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그리스도인2-충성된 사람들 (디모데후서 2장1-6절) 본문
그리스도인2-충성된 사람들(디모데후서2장 1절~6절)
지난 디모데후서 설교에서는 '복음을 부탁받은 그리스도인'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마치 400m계주경기를 하듯이 복음의 바통을 이어가는 모습을 상상하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들은 또 다른 제자들에게 복음의 바통을 전하고 전해서 오늘 이 시간 이 자리에 우리가 있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디모데는 바울에게서 복음의 바통을 받았고 다시 또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의 바통을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디모데에게 복음의 바통을 받은 사람은 또 다른 누군가를 가르쳐 또 한 사람의 복음의 선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럼 이 일, 즉 복음의 바통을 전하기 위해 선수로 부름받은 사람들의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일까요? 오늘은 이것을 말하고자 합니다. 답은 2절에 있습니다. 2절을 다시 보면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네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복음을 충성된 자들에게 부탁하라고 합니다. 바로 '충성된 사람들'입니다. 복음의 바통을 받았으면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이 충성된 사람에 대해 설명하면서 3가지 비유를 들고 있습니다. 충성된 사람들!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한번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첫번째, 충성된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기쁨을 위해 삽니다.
3-4절 말씀을 보면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찌니.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충성된 그리스도인은 군인처럼 살아야 합니다. 이 말씀은 비유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군인이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군인으로서 갖추어야 중요한 자질이 하나있는데 그 것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3~4절 말씀에서 군인이 갖추어야 할 자질은 무엇입니까?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군사로 모집된 사람이 나라 지킬 생각은 안하고 자기 생활 걱정만 하고 있으면 나라를 지킬 수 없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묻습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삽니까? 직장생활도 해야 되고 자녀들 공부도 시켜야 하고 해야할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특히 요즘은 직장에서 언제 해고될 지 모르는 상황이라 직장에 안매일 수 없습니다라고 하십니다. 목사님은 교회가 자기 생활이니까 가능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라고요.
그렇다면 정말 이 말씀은 전적으로 교역자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일까요? 그럼 이 질문을 하나 합시다. 오늘 말씀대로 해서 여러분은 모집된 자인가? 모집된 자라고 하니까 답하기 애매하십니까? 그럼 여러분은 부름받은 사람들입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불러주셨습니까? 아니요? 글쎄요? 라고 하시는 분들 계십니까? 우리는 죄와 허물로 죽었던 사람들이었고 하나님과 원수된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이었습니다. 죽음의 어둠 가운데서 소망없이 살던 우리를 하나님께서 사랑하습니다. 자격없는 나를 하나님께서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더이상 지옥의 영원한 죽음이 아닌 천국의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멸망당할 수 밖에 없던 진노의 자녀였던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주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안에서 여러분은 하나님께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부정한다면 여러분 안에 있는 이 복음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 복음 안에 부름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복음의 증인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만 이 말씀을 이원화 시키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교역자는 전적인 사역자이고, 자신은 일반 직업을 가졌으니 전적인 사역자인 교역자들과는 다르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목사는 전적으로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야 하지만 자신들은 적당하게 신앙생활을 해도 된다고 합리화를 하며 사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의식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의식은 잘못된 것입니다. 목사나 성도들이나 다 함께 복음을 받은 자라면 그 복음을 또 다른 충성된 자들에게 증거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이것이 이해되지 않으면 더 앞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이것을 이해하고 인정하신다면 다시 3,4절 말씀을 자세히 봅시다. 자세히 살펴보면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 군인의 진짜 자질이 아닙니다. 군인의 진짜 자질은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않고 모집한 자의 기쁨을 위해 자신의 삶을 드리는 것이 군인의 자질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주님의 군사라고 고백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목적이 너무나 분명합니다. 우리를 부르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전 삶을 통해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로마서 12:1절 말씀에 보면“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라면 이렇게 사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가 왜 일을 합니까? 무엇을 위하여 돈을 법니까? 과연 주님의 기쁨을 위한 것입니까? 아니면 자기 자신의 기쁨을 위한 것입니까? 처음에 디모데후서 3장을 설교하면서 말세를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서 두가지 경향의 사람들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자기 사랑'하는 사람들과 '하나님 사랑'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그러면서 자기사랑하는 사람들이 되지 말고 하나님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자고 했습니다. 자기 생활에 얽매여서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자기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내 삶의 한 순간이라도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실까? 나는 어떻게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살수 있을까? 질문을 항상 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내 삶의 질문부터 바꾸십시오. 어떻게 하면 세상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좋은 차에 넓은 평수에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 자식 과외많이 시키고 공부 잘하게 해서 일류대학 보낼까? 이런 질문이 내 머리 속에 가득하다면 질문을 바꾸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실까? 나는 어떻게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살수 있을까? 이 질문으로 바꾸십시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라고 하셨지 않습니까?
그리고 주님의 기쁨을 위해 살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면 순종하십시오, 물론 어려움은 있겠지만 한번 살아보십시다. 군인같은 패기와 용기로 믿음의 전진을 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두번째, 충성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방법만을 찾습니다.
