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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부르심8일 창세기22:1-19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본문

구약/창세기

부르심8일 창세기22:1-19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행복으로초대 2024. 1. 3. 20:05

오늘의 부르심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입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떻게 응답해야 할지 아는 시간이 되기 바랍니다. 

 

1.하나님의 시험

오늘 말씀은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시험임을 분명히 말합니다. 

1절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그럼, 시험과목은 무엇일까요? 2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번제로 하나님께 드려라!고 합니다. 

번제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의 일종으로 소나 양의 완전히 

분해를 해서 불로 태워 드리는 제사입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런 끔찍한 일을 시킬까요?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험이 맞는지? 

왜 하나님께서 이런 시험을 하실까요?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 야고보서 1장 13절

하나님은 사람을 시험하지 않으신다고 했는데,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시험하신다고 했습니다.

이 시험과목의 이름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가서 이삭을 잡고

번제단 위에 올려놓고 칼을 들어 이삭을 죽이려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다급한 음성이 들립니다. 

 

11절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이르시되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12절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경외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사전적 의미는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의 의미는 '카바드'

카바드는 '무게'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무겁게 여기는 것입니다. 

무거운 쪽으로 치우치겠지요.

다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을 무겁게 여겨서

하나님께로 기울어 가는 것을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들에 무게를 둡니다. 

어떤 사람은 돈에 무게를 두고

어떤 사람은 명예에 무게를 두고

어떤 사람은 가족에 무게를 둡니다.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에 결국 무게를 두고

그것들에 치우친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이 관점에서 다시 2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이삭을 지칭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

 

아브라함에게 이삭이 얼마나 소중했을까요?

100세에 낳은 아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웠을까요? 

이삭을 향한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을까요?

사실, 이삭은 주께서 주신 아들입니다. 맞습니까?

그런데 아브라함이 주께서 주신 아들인 것을 잊고

내 아들 내 사랑하는 독자 이삭아~~~하면서 

애지중지하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무슨 운동을 시켰을까요? 주주운동 시킨 겁니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바쳐라!

그리고 이후, 계속해서 이삭을 뭐라고 부르는지 

보십시오. 

3절 : 그의 아들 이삭

6절 : 그의 아들 이삭

9절 : 그의 아들 이삭

이렇게 이삭에 대한 애착이 심한 아브라함에게

선택을 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이냐? 이삭이냐?"

엘리야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선택을 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냐? 바알이냐?"

 

이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에 더 무게를 두고 

이삭을 바치는 선택을 했습니다. 

 

12절에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아무리 이삭이 사랑스러워도 아무리 중요해도

무게 중심이 하나님께 맞춰져 있었습니다. 

 

우리는 어디에 무게중심을 두고 삽니까? 

아브라함아~아브라함아~ 부르실 때

이 음성은 놀라는 소리입니다. 

하나님도 놀랄 정도로 망설임없이 아들 이삭을 죽이려고 하는 

아브라함을 보면서 놀라서 외친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중요한 믿음의 선택을 해야할 중요한 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에 하나님을 놀라게 할 믿음의 순종을 할 수 있겠습니까?

<임시은 집사 : 선교관 바친 스토리> 

 

하나님을 가장 무겁게 여기고

하나님 중심으로 아들 이삭조차 바치는 아브라함~!

사실 우리에게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칠 수 있었던 힘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그것을 어디에서 알 수 있는가 하면,

5절의 말씀입니다.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돌아올 것인데, "내가"가 아니라 "우리가"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 우리가 돌아올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라는 말씀에서

아브라함은 자신이 이삭을 죽여도

하나님이 살리실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이를 어디에서 알 수 있는가 하면

히브리서 11장에서 알 수 있다.

히브리서 11:17,18절입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데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즉, 아브라함을 죽일 수 있는 믿음이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그를 다시 살리실 것에 대한 확신이 있어서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말씀에 대한 확신이 믿음입니다. 

 

여기서 여러분은 아브라함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를 볼 수 있어야 하고

이삭을 통해 예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복음입니다.

아브라함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으신 것은 

하나뿐인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이시면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살아가도록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