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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마태복음3:17-4:17 끝까지 달리기 위해 본문

신약/마태복음

마태복음3:17-4:17 끝까지 달리기 위해

행복으로초대 2023. 12. 30. 15:17

2023년 12월 31일.

딱 2023년의 마지막 날입니다. 

여러분은 올해를 어떻게 시작하셨습니까?

기억이 나십니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해돋이 보면서 새해 소원과 목표를 정하고 간절하게 빕니다. 

 

여러분~

혹시나 오늘 해돋이 보러갈 계획 하고 계신 분 계십니까?

해돋이 보러 가지 마십시오. 

해돋이 보면서 마음 새롭게 하고

해돋이 보면서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해돋이 보면서 소원 빌지 마십시오. 

어떤 교회 보니까

해돋이 보러 가는 일정을 잡는 교회도 있더라구요.

알고보면 우상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예배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

설교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

하나님 앞에 나온 자들에게 말씀하시는

그 하나님을 만나야 될 줄로 믿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하듯이 새해라고 해돋이 보러가는 

잘못을 범하지 마십시오. 

 

송구영신예배를 왜 하느냐?

옛날부터 해왔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새 해의 소원과 기도와

새로운 삶의 목표와 길을 걷기 위해서 

하나님 앞으로 나오라는 것입니다. 

 

혹시나 해돋이 일정 잡고

오늘 동해로 가려고 하시는 분들, 딱 걸렸다!

그런거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끝까지 달리기 위해서! 오늘 말씀의 제목입니다. 

오늘 12월 31일, 내일은 1월 1일입니다. 

뭔가 다른 날입니까? 알고보면 해가 뜨고 해가 지는 반복되는 날들입니다. 

하지만 마지막 날과 첫날이라는 의미가 주어지면

거기에 힘이 생깁니다. 

 

이스라엘에는 절기가 있습니다. 

절기가 왜 있을까요?

유월절, 무교절, 나팔절, 대속죄일, 맥추절, 수장절.

이런 절기가 왜 있을까요?

저를 따라하세요. "하나님을 기억하라!"

인간이 기억상실증, 건망증에 걸려서 자꾸만 하나님을 잊어요.

살면서 하나님을 늘 기억하면서 살아야 되는데, 

하나님께서 절기를 때마다 두셔서 하나님을 잊고 사는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보면 부활절, 맥추감사절, 추수감사절, 성탄절, 이렇게 

일년동안 절기가 있잖아요. 여러분~한국교회에 예배가 많다는 사람들이 있어요.

한국교회에는 왜 이리 예배가 많아요.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작심삼일이라고 하잖아요.
주일 예배를 드리고나면 말씀을 잘 기억하면 좋겠는데, 

예배를 마치고 문을 나서면 금방 까먹어요. 

그렇지 않고 말씀을 잘 기억하고 잘 붙들고 사는 사람도

삼일 정도 지나면 까먹어요. 맛있게 까먹어요.

그런데 기억하지 못할 쯤 되면 뭐가 있어요. 

수요예배가 있습니다. 

수요예배에서 은혜 받고 말씀대로 살아야지 하죠~

삼일정도 지나면 까먹죠. 뭐가 있어요. 금요기도회가 있어요.

금요기도회에서 또 은혜 받았어요. 말씀에 붙잡혔어요. 

그런데 삼일이 지나면 또 까먹어요. 그러면 뭐가 있어요.

주일 예배 드리면서 또 은혜받으면 되요. 

만약에 내가 매일마다 까먹어요. 기억못해요. 

그럼 뭐하면 될까요? 새벽기도 하면 됩니다. 

 

사람은 연약해서 잊고 살고, 하나님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12월 31일, 1월 1일, 똑같은 날입니다. 

하지만 시작점에 선다는 것이 다릅니다. 

내년 이맘 때에도 믿음으로 달려간 삶이 승리의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제가 어릴 때, 육상 선수였습니다. 

높이 뛰기 선수였습니다. 우상혁 선수 하시죠? 그런 높이 뛰기를 했습니다. 

중3때까지 선수생활을 했는데, 나름 잘 했습니다. 

전국랭킹 4위까지 했었습니다. 

 

한 대회를 나갔는데, 제 시합을 다 마쳤는데, 

다른 학교의 코치 선생님이 저에게 부탁을 했어요. 

자기 학교의 선수를 부탁을 하는거에요.

코치 선생님이 혼자서 여기저기 다 할 수 없으니까

저하고 좀 아는 사이라, 저에게 부탁을 했어요. 

 

저에게 맡긴 그 선수가 달리기를 정말 잘해요. 

달리면 1등이에요. 기록상으로도 1등이에요.

