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태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하기365
창세기49:22 2024담장을 넘는 은혜3 전진하는 하나님의 꿈 본문
담장을 넘는 은혜는 꿈을 향해 전진하는 축복입니다.
옛날 잘 사는 집의 담장은 높았습니다.
또 담장에 철조망이나 깨진 유리병 조각을 박았습니다.
도둑과 같은 위험으로부터 집을 지키기 위해서죠.
담장은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보호받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담장은 안정, 안보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한 집의 담장 안에 있으면 안전하지만
그것을 넘어가면 위험합니다. 안전하지 않습니다.
느헤미야가 무너진 성벽을 재건해야 할 이유도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백성이 보호를 받고
안정을 얻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성벽 또는 담장 안에 있으면 안전합니다.
마치 도피성처럼 성 안에 있으면
생명을 보존받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요셉을 향한 야곱의 축복은
그 가지가 담을 넘었습니다.
편안히 있을 것을 넘어서 쭉 뻗어서 열매를 맺습니다.
누구나 담장 안에 있는 것이 편안합니다.
담장 안의 삶이 익숙해지기 시작하면 변화를 원하지 않습니다.
담장 안의 시스템, 담장 안에 쌓아올린 전통,
담장 안의 사람들로 굳어버립니다.
그래서 늘 하던 방식대로 합니다.
새로운 것, 새로운 시스템, 새로운 사람에 대해 열리지도 않고
나아가지도 않고 그냥 담장 안에 갇혀 있는데,
거기가 좋다고 합니다.
이정도면 됐지 뭐...거기서 안주해 버립니다.
한 때는 하나님의 꿈으로 가슴이 뛰었는데,
어느샌가 하나님의 꿈은 저만치 가고 있는데...
자신이 이루어놓은 것에 만족하면서 이정되면...되었지...멈춰버립니다.
안전한 정도에서 그쳐버립니다.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을 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일을 꿈꾸지 않습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개혁합니다. 끊임없이 변합니다.
끊임없이 새로워집니다.
그런데 교회는 참 신기하게도 매일 하던 방식대로 합니다.
이제 내 신앙도 어느 정도 자랐고,
교회 사람들도 어느 정도 알고...
예배당도 이정도 지었으면 되었지 뭐...뭐하러 또 귀찮게...
전도하고....무슨 프로그램하고...그래야 하나?
그냥 조용히 신앙생활 하면 될 것을....안주해 버립니다.
요셉과 아들들을 축복한 야곱은 유언을 마치고 죽음을 맞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할 것은 그의 매장지가 가나안 땅이었다는 것입니다.
애굽의 거대한 피라미드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천하에 자신보다 높은 사람은 바로왕 하나밖에
없는 절대 권력자 요셉의 아버지인데, 애굽에 얼마나 거대하고 화려한
무덤에 묻힐 수 있었을까요? 하지만 야곱은 애굽에 마음이 없습니다.
무덤은 무덤일 뿐입니다. 무덤은 죽음일 뿐입니다.
야곱에게는 가나안땅의 약속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가나안 땅에 있기 때문에 약속을 보고
애굽의 담장을 넘어 죽어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향해 전진합니다.
그리고 요셉도 죽어서 비록 애굽 땅에 묻혔지만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에
자신의 해골을 메고 올라가 가나안 땅에 다시 묻어주기를 유언합니다.
그의 선조였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
하나님 나라의 꿈을 펼쳐나가실 약속의 땅을 향한 간절한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까?
야곱과 요셉은 애굽에서의 영광에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상급인 가나안 땅을 열렬히 소망하며 살았습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하나님의 꿈을 향해 전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의 핵심제자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따로 산에 올라갔습니다.
그 산에서 예수님이 영광스럽게 변하시면서, 예수님 앞에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났습니다.
예수님, 모세, 엘리야의 대화 주제는 '장차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입니다.
여기서 '별세'라고 번역된 헬라어가 '엑소더스'입니다. 떠나다. 탈출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종살이에서 자유를 얻어 떠나는 출애굽기가 엑소더스입니다.
즉 예수님은 죽음을 향해 예루살렘으로 전진하는데, 그 죽음이 소멸이 아닌,
죄의 종살이 하는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는 엑소더스, 탈출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인된 우리를 향해 이런 꿈을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보냈고
예수님은 그 임무를 이루기 위해 사시며, 그 임무를 더욱 확실히 하기 위해
모세와 엘리야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신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우리가 잘 알듯이 '여기가 좋사오니' 초막 셋을 짓자고 하니
사람은 자기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 즉 자기만의 담장에 갇혀사는 존재입니다.
담장 안에 갇혀 있으면 안됩니다. 사단과 마귀는 담장안이 좋다고 합니다.
담장 안이 안전하다고 합니다. 담장 안에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을 말하자, 베드로가 안된다고 예수님을 말렸을 때,
예수님이 베드로를 향해 뭐라고 하셨습니까?
사단아~네 뒤로 물러가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 전진하는 예수님을
사단은 그럴듯한 구실로 막으려고 담장 안에 있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담장 안에 머물고 전진하지 못하도록 막아섭니다.
성도들이 담장 밖을 보지 못하고 전진하지 못하도록 막아섭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성도들은 항상 담장을 넘어 하나님의 꿈과 함께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담을 넘게 하셔서 내 가지의 열매를 먹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 정도에서 끝나서는 안됩니다. 죽는 날 까지 푯대를 향해서 달려가야 할 일입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나는 이길을 가리라 좁은 문 좁은 길 나의 십자가 지고... ”
하나님 여기서 저를 사용하시는 것을 멈추시려구요? 안됩니다.
하나님 저를 더 사용해주세요. 마음껏 사용해주세요.
이유는! 더 많은 사람들이 내가 누린 이 축복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절대로 자기 안에 안주하지 않는 자,
자기 테두리 안에 갇혀 있지 않는 사람.
이런 사람이 이런 복을 받기에 합당합니다.
담을 넘는 무성한 가지는
하나님 열매를 많이 맺고 싶은데 담을 넘어 열매를 맺고,
그 열매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따 먹어도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여러분 기대되지 않습니까? 나를 통해서...우리 교회를 통해서..,
이 땅의 교회, 이 땅의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서..
정말로 하나님께서 일으키실 일이...
푸른 의의 나무가 가득하게 이 땅에 메울 그런 그림이
우리 신앙을 흥분시키지 않습니까?
영주 이 지역은 참 폐쇄적인 지역인 것 같습니다.
참 변하기 힘든 지역인 듯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지역과 민족과 나라를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교회를 통해 바꾸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세상이 바뀌길 원하시는데....
나는 여기가, 지금이 좋다. 이정도면 됐지..안주하려고 합니다.
안주하는 순간 그때부터는...앞으로 나가지도..
흘러가지도 않고..썩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축복주시고, 말씀 주셔서 하나님의 마음을 읽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전진해 나갈 수 있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하십시오.
그때는 주저없이 달려갑시다. 망설임없이 일어납시다.
하나님의 마음이 깨달아진다면...돌아서서 후회하지 않도록...나의 삶을 드립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 가운데,
또한 우리 교회에 담장을 넘는 축복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전진하는 성도와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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