려내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8절을 보십시오.
첫째, 우리 주를 증언함. 즉 말로서 복음선포,설교,전도하는 바울을 말합니다.
둘째, 주를 위하여 갇힌 자된 나(즉 예수님을 위해 고난을 당하는 바울) 자신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런 바울을 부끄러워하지 말라: 왜? 바울이 지금 감옥에 갇혀 죽음을 앞에 둔 것은 국가에 범죄를 저지른 죄수가 아니라 복음에 매인 자, 주를 위하여 갇혔기 때문에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죠. 하지만 힘으로도 능으로도 안되니.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서 이제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자"라고 핵심을 가르칩니다.
여기서 첫번째 고난에 대한 핵심입니다. 무엇때문에 고난을 당하느냐입니다.
우리가 보통 고난을 당한다고 할 때, 실제는 고난이 아닐때가 많습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희노애락이 계속됩니다. 때로는 기쁜 일도 있지만 슬픈 일을 겪을 때도 있습니다. 사업이 성공할 수도 있지만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몸이 아플수도 있습니다. 가정이나 자녀들에게 문제가 생길수도 있습니다. 그 때, 보통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그건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관점에서 고난이 아닙니다. 그걸 고난이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가난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고, 아플수도 있죠. 요즘 거제 경기가 어렵다고 하지만 부산에서 살다온 제가 보기엔 거제 사는 분들 그래도 잘 삽니다. 고난을 아무때나 붙이지 마십시오. 고난을 말할 땐, 항상 이 말을 앞에 붙이십시오. "복음과 함께" 진정한 고난은 복음과 함께 할 때 고난의 의미를 가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8절 말씀을 보시면 바울이 감옥에 갇혔습니다. 왜 갇혔습니까? 심각한 범죄를 저질러서요? 살인을 했나요? 강도짓을 했나요? 무슨 나쁜 짓을 했나요? 아니요. 8절에 왜 갇혔다고 합니까? "주를 위하여" 갇힌 것입니다. 즉, 복음과 함께 하다보니 고난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감옥에 갇힌 것은 진정한 고난입니다.
그럼 모든 성도들이 예수님이나 사도 바울이 받은 것 같은 엄청난 고난을 받아야 한다는 말일까요? 극단적인 경우에는 그럴 수도 있겠으나(순교를 당한다거나...) 대개의 경우 고난은 하나님 나라의 법을 순종하다가 당하는 손해고 아픔입니다. 복음 때문에 자신이 손해보고 아픔을 당하는 것을 감내하자는 겁니다. 왜 그래야 하나요? 예수님을 믿는 삶에 왜 고난이 동반되어야 하는가? 예수 안 믿는 사람들처럼 좀 편하게 살면 안되나? 예수님 믿는다고 고난을 당해야 하는가? 어떤 성도님이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목사님! 우리들 좀 내버려 두십시오. 좀 고상하게 신앙생활 하고 싶습니다." 고상하게 신앙생활하고 싶다? 무슨 뜻일까요? 한마디로 넓은 길로 가고 싶고 쉬운 길로 가고 싶다는 말이겠죠?
"고난을 받으라" 참 무거운 주제입니다. 솔직히 고난을 받으라고 하면 마음이 무겁고 힘들고 피하고 싶고 될수 있으면 모른 척 하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누가 힘든 걸 좋아합니까? 그런데 바울은 어떻게 고난을 견뎌냈을까요? 바울을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랄때가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죽도록 맞아서 죽은줄 알고 성밖에 버려졌는데, 좀비처럼 다시 일어나더니, 도망가기는 커녕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그 성으로 다시 들어가네요.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죠? 여기서 두번째 바울이 디모데에게 전하고 싶은 고난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바울이 고난을 받아들이는 인식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고난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이것을 알려면 고린도전서 4장 9절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사도 바울은 사도된 자신이 그리스도의 개선행진 대열의 끄트머리에 세워져서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는 포로라고 합니다. 개선행진에 수많은 사람들이 좌우로 서있고, 꽃가루가 날리고 꽃향기, 즉 승리의 냄새가 진동하고 환호성이 터지면서 승리의 장군을 환영합니다. 그 뒤로 승리한 군사들이 위풍도 당당하게 따릅니다. 그리고 그 끄트머리에는 포로들이 끌려옵니다. 이 포로들은 개선 행진이 끝난 뒤 다 죽임을 당했습니다. 때문에 승리의 개선행진 끄트머리에 세워져 있는 정복된 포로들은 승리한 장군의 승리에 대한 확증의 증표이며 승리한 장군의 영광을 더욱 크게 드러내 줍니다. 이것은 정말 충격적인 말입니다. 바울은 이 개선행진의 끄트머리에 끌려가는 포로, 행진이 끝나면 죽음을 당하는 포로라고 합니다. 충격이죠. 바울 정도면 이제 그만 영광을 받고 사람들에게 높임을 받으면 될텐데... 그는 자신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충격적이지만 그렇지만 중요한 의미를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고난이 그냥 단순한 고난이 아니라는 겁니다. 복음과 함께 하는 성도의 고난은 결국 그리스도의 영광으로 이어집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 이것이 우리의 사는 목적입니다. 예수님의 영광을 위해 사시기 바랍니다.
이제 내가 살아도 주 위해 살고 이제 내가 죽어도 주위해 죽는다. 내가 사는 모든 일에 중심은 예수님입니다.
나는 죽고 주가 살고... 예수님과 함께 할 때, 내가 고난을 당함으로 그리스도가 영화롭게 된다면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내가 낮아지고 예수님이 높아질 수만 있다면, 내가 고난을 받아도 예수님이 영광을 받을수만 있다면... 나는 내 삶의 진정한 목적,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위해 복음과 함께 고난을 기꺼이 받겠다고 고백합시다. 결단합시다. 힘든 결정이지만 그 결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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