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온전한 성도2 : 성경을 통해 예수님께 엎드리는 성도 (디모데후서 3장 6절~17절) 본문
온전한 성도2 –성경을 통해 예수님께 엎드리는 성도.(디모데후서 3장 6절-17절)
지난 시간에 이어 온전한 성도에 대해 좀 더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지난 시간에 온전한 성도에 대해서 말씀드리면서 자기사랑과 하나님사랑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결국 온전한 성도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을 이기는 성도입니다. 그래서 자기 사랑으로부터 시작되는 2절부터 5절까지의 19가지 죄악들이 나오고 그런 죄악들에서 돌아서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5절 마지막에 나오듯이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 사랑하기보다 자기만 사랑하는 19가지의 죄인들에게서 돌아서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럼, 오늘은 여기서 한번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일단은 돌아섰다. 그럼,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돌아서서 이제는 어떻게 해야하나?라는 질문을 생각하시면서,
돌아섰지만 다시 실패한 사람들에 대한 성경구절을 한번 찾아봤으면 좋겠습니다.
베드로후서 2장 21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만일 그들이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난 후,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이 말이 이같은 자들에게서 돌아서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하지만 다시 세상의 더러움에 빠져서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 구절을 읽고 난 후, 예수님의 말씀하셨던 것 중, 생각나시는 것이 있습니까?
마태복음 12장 43절~45절까지의 말씀입니다. 더러운 귀신이 한 사람에게서 나가서 다니다가 내가 예전에 있던 집이 더 좋았지하고 돌아와보니 그 집이 비어있고 깨끗하게 정리가 되어 있으니 자기 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더 데리고 들어오더라. 그러면서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베드로후서 2장 21절 말씀과 같은 말씀입니다. 돌아서기만 했을 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보니 오히려 귀신에게 틈을 주고 형편이 더 심해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의 결론은 무엇입니까?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이 세대가 바로 디모데후서 3장 1절에서 말한 말세의 세대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진짜 채워야 될 것을 채우지 못하고 악한 것들을 채우고 있으니 점점 더 타락하고 무너져 간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명상과 묵상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실제로 사전적 의미는 같습니다. 그런데 명상이라 하면 보통 불교나 ‘기’를 다루는 곳에서 사용하고 묵상은 기독교에서 사용합니다.
보통 명상은 비우는 것입니다. 생각을 비워라, 마음의 번뇌를 비워라고 합니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봤지만 비우는 것은 상당히 위험합니다.
반면 묵상은 채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명확하게 채우는 대상이 있습니다.
말씀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내 생각을 꽉 채우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그 과정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단 한가지입니다.
찬양과 기도와 함께 약속의 말씀으로 내 안을 가득 채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가득 채울 때,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 안에서 확실하게 나타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전하면서 온전한 성도가 어떤 성도인가?
바로 “예수님을 배우는 성도입니다”라고 전하려고 합니다.
죄인들에게서 돌아서서 예수님으로 채우기 위해 해야할 일이 배우는 것입니다.
6절부터 16절까지 보시면 배우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 배우는 사람들은 2부류로 나눠집니다.
잘못 배운 사람과 바르게 배운 사람입니다.
첫 번째 잘못 배운 사람들은 6~9절까지 나오는 '어리석은 여자'입니다.
'어리석은 여자'는 작은 여자라는 뜻입니다. 작다는 말은 약하다는 뜻이고 특히 영지주의 이단에 쉽게 이용당하는 여자들을 가리킵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자 성도님들께는 죄송하지만 분별력이 없고 맹목적이고 쉽게 이단 학설에 넘어가버리는 경우가 '여자'들에게서 많이 나타났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리석은 여자'라고 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아니죠. 그리고 여자들이 이단에 잘 넘어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한가지 있었습니다.