충성된 그리스도인은 경기하는 선수와 같이 살아야 합니다. 5절 말씀을 보면 “경기하는 자는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라고 합니다. 말씀 속에서 답을 찾아보십시오. 충성된 그리스도인이 경기하는 선수와 같다고 했는데 그럼 경기하는 선수의 어떤 자질을 배워야 할까요? 예! 법대로 경기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이 비유는 바울 사도가 자주 사용하는 비유입니다. 그 당시에도 올림픽과 같은 경기가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경기를 잘 해도 법대로 하지 않으면 탈락입니다. 그렇습니다. 경기하는 자는 법대로 해야 합니다. 법대로 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점수를 받고 일등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실격이 됩니다.
이처럼 운동선수가 경기를 법대로 해야 하는 것처럼 복음을 증거 하는 자도 복음의 방법대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친구사이 전도축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전도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저기에서 4월 16일에 몇명 초청하기로 했습니다고 좋은 소식을 전해 주십니다. 참 감사합니다. 많이 애써주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와서 복음의 메세지를 한번이라도 듣게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복음의 방법은 언제나 미련하고 어리석어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볼 때‘어떻게 그래가지고 사람들이 교회에 오겠는가, 그렇게 목회하다가는 망한다’고 하는 말까지 들어봤습니다. 교회를 성장시키고 교회성도수가 늘어나고 교회를 꽉꽉 채우는 것이 마치 목회의 성공인 것처럼 생각하고 하는 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느사이 교회에서 복음의 본질인 '예수 그리스도'는 사라지고 여러가지 프로그램과 공연들, 유명인들의 간증집회 등이 전도를 대신해 버린 것을 보면서 고민을 많이 하게 됩니다. 물론 그 안에 참된 복음의 내용이 들어가 있는지를 항상 점검해야 할것입니다. 군대있을 때 함께 내무반에서 생활했던 선임 중에 제대 후에 유명한 연예인이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군대있을 때도 대단했었습니다. 휴가를 쌓아놓고 다니는 사람이었습니다. 얼마나 재밌는지, 얼마나 말을 잘 하는지, 군대 행사 사회는 전담이었습니다. 왠만한 연예인 보다 낫다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제대 하고 나서 유명해졌습니다. 그런데 유명해지고 나서 갑자기 간증집회를 다니더라구요. 그런데 제가 알기에 그렇게 간증다닐만한 분이 아니었는데,,,, 예수 믿었었나?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뭐~예수믿고 변화된 이야기를 하면 더 설득력은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유명인이다보니 전도축제를 할 때 그런 사람을 불러 간증을 하게하면 초청하는데 조금더 쉬워집니다. 누구 보러 가자! 그러면 사람들이 호기심에 오죠. 그 사람 부르는데 어떤 교회에서는 1000만원, 최소 500만원 쓴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한창 인기를 얻을 때, 룸살롱에서 폭행사고를 치고 연예계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때 그 연예인의 간증을 들었던 사람들은 교회를,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생각에 마음이 답답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순수한 복음이 변질된 복음이 되어갑니다. 교회에 점점 하나님의 방법 대신 세상적인 방법. 인간의 방법이 더 드러나고 있는 듯합니다. 인본주의가 가득합니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더욱 진하게 풍겨야할 교회에 사람의 냄새로 가득합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명목 하에 교회 만이 할수 있는 복음사역이 아닌 어디서나 누구나 할수있는 잡다한 사역들로 교회가 너무 분주합니다.
복음이 없는 상담. 복음이 없는 교육. 복음이 없는 구제. 복음이 없는 친교가 교회안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심지어 복음이 없는 설교도 있습니다. 분명 설교를 하고 있는데 성경과는 무관한 세상 이야기로 도배가 된 설교가 있습니다. 하나님. 예수님이라는 말을 부처님. 알라신으로 일월성신으로 바꿔서 절에 가서 설교해도 괜찮은 설교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우주의 기운으로 바꿔 옆에 있는 사회복지관 교양강좌를 해도 괜찮은 설교가 좋은 설교다. 좋은 설교자다라고 합니다.
어떤 목사님께서 제가 이런 말을 하니까 뭘 그리 고리타분하게 하냐? 사역히는데 있어서 본질도 중요하지만 수단도 중요하다. 그 수단을 잘 사용하는 것도 지혜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에 동의합니다. 정말 복음이 그 수단 안에 진하게 녹아있다면 말입니다. 사람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 그래서 세상적 기준에 맞는 성공목회를 하는 방법을 사용하는게 지혜가 아니라 순수한 복음을 얼마나 수단과 방법 속에 잘 농축시켜 변질되지않고 잘 사용하는냐가 지혜인 것입니다.