그런데 문제가 있었어요. 약간의 정신지체가 있었어요.

달리기 기록으로는 1등인데, 100미터 달리기에서

항상 마지막에 약70미터쯤 지나면 옆으로 빠져요.

그래서 출발할 때까지 말을 해 줘야 된대요. 

달리기는 1등인데, 항상 실격이니까.

달리기는 자기 선만 달려야 합니다. 

선을 넘어 다른 선수의 라인으로 뛰면 실격입니다. 

 

그래서 그 선수를 데리고 계속 얘기를 해주는 거에요

잘 봐! 니가 달리는 선은 이 선이야. 끝까지 이 선 넘어가면 안돼.

끝까지 이 선만 달려야 해. 알았지? (고개 끄떡끄떡)

선 넘어가면 안된다고(고개 끄떡끄떡)

 

경기가 시작됐습니다. 

제가 끝까지 달려야 해~~~

결승점에서 제가 소리를 지르면서 

여기야~나만 보고 달려~ 선넘으면 안돼~

 

땅~~~

얼마나 잘 달리는지...

50미터 1등 60미터 1등 70미터 1등

80미~~~~~~터~~~어~~~왜~~~~

90미터 왜~~~~~ 100미터.ㅠㅠ

1등으로 들어왔어요.

하지만 마지막에 옆으로 빠지면서 실격.  

잘 달리면 뭐하냐구요. 

 

끝까지 달려가는 것.

딴 길로 가면 안됩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사역 초기.

예수님의 사역 시작에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출발점에 서서 마지막까지 우리를 위한 

구원을 완성하셨는데, 출발점에 선 예수님에게도

딴길로 가도록 시험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이 3년의 첫 시작을 어떻게 하셨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3년의 그 힘든 시간을 보내시고 십자가에서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

이상한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지만

성령님께 이끌려 시험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3가지 시험을 받으시는데 

이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허락한 것이며, 

성령님께서 예수님을 광야로 이끌어 간 것입니다. 

 

예수님의 시험받으심은

우리에게 분명한 메세지를 주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시험받으시는 장면을 보면

올 한 해동안 내가 받았던 시험들과 겹치지 않습니까?

우리 성도들이 믿음으로 살아가는 동안 

우리 안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시험과 유혹이 고스란히 

똑같이 담겨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40일 금식하셨고

먹고 사는 의식주 문제, 인기와 명예, 힘과 지위와 권세의 시험들을

어떻게 이길 수 있었을까요?

 

믿음으로 살아내려면, 

1)첫번째 영적안목 : 믿는 자에게는 평생 시험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평생 시험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아무리 말씀대로 살아도

'평생'을 시험받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귀의 정체가 넘어지게 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마귀는 내가 죽을 때까지 나를 시험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실 때, 마귀의 시험을 이기셨다고 

마귀가 예수님 시험하기를 끝냈을까요?

아닙니다. 마귀는 이 후에도,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실 때까지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을 걷지 못하도록,

십자가의 죽음을 포기하도록 유혹합니다.

예수님도 계속해서 시험을 당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으면 시험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험이 강해집니다.

시험이 수준이 계속해서 더 높아집니다. 

여러분!~초등학교 1학년 학생에게 초등학교 1학년 문제를 주죠.

그 학년에 맞게 문제가 있듯이 신앙도 믿음도 그 수준에 맞게 시험이 있습니다. 

평생 시험이 있지만  시험의 수준이 높다는 것은 믿음이 수준이 높다는 말이죠.

제발 여러분~ 유치부 수준의 시험을 당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신앙의 연수가 40년이 되었으면 40년 짜리 시험을 받아야 하는데

시험 수준이 초등학교 5학년 시험을 당하면 안됩니다.

평생 시험을 당하지만 수준높은 시험을 당하십시오. 

 

주일 성수, 예배드리는 것이 시험꺼리인가요?

당연한 것인데, 어떤 사람에게는 시험꺼리가 됩니다. 

(고등학교SFC활동 때, 주일 자율학습때문에

선생님에게 맞았지만 신앙의 자유, 예배의 자유를 얻은 일)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예수 믿는 사람들은 깡다구가 좀 있어야 돼요. 

맞아도 되요. 괜찮아요.

 

니들은 아이구....대신 교회 간다고 하면서

성적 떨어지면 안돼. 성적 떨어지면 그  땐 학교 와야돼.

제가 아는 한 청년은 몸이 좋지 않아. 

본당에 앉아서 예배드리기 힘들었는데도 불구하고

모자실에 와서 누워서 예배드리는 모습을 봤습니다. 

 

내가 고등학생이 되어서 미분 적분 풀고 있어야 되는데

맨날 더하기  빼기 시험을 치면 되겠습니까?