이 당시 여자들은 문맹이 많았습니다. 글자를 모르니 특별히 더 좋은 선생님을 만나야 하는데 그 어리석은 여자들은 선생님을 잘못 만났습니다. 당시 헬라인 가정에서는 여자들이 새로운 학문과 예술을 배우기 위해서 학자나 예술가들을 집으로 초청하는 일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런 초청을 빌미로 6절 처음에 '그들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죠. 이 사람들은 거짓교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정체에 대해서는 8절에 가르쳐 줍니다. 그들은 8절에 나오는 얀네와 얌브레 같은 사람들입니다. 얀네와 얌브레는 모세가 바로왕 앞에서 기적과 재앙을 행할 때, 바로 옆에서 모세가 행한 기적을 따라하기도 하고, 모세를 대적했던 사람들입니다. 얀네와 얌브레 처럼 진리를 대적하는 자, 마음이 부패한 자, 믿음에 관하여는 버림을 받은 자라들이 어리석은 여자들의 선생님들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결과가 어떨까요?
6절: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 바 되고 9절 결국 그들의 어리석음이 드러납니다.
그런데 더 참담한 결과는 7절입니다.
7절: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선생을 잘못 만나 잘못 배운 결국입니다.
밤새도록 공부하고 쌍코피 터지도록 노력했는데 성적, 등수는 오를 생각은 하지 않는다면....
이와 같은 것입니다. 배우고 싶고 항상 배웠는데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다니 이것만큼 비참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럼 이제 바르게 배운 사람을 살펴보겠습니다.
10절부터 보십시오. 10절에 빠져있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그러나 너는"이라는 말입니다.
10절 처음부터 "그러나 너는 나의 교훈과 ~~~~"이렇게 됩니다. 여기서 너는 디모데고 나는 바울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자신을 배우라고 합니다.
나, 즉 바울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박해를 받은 것을 배우라고 합니다.
우리 모두가 인정하듯이 바울은 좋은 선생님이었습니다. 그가 전했던 복음의 바른 진리, 그리고 언행일치의 모범, 그리고 바울이 생명을 걸었던 복음의 열정, 하나님에 대한 변함없는 믿음, 복음전파를 위해 오래참고 사랑하고 인내하고 핍박을 견디고 고난을 각오하는 모습.
이런 선생님이 그립습니다. 이런 영적 지도자가 그립습니다. 바르게 가르치고 바르게 모범을 보여주는 선생님이 되기를 기도해 봅니다. 선생님을 잘 만나면 인생이 달라지듯이 디모데는 바울같은 좋은 선생님을 만났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바울이 정말 하고 싶어 하는 가르침이 아닙니다. 바울이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이것입니다. 바울도 자신이 정말 모범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았지만 '나는 아니다' "나를 통해 조금은 배울 수 있지만 나는 아니다." "나 말고 다른 분을 배워야 한다." 바울은 이런 생각을 가지고 "나를 배워라" 보다 그 다음 단계를 가르쳐 줍니다.
12~13절을 보십시오. 경건하게 사는 자들이 박해를 받고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도 더욱 악해지고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는 그런 시대에 온전한 성도라면 꼭 배워야 할 것이 있다고 강조합니다.
14~16절에서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그러나'에 집중하십시오. 세상은 더욱 더욱 악해지지만 그러나 너는, 디모데 너는, 온전한 성도들은, 호산나 교회 성도들은 배우고 확신한 일에 더욱 거하라. 그리고 바울이 소개해 주는 것은 성경입니다.
바울과 같은 좋은 선생에게서 배울수도 있지만, 더욱 배워야 할 것은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7절과 비교해 보십시오. 어리석은 여인은 항상 배웠지만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준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성도는 성경 배우기를 힘써 노력하는 성도입니다. 여러분에게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성경을 가까이 하십시오. 성경을 가까이 하기 위한 모든 방법들을 동원하십시오. 설교를 듣고, 우리 목사님 설교 정말 파워풀하고 너무 좋습니다. 성경을 읽기도 하고 암송도 하고 묵상도 하고 쓰기도 하고 타자도 쳐보고 공부도 하고 연구도 하고 할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십시오.