제가 너무 뜬구름 잡는듯한 말을 합니까?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교회에서 가장 많이 쓰는 말 중에 '사랑'을 생각해 보십시오. 교회의 사랑은 두가지 사랑으로 생각해 볼수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입니다. 당연히 성도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럼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거짓말 하는 자다라고 했으니 우리 서로 사랑합시다라고 하죠. 그래서 사랑이 넘치는 교회가 되도록 여러가지 친교프로그램과 취미나 소그룹, 또래 그룹등을 통해 친교그룹을 만들어 서로 교제하게 합니다. 교회의 하나됨을 위해 참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모임의 목적이 단순히 성도들끼리 친교를 통해 사랑을 나눈다는 목적으로 머물면 교회의 소그룹으로는 타당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는듯 하나 실제로는 내가 사랑해할 이웃들, 아직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 불신자들을 향한 이웃사랑이 실천되는 친교그룹,프로그램이 되어야 합니다. 아쉽게도 교회안에 있는 친교그룹들이 이 목적을 분명히 하지 못하고 세상에 흔히 있는 친목동아리와 같은 형태로 유지됩니다. 남전도회 연합 부흥회같은 거 하면 주로 나오는 예화 중에 1년 남전도회 사업계획을 알아보니 상반기에 개잡아 먹고 하반기에 개 잡아먹는 사업계획이었다는 예를 많이 듭니다. 사랑? 성도들끼리 친하고 사랑합니다? 이것에 멈춰지면 교회는 소금의 맛을 잃은 것입니다. 교회만이 가지고 있는 맛이 무엇입니까? 바로 복음입니다. 그 복음 안에 핵심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께서 과연 교회안에 개잡아 먹는 모임만들기 위해. 고작 성도간의 친교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건가요? 오직 예수 만이 생명의 길이요 구원의 문인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외쳐야 하는 것이 우리, 즉 교회의 맛입니다. 교회 소그룹, 친교그룹, 친교프로그램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단 건강한 교회 소그룹과 친교 그룹이 되려면 복음의 맛이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맛이 나는 소그룹과 친교그룹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해야 하는 것처럼 교회는 하나님의 방법을 찾고 따라야 합니다. 인간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 그리고 복음, 즉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명을 따라 사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을 이루는 것입니다.
세번째. 충성된 그리스도인은 주님을 위해 수고하며 삽니다.
충성된 그리스도인은 농부처럼 살아야 합니다. 그럼 농부의 자질을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6절 말씀을 보면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합니다. 이 말씀에 보면 농부의 자질은 '수고하는 농부'입니다. 농부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부지런하여야 합니까? 농사는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때를 놓치면 농사를 망칩니다. 그러므로 농부는 부지런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침 일찍부터 논밭에서 일을 합니다. 온 몸이 까맣게 탄 농부를 생각해 보십시오. 게으르면 농사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농작물 다 죽입니다. 수확물을 얻을 수 없습니다. 농부가 흘리는 땀을 생각해 보면 땀은 정직하며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있습니다. 농부는 부지런히 수고할 때 멋져 보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의 충성은 무엇인가 하면 바로 복음을 위한 일을 위해 부지런히 수고하는 모습입니다.
달란트 비유를 생각해 보십시오. 주인으로부터 5달란트, 2달란트 받은 종들은 부지런히 장사를 해서 5달란트, 2달란트를 더 남겼습니다. 반면 1달란트 받은 종은 땅에 묻어두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주인이 돌아왔을 때, 5달란트,2달란트로 부지런히 장사를 해서 똑같이 5달란트, 2달란트를 남긴 종들을 향해 '착하고 충성된 종이다'고 합니다. 반면 1달란트를 땅에 묻어두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종을 향해서는 '게으르고 악한 종이다'고 했습니다. 부지런히 수고하는 농부의 이미지와 게으르고 아무것도 하지않는 1달란트 받은 종의 이미지가 완전히 반대입니다. 달란트를 단순히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이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참 잘못된 해석입니다. 달란트는 하나님 나라의 비유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 즉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를 가르쳐 줍니다. 주인이 떠나면서 종들에게 맡긴 달란트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제자들에게 맡기신 복음입니다.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주님께서 맡기신 복음을 부지런히 수고해서 전해야 합니다. 복음의 열매를 거두어야 합니다.
성경을 봐도 복음을 전하는 것에 대해 농사의 비유를 많이 듭니다. 울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라.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은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지 않는 사람입니다. 복음전파의 귀한 사명을 우리가 받았으니 하나님께 최선의 삶을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교회에 꼭 필요한 사람들이 수고하는 농부같은 사람입니다. 복음전파, 전도를 위해 미친 사람들 말입니다. 교회에 전도에 미친 사람 3명만 있으니까 교회가 완전히 달라지더라구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3명이 팀을 맞춰 전도하기 시작하는데 전도해서 매주 새가족을 등록시킵니다. 전도만 하는 게 아니라 그 3명이 정착/양육까지 다 책임집니다. 그렇게 전도에 미쳤다고 밖에 할 수 없는 분들이 있으니까 다른 성도들도 나도 전도하고 싶다. 어떻게 해야 됩니까? 라고 하면서 전도팀들이 줄줄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복음을 받은 사람들이 또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 사역을 계속해서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이것을 위해서는 충성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충성된 그리스도인은 수고하는 농부같은 성도들입니다.
복음을 위해 부지런히 수고하는 충성된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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