수준높은 시험을 치시기 바랍니다. 

 

2)두번째 영적안목 : 나의 연약함이 틈이 되기도 힘이 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받으신 첫번째 시험이 무엇이었습니까?

4장 3절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돌이 떡이 되게 하는 먹는 문제였습니다. 

먹는 문제를 시험꺼리로 내 놓았습니다. 

왜 하필이면 이 시험이 첫번째 시험이었을까요?

사람의 가장 근본적인 시험이 먹고 사는 문제이기 때문일까요?

 

성경을 잘 보셔야 합니다. 

왜 먹고 사는 문제가 첫번째 시험이 되었는가?

2절을 보십시오. 

"사십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예수님이 배고프셨기 때문입니다. 

시험이 어떻게 오느냐하면

연약한 부분으로 와요. 

만약, 예수님이 선거에 나갔다가 떨어졌으면

마귀는 내게 절하면 천하를 주겠다고 하며 시험을 걸었을 겁니다.

나에게 절 한번 해~그럼 국회의원 뺏지 달아주께.

마귀는 우리의 연약함, 필요, 약점, 그 틈을 파고들고 시험합니다.  

 

시작점에서 도착점까지 어김없이 우리에게 평생 시험이 있는데, 

그 시험은 나에게 생긴 틈을 통해서 마귀가 시험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연약함, 약점, 감정, 부족함. 욕망, 정욕. 이런 것들로

마귀가 시험을 하는 것을 알아야 해요.  

 

여러분의 틈은 무엇입니까? 

베드로는 권력지향적인 인물입니다. 

예수님의 수제자였죠.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죽음을 말씀하실 때,

베드로는 강력하게 예수님께 항변하고 말렸습니다. 

예수님 절대로 안됩니다. 그렇게 따졌던 사람입니다. 

권력지향적인 사람이기에 예수님의 수제자로의 권력.

예수님이 왕이 되시면 예수님 곁에서 권력을 누릴 생각이 가득한 사람입니다. 

결국, 예수님께 꾸지람을 당하죠.

"사탄아 네 뒤로 물러가라."

그렇게 혼났으면서도, 예수님께서 잡히실 때, 

칼을 빼어서 말고라는 사람의 귀를 자르면서

예수님께서 잡히시는 것,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의 길을 

가는 것을 막으려고 합니다. 

 

설암판정 받은 권사님

실의에 빠진 권사님. 

소식이 전해지자 온 성도들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제가 교구담당이었기 때문에 전화로 위로해 드리는데,

저한테 막~~~화를 내시는거에요.  

"기도 좋아하네. 목사님~ 설암이 얼마나 끔찍한 병인지 알아요

아무 것도 모르면서, 내 마음이 어떤지 아는 척 하지 마요.

기도는 무슨? 기도하면 낫나? 기도하면 고쳐지나?

맨날 기도 기도 기도!!!! 

막 화를 내면서... 탁 끊으셨습니다. 

순간, 뭐지? 상심이 크시니까, 그래도 기도해야지.

알고 보니 성도들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전화하거나

찾아가서 위로하고 기도했는데, 

마음으로는 믿지 못하고 오히려 분노만 쌓였던 겁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내가 왜 설암에 걸리는데,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왜 안 고쳐주는데.

이러고 있다가 저한테 터진 겁니다. 

 

어떻게 됐을까요?

설암이 나았을까요? 아니요. 

설암이 아니었습니다. 돌팔이의사가 잘못 판정했던 겁니다.

서울에 큰 병원에 갔더니만 쉽게 치료가 되는 단순한 질병이었습니다.  

권사님이 설암이 아니라는 말을 듣고 

돌팔이 의사한테 따지고 난리를 치고 나서,

갑자기 제가 생각이 났던 겁니다. 

아이고~~~ 큰 일났네.. 내가 김목사님한테 큰 실수를 했다. 

그러면서 저를 자꾸 피해다니시는거에요.

원수는 어디서 만날까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죠.

교회 복도에서 피할 길도 없는 복도에서 서로 단둘이 딱.

권사님이 아이구~하면서 몸을 웅크리시고. 

그래서 "권사님~정말 잘 됐어요." 따뜻하게 축하해 드리고나니,

"목사님 나~권사 아니다. 나 같은게 무슨 권사고...

미안해요. 목사님~ 내가 왜 그랬는지 나도 내가 이해가 안된다." 

 

저에게 화를 낸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뭐가 문제죠? 기도하면 낫나 맨날 기도 기도 기도. 기도하면 낫냐고.

했던 그 말을 하나님이 들으시는 거죠.

하나님의 능력을 부정하는 것. 

시험은 약하니까 그 약함 가운데 시험이 왔습니다.