그런데 말입니다. 여기서 한가지만 더 생각해 봅시다.
바울이 정말 하고 싶은 말이 "성경을 배워라" 일까요? 다른 말로 하면 성경이 목표일까요? 아니면 다른 목표가 있을까요? ~~~~ 바울이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성경을 통해 예수님께로 가라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라고 했습니다. 즉 말씀이 목적이 아니라 말씀은 등이다. 빛이다. 즉 길을 가는데 도움을 주는 도구이지 말씀이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목적으로 하는 것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성경을 아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자로 멈추지 말고 성경을 도구로 예수님을 배우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경공부 많이 한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성경공부를 통해 예수님을 만나라입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곧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성경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을 통해 예수님을 알게 된 사람들의 두 가지 모습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에게 두가지 길을 제시하겠습니다.
이 두 가지 중에서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1)성경을 통해서 예수에 대한 지식을 얻으려는 자와
2)성경을 통해서 예수님께 엎드리는 자가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을 대하는 자세에 대한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예수에 대한 지식을 얻으려고 하는 자는 예수 앞에 엎드리지 않기 때문에 그냥 지식을 얻는 것을 즐깁니다. 그것은 결국 남들보다 좀 더 아는 것을 즐기는 것, 결국 자기 만족이며 자기 쾌락이고 자기 자랑이고 그것은 결국 자기 사랑인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세리의 이야기를 생각해 보십시오. 바리새인은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 저는 저 세리처럼 악한 죄인이 아닙니다. 하나님 저는 이런 죄도 짓지 않고 저런 죄도 짓지 않고 누구보다 거룩하게 살았습니다."
사실 바리새인은 누구보다 성경을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하나님을, 그리고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에 대한 지식은 많을 수 있으나 예수님께 진정 엎드리려 하지 않습니다. 바리새인의 기도하는 자세가 어땠는줄 아십니까? '서서'했습니다. 서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잘못된 것 아닙니다. 하지만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에서는 유난히 바리새인의 '서서' 기도하는 자세는가 하나님을 대하는 진정한 자세가 아닌 듯해 보입니다. 반면 세리는 어떻습니까? 감히 하늘을 향해 고개도 들지 못하고 가슴을 치면서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이렇게 기도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대하는 진정한 자세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라 라는 말씀에 순종해서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를 잡았을 때, 바로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했습니다.
성경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 때, 우리는 성경을 통해 예수님 앞에 엎드리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꼿꼿하게 서있는 사람의 자세와 바짝 엎드려 있는 사람의 자세는 분명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성경이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줍니까? 교훈을 줍니다. 책망을 합니다. 바르게 합니다. 의로 교육합니다. 그런데 꼿꼿이 서서 나는 의인입니다. 나는 죄가 없습니다 라고 하는 사람이 교훈을 즐겨 듣겠습니까? 책망의 말씀을 듣겠습니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바르게 고침을 받겠습니까? 교육받겠습니까?
그래서 성경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께 바짝 엎드리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성도가 온전한 성도입니다. 그렇게 성경의 유익을 받고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바짝 엎드려서 성경을 통해 교훈을 받으십시오. 세상의 지식도 중요하지만 세상의 지식이 성경을 앞서지 못하게 하십시오. 성경이 여러분의 삶의 근거가 되고 뿌리가 되게 하십시오. 성경을 통해 책망을 받으십시오. 성경앞에서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도 나십시오. 말씀의 방망이 앞에 하나님의 사랑의 매도 맞아 보십시오. 그래서 성경을 통해 잘못된 내 삶을 하나님 앞에 바르게 하십시오. 성경을 통해 교육을 받고 의롭게 사십시오. 더욱 악해져 가는 세상에서 더욱 의인의 삶을 사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온전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온전한 성도는 성경을 통해 예수님께 바짝 엎드리는 성도입니다. 이런 성도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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