 

거제호산나교회에서 밤 9-10시 쯤되면 저수지 저편에서 들려오는 

주여~~~소리가 저수지 넘어서까지 들리는 기도소리가 아름다웠던 기억.

그런데 그렇게 기도하는 그 분들이 연약한 분들입니다. 힘이 든 분들입니다. 

경제적으로 사업이 망하고 장사가 망해서 

빚지고 상한 사람들입니다. 힘들고 괴로운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자칫 잘못하면 세상으로 튕겨져 나가 

세상에서 방황하고 세상에서 인생을 포기하며 살 사람들이

밤만 되면 하나님 앞에 모여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면서 어떻게 하든지 돌파하려고 하는 

그런 분들이었어요. 그렇게 부르짖었던 분들. 

비록 고통과 눈물의 시간을 지나갔지만,

지나고 나니 하나님께서 기적같은 일들을 일으키셔서 

해결이 되어버린 경우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어려운 일 당할 때, 나의 믿음 적으나 

의지하는 내 주를 더욱 의지 합니다. 

 

어려운일 당할 때 주님을 더욱 의지하는 것. 

연약함이 틈이 되어 시험을 받아 넘어지는 사람있는 반면에

연약함을 기도로 바꾸어서 힘을 얻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둘 중에 누가 되시겠습니까?

연약할 때에 오히려 부르짖어 하나님앞에 기도하면서

힘을 얻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길을 여시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능력을 베푸시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일으켜 세워주실 줄 믿습니다. 

슬픔이 변하여 기도가 되고

아픔이 변하여 기도가 되고

눈물이 변하여 기도가 되게 하십시오. 

이렇게 하면 끝까지 달려갈 수 있습니다. 

 

3)세번째 영적안목 : 인생의 목표가 달라져야 합니다. 

연말 연초가 되면 한 해 목표를 많이 세웁니다.
저축얼마하기,  살 몇 킬로 빼기 다이어트, 운동해서 몸매 가꾸기.

절대 성공하지 못하는데 독서 한달에 한권이상 읽기, 금연, 금주, 

내집마련, 결혼, 직장 취업 공부 등의 목표를 세웁니다. 

 

예수님에게도 살아가는 목표가 있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14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예수님이 나사렛에서 가버나움으로 이사하신 것. 

그것조차 말씀을 이루는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모든 행적 속에 "말씀을 이루려 하셨다"고 합니다.

마태복음을 이런 관점으로 보시면 이것이 보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도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인생의 목표를 말씀을 이루기 위한 삶으로 살았습니다. 

 

인생의 목표를 세상과 같은 기준으로 세우려면 세우지 마십시오.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목표대로 하려면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라 

이 고백이 없이 계획을 세우려면 세상 계획 다 헛것입니다. 

 

요셉 좋아하시죠?

요셉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요셉을 정확하게 보십시오. 

요셉은 꿈꾸는 자가 아닙니다. 

꿈은 요셉이 꾼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꿈을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의 소원이 간절하면 그것이 꿈으로 꿀 때가 있어요. 

개꿈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꿈을 주셔야지. 

여러분이 가진 욕망과 욕심과, 잘못된 소원이 응축된 꿈은 개꿈입니다. 

요셉은 사는 동안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살지 않았습니다. 

형제들 보다 높아지기 위해,

부모와 형제들에게 절받기 위해 산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 앞에서 매일 매일 주어진 

상황과 환경에서 낙심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았을 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에게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이 말씀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매일 매일 매순간 살아냈을 뿐입니다.

꿈을 기억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애굽의 총리가 되고 나서 형제들이 자신 앞에서 절을 

하는 것을 보면서 아~ 그 때 꿈이 이것이었구나!

하나님께서 온 땅에 큰 구원을 베푸시기 위해 이 일을 하셨구나!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인생의 목표는 너무 길게 잡지 마십시오. 

한걸음 한걸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내는 것에도 

우리는 많이 연약합니다. 

하루를 살아도 믿음으로 살아야지

하루를 살아도 말씀대로 살아야지

하루를 살아도 기도하며 살아야지.

하루를 살아도 사랑하며 살아야지.

그렇게 하면서 살아내는 것이 우리의 사람입니다. 

매일 매순간 하나님 말씀을 살아내는 것.

하나님과 바른 관계 속에서 사는 것을 목표하십시오. 

 

요셉이 노예로 팔려도

감옥에 갇혀도

그가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바른 관계를 지켜냈던 자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때를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합력해서 선이 이루어지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것이 중요하고

부르심을 입은 것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인생의 최고 목표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두십시오. 

끝까지 달려갑시다. 

딴길로 가지 마시고 하나님 사랑하며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